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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사이트에서 시작한 잘못된 인연

『악인』,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악인(惡人)’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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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복잡한 것처럼, 악인이라는 존재 자체도 모호하다. 어떤 끔찍한 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저런 나쁜 놈. 이라고. 외형적으로 본다면 『악인』의 주인공 유이치도 마찬가지다. 깊은 산속 도로에서 젊은 여성을 목 졸라 죽이고 도망쳤다. 그 정도 사실만으로도 악인이라고 부를 법 할 것이다. 하지만 TV 화면에 비친 것 이상의 유이치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그는 대체 어떤 악인일까?

 

악인이란 누구일까? 사악한 범죄를 일으킨 사람? 그 정의를 부인할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즉 법률로 정해진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지만 ‘악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도 많다. 반대로 살인을 하거나 폭력을 쓰긴 했지만, 정작 악인이라고 부르기 힘든 이들 역시 많이 있다.

그렇다면 요즘엔 익숙한 단어가 된 사이코패스는 어떨까? 사이코패스는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전혀 없기에,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거나 희생시키는 이를 말한다. 그 정도면 악인이라고 능히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단지 사이코패스들만이 악인일까? 이를테면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헌신하면서도, 타인들에게는 가혹하고 때로 목숨까지 빼앗는 이가 있다면 어떨까?

세상이 복잡한 것처럼, 악인이라는 존재 자체도 모호하다. 어떤 끔찍한 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저런 나쁜 놈. 이라고. 외형적으로 본다면 『악인』의 주인공 유이치도 마찬가지다. 깊은 산속 도로에서 젊은 여성을 목 졸라 죽이고 도망쳤다. 그 정도 사실만으로도 악인이라고 부를 법 할 것이다. 하지만 TV 화면에 비친 것 이상의 유이치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그는 대체 어떤 악인일까? 『퍼레이드』에서 보통 사람의 범죄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드러냈던 요시다 슈이치는『악인』에서 악인이라는 존재 자체를 되짚어본다. 과연 누가 악인인지, 어떤 사람을 우리는 악인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를 자문하는 것이다.

요시다 슈이치는 살인 사건에 얽힌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하는 딸 요시노를 잃은 아버지의 이야기, 기분 나쁘다고 여자를 산속 도로에 내팽개치고 가 버린 남자의 이야기, 같은 직장에 다니던 그녀를 한편으로 질투하고 선망하기도 했던 친구의 이야기 그리고 그녀를 죽인 남자와, 뒤늦게 그를 만나 사랑하게 된 미쓰요의 이야기까지. 하나의 사건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사건에 얽힌 수많은 사람들을 찾아가 인터뷰한 형식으로 쓰여진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와도 비슷하다. 하지만 인터뷰 형식은 아니고,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전개하는 방식으로 담담하게 서술한다.


요시노가 유이치를 만난 것은 만남 사이트를 통해서였다. 그녀는 돈을 원했다. 다른 남자들을 만나서도 돈을 원했다. 그리고 만남 사이트가 아닌 곳에서 만난 멋진 남자에게 선택되기를 원했다. 이를테면 여관집 아들이라는 대학생 마스오 같은 남자. 누군가의 말처럼 요시노는 ‘창녀’일 수도 있고, 신분상승을 위해 남자를 쫓아다니는 속된 여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에게는 그저, 억울한 죽음을 당한 딸일 뿐이다.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피라미드 꼭대기의 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밑변의 돌 한 개가 없어지는 거로구나.’ 처음에는 마스오가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증오했지만, 정작 진범이 따로 있다는 말에도 아버지의 분노는 사그러들지 않는다.

‘딸을 죽인 범인이 있다. 딸의 애정을 짓밟은 놈이 있다. 증오를 퍼부어야 할 대상은 범인인데도 왜 그런지 자꾸만 차에서 걷어차여 쫓겨나는 딸의 모습만 떠올랐다.’

마스오는 요시노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그녀를 무시하고 조롱했다. 보험영업을 하는 이발소집 딸, 아주 예쁘거나 매력이 있지도 않은 요시노를 업신여겼다. 그녀가 죽은 후에도, 마스오는 그녀를 조롱한다. 요시노가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했는지를 깔깔거리며, 친구들에게 떠들어댄다. 마스오는 요시노를 죽이지 않았지만, 악인이다. 그 사실만은 분명하다.

유이치는 요시노를 죽였다. 요시노를 만나기 위해 나갔다가, 그의 눈앞에서 마스오의 차에 올라타는 요시노를 본다. 그래서 쫓아갔고, 산길 도로에서 나동그라지는 요시노를 보았다. 그런 요시노를 걱정하여 다가갔지만, 요시노는 오히려 악담을 퍼부어댄다. 지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본 유이치에게, 요시노는 엉뚱한 분노를 토해낸다. 나를 납치해서 강간했다고 고발할 것이라고. 친척 중에서 변호사도 있으니, 반드시 너를 고발할 거라고. 그 말을 들은 유이치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요시노의 입을 막고 목을 졸랐다. 그래서 죽였다. 그런 말을 듣고도 참지 못한, 너그럽게 넘기지 못한 유이치는, 악인이다.

