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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때문에 스스로 붕괴한 사람들

‘이유’-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장식과 포장에만 혈안이 되어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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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푸어’라는 말이 요즘 유행이다. 빚을 내서 집을 샀다가 금리는 인상되고 집값이 떨어지면서, 집 때문에 오히려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하우스 푸어’라는 말이 요즘 유행이다. 빚을 내서 집을 샀다가 금리는 인상되고 집값이 떨어지면서, 집 때문에 오히려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한때 부동산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서울 경기 지역의 아파트에 당첨되면 몇 년 만에 수억의 프리미엄이 붙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래서 수많은 중산층은 저축보다 아파트에 매달리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강남으로 진입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 결과는 지금 보는 대로다. 일찍 부동산 투기에 성공한 사람들은 벼락부자가 되어 상류층에 진입했겠지만, 뒤늦게 들어선 이들은 오히려 ‘하우스 푸어’란 엄청난 불이익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궁금하다. 돈을 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목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신기루’에 매달린 이유는 대체 뭘까? 심지어 최근 몇 년간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는 전망이 수없이 대두됐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것이고 일시적인 침체라고 속였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하락의 이유가 너무나도 분명했다. 장기적인 경기 침체, 양극화와 실질 소득의 감소, 출산율 저하와 1인 가족 증가 등등. 하지만 눈에 뻔히 보이는 것을 두고도, 사람들은 종종 미망에 사로잡힌다. 자신만은 그런 명백한 위험을 벗어나 ‘성공’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체 왜?


나오카상 수상작인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는 고층아파트에서 벌어진 일가족 살인사건의 이면을 파고드는 범죄소설이다. 허영심으로 호화 아파트를 무리해서 구입한 젊은 부부는 결국 빚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에 넘어간다. 부부는 소위 ‘버티기꾼’을 이용하여 최대한 피해를 줄여보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들 부부가 구입한 아파트는 일본의 버블 경제 초입에 착공하여 버블의 붕괴와 함께 입주가 시작되었다고 설정되어 있다. 한국의 하우스 푸어와 거의 흡사한 형국이다. 그 아파트가 위치한 곳은 이전에 합성염료회사가 있었고 서민들이 모여 살던 소위 ‘시타마치’였다. 소박하게 공동체의 삶을 누려 온 마을에 갑자기 등장한 고층 아파트. 총 785세대가 입주한 아파트는 ‘사카에쵸 일대의 영세한 공장과 상점과 낡은 단독주택이 혼재하는 거주공간하고는 차원을 달리하는 별천지’였다. 그 아파트의 느낌을 마을 토박이의 시선을 빌어 말하면 이렇게 된다.

어지러울 정도로 높은 아파트 창문을 밑에서 이렇게 올려다보면서 생각을 했어요. 저 안에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갑부들이고 세련되고 교양도 있고 옛날 일본인의 감각으로는 상상도 못할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건 어쩌면 가짜인지도 몰라요. 물론 실제로 그런 영화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그것은 그것대로 점점 진짜가 되어가겠지요. 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가 거기에 다다르기까지는, 얇은 껍데기 바로 밑에는 예전의 생활 감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은 위태로운 연극이 아직은 한참 동안 계속되지 않을까요? …… 웨스트타워를 올려다보고 있을 때, 뭐랄까, 갑자기 화가 꾹 치밀어 오르더군요. 자기 안에 살고 있는 비열한 사람들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저렇게 떡하니 버티고 서 있잖아요. 저런 곳에 살면 사람이 못쓰게 돼요. 사람이 건물의 품격에 장단을 맞추려고 영 이상하게 돼버리는 것 같아요.

