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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이별 앞둔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

뒷방에 밀린 아버지, 역할 없는 아버지를 위한 위안 혹은 기대 <알라마르>를 통해 살펴 본 영화 속 아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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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앞둔 아버지와 아들의 애틋한 여행 이야기, <알라마르>는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연이어 수상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주국제영화제


이별을 앞둔 아버지와 아들의 애틋한 여행 이야기, <알라마르>는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연이어 수상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되었는데, 영화제가 사랑하는 특유의 완성도와 장인정신이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누가 보는 사람만 없다면, 어디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가족을 정의했다. 늘 곁에 맴돌아서 익숙하고 새로울 것도 없어 보이지만, 가족이란 지겹도록 군내 나는 낡은 화두는 새로운 껍질을 씌우면 그럴 듯한 드라마가 된다. 하지만 아버지는 조금 다른 것이 사실이다. 가정에서 밀려난 아버지의 침묵은, 굳이 영화에서 보고 싶지 않은 지겨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알라마르>는 많이 다르다. 이 작품은 멕시코의 페드로 곤잘레스-루미오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로 멀리 떨어져 살아가야 할 한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짧은 여행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냈다.

담담하게 풀어가는 우직한 진심, <알라마르>


멕시코의 마야인 원주민 출신의 남자 호르헤(호르헤 마차도)는 자신의 터전에 여행을 온 이탈리아 여성 로베르타(로베르타 팔롬비니)와 불같은 사랑을 나누었고 둘은 결혼하여 이탈리아 로마에서 수 년간 도시 생활을 함께 한다. 로마에서 아들 나탄(나탄 마차도 팔롬비니)을 낳았지만 도시를 벗어나 바다에서 살기를 바라는 호르헤와 도시의 삶을 원하는 로베르타는 결국 헤어지게 된다. 부부는 로마에서 엄마와 살게 될 어린 아들 나탄을 위해 아빠의 고향으로 여행을 떠날 결심을 한다. 아빠와 함께 여행을 가게 된 나탄은 아버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도시에 있는 엄마에게 돌아가야 하는 나탄은 아빠와의 이별을 마주해야만 한다.


영화는 극사실적인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영화는 모자랄 정도로 담담하게 한 아이가 아버지를 통해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아버지와 떨어져 살아가야 할 아이의 미래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티끌 하나 없는 맑고 투명한 바다, 보기만 해도 신선함이 느껴지는 푸른 하늘, 그 속에 하나로 어우러진 아버지와 아들의 여행은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이다.

‘바다’를 뜻하는 스페인어를 제목으로 하는 이 영화는 단편 다큐멘터리로 주목받은 페드로 곤잘레스-루비오 감독의 첫 극영화 데뷔작이다. 감독은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큰 산호초 지대인 반코 친초로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카리브 해의 생명력을 화면 가득 담아내면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독특한 풍광으로 채운다.

게다가 실제 가족 사이인 세 주연배우들은 연기와 실생활의 경계를 무너뜨린 영화의 콘셉트 그 자체이다. 영화에 사용되는 이름 역시 배우들의 실명이라고 하니, 영화 전체가 하나의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감독, 각본, 촬영, 미술, 편집 등 거의 혼자 영화의 모든 것을 만들어낸 만큼 타인과의 의견 조율 없이 감독의 시선 그 자체가 영화가 된다.

야외 장면은 조명 없이 자연광만을 사용하여 촬영했고, 사실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촬영시의 거친 입자는 그대로 드러나고, 어떤 장면에서는 기술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이것은 뚝심 있는 장인정신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극적 요소가 부족해 영화의 유희성을 감소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는 이혼할 수밖에 없는 남자의 부정(父情)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호르헤의 아버지가 등장함으로 해서 할아버지-아버지-아들, 3대에 이르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다각도로 보여준다. 자연을 닮은 아버지와 아들은 때론 친구처?, 때론 엄하게 서로를 다독이는데, 이를 통해 담백해 보이지만 깊은 애정을 담고 있는 아버지의 부정을 느낄 수 있다.

극영화에 가까웠다면, 영화는 다소 과장된 아버지의 애정을 강조해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겠지만, <알라마르>에서 그 온도는 다소 심심할 정도로 미지근해 보인다. 따라서 울컥하는 짙은 감동을 못 느끼는 관객도 있겠지만, 묵묵하게 삶을 묵도하는 영화를 통해 깊은 사유를 즐길 수 있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자연을 닮아 있다. 이를 통해 자연과 닮은, 자연 그대로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74분이라는 극영화로서는 다소 짧지만, 다큐멘터리로 본다면 다소 길어 보이는 상영시간은 자극적인 영화를 원하는 관객에게는 지루하고 사유하고자 하는 관객에게는 어정쩡한 시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장 원초적인 자연과 본능적인 부모자식 간의 사랑이라는 단순하면서도 위대한 명제가 기대 이상의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알라마르>는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

당신이 나의 아버지였나요? : 영화 속 아버지들

<우아한 세계>

송강호가 주연을 맡았던 <우아한 세계>를 떠올려 보자. 이 영화는 오랫동안 뒷방신세로 밀려난 아버지를 중심으로 끌어들인 몇 안 되는 영화중 하나다. 영화는 밟히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끝없이 밟고 일어서야 하는 거친 사회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지하철 한 구석에서 주름진 얼굴로, 피로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중년 사내도, 술에 쩐 난봉꾼도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또한 우리의 아버지란 사실을 직시하라고 얘기한다.

