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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오랜만에 가슴을 뛰게 하는 영화

CF감독 출신인 니콜라스 빈딩 레픈의 화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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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는 칸 영화제 감독상을 타며 화제가 된 작품이다. CF감독 출신인 니콜라스 빈딩 레픈은 생소하기 그지 없는 덴마크 출신의 감독이다.

<드라이브> 오랜만에 가슴을 뛰게 하는 영화를 만났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보다 보면 지칠 때가 있다. 솔직히 요즘이 딱 그랬다. 정말 열심히 영화를 봤다. 많이 보는 날에는 극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하루에 네 편도 봤다. 가능하면 신작들을 놓치지 않겠노라 스스로 다짐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영화 보는 것이 일이 되다 보니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동안 아메리칸 필름 마켓도 다녀오고, 새롭게 구매를 결정한 작품들도 있었을 뿐 아니라 개봉 일과 배급사를 조율하는 일 등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정말 영화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해 고민하고 영화라는 이름 하나에 매달려 앞만 보고 달려왔다. 심신이 지쳐버린 것도 어쩜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영화를 봐도 정리가 안 되고, 뭔가 쓰고 싶어도 써 지지 않는 상황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 주 우연히 퇴근길에 <드라이브>를 만나게 되었다.


<드라이브>는 칸 영화제 감독상을 타며 화제가 된 작품이다. CF감독 출신인 니콜라스 빈딩 레픈은 생소하기 그지 없는 덴마크 출신의 감독이다. 주연을 맡은 라이언 고슬링과 캐리 멀리건은 영화를 좀 아는 사람들이 보면 ‘아’ 하는 정도의 배우들이다. 딱히 뭐 하나 상업적인 구석을 발견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이 영화를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도대체 왜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그렇게 호평을 받은 것일까. 오리지날 포스터에 그려진 핑크빛 제목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정적인 이미지에 앉혀진 ‘잔혹’이라는 단어는 왜 등장하게 된 것일까. 뭔가 뜯어 보면 뜯어 볼수록 궁금증이 일었다. 그래서 덥석 물어버렸다.


영화가 시작함과 동시에 범상치 않은 기운을 발견할 수 있다. 마치 미로에서 출구를 찾아 움직이는 모르모트처럼, 남자는 대사 한마디 하지 않고 운전한다. 심장을 뛰게 하는 Tick of the Clock이라는 이름의 사운드트랙이 온 몸을 일깨우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감각이 스크린에 집중된다. 그와 동시에 화면 한 가득 핑크색으로 그려진 오프닝 크레딧이 등장한다. 충격적이다. 대체 이런 아이디어는 누가 냈을까 싶을 정도의 매혹적인 시작이다. 남자는 경찰들을 따돌리고 유유히 사라진다. 오로지 운전만 하는, 범죄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는, 그는 스턴트맨이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한참을 멍한 상태가 이어졌다. 세상에 이런 영화가 어떻게 있지?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 올랐다. 그리고 내가 아직까지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고 좋아하는 지가 느껴졌다. 다시금 깨달았다. 나는 영화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주인공 남자와 그 이웃에 사는 여자가 있다. 여자는 출옥을 앞둔 남편이 있고, 아이도 있다. 그런 그녀에게 주인공 남자가 끌린다. 여자도 끌린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을 버리고 달아나지 않는다. 여자의 남편이 출옥하면서 이야기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여자를 위해, 남자는 여자의 남편이 빠진 함정에 동참하게 된다. 남자는 오로지 여자를 구하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충격적이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폭력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산탄 총에 머리가 산산조각 나는가 하면, 엘리베이터 안에서 벌어지는 육탄전은 머리통이 터질 때까지 이어진다. 포크로 눈알을 찌르고, 면도날로 손목을 긋는 것은 애교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리얼하다. 일반적인 오락영화에서 보여지는 시간 끌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상황들은 서슴없이 진행될 뿐이다. 마치 <테이큰>에서 니암 리슨이 악당들에게 던지는 발차기 같이 절도 있고 망설임이 없다. 모든 액션 시퀀스가 이처럼 격렬하고 조금은 비릿하게 다가온다.

잔혹한 영상들 사이에 흘러나오는 음악들은 하나같이 아름답다. 일렉트로닉스 뮤직으로 가득한 사운드트랙은 폭력적인 영상과 만나 영화의 느낌을 한층 강렬하게 바꿔버린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우아한 선율은 정말이지 충격적이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다. 놀라운 것은 영화를 보고 난 뒤 그 음악이 계속 귀에 맴돈다는 것이다. 지난 미국 출장 길에 이 영화의 OST를 사지 않은 것이 억울하게 느껴질 정도다. 특히 Riz Ortolani가 부른 Oh My Love는 눈물이 날 정도로 좋다.

영화는 기존이 그 어떤 무엇도 답습하지 않는다. 평범하게 사랑하지도 않고, 평범하게 싸우지도 않는다. 장면 하나하나에 힘이 그대로 실려있다. 오랜만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영화를 만난 기분이다. 안타까운 것은 아쉽게도 이 영화가 많은 스크린에 걸리지 못했고, 많은 관객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관람등급은 청소년관람불가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영화는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이들에게는 권해주고 싶지 않은 작품이다. 영화가 주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사람들만 공유했으면 좋겠다. 오락 그 이상의 무엇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영화다. 영화를 보고 한껏 함께 떠들 수 있는 사람이 갑자기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은 꼭 봤으면 좋겠다.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가슴이 미친 듯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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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성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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