아파트를 산 부부는 상승 욕구와 허영심 때문에 무리해서 아파트를 샀다가 빚에 시달린다. 경매에 넘어간 아파트를 산 남자도 학력 콤플렉스에 시달리다가, 부자가 되는 것만이 무시당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아파트’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직접적인 수단이었다. 자신의 치욕스러운 과거를 지워버릴 수 있는, 압도적인 물질. 하지만 그들은 아파트 때문에 스스로 붕괴해버린다. 과거란 지워버린다고 지울 수 있는 게 아니다. 버린다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버리고 뒤돌아설수록, 오히려 아귀가 되어 달려들기 마련이다. 그 과거를 끌어안고, 그 과거가 만들어낸 것이 나임을 이해하고 결국 인정할 때 미래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과거’라는 것을 야스타카는 깨달았다. 이 ‘과거’는 경력이나 생활 이력 같은 표층적인 것이 아니다. ‘피’의 연결이다. 당신은 어디서 태어나 누구 손에 자랐는가. 누구와 함께 자랐는가. 그것이 과거이며, 그것이 인간을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만든다. 그래야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를 잘라낸 인간은 거의 그림자나 다를 게 없다. 본체는 잘려버린 과거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이다.

『이유』에서 미야베 미유키는 현대인이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추적한다. 단지 수수께끼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다. 범죄소설에서 범인이 누구이고, 동기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유』는 조금 다른 길을 택한다. 사건에 얽힌 수많은 사람을 찾아가 직접 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이유』라는 소설은 이루어져 있다. 범죄의 증거를 모으고 동기를 찾기 위해 사람을 만나는 것만이 아니라, 사건에 직간접으로 얽힌 개인의 일상과 역사를 더욱 더 중요하게 그려내고 있다. 젊은 부부, 경매로 그들의 집을 낙찰 받은 가족, 가족으로 위장한 버티기꾼들, 용의자가 숨어 있었던 여관 가족의 모든 것을 『이유』는 세밀하게 추적한다.

해설을 쓴 소설가 시게카쓰 기요시의 말을 빌리면 ‘(『이유』는) 몇 개의 착종된 수수께끼를 푸는 이야기이자 하나의 사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련되어 있는지를 풀어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들을 그저 많은 사람들이라는 집합명사에 묶어두지 않고 개개인의 윤곽을, 그 깊이와 음영까지 지극히 꼼꼼하고 선명하게 그러낸 이야기다.’ 미야베 미유키는 서스펜스 대신에 ‘이유’를 택했다. 그들이 저마다 얼마나 많은 사연과 이유를 가지고 있는지, 그 작은 개인들이 모여 어떤 시대가 만들어지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현대 일본의 빛과 어둠을 드러내고, 사회와 인간을 폭넓게 그린 발자크적인 작업’이란 말처럼 『이유』는 개인을 통해 ‘시대’를 그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유』를 읽고 나면, 1990년대 당시의 일본인들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사회에서 살아갔는지를 조금 알 수 있다. 『이유』에 등장하는 많은 가족과, 집과, 관계를 통해 일본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 전체가 어떤 위기상황에 놓여있었는지가 느껴진다. 분명히 풍요로워졌지만, 확실히 무엇인가가 뒤틀려져 있다. ‘얇은 껍데기 바로 밑에는 예전의 생활감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은 위태로운 연극이 아직은 한참 동안 계속되지 않을까.’

하지만 소위 매스컴이 전하는 것들은 대체로, 그 껍데기뿐이다. ‘매스컴이라는 것을 거치고 나면 진짜는 아무것도 전해질 수 없다. 전해지는 것은 진짜처럼 보이는 것들뿐이다. 그리고 그 진짜처럼 보이는 것들은 종종 완전한 허구 속에서 끄집어 올려진다.’

미디어가 원하는 것은 그럴듯한 허구일 뿐이다. 멋진 신세계일 뿐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인간은 여전히, 모든 것을 짊어지고 살고 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아무리 풍요로워져도 근본적인 인간의 조건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걸 잊으려 한다. 아니 잊은 척 한다. 멋진 포장을 한다. ‘사람들이 건물의 품격에 장단을 맞추려고 영 이상하게 돼버리는’

것처럼. 진짜 자기를 잃어버리고, 오로지 장식과 포장에만 혈안이 되어버리는 세태가 『이유』에서는 너무나 성실하고 차분하게 그려진다. 그러면서 서민들의 살아가는 ‘일상’ 그 자체를 은근히 추켜세운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작은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소소한 일상을.




◈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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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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