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고경태의 아버지의 스크랩
스크럼 짜면 사형! 1단 기사들이 스크럼을 짜다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건을 아시나요?
아버지의 스크랩 9, 10권(1973년1월~1976년10월)을 세 번째로 펼친다. 유신선포 이후 칼바람 불던 국내 정세에 집중해서 본다. 우우우우우-. 한편에선 권력의 광풍이 불고, 또 한편에선 뜨거운 함성이 맞바람이 되어 부딪치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어깨동무’를 하고 싸웠다.
그냥 구호를 외치면 허전하다. 서로 어깨를 걸고 함께 소리치면 외롭지 않다. 꽉 찬 연대감을 느낀다. 내가 기억하는 1980년대 대학가의 시위현장에선 늘 ‘어깨동무’를 했다. 전초전이었다. 집회가 끝나면 어깨와 어깨가 고리처럼 연결된 단단한 대오가 만들어졌다. 처음엔 천천히 걸었다. 서서히 빨라졌다. 나중엔 뛰었다. 구호는 격렬해졌고, 호흡은 가빠졌다. 절정의 순간, 교문 밖으로 어깨동무 대열이 돌진했다. 경찰은 최루탄을 쏘았다. 친구들은 어깨를 풀었다. 코를 쥐고 눈물을 흘리며 흩어졌다.
‘스크럼’이라고도 한다. ‘어깨동무’는 다정하고 친밀한 어감이지만, ‘스크럼’에선 용단과 저항의 냄새가 풍긴다. 시위대의 선두에 선 이들은 메가폰을 들고 이렇게 외치곤 했다. “동지 여러분, 자 모두 일어나서 함께 스크럼을 짜고 나갑시다.”
아버지의 스크랩 9, 10권(1973년1월~1976년10월)을 세 번째로 펼친다. 유신선포 이후 칼바람 불던 국내 정세에 집중해서 본다. 우우우우우-. 한편에선 권력의 광풍이 불고, 또 한편에선 뜨거운 함성이 맞바람이 되어 부딪치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스크럼’을 짠 그들이 몰려오는 환상을 본다.
상오 11시35분께 기동경찰이 쏜 최루탄에 쫓겨 일단 해산했던 (고려대)학생들은 낮12시20분 다시 강당 앞에 집결, ‘스크럼’을 짜고, 교정을 돌아 학교북쪽 철조망을 넘어 중앙산업 옆 골목으로 진출하려다 종암로 중앙산업 정문 앞에 배치된 경찰의 제지로 다시 교내로 쫓겨들어갔다. (1973년11월10일치 <한국일보>의 두 1단 기사) |
외대 맹휴 결의 한국신학대생도 1명 더 구속 시위 경북대생 수업복귀 호소 공대 교수들 권고문 고대학생 간부 20명 시한 단식 감리교신대생 수업 1주거부 동맹휴학 결의한 외대생 2명에 20일 구류처분 고대 교내시위 학생석방 요구 서울신학대 기한부 맹휴 서울대생 1명 송치 성대생들 연좌 서울대 음대 기한부 맹휴 상대도 연좌 고대 성토대회 한때 대치상태 연대 교내시위 3개항 결의문 서강대 휴강 숙대생 수업 무기한 거부 한신대 농성 해산 전남 법대생 기한부 휴강 영남대 7항 선언문 경북대 시위학생 4명 구속 송치 (1973년 11월10일치 <한국일보>) |
인생의 거부 |
기장 전남노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전남노회(회장 임기준 목사)는 현재 직면하고 있는 현 사태를 위해 12월 첫 주일(2일)날 노회 산하 전 교회가 기도하기로 하는 한편 교역자는 금식기도키로 했다. 한편 전북노회(회장 최희섭 목사)는 11월13일 임시노회를 열고 ‘교회와 학원과 언론의 자유가 극도로 제압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신앙 양심에 기초한 애국애족하는 충정에서 성명서를 발표한다’고 성명서의 취지를 밝혔다. ◇성명서 ① 우리 교회는 예언자적인 사명에 입각하여 일제 때에도 자유와 독립을 위해 직접, 간접으로 투쟁해왔고 6?25 공산침략시에도 생명의 존엄과 신앙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기도하고 항쟁해왔다. 이 사명은 지금도 변함이 없음을 밝힌다. ② 성전에서 기도하는 교인들을 강압으로 축출한 일이나 신성한 제단에서 기도하는 목사를 체포한 처사는 전 교회와 성직자에 대한 탄압이요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로 인한 어떠한 행동도 전혀 당국의 책임임을 분명히 한다. ③ 우리는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도 하나님이 주신 신앙 양심의 자유를 제한받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인간의 존엄을 위한 최선의 체제임을 믿기에 하루빨리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적극적인 정책전환을 촉구한다. ④ 우리는 자유신앙이나 사회정의의 구현을 위한 행동은 창조주 하나님의 요청이요 성서적인 진리라고 믿기에 하나님이 주신 양심과 자유를 방해하려는 그 어떤 악의적인 세력에 대하여서도 결코 묵과치 않고 적극적으로 항거할 것이다. (1973년12월1일치 <크리스챤신문>) |