그들의 지난한 삶 자체가 무시당할 만한 것이 아니며, 비웃을 만큼 하찮은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영화는 늘 목마르지만 오아시스를 찾을 수 없는 먹먹한 아버지의 삶은 까치발로 지뢰밭을 피해가야 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가족의 탄생>

살아가기가 퍽퍽하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복고의 감수성을 쫓는다. 가난과 무지, 소통불능의 기억은 매끄럽게 걸러지고, 그 속엔 낭만이란 껍질만 남아있다. 웃기지 않은 코미디의 신산스러움이 움츠러든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기엔 힘이 부치는 가운데, 그래도 마지막까지 나를 끌어안아줄 유일한 사람은 ‘가족’일 거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가족은 그 자체만으로 낭만적인 힘을 가진다.

흉터처럼 지워지지 않고 딸꾹질처럼 멈추는 법도 없이, 생활의 언저리로 밀어버려도 어느새 그 구심력으로 생활의 한 가운데로 몰려오는 가족이란 화두는 조폭영화와 코미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틈새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떠올랐다.

가족영화의 흥행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집으로>를 시작으로 많은 가족영화들이 등장했지만 소소한 에피소드와 모계중심의 가족관계 속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부재중이다. 일례로 <사랑해 말순씨>나 <소년 천국에 가다> 작품 속 아버지는 집을 비우고 있고, 부재중 아버지는 ‘가족’이란 이름에 길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섣불리 건드려 속을 드러낼 수 없을 만큼 생활 속에서 ‘아버지’란 이름은 여전히 문제적이며, 해결되지 않은 화두이다. 그래서 장애우의 이야기를 그린 <말아톤>이나 <허브>, 조폭들의 그늘을 감싸 안는 모성의 진한 감동을 덧씌운 <해바라기>와 <열혈남아>에서도 드러나듯 현실에서 존재감을 상실한 아버지란 존재는 영화 속에서도 조용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가족을 그린 영화를 말할 때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되어버린 <가족의 탄생>에서는 아예 모계 중심의 대안가족의 모습을 그리면서 가족 구성원에춂 아버지란 존재 자체를 거세시켜버린다.

이렇게 아버지는 터지면 골치 아프지만 뚝 떼어버려도 별 상관없고, 별다른 문제만 없다면 그냥 달고 살아도 좋은 맹장 같은 존재가 되어 가족과 사회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면도 있다. 아버지 자체가 변했다기 보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진부할 정도로 집착해 온 거친 남성성의 퇴보와 함께, 어떻게든 처자식을 지켜야 하기 위한 압박에 시달리는 사람으로서의 아버지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아버지를 정리하거나 대체하거나 혹은 대표할 수 있는 대안은 없지만, 지금 이 시간 다시 ‘아버지’를 돌아본다는 것은 아버지라는 묵직한 이름에 복고의 낭만주의만큼이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마이 파더>

권위와 힘의 상징이었던 아버지란 대명사가 그저 자기 가족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남자라는 뜻으로 곤두박질친 순간, 여전히 사회와 가족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가지지 못하고 자신들의 아버지에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배워보지 못한 현재의 아버지는 미디어가 내세우는 ‘부성’에의 강요와 생활인으로서 자신의 삶 사이에서 비틀거린다.

존재하지만 아버지 구실을 못하는 자들, 무능하고 약한 남자로 형상화된 아버지는 어딘가에 실존하는 부재의 아버지보다 더 형편없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아버지는 권위주의와 무능력함이 공존하는 최악의 아버지로 그려지며, 아버지를 향해 한방 날리는 멋진 장면 뒤에야 해결되는 주인공의 삶은 그 상징성 때문에 더 쓸쓸한 뒷맛을 남긴다.

수감 중인 아버지와 아들의 짧고 슬픈 하루를 그린 <아들>과 입양아와 죄수의 만남 <마이 파더>는 여전히 덜 자란 아버지, 자신을 버린 아버지, 사회에서 밀려나고 격리된 초라하고 쓸모없는 아버지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아들의 관용 앞에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연민을 넘어 삶의 긍정과 인간에 대한 성찰의 힘을 가져가길 바라는 건, 우리네 아버지가 영화 속에서나마 제 몫을 했으면 하는 대안적 믿음에 다름 아니다.


뒷방에 밀린 아버지는 2000년대 들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존재는 <괴물>과 <그놈 목소리>를 통해 위기에 처한 자식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용감한 모습을 보인다.

유사 부녀관계로서의 부성애를 보여준 <아저씨>를 필두로 <파괴된 사나이>, <악마를 보았다> 등의 영화는 잔혹한 범죄 대상이 되거나 희생된 아버지의 복수극을 그렸지만, 대부분 극단적인 방법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그린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조사한 어떤 통계에 따르면 세 명 중 한 명의 아버지가 자식과의 소통이 부족하다고 한다. 느끼기엔 두 명 중 한 명이거나 그 이상일 것 같지만, 최소 33퍼센트의 가족에서 아버지는 소외되어 있다는 씁쓸한 조사가 아닐 수 없다.

영화 속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삶 속에 아버지가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기에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개봉작은 거의 없다. 대화가 부족한 아버지들, 다정한 아버지를 원하는 분들은 <알라마르>를 통해 위안을 받으시라. 그리고 한 가지 명심하자. 우리의 삶 속에서 아버지는 늘 그랬듯 우리 삶의 언저리에서 맴돌면서 자신의 삶을 가족을 위해 소비하고 있다. 너무나 보잘것없어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우리 아버지들의 삶은, 바로 우리 자신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건 잊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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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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