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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대화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귀고리”

귀고리 The Earrings: 귀고리 하나로 얼굴라인이 살아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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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때가 있다. 공항 가는 길에 여권을 찾을 수가 없을 때, 모레인 줄 알았던 원고 마감 날짜가 내일임을 깨달았을 때, 집에 두고 왔을 거라고 믿었던 지갑이 집에 없을 때.


살다 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때가 있다. 공항 가는 길에 여권을 찾을 수가 없을 때, 모레인 줄 알았던 원고 마감 날짜가 내일임을 깨달았을 때, 집에 두고 왔을 거라고 믿었던 지갑이 집에 없을 때. 여기에 소소하지만 추가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어쩐지 허전해서 귀를 만졌더니 귀고리 한 짝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을 때다. 귀고리 한 짝 없어진 것이 뭐 그리 가슴이 철렁할 일이냐고 하겠지만, 내게도 구구절절 깊은 속사정이 있다.

나는 좀처럼 마음에 드는 귀고리를 찾을 수가 없다. 세상에는 귀에 구멍을 뚫은 이들을 위한 귀고리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구멍을 뚫지 않은 이들을 위한 클립 귀고리들을 취급하는 곳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있더라도 상품의 일부에 국한돼 귀에 구멍 하나 못 낸 이는 다양성에서 제외될 수 밖에 없다. 더러 귀를 조이는 나사 시스템으로 바꿔주는 상점이 있기는 하나, 기대를 품지 않는 쪽이 현명하다.


내가 귀를 뚫지 않은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어렸을 적부터 귀 아프게 들은 ‘귀에 구멍을 뚫으면 복이 달아난다’는 옛말 때문이고, 나머지 하나는 귓불이 상당히 통통해 귀고리를 한 모양이 예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귀고리 한 짝을 잃어버리면 마음이 시커멓게 물든다.

특히 나만을 위해 주문한 귀고리가 사라지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귀고리들을 디자인해준 ?모베의 김경 대표와 10년 가까이 쌓아온 믿음을 한 짝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그녀만큼 나의 귀고리 철학을 대변해주는 친구도 없다.


“6센티미터가 아니라 7센티미터는 되어야겠어요.” “연분홍색 구슬 두 개만 집어넣으면 섹시해지겠네요.” 이런 대화를 거쳐 그녀의 손끝에서 빚어진 귀고리들은 애교가 있으면서도 세련되고, 소란스러울 것 같은데 안정감이 있고, 심심할 것 같은데 어디에나 잘 어울린다.

귓가에는 또 다른 패션의 세계가 숨 쉰다. 목걸이가 지루해지면 원하는 길이로 잘라 귀고리로 활용하면 ‘환상’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내가 자주 하는 보랏빛 자수정 귀고리의 모태는 길이가 어정쩡한 목걸이였다. 목걸이 길이에 따라 귀고리 한 쌍이 나올 수도, 여러 쌍이 나올 수도 있다. 귀고리 시스템만 마련해주면 되는 일이라 언제부터인가 잘 안 하는 목걸이는 귀고리로 재활용하곤 한다.


얼굴선에 투명한 전류가 흐르게 하여 빛을 발하게 하는 간접 조명이다.
얼굴 양쪽에서 반짝이는 빛은 인상을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귀고리가 없으면 난 불안하다. 그 불안함은 목걸이나 반지의 부재와는 다르다. 귀고리는 얼굴을 밝혀준다. 얼굴 바로 옆에서 얼굴형을 강조하면서 스타일을 살려준다.

누군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동공에 맺히는 콩알만 한 진주 귀고리에 귀여움을 느끼고, 바람에 달랑거리는 크리스털 샹들리에 귀고리에서 여성스러움을 감지하고, 가느다란 금빛 후프 귀고리에선 유쾌한 감각을 읽고, 새파란 터키석 귀고리에선 에스닉 무드를 포착한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귀고리가 흔들릴 때,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귀고리는 광대뼈부터 턱뼈로 이어지는 얼굴선에 투명한 전류가 흐르게 하여 남다른 빛을 내게 한다. 귀고리는 간접 조명이다.

귀고리의 진가를 깨달은 것은 30여 년 전 우리 집에 놀러 온 사촌언니의 귀에 매달려 대롱거리던 별 모양 귀고리를 본 순간이었다. 몸에 달라붙는 광택 소재의 스판 바지에 스웨트 셔츠를 입고 머리를 틀어 올려 시뇽 스타일로 꾸민 언니의 디스코 패션은, 패션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어린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별 모양 귀고리가 반짝거리며 달랑거렸다. 그녀의 얼굴 언저리에서 맴도는 자그만 별은 귀엽고 섹시하고 여성스러웠다. 귀고리가 얼굴을 비추는 은하수라는 걸 그때 알았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까지는 귀에 밀착되는 스타일이 많았다. 그 시절 사진들을 보면 큼지막한 단추를 귀에 붙인 모습이 꼭 연극배우 같다. 그러다 일본 디자이너들이 불러일으킨 미니멀리즘이 강세를 띤 90년대 초중반에는 귀고리에 관심을 잃었다. 깔끔한 선을 그려내는 옷에 애정을 쏟게 되자 반짝이는 장식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된 것이다. 요즘 귀고리는 당차고 수려하며 시원시원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여자처럼 말이다.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 여겼던 독창적이고 대범한 귀고리들을 자연스레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예전 같으면 익히 들었을 “귀 떨어질 것 같지 않아요?”라는 말이 요즘은 뜸하다.

더운 땅 선전에 살면서부터 나는 귀고리를 자주 하고 다닌다. 여기는 매서운 겨울바람으로 귓불이 꽁꽁 얼 일이 없다. 햇빛, 비, 바람, 야자수, 바다를 거닐며 휴식의 기운을 섭취한 귀고리들은 빛을 잘 먹는다. 당분간 내가 귀고리와 멀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새로운 귀고리를 접하면 그것과 어울리는 또 다른 스타일이 존재할 거라고 난 늘 상상한다. 그러한 상상은 스타일을 일구고 살찌게 한다.


Who What Wear

“귀고리를 한 것과 안 한 것은 확연히 다르다.”
-배우 오연수


평상시 정장므 자주 입진 않지만,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 갈 때 오연수는 반드시 귀고리나 목걸이를 착용한다. 스타일을 구축하려면 옷이 전부가 아니며, 소품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른다.
“나는 딱 달라붙거나 앙증맞게 달랑달랑하는 귀고리를 좋아한다. 편하기도 하고 과하지 않아 우아하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눈동자와 함께 가장 먼저 보는 것이 귀고리다.”
-파티 플래너 안지현


안지현은 외출할 때 늘 귀고리를 한다. 얼굴 옆에서 뭔가 흔들리고 반짝여야 제대로 차려입은 것 같기 때문이다. 귀고리를 고를 때는 자신의 얼굴형과 목 길이, 체형을 고려한다.
“어깨가 드러나는 튜브톱을 입는 날엔 블링블링한 드롭형 귀고리를 애용한다. 바람에 찰랑찰랑 흔들릴 때 예쁜 소리가 나서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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