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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언 : 베트남과 한국에 희망의 다리를 놓는 까칠한 그녀

학살의 지옥에서 살아남은 그녀… 그녀의 상처는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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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어느 날 아침, 일곱 살 소녀가 살던 작은 마을에 총을 든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공기를 가르는 총소리,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뒤섞이던 공포의 시간. 군인들의 고함과 군홧발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곧 한 손에 수류탄을 든 군인의 검은 그림자가 방공호 안으로 드리워졌다. 나오지 않으면 수류탄을 던지겠다는 살기 어린 위협에, 가족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벌벌 떨면서 밖으로 나왔다.

학살의 지옥에서 살아남은
일곱 살 소녀는 지금


평화로운 어느 날 아침, 일곱 살 소녀가 살던 작은 마을에 총을 든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공기를 가르는 총소리,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뒤섞이던 공포의 시간. 군인들의 고함과 군홧발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곧 한 손에 수류탄을 든 군인의 검은 그림자가 방공호 안으로 드리워졌다. 나오지 않으면 수류탄을 던지겠다는 살기 어린 위협에, 가족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벌벌 떨면서 밖으로 나왔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소녀는 자신을 감싼 어른들 틈으로, 쓰러진 사람들의 붉은 등과 악마 같은 군인들의 얼굴을 겁에 질린 채 바라보고 있었다. 사방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고, 소녀의 가족들은 하나둘 시뻘겋게 물들어 쓰러져갔다. 소녀도 미친 듯이 날아들던 총탄을 피할 순 없었다. 이내 소녀의 참외 같은 배에서도 뜨거운 피가 솟구쳤고, 숨을 거둔 가족들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마을에 있던 노인과 여자들 그리고 갓 피어난 어린 생명들은 이유도 모른 채, 군인들의 총과 칼 앞에서 모든 생명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들은 눈도 감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고, 불타는 집만 남겨둔 채 태극 마크를 단 군인들은 유유히 사라졌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체들 사이로 어린 소녀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뜨거운 쇳덩이가 관통한 자신의 배를 움켜쥐고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소녀는 굳어 있는 가족들을 흔들며 오열했지만, 오래전에 숨이 멎어버린 그들에게 느껴지는 건 냉기뿐이었다. 그러던 중 주검들 사이로 숨이 붙어 있는 오빠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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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상처는 현재진행형

총알이 관통한 자국을 보여주던 아주머니는 끝내 오열하고 말았다. 통역을 하는 응언 누나도, 숨죽여 듣고 있던 나도 참았던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울음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한 번도 전쟁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피비린내 나는 지옥을 본 적 없는 나였지만, 순간적으로 전해지는 두려움 앞에서 온몸의 떨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두려움을 보이지 않으려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액자 속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한날한시에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소녀의 가족들이 작은 액자 속 그림으로 남아, 날 보며 웃고 있었다. 고개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쏟아지는 얼굴을 감싼 채 그렇게 떨고 있어야만 했다. 지옥의 기억을 함께 느끼며 몸부림쳐야만 했다.

한참을 울고서야, 침묵이 낮게 흘렀다. 그 고요함을 깨고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메인 목으로 증언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내 말이 응언 누나를 통해 전해지는 순간, 아주머니 입에서 터져 나온 분노 섞인 목소리의 떨림, 슬픔에 무너지듯 터져 내리던 아주머니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한 섞인 아주머니의 음성과 흐느낌은 내 가슴에 깊숙이 박혀버리고 말았다.

오래전, 한국군의 베트남 학살 문제를 특집으로 다룬 《한겨레 21》이었다. 첫 페이지에 있는 사진 하나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논길 위에 쓰러진 사람이 바로 자신의 어머니라고. 한국 잡지에 실린 어머니의 쓰러진 모습을 보면서 아주머니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한국에 대한 분노를, 그리고 복수를 다짐하진 않으셨을까.

아주머니의 상처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었다. 아주머니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뿐만 아니라 아픈 몸 때문에 생활고까지 겪고 있었다. 아주머니께 <나와 우리>팀과 상의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을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명함을 드리며 꼭 오겠다고 재차 약속을 드리자, 그걸 식탁 유리 밑에 넣으시며 매일 보면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살짝 웃는 얼굴로 으름장을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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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지구마을 여행 이동원 저 | 예담

대학생이 되면 누구나 공식처럼 떠나는 배낭여행이 아닌 자신만의 세계 일주를 기획하던 스물다섯 살 청년, 이동원은 단순히 관광만 하는 여행이 아닌 지구마을 사람들 사이에 스미고 싶은 여행을 위해 전 세계의 NGO 단체에 무차별로 메일을 보낸다. 그리고 수많은 NGO 단체에서 자신을 애타게 기다린다는 사실에 즐거운 마음으로 배낭을 멘다. 그렇게 남들과는 ‘조금 다른’ 7개월간의 전 세계를 향한 청춘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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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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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저12,42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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