유이치는 어릴 때 엄마에게 버림받았다. 페리 선착장에 버려진 유이치는 외조부모에게서 자라났다.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나와 막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착해서, 조부모의 뒷바라지를 묵묵하게 할뿐이다. 별다른 취미도 없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지도 않는다. 일을 하고, 병든 할아버지를 보살피고, 지루한 일상을 보낼 뿐이다. 미쓰요도 그랬다. 고등학교를 나와 동네의 상점에서 일하는 고독한 나날들. 그리 외향적이지도 않고, 미인도 아닌 미쓰요는 늘 혼자였다. 그래서 바보같이, 그들은 만남 사이트를 들여다본다. 혹시, 정말 혹시나 진짜 ‘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 해서.

‘난 진지하게 문자 보냈던 거야. 다른 사람들은 그냥 장난삼아 그럴지도 모르지만…난, 정말로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거든. 촌스럽지? 그런 거, 너무 슬쓸하지?…바보같다고 해도 좋아. 그렇지만 비웃진 마…’

바보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얼마나 한심하기에 일상에서 이성 하나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거냐고.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누구는 날마다 연애를 하고, 수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용기가 없어서 혹은 연애할 시간과 여유조차 없어서 시간을 흘려보낸다. 만남 사이트에서 요시노를 만났던 한 남자가 있다. 그녀가 자신을 칭찬했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 남자는 못 생겼고, 가진 것도 그다지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이 정말 기뻤다.‘빈말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렇잖습니까. 그것마저 없다면 저 같은 놈은 정말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요시노를 죽인 후, 유이치는 미쓰요를 처음 만난다. 그리고 알게 된다. ‘그곳에만 가면 날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린다. 그런 장소가 이제껏 있었던가? 30년을 살아온 내 삶에 그런 장소가 있었던가? 나는 그곳을 발견해낸 것이다. 나는 그곳을 향해 가는 것이다.’유이치와 미쓰요는 똑같은 마음이었다. ‘조금만 일찍 미쓰요를 만났으면 좋았을 걸. 조금만 일찍 만났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하지만 이미 유이치는 요시노를 죽였고, 그들의 행복은 유예될 수밖에 없다.

유이치와 미쓰요의 운명이 그렇게 가혹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유이치와 미쓰요는 일종의 사회적 약자다. 극빈층은 아니지만, 그들은 이 사회의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런 그들을, 마스오같은 이들은 끊임없이 비웃는다. 그런 와중에 그 약자들끼리는 서로 헐뜯고 싸운다. 유이치를 버린 어머니는, 아들이 사람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전화를 건다. 그리고 힐난한다. 어떻게 그런 아이로 키웠냐고. 아이를 선착장에 버리고 도망친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아들을 비난한다. 자신에게 올 때마다 돈을 뜯어갔다고.

하지만 그건 유이치의 또다른 배려였다. 유이치는 말했다. 원치 않는 돈을 뜯어내는 것? 괴롭다고. 그러면서도 어머니에게 돈을 뜯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그렇지만 양쪽 다 피해자가 되고 싶어하니까’ 라고. 내가 버린 자식도 이렇게 나쁜 놈이야, 그러니까 나도 피해자라고. 자신을 피해자로 위치 지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정당성이 생기니까. 그렇게 똑같은 위치에 선 사람들끼리 서로를 갉아먹으며 위안을 삼는다.

그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코 도망치는 것만은 안 된다. 유이치의 할머니 후사에는 우연히 건강상품을 판매하는 행사에 갔다가 빚을 지게 된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분위기에 취해 샀다가, 나중에는 협박에 못이겨 지불 각서를 쓴 것이다. 살인범의 가족이라는 비난에서 도망치려고, 빚에서 도망치려고 하던 후사에는 결심한다. 아니 알게 된다. 그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내 잘못도 아닌 것에서 도망칠 이유가 없다고.‘도망만 친다고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기다려도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힘을 내야 한다. 바보 취급을 당하고 잠자코 있을 수만은 없다. 용기를 내야 한다. 이제 더는 그 누구에게도 바보 취급을 당할 수 없다. 그런 대우를 당하고 더는 참을 수 없다.’

물론 그런다고 반드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요시노의 아버지가 마스오를 찾아가 스패너를 높이 쳐들어도, 결코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솔직히 아버님이 마스오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대결하는 그 장소에서든, 그 후 서로의 인생에서든 분명히 이기는 쪽은 마스오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아버님이 어떻게든 마스오에게 항변해주길 바랐습니다. 침묵한 채 지지 않길 바랐습니다.’ 단지 요시노의 아버지는 한마디를 던진다.

‘그렇게 살면 안돼…그렇게 다른 사람이나 비웃으며 살면 되겠어?’

누가 악인일까? 요시노를 죽인 유이치일까? 유이치를 고발하겠다며 소리치는 요시노일까? 요시노를 비웃는 마스오일까? 유이치를 버린 어머니, 물정 모르는 노인들을 유혹해 빚을 지게 해 돈을 뜯는 양아치들, 특종을 얻기 위해 살인범의 가족을 쫓아다니는 매스컴, 이 모든 것을 방치하는 사회.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모두가 악인일 수 있다. 동시에 우리들 모두가 선인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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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 퍼레이드 <요시다 슈이치> 저/<권남희>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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