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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빠의 원조, 도산 안창호

한국인의 흔적을 LA의 명문대학 캠퍼스 안에서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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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를 돌아다니다 보면, 도산 안창호의 성함이 참 많이도 발견된다. 처음 그분의 성함을 목격한 곳은 코리아타운 안의 우체국이었다. 엄연한 미 연방 정부 기관인데, 도산 안창호 우체국(Dosan Ahn Chang Ho Federal Post Office)이란 명칭을 달고 있다. 코리아타운 안이라서 그런가 보다 했다. LA의 인터체인지 이름에서도, 미국인이 운영하는 대형 병원에서도 도산의 이름을 발견했다.

까무잡잡한 얼굴의 남학생과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를 돌아보았다. (이 학교에 지원하는 고등학생, 편입생, 입학 확정을 받은 학생과 가족을 대상으로, 학교 웹 사이트를 통해 예약 가능한 학교 공식 투어가 있다.) 남학생은 건물 옆구리로 돌아가더니 관재과에서 쓰는 골프 카트 모양의 사륜 원동기를 끌고 나왔다. 으음? 살다 보니 이런 드라이브를 다 하게 되네? 학생 옆자리에 앉아! 좀 재미있는 건물이나 학교 역사를 볼 수 있는 뭔가가 없느냐고 물었다. 단 하나, 내가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차 안에서 멀리 손을 뻗으며 저기 보이는 2층집이 한국학 연구소야, 라고 말하더군.




아까 챙긴 학교 홍보물을 훑어보니, 한국학 연구소의 건물 이름이 도산 안창호 패밀리 하우스였다. 그런데 도산을 기념하려고 이름을 그리 붙인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도산 안창호의 옛날 집이었다. 단, 도산은 가족이 새로 이사한 저 집에 와보기 전에 머나먼 한국 땅에서 사망했다. 건물 이름에 패밀리가 붙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와, 이역만리 미국 땅에 대한민국 위인의 집이 저렇게나 잘 보존되어있다니, 정말 신기했다.

도산 안창호의 가족이 LA로 이주한 것은 1914년이다. LA 다운타운의 외곽 지역에서 여러 번 이사했고, 그중 1937~1946년에 살았던 2층 목조 건물이 현재 USC 캠퍼스 안에 매우 잘 보존되어 있다. 이 공간은 개인 살림집을 넘어, 당시 재미 독립운동가들의 사랑방이자 흥사단 고학생들의 종갓집 역할을 했다. 이런 독립운동의 공으로, 도산의 부인 고 이혜련 여사는 2008년 단독으로 건국훈장을 추서 받았다.




이 집은 원래 대학 인근(954W. 37th St)에 있었는데, USC 캠퍼스가 확장되면서 헐릴 예정이었다. USC 한국 동문들이 이 집의 역사적 의의를 학교에 호소했다. 결국 학교는 이 집을 학교 캠퍼스 내로 옮겼고, 아예 독립적인 한국학 연구소 건물로 지정했다. 사실 머나먼 미국 땅에 한국학 연구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히 반갑다. 게다가 미국의 유명 대학이 도산 안창호의 정신이 깃든 집을 수고로이 옮겨 가꿔준 것이라니, 좀 많이 감동적이다.

건물의 외장은, 대학 캠퍼스 안에 웬 개인 집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고 평범하다. 누르스름한 페인트를 칠한 벽에 빨간 지붕을 얹어놓았다. 문을 삐걱 열고 들어가면 오래된 나무 냄새가 풀풀 난다. 도산 관련 전시물을 1층 전체와 2층 일부에 전시해놓았다. 매우 한국적인 글자와 액자들이 서양식 목조주택 안에 주렁주렁 걸려 있어, 그 이질적 조화가 꽤 독특하다. 누구나 둘러볼 수 있는데, 그래서 잘 안 들르는 듯 많이 한적하다.




LA를 돌아다니다 보면, 도산 안창호의 성함이 참 많이도 발견된다. 처음 그분의 성함을 목격한 곳은 코리아타운 안의 우체국이었다. 엄연한 미 연방 정부 기관인데, 도산 안창호 우체국(Dosan Ahn Chang Ho Federal Post Office)이란 명칭을 달고 있다. 코리아타운 안이라서 그런가 보다 했다. LA의 인터체인지 이름에서도, 미국인이 운영하는 대형 병원에서도 도산의 이름을 발견했다. LA 근교의 리버사이드라는 지역에는 도산 안창호의 전신상이 서 있다. 심지어 마틴 루터킹 목사를 기리는 세계 민권 명예의 전당(International Civil Right Walk of Fame, Atlanta)에 도산 안창호의 이름과 발자국이 2012년 헌액되기도 했다.

한국인이 많은 곳이니, 민족 간 다양성 존중 차원에서 한국 위인을 기릴 수는 있다. 하지만 왜 꼭 도산이지? 한국인이 존경하는 독립운동가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김구와 안중근은 영화, 뮤지컬, 소설 등으로도 자주 환생하는 인기인이다. 서재필이나 이승만은 미국과 접점이 많은 대표적 친미파고. 이들을 놔두고 왜 LA 한인 사회는 도산만을 꼭 집어 편애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도산 안창호는 무려 구한말에 도미한, 말하자면 재미 교포의 시조가 되겠다. 그는 LA가 삶의 기반이었고, 그 후손들이 LA 한인사회에 매우 영향력 있는 존재로 잘 남아 있는지라, 지금도 미국 여기저기서 활발한 도산 기념사업을 볼 수 있다.

도산 안창호는 갓 결혼한 부인과 함께 1902년 미국에 도착했다. 한국인 남성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공식적으로 미국에 발을 들인 것이 이듬해인 1903년이었으니, 이렇게 이른 시기에 한국인 부부의 동반 입국은 매우 드문 경우였다.


처음에 도산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하우스 보이로 일했다. 그러고 나서 LA 근처 리버사이드 지역의 농장으로 이주해 낮에는 오렌지를 따고 밤에는 영어를 배웠다. 우리의 관념 속에서 독립운동가란 다들 북만주 북풍한설에 꽁꽁 떨고 계신 존재다. 햇살 쨍쨍 캘리포니아의 오렌지와 독립투사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단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녕 그랬다. 도산 안창호는 정말로 이런 말씀을 캘리포니아 교포에게 남겼다. “오렌지 하나를 정성껏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다.”

또한 도산 안창호는 대한민국 기러기 아빠의 진정한 원조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비분강개한 도산은 가족을 미국에 남겨놓은 채 1907년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흥사단을 창건하고, 상해 임시정부 내무총장으로서 세계 여러 곳에 생겨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통합하는 일을 맡았다. 만주,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멕시코, 하와이 등을 누비면서 해외 교민사회의 단결된 독립운동 지원을 고취했다. 몇 년에 한 번씩 미국 LA의 가족을 방문했고, 기러기 아빠는 그렇게 띄엄띄엄 총 다섯 명의 자녀를 생산했다.

도산 안창호는 1938년 한국에서 사망했다. 그의 부인과 자녀들은 대한민국 건국 후에도 계속 LA에 뿌리내리고 살았다. 생전의 도산과 이승만은 매우 사이가 나빠서,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야 도산의 가족이 한국에 올 수 있었다. 부인은 1969년 사망했고, 한국으로 유해가 송환되었다. 이후 그리도 멀리 떨어져 살았던 남편과 아주 긴 해후 중이시다. 그분들이 지켜내신 대한민국은 도대체 온데간데없는 국적 불명의 거리, 강남 신사동에 있는 도산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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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안나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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