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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디센던트> 그녀의 배신을 어떻게 납득할 것인가?

‘그녀는 내가 온전히 아는 여자가 아니다. 내가 그녀를 온전히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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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차>와 <디센던트>는 한 여자가 사라지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그 여자는 평온했던 한 남자와 일상과 세계를 뒤흔든다.

영화 <화차> <디센던트>는 한 여자가 사라지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그 여자는 평온했던 한 남자와 일상과 세계를 뒤흔든다. 영화의 장르도 온도는 완전히 다르지만, 두 남자의 처지는 비슷한 데가 있다.


‘이런 불행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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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차>는, 주인공 문호가 휴게소에서 커피를 사러 나간 사이, 그녀의 약혼녀 선영이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선영은 어디로 갔을까? 실종신고를 하고, 그녀를 찾아 헤매는 동안 문호는 이제껏 그녀에 관해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하나씩 발견해 나간다.

이 사실들은 ‘그녀는 이제껏 내가 알고 있던 여자가 아니다.’라는 충격에서 ‘아내가 될 뻔한 여자였는데, 도무지 어떤 여자인지, 어떤 인간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는 공포까지 문호를 몰아넣는다. 문호는 사랑과 배신감과 연민이 뒤죽박죽된 상태로 포기하지 않고 선영을 찾아 나선다.

문호는 작은 동물병원의 원장이다. 명예와 이목을 중시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이제껏 크게 실망감 안겨주지 않고 착실하게 살아온 아들이다. 전직 강력계 형사로, 어둡고 험한 일에 몸담고 사느라 자신의 온전한 삶도, 가족들의 기대도 채워오지 못한 사촌 형 종근과 문호의 삶은 대비가 된다. 종근이 보기에 문호는 그야말로 온실 속의 화초다. 문호가 ‘이런 믿기지 않은 일’ 앞에서 좌절할 때마다 종근은 ‘이런 사람들도 있다. 살다 보면 별별 일도 다 있다’고 조언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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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문호가 살아온 세계는 열심히 노력하면, 일정한 보상이 주어지는 삶이었고,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나쁜 놈/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는 이분법의, 이해 가능한 세계였다. 선영이라는 알 수 없는 여자는 이런 문호의 세계를 뒤흔든다. 아버지의 빚으로 시작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선영의 불행을 추적해가면서, 문호는 자신의 경험치로는 도저히 납득 불가능한 여자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불행, 이런 삶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다. 내 옆 사람에게서 그걸 발견해내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더해져 고통스럽게 문호는 삶의 또 다른 얼굴을 보게 된다. 그 앞에서 이제껏 자신이 믿어온 삶의 논리와 믿음이 모래성처럼 흔들리고 허물어져 간다. 영화와 함께 사건은 끝이 났지만, 문호는 이제 더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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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을 줄 알면서도 하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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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하와이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남자가 있다.

하와이에서 잘 나가고 있는 변호사 맷(조지 클루니)는 아내가 보트 사고로 머리를 다쳐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의식 없는 아내를 보면서, 이제는 아내와 대화도 하고 싶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어야지, 마음을 다잡건만 하지만 아내의 상태는 점점 악화된다. 게다가 이유 없이 반항하는 듯 보였던 사춘기 딸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그동안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는 것.

장인에게는 언제나 똑똑하고 믿음직한 딸이었고, 가정의 많은 일을 도맡아 책임져왔던 자신의 아내였고, 모두가 그렇게 믿는 아내인데, 맷은 이제야 아내의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된 것이다. 아내는 언제부터인가 보트, 오토바이 등을 타며 집 밖으로 나가려 했고 심지어 다른 남자와 바람까지 피웠다.

더 이상의 정보 업데이트가 필요 없을 만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내가 낯설어지기 시작한다. 내가 사랑했던 저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안타깝게도 맷 역시 이 여자에게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다. 여자는 의식을 잃은 채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자신과 가족을 위해, 그리고 아내를 위해 맷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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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에서 문호는 자신을 속이고 달아난 선영을 미워하고 잊어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호는 끝까지 여자를 찾아내고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자신의 삶이 점차 망가지는 것을 보면서도, 그녀를 만나게 되면 더 큰 상처를 받을 것이라는 걸 짐작하면서도 굳이 확인하려고 한다. 맷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내와 바람을 핀 남자를 찾아내려고 혈안이 된다.