각계30명참석 기독교협의회 구국기도회 갖고 한때 가두데모 이대생 2천명 경찰대치 연좌 고대생 40여명 단식농성 시작 교문 밖에서 대치 건대생 시국선언 횃불가두데모 새문안교회 학생 기말시험거부 한양대생 60여명 동대생 백여명도 67명중 60명 훈방 데모관련 성대생 (1973년11월29일치 <한국일보>) |
한때 가두데모 기말시험 연기 서울여대 교무회의 서강대 2백명 단식농성 시작 기말시험 없이 어제 조기방학 숭전대 15명이 구국기도회 연대 신학대학원생 처벌학생 규제 총장방문 건의 경북대학생회장단 어제 조기방학 인하공대 시험연기 (1973년11월29일치 <한국일보>) |
플래카드 시위 홍대생 연좌 교문 앞에 나와 농성 연세대생 해산 조기방학철폐 고대생들 결의 경북대생 시위 기말시험 거부 영남대 상경대생 서강대생 성토 경찰과 2시간대치 덕성여대 교내시위 교문 밖서 결의문 수도여사대생들 (1973년12월1일치 <한국일보>) |
경북대생 연좌 이대생들 시위 시청앞에 모여 (1973년 12월4일치 추정 <한국일보>) |
반체제운동의 시말 |
인생의 묘(妙) |
소속학교 폐교까지도 대통령 긴급조치4호, ‘민주학련’활동 금지 박정희대통령은 3일 하오10시를 기해 학원사태에 관한 대통령긴급조치 제4호를 선포,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과 이에 관련되는 제단체를 조직하거나 또는 이에 가입하는 등 일절의 행위, 학생의 정당한 이유 없는 출석 수업 또는 시험의 거부 등 및 학교내외의 집회, 시위, 성토, 농성 기타 일절의 개별적, 집단적 행위를 금하고 이에 위반하거나 이조치를 비방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며 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수 있다고 발표했다. 출석?수업?시험거부 엄금, 보도?편의?문서의 소지도 8일까지 고지면 불문, 지사 등 요청 있을 땐 병력출동 이 긴급조치는 또 문교부장관이 긴급조치를 위반한 학생에 대한 퇴학 또는 정학의 처분이나 학생의 조직결사 기타 학생단체의 해산 또는 이 조치 위반자가 소속된 학교의 폐교처분을 할수 있도록 했으며 이같은 문교장관의 처분에 위반한자도 같은형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또 이조치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방법으로 타인에게 알리는 일절의 행위도 같은 형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한편 이조치 선포전에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과 관련된 행위를 한 자는 오는 8일까지 그 행위 내용의 전부를 수사, 정보기관에 출석하여 숨김없이 고지하면 처벌하지 아니하기로 했다. 이 긴급조치는 또 이조치를 위반한자는 법관의 영장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여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하며 군지역사령관은 서울특별시장, 부산시장 또는 도지사로부터 치안질서유지를 위한 병력출동의 요청을 받을때에는 이에 응해 지원하도록 규정했다. 3일 하오 10시부터 발효, 시행된 이 긴급조치는 이날 하오10시 청와대에서 긴급히 소집된 임시국무회의에서 헌법제53조에 의거 이봉성법무장관의 제안으로 가결되었다. 반국가활동 확인포착 박 대통령담화 학생은 내일 위한 지식연마를 박정희대통령은 3일 대통령 긴급조치를 선포하면서 다음과 같은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작금 우리사회의 일각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상투적으로 전개하는 적화통일 위한 이른바 통일전선의 초기단계적 불법활동양상이 대두되고 있음에 감하여 이같은 불순요인을 발본색원함으로써 국가의 안전보장을 공고히 다지고자 오늘 헌법절차에 따라서 긴급조치를 선포하게 되었음을 국민여러분에게 알려드리면서 국민여러분의 협조를 당부하고자 한다. 이제 새삼스러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우리의 국가적 현실은 시련과 도전의 연속이라 하지않을 수 없다. 