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봉석의 하드보일드로 세상읽기
스스로 목숨 끊은 여인, 누군가 그녀를 철저하게 파괴했다!
『비를 바라는 기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대체 어떤 경우일까
더 이상은 세상을 살아갈 힘이 없을 때?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신기루라는 것을 알았을 때? 너무나도 억울하고, 너무나도 안타까운 무엇인가 때문에 도저히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의 자살에 대해 수많은 경우를 추측해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를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대체 어떤 경우일까? 더 이상은 세상을 살아갈 힘이 없을 때?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신기루라는 것을 알았을 때? 너무나도 억울하고, 너무나도 안타까운 무엇인가 때문에 도저히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의 자살에 대해 수많은 경우를 추측해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 사람이 정말로 왜 죽었는지는. 모든 것을 다 갖추었거나, 너무나도 강인했던 것처럼 보였던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목숨을 끊는 이유는 더더욱. 게다가 자살하는 사람 중에서 유서를 쓰고 죽는 경우는 의외로 10% 정도라고 한다. 당사자가 설명을 하지 않은 이상, 아무리 추측을 해도 그것은 우리의 판단일 뿐이다. 본인이 되지 않는 이상은, 그 마음의 심연을 헤아리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자살을 수단으로 택하는 것은 어떨까? 독이나 칼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살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가는 것. 그가 더 이상 삶에 희망을 느낄 수 없도록,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파괴하고 철저한 절망에 빠트리는 것. 그런 방법으로 자살을 시킨다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자살방조죄도 구체적으로 자살을 도운 경우에만 해당하니까.
하지만 이 방법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일단 그가 궁지에 몰렸을 때에도, 자살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자살을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모르는 것처럼, 때로는 아주 사소한 하나의 이유 때문에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 오히려 모든 것을 버리고 자유로워지는 경우도 있다.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도 알 수가 없다.
그가 죽으면 거액이 들어온다거나 너무나도 분명한 복수의 이유가 있다면야 모를까, 자살을 시키기 위해서 쏟아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해 보면 다른 것을 이루는 게 낫다. 자살을 유도하는 과정이 범인에게 너무나도 짜릿한 쾌락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인 『비를 바라는 기도』에는 그런 사건이 나온다. 한 여인이 자살했다. 그녀가 자살했다는 데에는 한 치의 의혹도 없다. 하지만 사립탐정인 켄지는 사건을 파헤친다. 죽기 몇 개월 전 스토커 때문에 여인의 의뢰를 받았던 켄지는, 그녀가 그냥 자살할 리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살이라면, 뭔가 그녀를 망가뜨린 외적인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야비하고, 아주 파괴적인 무엇인가가. 그리고 사건은 켄지의 의심대로 흘러간다. 그녀가 자살한 것은 평범한 이유가 아니었다. 의도적인 자살에의 손길이, 완벽하게 그녀를 파괴했던 것이다. 그녀는 결국 자살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면 대체 범인은 왜 그녀를, 그렇게 복잡한 방식으로 죽인 것일까?
데니스 루헤인이 국내에 알려진 것은 영화화된 두 편의 작품 때문이다. 각각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미스틱 리버>와 <셔터 아일랜드>(국내에는 『살인자들의 섬』으로 출간된). 어린 시절 친구였던 세 남자가 중년이 된 후 딸의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두려움과 오해 그리고 분노의 소용돌이를 그린 <미스틱 리버>는 앤소니상과 베리상 등을 수상한 걸작이다. 보스턴을 배경으로 범죄소설을 쓰는 데니스 루헤인은 최근 출간된 역사소설 『운명의 날』에서 보이듯 실제의 사건과 역사적 배경을 튼튼하게 바탕에 깔고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사회의 현실을 소설적으로 파고들면 그 끝에 범죄소설이 있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 미국의 급소에 대해 쓰고 싶다면, 아무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미국의 다른 얼굴에 대해 쓰고 싶다면, 범죄소설에 관심을 갖게 되어 있다.’ 이 사회를 말하기 위해 범죄소설을 택한 데니스 루헤인답게, 그의 소설에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파란만장한 내면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사립탐정 파트너인 켄지와 제나로는 한때 부부였고, 지금은 친구가 되었다. 요즘은 하드보일드한 스타일의 범죄소설이어도, 남자 주인공은 터프하면서도 비교적 로맨틱한 경우가 많다. 악당에게는 폭력적이지만 여성에게는 부드럽고 관대하다고나 할까. 켄지 역시 그런 타입이다. 제나로가 독립적인 성인 여성인 것에 비하면, 켄지는 몸만 큰 어린아이 같을 때가 있다. 켄지의 절친인 부바 역시 아이 같은 어른이고. 그런 켄지가 보았을 때 카렌 니콜스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우아한 여성이었다.
‘카렌 니콜스의 여왕의 귀환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상아처럼 흰 치아, 그리고 건강미와 백치미.’ 양말을 다려 신고, 동물 인형을 수집하는 그 여자가 자살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게다가 4개월 전 켄지는, 다른 여인과 휴가를 가느라고 그녀가 남긴 메시지를 무시한 적이 있었다. 의뢰를 받은 것도 아닌 사건에 뛰어든 것은 그런 ‘낭만적인’ 이유였다. 그런데 캐고 들어가다 보니 켄지는 절망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밝게 빛나는 것 같았던 그녀의 인생이 너무나 참담했고, 이 세상이 너무나 잔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켄지는 사건에 빠져 들어간다.
‘카렌은 마치 타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 같았습니다….그녀는 시키는 대로 한 겁니다. 그러고는 짓밟혔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고 싶은 건 그녀를 짓밟은 것 중에 우연이 아닌 것이 어떤 것이냐는 겁니다.’ 그리고 그 우연이 아닌 것들을 파헤치는 목적은 단지 범인을 잡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녀를 위해 말하고 싶어. 아니, 그녀의 삶을 망치려고 한 자나 나 자신에게 그녀의 인생도 가치가 있다고 증명해 보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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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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