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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머리띠 신경 썼는데 “목욕탕 가세요?”

머리띠(The Headband)로 사랑스러운 스타일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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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내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 “어디, 목욕탕이라도 가요?”파리에서 공부하던 시절, 한국에서 출장 온 모 백화점의 바이어가 머리띠를 한 나를 보며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일러스트: 김아람

“어디, 목욕탕이라도 가요?”

파리에서 공부하던 시절, 한국에서 출장 온 모 백화점의 바이어가 머리띠를 한 나를 보며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넓은 니트 머리띠로 나름 머리에 힘을 주었던 것이 그의 눈에는 ‘목욕탕 패션’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런 말을 몇 년 동안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신축성 있는 니트로 만든 밴드식 머리띠를 한 모양새가 사람들에겐 막 세수하려는 여자처럼 보였나 보다. 이건 큰 귀고리를 차면 으레 들려오는 ‘귀 안 떨어져요?’와 같은 성질의 농담 섞인 발언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말이 위트로 다가오지 않는다. 재미있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듣는 사람은 상처를 받는다.

80년대 당시 파리지엔의 룩 가운데 머리띠 패션 또한 무척 감칠맛 났다. 두꺼운 반코트 아래 딱 붙는 청바지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여자의 머리에는 터번식 머리띠가 감겨져 있었고, 보일 듯 말 듯한 귀 아래로 묵직한 귀고리가 육감적인 자태를 드러냈다. 빨간 입술도 도드라졌다. 머리띠를 한 여자들에게서 나는 늘 신비감을 느꼈다. 그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밴드 형태의 머리띠를 하면 내가 여인이 된 것 같았다. 파리지엔들은 긴 플레어스커트를 입을 때 머리띠를 즐겨 했으며, 엄격한 정장 차림에도 머리띠를 매치해 우아함을 색다르게 표현했다.


철학가이자 작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도 머리에 띠를 두르는 걸 꽤 좋아했다. 그녀는 때로 스카프를 돌돌 말아 머리띠로 활용하곤 했는데 그 자태에서 우러나는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언젠가 긴 머리가 탐나 가발을 산 적이 있다. 칠흑 같은 밤이 연상되는 그야말로 새까맣고 탐스러운 긴 머리였다. 가발 한 가운데에 빗 핀이 장착돼 있어 핀을 꽂듯 머리에 고정시키는 것이었는데, 내 머리와 가짜 머리가 만나는 접점을 그냥 두면 가발이란 게 드러났다. 그때 머리띠는 경계를 감추는 데 딱이었다. 머리띠를 하면 가발이 살짝 뒤로 밀려나면서 머리 뒤쪽이 약간 볼록해져 바람을 넣은 듯 볼륨이 형성됐다. 검은색의 널따란 머리띠와 가발을 쓰고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걷다 보면 파리와 내가 하나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머리띠를 하면 자신감이 고개를 들면서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그때를 떠올리면 웃음이 나온다. 브리짓 바르도도 아닌데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살면서 딱 한 번 머리띠를 직접 만든 적도 있다. 학교에서 주최한 생 카트린 축제 파티에 입을 연한 초록색 엠파이어 라인 드레스와 짝을 이룰 만한 머리띠를 구할 수 없어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 것. 평범한 초록색 머리띠를 사서 진주를 한 알 한 알을 꿰매니 근사한 머리띠가 완성됐다. 22년 전 내 손끝에서 태어난 진주 머리띠를 나는 아직도 갖고 있다. 진주 몇 알만 남은 초라한 모습이긴 하지만.


그리스인들의 화관에서 출발한 머리띠는
지금도 여자의 머리 위에서 변신을 거듭하는 중이다.
머리띠는 기분 전환, 분위기 전환에 가장 효과적인 소품이다.


모든 사랑에는 다 그만한 연유가 있다. 사실 내 머리띠 사랑의 기원은 좀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영장, 휴가, 엄마. 내 관념 속의 머리띠가 움켜쥐고 있는 추억의 단어들이다. 젊은 시절 엄마의 머리띠 패션은 뭔가 특별했다. 그때 사진들을 보면 머리띠를 한 엄마는 시원하게 드러난 이마가 환해서 한결 젊어 보인다. ‘여가를 맞아 기분을 내보려는’ 나름의 표현이 당신을 엄마가 아니라 여자로 느끼게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머리띠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특별한 행사 때 썼던 화관이라고 전해진다. 화관에 점차 보석이 곁들여졌고, 시간이 더해지면서 머리띠로 변했고, 패션 소품 중 하나로 안착했다. 요즘은 미국 드라마 「가십 걸」의 블레어를 빼놓으면 머리띠를 논할 수 없다. 새로운 머리띠를 들여다보니 그 모양내는 정도가 패션쇼를 많이 관람한 이가 멋을 부리는 수위와 비슷한 것 같다.

인조 스톤으로 장식된 필립 림의 머리띠는 탐이 나고, 서인영이 착용해서 관심을 받은 망사로 된 코르사주 머리띠는 사랑스럽고, 테일러 스위프트의 메탈과 큐빅 머리띠는 유치한 듯하면서 귀엽다. 스카프 형식, 젤리 같은 질감, 리본 장식, 두 줄짜리 디자인, 독특한 무늬, 단색, 줄무늬, 신축성 있는 소재, 체크 무늬, 터번식, 라임스톤 장식, 깃털 장식 등등 머리띠도 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지고 있다. 옷을 죽일까 다소 염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신선한 시도들이다.

내 침대 머리맡 탁자 서랍 안에는 나이 먹은 옛 머리띠들이 잠자고 있다. 하나같이 내 20대 시절을 머금고 있는 것들이다. 누군가에게 줄 법도 한데 섣불리 그러질 못하겠다. 잘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계속 두는 이유는 아마도 풋풋한 20대의 젊은시절을 쉽게 놓을 수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Who What Wear

“여성스러운 머리띠로도 록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모델 이유

다양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까닭에 뭐든지 해본다는 이유는 머리띠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활용하는 걸 좋아한다. “프린트가 확실한 스카프라든가 소재가 특별한 것, 형태가 재미난 머리띠를 활용해 록 시크 스타일을 연출하곤 한다.”

“머리띠를 하면
머리 모양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좋다.”

-『하퍼스 바자』 뷰티 디렉터 박혜수


“머리띠를 한 다음 뒷머리를 약간 띄어주면 두상이 더 예뻐 보인다. 자꾸 내려오는 앞머리가 귀찮을 때, 옷이 어딘지 밋밋한 날, 미처 머리를 감지 못한 날에 머리띠는 여러모로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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