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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찌는 건 배고픔 때문이 아니라 ‘가짜 식욕’ 때문이다. -『이모셔널 다이어트』

자, 이제 구박을 그치자. 사랑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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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씬하고 뚱뚱하고를 떠나서 다이어트의 가장 큰 폐해가 있다면 자기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살찐 내가 싫어, 라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라는 지극히 사소한 것 하나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이 싫어지고 무능력한 인간, 자제력 없는 인간처럼 느껴지는 것이 다이어트의 가장 큰 후유증이고 고통이다…

평생 다이어트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고 오히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말랐느냐고 타박을 하는 것도 스트레스라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지극히 보통의, 통통한 사람이다. 부끄럽지만 지난 10년 동안 다이어트를 염두에 두지 않고 생활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단순히 미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갑상선 기능 저하증, 콜레스테롤 과잉 등의 이유가 있긴 했지만 어쨌거나 ‘처묵처묵’ 하고야 마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책감과 씨름해온 세월이 길다. 말랐던 적도 있지만 최근 정상 체중을 가볍게 넘어서고야 말았다.

녹즙 배달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것과 대학원 낙제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과 최근에 낸 책 『뜨겁게 안녕』이 망한 것 등등이 이것저것 겹쳐 지난 겨울 동안 무려 10kg를 찌웠는데 여기에 오늘 다룰 책 『이모셔널 다이어트』에서 이야기하는 ‘이모셔널 이팅emotional eating'이 큰 공헌을 했다. 날씬하고 뚱뚱하고를 떠나서 다이어트의 가장 큰 폐해가 있다면 자기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살찐 내가 싫어, 라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라는 지극히 사소한 것 하나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이 싫어지고 무능력한 인간, 자제력 없는 인간처럼 느껴지는 것이 다이어트의 가장 큰 후유증이고 고통이다.

사실 날씬하다고 대단히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인 것도 아니고 정상 체중보다 더 나간다고 해서 나약한 실패자도 아니겠건만 살이 빠지면 지나친 성취감을 느끼고 그 반대의 경우 지나친 좌절감을 느끼는 것은 다이어트에 마음 써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감정의 롤러코스터이다. 『다이어트 절대로 하지 마라』를 쓴 슈워츠 박사는 이 책에서 감정은 도넛과 관계가 없다, 라고 썼다. 날씬한 사람들은 감정과 먹을 것은 연관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슬픔에 빠진 날씬한 사람에게 위로하려고 설탕이 잔뜩 발린 도넛을 주면, 그는 이 도넛을 가지고 도대체 어쩌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물론 나처럼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푸는 사람들은 속상할 때 누가 도넛을 주면 기꺼이 몇 개고 먹을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감정과 식욕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런 습관을 끊으라고 지적하며, 날씬해지려면 살 빼는 법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날씬한 사람을 연구해서 살이 찌지 않는 생활습관을 모방하라고 충고한다. 날씬한 사람들은 식욕과 감정이 관계가 없으므로 이모셔널 이팅emotional eating, 즉 감정적 먹기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실제로 날씬한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아무리 먹어도 날씬한 것이 아니라 두어 숟가락 먹고 포만감이 느껴지면 아, 많이 먹었다(얄밉게도!), 하며 수저를 내려놓는 경우가 많다. 감정적 먹기emotional eating의 전형적인 경우는 우리나라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실연당한 여주인공이 큰 그릇에 비빔밥을 잔뜩 만들어 우걱우걱 입에 퍼넣고 있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아마 그렇게 날씬한 사람이라면 비빔밥을 몇 그릇씩 먹을 리가 없겠지만, 내가 마른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큰 이유는 사실 그들이 이모셔널 이팅의 쾌감도, 고통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당연히 폭식이나 거식도 그들과는 관계없다.

이 10kg가 내 몸에 없을 때, 사람들에게 날씬하다는 소리를 들었을 무렵에도 결코 두 숟가락 먹고 배부르지는 않았다. 무진장 배가 고팠지만 참았다. 지나친 절식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소식을 할 때 몸이 더 건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모셔널 이팅은 그런 이성적 판단과 관계없이 광포했다. 그런 자신을 억제하려고 무진장 노력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아침 공복에 한 시간씩 유산소 운동을 했고 이틀에 한 번씩 무산소 운동을 했고 다섯 시가 되면 식당 문을 닫았다. 이런 노력을 그만두자마자 신생아 세 명분이 몸에 두두두 들러 붙은 셈인데 다이어트 해 본 사람은 다들 알다시피 살이란 놈은 올 때는 초속이건만 갈 때는 거북이보다 느리다. 이 망할 놈의 이모셔널 이팅에는 소울 푸드soul food, 즉 감정을 달래주는 음식이 큰 역할을 한다. 우리가 열 받거나 속상할 때, 스트레스 받을 때 막 땡기는 그런 음식 말이다.

