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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날 많이 닮았구나 아들아. 미안하다 - 벤 폴즈(Ben Folds)의 < Rockin' The Suburbs >

아버지, 아들을 위해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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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사고가 난 고층의 아파트, 갇힌 아들을 위해 불구덩이로 뛰어들어 끝내 그를 구출해오는 아버지의 영상을 본 일이 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요. 인간의 부정(父情)은 정말 강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영상이었습니다. 오늘은 그런 ‘부정’을 노래한 곡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화재사고가 난 고층의 아파트, 갇힌 아들을 위해 불구덩이로 뛰어들어 끝내 그를 구출해오는 아버지의 영상을 본 일이 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요. 인간의 부정(父情)은 정말 강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영상이었습니다. 오늘은 그런 ‘부정’을 노래한 곡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피아노 록의 선두주자 벤 폴즈의「Still Fighting it」인데요. 이 곡은 실제로 벤 폴즈가 자신의 아들을 위해 지은 곡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는 CF에서도 자주 들려 대중적으로 익숙한 곡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은 벤 폴즈의 대표작으로도 유명합니다. 그가 남긴 명반, < Rockin' The Suburbs >를 소개합니다.


벤 폴즈(Ben Folds) < Rockin' The Suburbs > (2001)

벤 폴즈는 아마도 1990년대가 배출한 가장 뛰어난 피아노 록 뮤지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보통 그의 선대 가계로 빌리 조엘(Billy Joel)이나 엘튼 존(Elton John)을 언급하는 데서 알 수 있듯, 피아노가 리드하는(piano-driven) 로큰롤을 표방해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의 최대 강점은 무엇보다 메이저 레코드사에 소속되었음에도 불구, 순수 인디 마니아들에게마저 그 돌올한 음악성을 인정받았다는 사실. 헌데 바로 이것이 벤 폴즈만의 성공 요인이었다. 메인스트림의 자본우선주의나 과도한 다림질의 늪에 걸려들지 않았던 그는 자유로운 사고를 마음껏 휘발하며 재기 넘치는 그만의 사운드트랙을 들려줬다.

이를테면 이것은 음악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인 것이어서 선배 아티스트들의 진중한 자세와는 대별되게 벤 폴즈는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쾌활한 몸짓을 스스로 만들어가면서 록의 코스를 질주해가는 경기병의 이미지를 선택했다. 록의 전통적인 반항 애티튜드, 즉 지상의 장애물을 제거하거나 쳐부수면서 저돌맹진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 경기의 노련한 기수처럼 가볍고 날랜 몸놀림으로 펄쩍 뛰면서 그것을 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뛰어넘기에 의해 벤 폴즈는 록 필드에 신생(新生)의 표현력을 선물할 수 있었다.






보통 트리오 그룹 벤 폴즈 파이브 시절의 앨범들, 예를 들면 처녀작 < Ben Fold Five >나 2집 < Whatever Ever Amen >이 그러한 이유로 명반의 특전을 받지만, 음악적 사유의 전면적 확장이라는 측면 때문에라도 본 솔로 데뷔를 그의 최고작으로 뽑아야 마땅하다. 또한 이는 마이클 잭슨과 완벽히 매치되는 케이스인데, 마이클 잭슨이 잭슨 파이브의 ‘파이브’를 떼어내고 음악적으로 몇 단계 올라섰듯, 벤 폴즈 역시도 동료들과 결별한 뒤 부담감을 떨치고 그만의 특화된 소리샘을 직조할 수 있었다. 벤 폴즈 골수들 중 밴드 시절 두 동료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드물다는 사실은 이를 잘 대변해주는 예시일 것이다.

첫 곡으로 피아노로 찍어내는 비트의 방점이 일품인 「Annie waits」는 벤 폴즈와 관련한 모든 작품들 중 가장 탁월한 스타트 송으로 기억될 만하다. 곡 하나로 인상적인 여운을 남긴 벤 폴즈는 이어지는 「Zak and Sara」와 「Still fighting it」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감수성을 실타래처럼 술술 풀어헤친다. 전자의 정신없이 진행되는 피아노 선율과 로맨틱한 무드를 자아내는 후자의 음악적 동거는 ‘삶에 대한 유머’라는 하나의 정신적 테마로 집적되며 일정한 효과를 발휘한다.

첫 세곡의 가사뿐 아니라 벤 폴즈의 스토리텔링 전반을 해석해본 팬들은 알겠지만, 벤 폴즈의 글들은 언제나 ‘인생에 대한 무한한 긍정성’을 발산한다.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낱말들의 묶음이 장난스러운 그의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오면서 벤 폴즈 음악은 듣는 이들에게 슬픈 비감을 자아내기보다는 소담하면서도 아련한 웃음을 짓게 한다. ‘그래도 삶은 한번쯤 살아 볼만한 것’이라고 노래하는 벤 폴즈의 매력은 이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것들을 앙상블로 수렴하는데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아들아 잘 잤니? 난 갈색 폴리에스테르 셔츠를 입고 있는 새란다. 콜라가 먹고 싶니? 아니면 프렌치 프라이를 줄까? 로스트 비프 콤보 세트는 놀랍게도 5달러 밖에 안 한단다. 헌데 괜찮아. 넌 돈을 낼 필요가 없으니까. 내가 계산 다했단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곧 상처인 것을, 모두들 알고 있는데 왜 하는 것일까.

-「Still Fighting It」 중-



물론 이런 성향을 비뚤어진 개인 세계의 반영이라든가 굴절된 거울의 심리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이런 모든 부정의 언어를 뚫고 마침내는 긍정성을 발현해냈기에 벤 폴즈의 음악은 인디적인 외피를 두르고도 메인스트림 필드에 소구할 수 있었다. 그가 음악적 시원(始原)에 해당하는 엘튼 존, 빌리 조엘 등과 또 다른 음악적 둘레를 칠 수 있었던 동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벤 폴즈 역시도 이 때문에 인디가 그 전권을 행사했던 1990년대의 중요한 음악적 채무자 중 한 명으로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그를 수식하는 대표 문구가 ‘얼터너티브 피아노 록 뮤지션’이다. 또한 여성 보컬과의 하모니가 일품인「Gone」, 벤 폴즈가 쓴 곡 중 단연 넘버원으로 칭송할 만한「The ascent of stan」, 폭발력이 발군인 로큰롤이자 타이틀「Rockin' The Suburbs」 등도 메이저와 인디를 양 어깨에 모두 둘렀던 그만의 음악적인 경쟁력을 훌륭히 대변해준다.






여유로운 영민함으로 한껏 부감되어 있는 피아노 록의 마스터피스. 비록 한 세대를 풍미한 슈퍼스타급은 아니었지만, 벤 폴즈 같은 독창적인 아티스트가 산재(散在)의 형태로 엄존했기에 그 시절은 음악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었고, 그래서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뇌리 속에 개별적인 추억담으로 끊임없이 회고되고 있다. 1990년대라는 음악적 번성기를 ‘파이브’와 함께 가로지른 벤 폴즈는 이 솔로 1집으로 당시의 추수가 그야말로 대풍년이었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 업 템포의 경쾌한 뜀박질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글 / 배순탁(greattak@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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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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