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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악사 잠들다 - 비스티 보이스

흑인의 전유물이던 힙합, 흑인이 아닌 이들에게도 친숙할 수 있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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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4일, 음악 팬들은 다시금 안타까운 소식으로 충격에 빠져야 했습니다. 비스티 보이스의 멤버인 애덤 요크(adam yauch)가 침샘암 투병 중 사망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는데요. 더욱이 한창 정력적이어야 할 마흔 일곱의 나이였다고 하니 그 안타까움은 더합니다…

2012년 5월 4일, 음악 팬들은 다시금 안타까운 소식으로 충격에 빠져야 했습니다. 비스티 보이스의 멤버인 애덤 요크(adam yauch)가 침샘암 투병 중 사망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는데요. 더욱이 한창 정력적이어야 할 마흔 일곱의 나이였다고 하니 그 안타까움은 더합니다.

비스티 보이스는 흑인의 전유물이던 힙합을 흑인이 아닌 이들에게도 친숙할 수 있게 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그룹입니다. 이번 기회에는 그에 대한 추모의 마음과 함께, 그들이 남긴 명반 < Licensed To Ill >을 조명해보려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 < Licensed To Ill >  (1986)

유태인 집안의 부유한 백인 청년들로 이뤄진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가 펑크(punk)의 세례를 받고 음악계에 입교했을 때, 이들을 특별한 존재로 보는 이는 별로 없었다. 그들 역시 많은 10대가 그러하듯 음악에 대한 괜한 호기심으로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조잡한 합주나 하는 평범한 무리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1983년 두 번째 EP < Cooky Puss >에 수록된 동명의 노래로 힙합을 시도하고 2년 뒤 데프 잼(Def Jam) 레코드사를 통해서 에이시디시(AC/DC)의 「Back in black」을 차용한 랩 음악 「Rock hard」를 발표하면서부터 사람들의 시선은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흑인들의 전유물인 줄만 알았던 랩을 백인 청년들이 해 보이자 생소하고 신기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정규 데뷔 앨범 < Licensed To Ill >을 출시할 당시 이들을 바라보는 힙합 진영의 시선은 신기함에서 매서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랩 음악을 백인들이 가로채는 게 아닌가 하는 일종의 위기감 때문이었다. 일각에서는 비스티 보이즈를 '문화 약탈자', '어린애 같은 유치한 유머나 쏟아 내는 백인들'이라는 말로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힙합 커뮤니티는 백인이 랩을 하는 것에 대해 그리 관대하지 못했다.

일부에서 일어난 그룹의 힙합에의 입회를 불허하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세 멤버 애드 록(Ad-Rock)과 마이크 디(Mike D), 애덤 요크(Adam Yauch, MCA)는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음악계에 진출했다. 헤비메탈에서 추출한 강렬한 기타 리프,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과 비스티 보이즈가 합세해 제조한 예리하면서도 역동적인 음악은 록 애호가들을 아울렀고 거기에 들인 가식 없는 날것 그대로의 래핑과 비보이(b-boy) 문화에 대한 언급은 힙합 마니아들의 관심을 부추겼다. 비스티 보이즈가 갖는 음악적 복합성과 대중음악의 커다란 수요층인 10대, 20대들의 공감을 사는 내용은 힙합 신뿐만 아니라 전체 팝 음악 진영의 빗장을 차차 풀게 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 7위까지 오르며 그룹의 역대 최고 히트곡으로 등극한 「Fight for your right」는 랩과 록의 전통 문법을 유지하는 완벽한 합일, 랩코어(rapcore)의 모범을 제시했고, 「No sleep till Brooklyn」은 이들의 태생적 중혼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정도로 랩과 헤비메탈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사하며, 「The new style」을 통해서는 펑크 샘플을 짜 맞춰 긴장감 있는 구성을 선보였다. 몇몇 이들의 사나웠던 거부반응이 무색해질 만큼 그룹은 흑과 백을 모두 포섭하는 음악으로 힙합 신을 넘어 미국 대중음악의 핫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발매 6주 만에 75만 장 이상이 판매된 앨범은 랩 음반으로는 최초로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른 작품이 됐다. 이 때문에 최초로 빌보드 앨범 차트 고지를 정복한 힙합 뮤지션이 흑인이 아니라는 점이 이채로운 기록으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앨범은 < 미국 음반 산업 연합(Recording Industry Association Of America, RIAA) >의 집계에 따르면 발매 이후부터 2010년까지 9백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올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랩 앨범 10장'의 목록에서 부동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비스티 보이즈는 어마어마한 상업적 성공을 이룬 최초의 백인 랩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그룹은 흑인들의 문화를 침범하고 그들의 음악을 함부로 취한다는 말을 듣는다고 해서 고개를 조아리거나 애써 흑인들의 형편을 헤아리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이것이 흥행의 또 다른 요인이었다. 비스티 보이즈는 이제 막 약관을 넘긴 여느 젊은이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파티를 예찬하며 즐길 것과 이성을 찾았다. 덕분에 무겁지 않은 내용과 유희에 관심을 두는 음악팬들에게 지지를 얻기가 수월했다.

재킷 디자인 또한 그룹의 유흥에 대한 강한 애착을 반영했다. 표지 디자인은 앨범의 미술감독을 맡은 스티브 바이램(Steve Byram)의 예술 학교 재학 시절 친구였던 월드 비 오메스(World B. Omes)가 그린 것으로 그냥 봐서는 비행기 뒷부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부클릿을 펼치면 산에 충돌해 동체 앞부분이 찌그러진 비행기 전체가 나타난다. 이것을 자세히 보면 음모가 난 남근처럼 보이기도 한다. '혹시 이상한 쪽으로 상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며 자신을 검열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림은 꼬리에 새겨진 글자로 친절하게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한다. 그 숫자와 알파벳의 조합 '3MTA3'을 거울에 비치면 'EATME'로 읽히기 때문이다. 부끄러울 것 없는 표현의 대담함, 장난기를 앨범 재킷에도 녹여냈다.

외설스러운 요소, 흑인들의 반감 등 숱한 논란 속에서도 < Licensed To Ill >은 발동하는 대로 방치한 장난스러운 태도, 재미에 몰두하는 내용, 랩과 록의 크로스오버로 이룬 펑키함과 박력을 앞세워 동시대 청춘들의 찬동을 구했고, 그로써 '1980년대 가장 많이 팔린 랩 앨범'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막강 화력을 과시했다. 그것을 몹시 언짢은 일시적 대유행으로 생각한 이도 많았다. 하지만 비스티 보이즈가 발표하는 앨범마다 명반의 대열에 올리며 미국 내에서만 2천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사반세기가 넘는 긴 기간 동안 장수하는 힙합 팀이 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룹이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우려와 불만은 점차 누그러졌다. 지속적인 실험 정신과 작품성이 이를 능히 이긴 것이었다.


5월 4일 세상을 떠난 애덤 요크의 명복을 빕니다.

글 / 한동윤(bionics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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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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