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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를 발견하면 사진 찍어 주세요! : 재능기부가 주는 희망

대중문화잡지 <빅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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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는 1991년 영국에서 창간된 대중문화잡지로 노숙자들에게 잡지를 판매할 권한을 주어 자활의 기회를 마련해준다. 영국을 비롯하여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대만 등 세계 10개국에서 발매되고 있다.

 
내가 즐거우면 세상도 즐겁다
밥장 장석원 저 | 마음산책
여기 실제로 자신의 작은 재능으로 세상을 바꾸는 그림작가가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대기업을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이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밥장,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은 물론, 타인, 세상과 소통하는 삶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그가 말하는 재능기부란 무엇일까? 그는 어떻게 재능기부를 시작했고, 왜 재능기부를 하게 되었을까? 『내가 즐거우면 세상도 즐겁다』는 재능기부로 자신의 세상을 즐겁게 바꾼 밥장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당신이 그리는 순간 세상이 바뀝니다

오래전 친구 녀석이 유통회사에 입사하여 실습을 하느라 편의점에서 근무하였다. 바닥에 물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한 어머니가 꼬마와 함께 들어오더니 “너도 공부 못하면 저렇게 된다”라고 했단다. 흔히들 공부를 못하면 힘든 일을 하게 되거나 가난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난을 개인의 잘못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일을 잘해도 가난해질 수 있다는 걸 말이다.

가난을 가난한 사람 탓으로만 돌려서는 곤란하다. 어려운 환경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게 사회도 나서야 한다. 누구라도 언제든지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잘못되더라도 최악의 상황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는, 우리 사회가 이 정도는 된다는 믿음을 주는 게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예외가 규칙으로 잘못 표현될 때, 우리의 개인적 불행은 삶에 불가피한 측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저주처럼 우리를 짓누르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나 혼자만 박해와 수모를 당한다는 느낌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개인적인 불행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고 혼자 고통 받지 않게 도와주는 일, 이게 정치인과 관료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복지’의 참뜻이 아닐까 싶다.


 


속물근성으로 재능기부하다

2011년 초 잡지 <빅이슈>와 인터뷰를 했다. <빅이슈>는 1991년 영국에서 창간된 대중문화잡지로 노숙자들에게 잡지를 판매할 권한을 주어 자활의 기회를 마련해준다. 영국을 비롯하여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대만 등 세계 10개국에서 발매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7월에 창간되어 월 4만 부를 발행하며, 현재 백 명의 노숙자들이 판매원이 되어 자활을 꿈꾸고 있다.

내 인터뷰를 맡았던 기자는 무척 말쑥했다. 기자로서 처음 하는 인터뷰라며 나보다 더 긴장한 듯 보였다. 서툴지만 한 마디 한 마디 정성스럽게 받아 적는 모습을 보니 괜히 우쭐해졌다. 내가 되게 착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재능기부에 대해 물었을 때 큰 은혜라도 베풀듯 기회가 되면 <빅이슈>에도 기부하겠다고 큰소리쳤다. 몇 달 뒤 그는 진짜 일감을 챙겨서 내게 연락했다.

<빅이슈>에서는 중고 승합차를 한 대 구입하였다. 이른바 ‘빅카’. 그전에는 판매 시간 내에 잡지가 다 팔리면 직원들이 택시나 지하철을 타고 잡지를 직접 갖다 주었다. 하지만 빅카가 생긴 뒤부터 손쉽게 전해주었다. 또 새로운 판매원을 모집하거나 단체로 이동할 때, 몸이 불편한 판매원들을 데려다 줄 때도 제 역할을 하였다. 빅카는 <빅이슈>에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지만 아무 디자인도 없는 승합차라서 아쉬웠다. 빅카가 ‘달리는 <빅이슈>’가 될 수 있도록 새롭게 디자인하여 도색하기로 하고, 바로 이 일을 내게 부탁한 것이었다. 인터뷰 때 재능기부(달리 말하면 공짜)로 해주겠다는 내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먼저 <빅이슈>가 어떻게 팔리고, 어떻게 판매원들을 도와주는지 살펴보았다. ‘빅판(<빅이슈> 판매원)’이라고 부르는 판매원들에게 10부를 무료로 준다. 이것을 정가 3000원에 판매한다. 판매한 돈으로 잡지를 1400원에 공급받는다. 한 부를 팔면 1600원씩 남는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주거와 일자리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다.

