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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1층에 화장품 매장이 많은 이유

신에게 바친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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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처음 만난 날, 나는 그에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 물었다. 세 번째 만났을 때 그가 나에게서 나는 어떤 냄새에 관해 지적했다. 나는 그가 싫어하는 것을 열거할 때 그중에 ‘나쁜 냄새’도 있었다는 사실을 퍼뜩 떠올렸다.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 잠깐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으면 일 년이 그냥 훌쩍 지나가버린다. 뒤돌아보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이십대를 돌아보는 일은 정말이지 더더욱. 나의 이십대는 뭐랄까, 한마디로 복잡하고 끔찍했다. 그때는 히키코모리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내가 그랬다.


아무튼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정말이지 괴물에 가까웠던 것 같다. 실패와 열등감, 욕구불만, 자기비하 같은 단어들을 모아 뭉뚱그려놓은 한 삐딱이가 있다면 그게 바로 나였다. 성격도 행동도 그랬지만 어째서인지 옷도 특이하게 입고 다녔고 화장을 막 시작한 스물다섯 살 무렵에는 요즘 스모키라고 부르는, 눈만 강조해 검게 칠하고 부각시키는 그런 화장을 했다. 그 시절 동생들이 찍어준 스냅사진이 몇 장 남아 있다. 들여다볼 엄두는 나지 않지만.

 

향수에 관해 말할 때는 망설이게 된다. 나는 사실 ‘사향’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몰랐다. 내가 고집했던 그 사향의 향수가 그 나이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종류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시간이 더 지나서다. 보통의 성냥갑처럼 생겨 윗부분은 둥글고 초록색, 몸통은 검은색으로 된 아모레 제품이었다. 향수 이름은 머스크musk, 사향의 냄새라는 뜻. ……! 코를 마비시킬 만큼 강렬하고 육중한 향기가 풍겼다. 풍겼다기보단 병 속에서 향기가 콧속으로 뛰어들어오는 것 같았다. 한번 맡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향기였다. 나는 무엇에 푹 찔린 듯 그 사향의 향수에 빨려들었다.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동네 화장품 가게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스커트에도 뿌리고 몸에도 뿌리고 집에 있을 때도 뿌리고 서점에 갈 때도 뿌리고 산책을 나갈 때도 뿌렸다. 막상 나 자신한텐 향기가 나지 않는 것 같아 흠씬 뿌리고 또 뿌렸다. 우울 때문에 후각이 마비된 줄도 모르고.


어느 날 단골 화장품 가게 여주인이 말했다. 그 향수가 이젠 출시되지 않는다고. 나는 절망에 빠져버렸다. 빈 머스크 향수병을 낡은 책장 서랍에 오래도록 간직했다. 향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서랍을 열면 옅어지고 가벼워진, 한때 내 후각을 완전히 사로잡았던 향을 희미하게나마 맡을 수 있었다. 어떤 때는 그리움으로 어떤 때는 그 시절에 대한 연민으로 책장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단 한 개 남아 있던 그 빈 향수병을 버린 건 겨우 몇 해 전의 일이다. 그 향수 이후 내가 크리스찬 디올의 푸아종poison을 선택하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머스크. 고환을 의미하는 고대 인도어에서 나왔으며 인도인들은 사슴에서 나오는 사향을 최고로 쳤다고 한다.    
오랫동안 나는 내가 왜 그 향기, 그 특정한 향수에 집착했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다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자발적으로, 나를 위해 맡아보고 고른 첫 번째 향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유가 어떠하든 그 시절의 나를 만난 사람,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이다.

 

후각이라면 나도 꽤 민감한 편에 속한다. 이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불편하고 불유쾌해질 때도 많다. 짙은 색으로 칠해진 두꺼운 병 속에 갇힌 듯 시계視界가 심하게 좁아진 적이 있었다. 두 번째 소설집을 준비하던 해였다. 의사 말로는 안정을 취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저런 생각의 끝은 언제나 만약 눈이 안 보인다면? 맛을 느낄 수 없게 된다면? 냄새를 못 맡게 된다면? 하는 등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이어지곤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냄새를 못 맡게 되면 인간은 신체감각들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미각도 잃고 성욕도 상실하며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나는 내가 자주 우울해지는 것을 느끼고 안다. 스스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적당한 자가치료 방법도 몇 가지쯤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향수를 뿌리는 것이다. 내 몸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향수를 뿌릴 때만큼은 기분 좋은 향, 기분 좋은 공기가 나를 감싼다고 느낀다. 이 세상에 나를 껴안는 것은 어둠과 슬픔뿐이라는 생각도 잠시 잊을 수 있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어떤 심리학자와 생물학자들은 향수가 스트레스 수치를 줄이고 감각적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주의할 점이 한 가지 있다. 만약 당신의 애인에게서 나는 향수의 향이 점점 짙어진다면 당신의 애인은 우울하거나 우울증에 빠진 게 틀림없다. 우울한 감정은 후각 기능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우주와 같은 무중력상태에서도 후각과 미각 기능은 상실돼버린다.       


자, 너무 많이는 안 돼! 나는 향수를 뿌리고 있는 나에게 말한다. 향수를 몸에 바르거나 뿌리지 않는다. 허공에 대고 칙, 칙, 두 번 분사한다. 미세한 입자로 흩어지는 향기들을 바라본다. 숨을 들이마신다. 좋은 냄새가 난다. 그러면 떨어지기 시작하는 입자 속으로 내 몸을 한 발 밀어넣고는 이것으로 되었다, 라고 여긴다. 