북한공산주의자들은 우리에게 부단한 군사적 도발과 간접침략의 위협을 가해오고 있으며 또한 이처럼 불리한 여건하에서 우리는 선진제국들과 더불어 발전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하는 지극히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하겠다. (중략)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 우리 사회일각에서는 이같은 중차대한 싯점에 처해서도 국민총화를 저해하고 국론을 분열시킴으로써 국력배양을 훼방하려는 책동이 아직도 자취를 감추지 않고 있어왔다. 정부당국은 이러한 책동이 최근에 가일층 격화되고 노골화 되고 있는 북한공산집단의 우리에 대한 공개적인 모략과 중상비방에도 불구하고 계속 추진되어 왔다는 사실에 예의 주목하고 이를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차원에서 다각적으로 비밀리에 조사해왔던 것이다. 그 결과 이른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라는 불법단체가 반국가적 불순세력의 배후조종하에 그들과 결탁하여 공산주의자들이 이른바 그들의 ‘인민혁명’을 수행하기위한 상투적 방편으로 으레 조직하는 소위 통일전선의 초기단계적 지하조직을 우리사회 일각에 형성하고 반국가적 불순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는 확증을 포착하기에 이르렀다. (중략) 그리하여 특히 최근에 이르러서는 소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라는 지하조직을 결성하여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인민혁명’의 수행을 기도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국가의 안전보장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이같은 불법활동이 비록 초기단계에 있다 하더라도 이를 신속하고도 강력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판단하고 오늘 헌법제53조에 의하여 대통령에게 부여되고 있는 긴급조치권을 불가피하게 발동하게된 것이다. 나는 오늘 헌법절차에 따라 국무회의에서 의결, 발표된 대통령긴급조치제4호가 우리 대한민국내에 침투하고 있는 반국가적 불순분자들을 문자 그대로 발본색원함으로써 굳건한 국민해온 학부모들의 피땀어린 노고에 보답하는 길이 과연 무엇인가, 냉철히 판단하여 행동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을 여러분과 동일한 연배요 동일한 자질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가정사정이 여의치 못하기 때문에 대학보다는 직장을 택하고 산업전선에서 땀흘려 활약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청소년들이 선망의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국민여러분과 더불어 나는 이번 긴급조치가 우리국가의 안전보장과 내일의 무궁한 발전을 보장할것을 확신하면서 국민 여러분의 협조를 다시한번 당부하고자 한다. 1974년 4월3일 대통령 박정희 (1974년4월5일치 <한국일보>) |
신민전당대회 김의택씨 사퇴로 확정 최연소 야당당수???김영삼씨 “제1야당의 당수는 당의 얼굴이요 힘입니다. 당권에 안주하지 않고 대권에 야망을 품은 사람이 당수가 돼야합니다.” 40대기수론의 제창자였던 김영삼총재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정권을 담당할 선명한 야당으로 신민당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생활 20년 만에 제1야당의 당수가 된 김총재는 금년나이 47세로서 야당사상 가장 연소한 당수가된 셈이다. 경남고교와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한 김총재는 약관 26세때 3대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래 3, 5, 6, 7, 8, 9대국회에 진출, 6선의원으로 화려한 정치생활을 했다. 그는 민중당과 민정당대변인을 거쳐 민중당 원내총무를 두 번, 신민당 원내총무를 세 번, 도합 다섯 번이나 원내총무직을 역임하여 제1야당의 야전군사령관으로 정치수완을 발휘했다. 