<빅이슈>는 노숙자 출신에게만 판매권을 준다. 빅판이 되려면 먼저 빅판 행동수칙을 따라야 한다. 일정한 교육을 받은 다음 정해진 장소에서 잡지를 판매한다. 15일 동안 임시 빅판으로 활동하고 꾸준하게 판매하면 정식 빅판이 된다. <빅이슈>의 수익 모델, 빅판의 복장 그리고 떳떳하게 제 힘으로 일어서는 모습을 감안하여 캐릭터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빅판 캐릭터를 보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게 입이 찢어져라 웃는 얼굴로 그렸다. 빅판의 복장인 챙 넓은 빨간 모자와 조끼에 붉은 망토와 날개를 더해서 밝은 느낌을 더욱 살렸다. 판매 시스템도 간단한 설명을 덧붙여 그리고 차량 색깔과 그림 위치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한 달 뒤 컴퓨터 화면으로만 보던 빅카를 길거리에서 실제로 보았다. 그전에는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색 승합차였다. 하지만 하얀색과 산뜻한 오렌지색 바탕에 빅이슈 로고와 캐릭터가 들어가니 튀는 차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운전도 무척 조심하게 되고 교통법규도 잘 지키게 되었다고 하였다. 빅카를 세워두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게 무슨 차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가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차가 달릴 때는 빅판 캐릭터가 바퀴 위에 올라타서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서울 시내에서 빅카와 마주치면 반갑게 손 흔들어주시길. 그리고 사진을 찍어 블로그나 페이스북에도 올려주시길. 이게 <빅이슈>와 빅판을 돕는 길이다. 오렌지색 빅카는 오늘도 사람들에게 ‘찍힐’ 준비가 되어 있다.


재능기부자를 존중할 줄 아는 <빅이슈>

돈도 돈이지만 기분 문제일 때도 있다. ‘저 친구가 날 업자로 생각하는구먼.’ 재주로 먹고사는지라 가끔 이런 기분을 느낀다. 딱히 화를 낼만 한 일은 아니지만 조금 씁쓸하다. 이런 기분을 잘 아는지 홍대의 동네 서점인 ‘땡스북스’에서 파티가 열렸다. <빅이슈>를 위해 재능을 기부한 사람들을 초대한 것이다. 파티 장소는 땡스북스에서 기부했다.


벽에는 캐리커처와 함께 각 재능기부자들이 참여한 내용들이 호별로 잘 정리되어 붙어 있었다. 직원들이 손수 샌드위치를 싸고 닭다리를 조리고 카나페를 만들고 과일 꼬치를 꽂고 상그리아도 만들었다.

파티는 딱히 재미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기분은 무척 좋았다. 누군가를 위해 밤새 음식을 만들려면 대단한 정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잔치 음식은 남기지 않는 거라며 푸드파이터처럼 샌드위치를 턱 밑까지 꽉꽉 담아 넣었다. 선물도 받았다. ‘반8’에서 만든 반팔 티셔츠였다. 가슴팍에는 예의 촌스런 붓글씨로 ‘재능기부자’라고 쓰여 있었다.

가끔 블로그 안부게시판이나 쪽지로 ‘밥장 덕분에’ 재능기부를 시작했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으쓱해진다. 재능을 나누는 분들이 늘어나서 그런지 요즘 <빅이슈>에서는 내게 별다른 부탁을 하지 않는다. 돈 안 받고 일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신경 쓸 일이 하나 줄어서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아예 연락을 안 했으면 좋겠다…….

에이그, 왠지 말을 하면 할수록 투덜거리는 것처럼 들린다. “기자님,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그릴 준비는 늘 되어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저 그림 진짜 잘 그립니다.” 이럴 때는 영락없이 소심한 A형으로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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