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주 5일 수업 되면 힘없는 놈이 죽어야지”
쓰레기 봉투들의 대화
“아이들 책가방이 얼마나 무겁냔 말이야. 그러니까 학습 부담을 줄여 주려면 당신들이 양보해야지. 이렇게 버려지는 걸 괴로워 말라고.” “미술, 음악하고 국어, 영어, 수학, 과학하고 어떤 게 더 부담이 많은 거 같아?
아침에 출근길에 우리 동네 전봇대 아래 쓰레기봉투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들 책가방이 얼마나 무겁냔 말이야. 그러니까 학습 부담을 줄여 주려면 당신들이 양보해야지. 이렇게 버려지는 걸 괴로워 말라고.”
“미술, 음악하고 국어, 영어, 수학, 과학하고 어떤 게 더 부담이 많은 거 같아? 국, 영, 수를 줄이면 학습 부담이 엄청 줄어들 거야.”
“이 친구야, 그런 과목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거야.”
“수학 못해도 잘만 살던데. 사람마다 필요한 게 다르고, 과목은 다 소중한 거야.”
“그래, 그렇다면 필요한 사람이 골라 배워야 맞잖아. 수요자 중심으로.”
“그럼 수학이나 과학도 골라 배워야지, 왜 강제로 하게 해?”
“어허, 나라가 잘살려면 그건 필수야. 역량을 집중해야 되는 거야.”
“앞으로는 문화 콘텐츠가 생산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거 몰라?”
“… 암튼 교과 이기주의를 버려. 과목마다 자기만 중요하다면 어떡해?”
“국, 영, 수도 같이 축소하라고 해 봐. 안 한다면 그것부터 교과 이기주의지.”
“… 예능은 대학시험에 방해되잖아! 꼭 이 말을 해야겠어?”
“그럼 대학 시험에 예능 내신을 반영하면 되잖아.”
난 출근길이 바빠 일어서서 가는데 뒤에서 언성이 높아졌다.
“너네들 정말. 야, 앞으로 주 5일 수업이 되면 과목이 줄어야 하는데 힘없는 놈이 죽어야지. 말이 많아 자꾸! 짜증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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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소개
박재동
1952년 경상남도 울주군(현 울산광역시) 범서읍 서사리에서 태어나 물장구 치고 소 먹이면서 자랐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그림을 그린다며 방바닥 장판을 송곳으로 모조리 뚫어놓았는데, 부모님은 야단 대신 “잘 그렸다”는 짧은 심사평을 남겼고, 이때 일은 그의 그림 인생에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 된다. 열 살 전후 부산으로 이사, 아버지가 차린 만화방에서 실컷 만화를 볼 수 있었고, 이후 대학 때까지 만화를 끼고 살았다.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 휘문고?중경고 등에서 미술교사로 일했으며, 1988년 <한겨레> 창간 멤버로 참여하여 8년 동안 한 컷짜리 ‘한겨레그림판’을 그렸다. 박재동의 만평은 기존의 시사만화의 형식을 과감하게 깬 캐리커처와 말풍선 사용, 직설적이면서도 호쾌한 풍자로 “한국의 시사만화는 박재동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진다”는 세간의 평을 들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 1, 2』 『인생만화』 『십시일반』(공저) 등의 책을 펴냈다. 예술이란 특별한 예술가들이 대?들에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꽃피워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있다.
<박재동> 저11,700원(10% + 5%)
〈한겨레그림판〉에서 촌철살인 풍자만평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던 화백 박재동. 2003년부터 그렸던 그의 작품 중 200여 편을 추렸다. 이는 박재동식의 그림일기이자 그가 개발한 고유한 작품 형식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 속 주인공들은 택시 기사, 단골 음식점, 노점상, 술자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등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