이름도 알아내고, 얼굴도 봤지만, 그는 굳이 직접 만나 확인한다. 아내를 사랑했는지? 내 부부침실에서 관계를 가졌는지 묻는다. 자기 가슴을 향한 확인사살. 일말의 기대까지 남김 없이 확인하면서, 문호와 맷은, ‘그녀는 내가 온전히 아는 여자가 아니다. 내가 그녀를 온전히 몰랐다.’는 사실을 그제야 간신히 인정한다.


나의 친구... 나의 고통... 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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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자신이 몰랐던 진실, 그녀가 감추고 싶었던 사실을 알게 된 문호와 맷은 배신감과 분노에 휩싸이지만, 그보다 더 크게 밀어닥치는 감정은 연민이다. 어쨌거나 그녀의 일부분이라도 사랑했던 기억이 있기에, 그녀가 말하지 않은 것들을 상상하면서, 지금 옆에 없는 그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두 남자는 연민에 휩싸인다.

맷의 아내는 이혼까지 결심할 정도로 외도남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건만, 맷이 직접 만난 외도남은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저 한두 번 섹스하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내 가족을 사랑한다’고 발뺌한다. 그 얘기를 듣는 맷의 허탈하고도 미묘한 표정은 관객들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뿐이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외도남의 아내(줄리)가 병원에 찾아온다. 누워있는 맷의 아내를 향해 “나는 당신을 용서해야만 해요. 내 가정을 뺏고 파괴하려고 한 당신을 용서할게요. 우리 남편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했으니까 용서할게요.”라며 눈물을 흘린다. 참으로 이상한 용서다. 누구를 위한 용서일까. 자기 내면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배신감을 ‘용서’라는 이름으로 맷의 아내에게 뱉어낸 셈이다.

만약 맷의 아내가 건강하게 살아있어, 여전히 가정과 남편을 빼앗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때도 용서할 수 있을까? 줄리는 세상에서 가장 약자가 된 맷의 아내를 보며, 죄(불륜)를 지어 불행(죽음)을 얻었다는 합리화로 위로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맷의 심경이 어땠을까. 나에게도 충분히 사랑 받지 못했고, 심지어 외도남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내 아내는, 아내의 삶은 무엇이 되는가. 맷 역시 처음에는 혼수상태의 아내를 향해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녀가 말하지 않은 것을 발견해나가면서 그는 감춰져 있던 자신의 진심도 발견하게 된다.

맷은 줄리를 내보내고, 그제야 아내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말한다. ‘나의 친구… 나의 고통… 나의 사랑…’ 눈물을 흘리며 내뱉는 그 짧은 단어들에 맷의 형언할 수 없는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도 당신도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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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납득하고 합리화하려고 한다. 숫자 1 다음에 2가 주어지는 세계, A 다음에 B가 주어지고, C가 예측 가능한 세계는 안정적이고, 평화롭다. 다음 상황을 예측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때그때 상황을, 사람을 정리하고 판단한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 이건 좋은 일, 이건 어려운 일, 그렇게 한번 각인이 되고 나면, 그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각인은 그저 나의 일방적인 판단으로 결정됐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나의 좋은 사람이 벌일 수(도) 있는 악한 일, 배신, 치사한 일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고 보고 싶은 대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믿던 사람이 내 뒤통수를 치는 일은, 내가 일방적으로 배신을 ‘당한’ 일인가? 그는 나쁜 사람인가? 그가 그럴 수도 있었던 빌미를 보지 못한,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한 나에게는 잘못이 없는 걸까?

영화관을 빠져 나온 나 역시 어느새 맷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1 다음에 2가 자연히 따라오지 않는 세계가 있듯, 너무나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미운, 그래서 사랑한다고도 미워한다고도 말할 수 없는 그런 존재가 있다는 걸 <화차> <디센던트>에서 발견했다. 내 세계와 가치관은 그런 존재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기 쉬운데, 내 세계를 무너뜨려 가면서까지 껴안으려고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가깝고 소중한 사람일수록 그의 모든 가능성을 끌어안고, 그의 존재를 매 순간순간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걸 기억해둬야겠다.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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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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