뭐니뭐니 해도 김당수의 정치생활 가운데 백미는 69년 11월 40대기수론의 제창. 3선개헌뒤 침체된 야당에 이로써 새바람을 일으켰으나 70년 9월 대통령후보지명대회에서 1차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지만 2차투표에서 김대중씨에게 역전패당하기도 했다. 그는 “야당의 갈길이 좁아졌다고 하여 좌절할수도 없으며 좌절되어서도 안된다. 국민이 정권을 안심하고 맏길수 있는 야당으로 가꿔나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대권에 야망이 없는 사람은 결코 야당 당수가 될수가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당수는 해공 신익희선생과 유석 조병옥박사, 그리고 존?F?케네디 미대통령을 존경, 자신의 정치노선 결정에 지표로 삼아왔다. 그는 스포츠만능의 정치인으로서 그중에서도 수영과 승마를 즐긴다. 미국을 방문했을때 애리조너평원도 말을 타고 달려봤는데 지금부터 3년전 호주산 애마 스와니를 친구에게 넘겨주고 20년간 계속했던 승마를 아예 끊었다. 요즈음은 새벽6시에 일어나 상도동뒷산까지 구보하거나 1천여번의 줄넘기를 하며 1?67m의 키에 체중 71kg. 그의 부인 손명순여사와의 사이에 2남3녀를 두었으며 장녀 혜영양은 출가. (1974년8월23일치 <한국일보>) |
공동기도문 발표 함석헌?천관우씨 한때 연행됐다 귀가 2명 추가연행 법대생 낙산제 관련 천주교신도등 천여 가두행진 지 주교 석방 등 결의 (1974년9월28일치) 한국신학대 교수 공개결의문 마련 홍대생 3개항 결의 (1974년9월29일치) 성직자 석방촉구 가톨릭 제4차 전국 울트레야 (1974년10월4일치) |
금식기도회 구국기도회 마산 5백여 신도 전주서도 기도회 한때 침묵행진 광주교구 6백신도 대전서도 천명참가 인권회복 기도회 수원3백여 신도 인천서도 5백여명 김 총리 발언 취소를 요구 구속자 위한 기도회 서울기독교회관서 (1974년11월13, 15일치 <한국일보>) 성년기도회 연희동성당에서 4백여 신도 참석 가톨릭신대생 가두시위?기도 이대, 한때 가두로 개강등 6개항 결의 서울대 가정대생 5개항 결의 후 농성 성대생 5백여명 한때 경찰과 대치 신대생 36명 구류 20일씩 8명은 영장신청 고대생 5명에 5일(구류) 원광대 오늘 개강 성직자 1백여명 세미나후 시위 연대생 천여명 가두진출기도 (1974년10월27일, 31일치 <한국일보>) |
민주언론수호 결의 외부간섭 배제 등 4개지침 채택 한국일보사 기자 1백50여명은 25일 새벽 본사 편집국에서 민주언론수호를 위한 결의문과 행동지침을 다음과 같이 채택했다. “한국일보 기자 일동은 언론부재의 현실 앞에서 진실을 전달하는 사명을 다하지 못했음을 국민 앞에 부끄럽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의 방관이나 주저는 우리의 역사에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이 되고 있음을 통탄한다. 지난 22일부터 철야로 진통해온 우리는 여기 굳게 서서 민주언론을 사수할 것을 결연히 선언한다. 우리는 또한 언론에 대한 통제와 억압이 국가의 안보와 발전에 하등의 도움이 될 수 없음을 천명한다. 자유는 스스로 쟁취할 수밖에 없다는 당위 앞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행동지침을 채택, 이를 확인하고 실천할 것을 결의한다. ①지난 22,23일 이틀에 걸쳐 신문제작과 관련 발행인, 편집국장, 편집부장이 중앙정보부에 출두, 조사를 받은 사태를 언론자유에 관한 중대한 침해로 단정한다. ②우리 사회의 종교인, 지식인, 학생들이 주장하고 있는 사실을 외부간섭 없이 자유롭게 보도할 것과 자유언론에 대한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③앞으로 신문제작에 관련되어 언론인 누구라도 부당하게 연행, 구금될 경우 이를 사실대로 보도함은 물론 그들이 귀사할 때가지 편집국에서 기다리며 투쟁한다. ④중앙정보부원을 비롯한 기관원의 신문사 출입을 일체 거부한다.” 본사 사장 등 3명 조사 받은 후 귀사 한국일보사 장강재 발행인, 김강환 편집국장, 이상우 종합편집부장 등 편집간부 2명은 22일과 23일 각각 중앙정보부에 출두, 지면제작과 관련된 조사를 받은 뒤 23일 밤 11시께 모두 귀사했다. 장 발행인은 23일 낮 이 편집부장과 함께 중앙정보부에 출두, 이날 밤 귀사했고 김 편집국장은 22일 정오께 출두했다가 23일 밤 귀사했다. 