 

향수의 기원은 신을 모시는 데서 시작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신에게 바칠 제물을 태울 때 나는 악취를 없애기 위해 특별한 향을 만들었고 결국 그것이 향수의 출발이자 탄생이 되었다고 한다. 향수의 오랜 역사를 보면 때로 향수는 치료를 목적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부의 상징과 미적, 성적인 용도로 사용된 기간이 길었다. 우리의 후각기관 속에는 서비골이라는 기관이 따로 있는데 그 역할이 바로 성적 체취인 페로몬을 감지하는 것이다. 16세기 초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인 파올로 코르테시는 가금류 판매인이나 요리사, 향수 제조자들에게서 나는 냄새가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한다고 확신해 추기경의 궁을 그들의 집 근처에 지어 욕망을 이기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좋은 향기는 우리를 유혹하기 충분하다. 백화점 일층에 가장 많은 매장은 화장품 매장이다. 수천 종의 화장품과 향수가 섞여 있다. 그 일층을 채우고 떠도는 향기를 한 가지로 요약하기란 불가능할지 모른다. 레몬 라벤더 월계수 사향 아세톤 에테르 바닐라 재스민 향들의 혼합일 것이다. 그러나 샤넬 N。5, 이 고전적 향수를 나는 ‘백화점 일층의 향기’로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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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에 처음 소개된 샤넬 N。5는 향수의 세계와 코, 후각에 관한 책에서 언제나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독보적인 향수다. 혼합분자인 알데히드로 만들어진 최초의 향수이며 마릴린 먼로가 잘 때 입고 잔다고 해 화제가 되었다. 오래된 코냑의 마개처럼 둥글고 약간은 묵직한 뚜껑을 살짝 비튼다. 시향할 때 요즘은 대체로 향을 묻힌 종이막대를 사용하지만 나는 향수병을 직접 만지고 연 후, 코에서 좀 떨어뜨린 거리에서 향을 맡는 예전의 시향 방식을 더 좋아한다. 처음에는 장미 백합 붓꽃 백단향 등 향수를 제조할 때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향기가 난다. 그 뒤에 후각을 자극하는 분자는, 먼 데서 힘껏 달려와 땀방울을 튕기며 부딪치는 듯한 사향의 냄새.


한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처음 만난 날, 나는 그에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 물었다. 세 번째 만났을 때 그가 나에게서 나는 어떤 냄새에 관해 지적했다. 나는 그가 싫어하는 것을 열거할 때 그중에 ‘나쁜 냄새’도 있었다는 사실을 퍼뜩 떠올렸다. 후각이 굉장히 예민하다고 말했던 것도. 그를 만나는 동안 가방 안에 미니 향수병을 하나 넣어갖고 다녔다. 어디 들렀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갈 때면 평소에는 몸에 안 묻히던 향수를 손목이나 귓불에 문질렀다. 피곤해졌다. 다섯 번째 만났을 때 그는 내 휘어진 코를 지적했다. 열한 번째 만난 게 마지막이 되었다. 마지막이라는 말도 작별인사라는 것도 없이. 돌아보니 그랬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 모든 문들을 이례적으로 활짝 열었다가 서로를 더 정확히 알아가던 나머지 만남들에선 열었던 문들을 착착착 차례로 닫아갔던. 그래도 작별인사는 할걸 그랬다.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하지 못한 말이 있다. 내가 가진 두려움들 중에는 지적당하는 두려움도 있다고.


조금 비뚤어지기는 했지만 나의 코는 소중하다. 그 속의 섬세하고 예민한 후각기관들, 후구와 비강과 인강들 역시. 사람의 코가 앞으로 튀어나와 있는 이유는 코 안쪽 깊숙이 냄새를 빨아들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특정한 냄새를 맡았을 때, 우리가 저도 모르게 코를 씰룩거리는 건 냄새 입자들을 후각기관으로 서둘러 전달하기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나는 킁킁, 코를 씰룩거리며 투명하고 정교하게 디자인된 유리병, 향수병들이 보석처럼 진열돼 있는 화장품 코너로 가까이 다가간다. 청춘 시절에는 몰랐지만 향수에 대해 지금 이해하는 한 가지는 이렇다. 향수를 쓰는 다양한 이유 중, 나의 것 하나만은 타인과 구별하고 싶은 무의식적 욕망도 있다는 것을.


이제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향수를 뿌린다. 가볍게 뿌린다. 가끔 세계가 구체적이다!라고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어떤 한 냄새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연거푸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그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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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조경란 저/노준구 그림 | 톨

소설가 조경란이 쓴 백화점을 직접 조명한 문화 에세이다. 백화점이라는 ‘장소’가 현대인들에게 갖는 의미와 기능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이 책은 현장 취재와 자료조사를 통해 깊이와 넓이가 더해져 오롯이 백화점을 다룬 최초의 논픽션이 되었다. 정신적인 삶, 물질적인 삶 사이에서 갈등한 저자의 고민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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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경란

주변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인간의 고독과 우수를 부감시키며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깊이 있게 보여주는 작가 조경란은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년 후에 서울예대 문학창작학과에 들어갔다. 저서로는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나의 자줏빛 소파』『코끼리를 찾아서』 『국자 이야기』 『풍선을 샀어』, 중편소설 『움직임』,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혀』, 산문집 『조경란의 악어 이야기』『백화점』 등이 있다. 문학동네작가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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