아마 흔한 소울 푸드라면 삼겹살에 소주, 떡볶이, 치킨과 맥주, 낙지볶음 뭐 이런 게 아닐까. 소울 푸드는 대체로 맵고 짠 등 양념이 강하고 탄수화물 함량도 높고 당연히 칼로리도 높다. 생 양배추가 나의 소울 푸드예요, 뭐 이런 사람은 없지 않을까. 그래도 남자 의사들이 쓴 다이어트 책은 어쩐지 좀 ‘거시기’하다. 아무래도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여자보다는 자유로워서 나는 그들이 좀 아니꼬운 모양이다. 물론 요즘은 몸짱이니 초콜릿 복근이니 해서 남자도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기대가 있지만, 아무래도 여자들이 갖는 강박보다는 덜하니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거식과 폭식 때문에 고통받은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워크샵을 운영하는 지닌 로스의 『이모셔널 다이어트』 일반적인 다이어트 서적과 다른 울림이 있다. 건강에도 좋지 않으니 늦은 시간에 먹지 말자, 몸에 나쁜 고지방 음식을 먹지 말자고 굳게 다짐해 놓고도 결국 ‘처묵처묵’, 즉 폭식을 해 버리면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런 것 하나 컨트롤하지 못하는 자신이 나약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반대로 기록적인 감량을 해낸 사람은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느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폭식을 거듭했다고 해서 어떤 일도 해내지 못하는 실패자도 아니고 감량에 성공했다고 해서 슈퍼 파워가 생기는 것도 아닐 텐데 어쩐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든다.

지닌 로스는 폭식 현상에 대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폭식이 자제력의 부족, 나약한 정신의 상징처럼 질타받아왔다면 지닌 로스는 폭식을 ‘위로’한다. 저자는 “당신은 폭식을 방종으로 여기겠지만, 사실 폭식은 몸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부정되는 것을 절대 용인하지 않겠다는 자아의 목소리”라고 말한다. 즉, 폭식은 자신에게 더 많은 음식과 관심을 제공해야 한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할 때 우리는 당연히 고통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소울 푸드 같은 것은 당연히 철천지 원수처럼 멀리해야 하는 것이고 샐러리나 양상추 따위 전혀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음식들을 칼로리 계산을 해가며 따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몸의 욕망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우리가 자기 몸에 만족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다이어트를 거듭하면서 보이지 않는 손의 음험함에 대해 떠올린 적이 있다.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 몸에 만족하지 않기를 원하는 어떤 세력이 분명히 있다. 사실 쉬운 일이다. 우리가 우리 몸에 만족해 버리면 이 방대한 규모의 다이어트 시장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 규모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우리 몸을 혐오해야 한다. 적어도 불만족해야 한다.

지닌 로스는 다이어트를 하고 폭식을 하고 자신에게 불만을 품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넘어서라고 권한다. 사실 다이어트 같은 건 안 해요, 전 제 몸에 만족해요, 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위에서는 그를 감당할 수 없는 공주병이거나 어딘가 이상한 사람으로 볼 것이다. 우리는 초콜릿이 먹고 싶어서 폭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폭식할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는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그냥 먹고 싶은 것을 먹으라는 것이다. 배가 고플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언제든지 마음껏 먹을 수 있다면 눈앞에 있는 음식을 모조리 먹어치울 이유가 없다. 다이어트 강박증에 빠진 사람들은 오늘 이 자리에 놓인 음식이 최후의 만찬인 것처럼 여긴다. 최후의 만찬이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우리는 내일부터는 이렇게 먹지 않고 엄격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지키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자주 말하는 것이다. 오늘만 먹고 내일부터 다이어트할 거야.

지닌 로스는 폭식은 나약함이나 자제력의 결여가 아니라 원하는 것을 더 이상 먹을 수 업섹 되기 전에 최대한 원하는 것을 많이 먹어 두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라고 쓴다. 그래서 원하는 것을 먹지 않는 한 결코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닥치는 대로 다 먹으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내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성스럽게 생각하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닥치는 대로 먹지 않으려면 진짜 배고픔을 구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이어터들은 흔히 몸의 목소리를 듣기는 커녕 몸의 목소리 따위는 결코 듣지 않아야 하고 쳐서 복종시켜야 하는 것을 여긴다. 나 역시 그랬다. 폭식을 한 다음 자책하고 자신을 싫어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이어트를 하고 요요현상에 시달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 나 역시 10kg를 덜어내기 위해 앞으로 노력할 생각이지만, 그전에 그랬듯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좀더 다정하게 여겨야겠다. 지금까지는 내 몸을 충동과 욕망의 덩어리로 여겼다. 내가 곧 내 몸이건만 내 자신과 거리를 두고, 엄격한 스파르타식 코치가 된 것처럼 철저히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긴 셈이다.

커렌 케이닉의 『가짜 식욕 진짜 식욕』은 이 책과 짝꿍으로 꼭 읽어 볼 만한 책이다. 한 권만 읽는 것보다 이 두 권을 함께 읽는 것이 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다이어터라면 한번쯤 자신과 제 몸을 구박해 본 적 있을 것이다. 자, 이제 구박을 그치자. 사랑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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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셔널 다이어트 지닌 로스 저/조자현 역 | 예인

‘이모셔널 다이어트’는 우리의 살을 불리는 '가짜 식욕'에 집중한다. 책은 ‘진짜 식욕’과 ‘가짜 식욕’을 구분해야 손쉽게 다이어트를 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감정의 문제를 음식으로 풀려고 하고, 먹는 것 자체를 감정적으로 하는 현대 여성들은 살이 찔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가고 있다. 요요가 없는 진짜 다이어트에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몸이 내는 소리를 경청해야 한다는 저자는 이를 위해 필요한 자기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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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현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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