김 편집국장은 중앙정보부에서 한국일보 22일자 3면에 보도된 월남사태에 관한 홍순일 특파원의 취재, 송고 및 편집경위에 관해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중앙정보부는 이 기사와 관련, 홍 특파원이 보낸 영문기사 원본과 번역문을 참고자료로 제출토록 요구했었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장 사장과 편집국 간부들의 소환은 신문편집권의 자유와 관련된 중요한 사항이라고 보고 22, 23일밤 등 연3일동안 철야기자총회를 열고 이번 사태로 제기된 여러 문제점을 심각하게 논의, 신문사 간부들의 연행사실을 보도하기로 결의했었다. 동아일보 동아일보사 기자 1백80여명은 24일 상오 9시 반 동사 편집국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대회를 열고 ①언론기관에 대한 외부간섭 배제 ②기관원 출입 거부 ③언론인 불법연행 거부 등 3개항을 결의했다. 기자들은 이같은 결의내용을 24일자 지면에 보도할 것을 요구하면서 신문제작 참여를 보류, 신묹작 및 동아방송 뉴스보도가 한때 중단됐다가 밤11시께 재개되어 24일자 신문을 25일 아침에 서울시내에 배달했다. 한편 동사 송건호 편집국장 등 편집국장 3명이 23일 하오 서울대 농대생 데모기사와 관련, 중앙정보부에 가서 조사를 받았었다. 조선일보 조선일보사 기자 1백20여명은 24일 밤9시20분 편집국에서 언론자유 회복을 위한 선언문을 채택하고 ①자유언론의 수호를 위해 어떤 부당압력도 배제한다 ②언론인들의 보도활동과 관련 부당히 연행구금될 경우 철야농성 등 투쟁을 전개한다 ③학생종교인 등 각계의 정당한 의사표시는 반드시 게재한다는 등 3개항을 결의했다. 중앙매스컴 중앙매스컴에 소속한 중앙일보 동양방송기자 2백여명은 25일 상오 9시10분 편집국에 모여 언론자유수호 제2선언문을 채택하고 ①학원 및 종교계 동향을 보도할 책무를 재확인한다 ②언론자유에 관련된 모든 움직임을 사실대로 보도한다. ③기관원의 회사 출입?제작간섭과 언론인 붑법연행을 단호히 배격한다는 등 4개항을 결의했다.(하략) (1974년10월26일치 <한국일보>) |
1975년1월7일 로스앤젤레스 동아돕기회 운명 뱀이 개구리를 씹으며 스스로 ‘대적할 놈이 없다’하며 지네가 부닥치는 것을 알지 못하더니 뱀이 죽음에 지네 또한 교만하여 거미가 그 목을 젖담는 줄 알지 못하더라 독한놈은 반드시 독한 것에 상하나니 네게서 나온 것이 네게로 돌아가느니라 74.1.14 寒山居士 외 9명 악한 사람은 악의 길을 쫒아갑니다. 의 있는 사람은 옳은 길을 위하여는 칼날을 밟습니다. - 만해 한용운의 ‘나의길’에서 한 애독자 먼 훗날 내 아들이 나에게 1975년도에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새마을 운동보다 자유언론수호운동에 앞장섰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겠다. 자유국민 아현동 조씨 정씨 부부 |
민주회복국민회의 성명 민주회복국민회의 대변인 함세웅 신부는 22일 국민투표 실시에 대해 “자유토론의 보장이 없는 현행 국민투표법에 의한 국민투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함 대변인은 “무엇보다 투표전에 구속인사 석방 등 인권회복과 자유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며 정부가 임명한 선거관리위원들에 의해 투?개표가 이뤄지는 국민투표는 무의미하다”고 말하고 “빠른 시일 안에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 및 운영위원연석회의를 열어 국민투표에 대한 공식입장을 결정짓겠다”고 밝혔다. 정부사고방식 환멸을 느낀다 김대중씨 신민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씨는 22일 국민투표 실시에 대해 “이러한 방법으로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부의 사고방식에 환멸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하고(하략) (1975년1월23일치 신문) |
국민투표의 진의 |
입을 모아 웨치며 발을 둥둥 굴러라 |
고독한 길 |
「한겨레」 토요판 에디터. 「한겨레21」「씨네21」편집장과 한겨레 esc 팀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 홈스쿨』(2011)과 『유혹하는 에디터』(2009), 『직설』(공저, 2011)이 있다. 가족을 사골국물처럼 글감으로 우려먹는다는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아버지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