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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 때 자신에게 보낸 편지 받고 당황한 소피마르소

<디어 미> 현재의 내가 낯설어진 이들을 살포시 토닥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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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없는 시대, 소통이 어려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공감’을 원한다. 소셜 네트워크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지극히 사적인 공간을 통해 늘어놓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감동이 없는 시대, 소통이 어려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공감’을 원한다. 소셜 네트워크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지극히 사적인 공간을 통해 늘어놓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부디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해 달라고 외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담들은 ‘동감’할 수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디지털의 즉시성 때문에 익명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널리 전파되지만, 그 소동 사이에 사람들은 오히려 진지한 소통을 잃고 더욱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과격한 반응과 큰 목소리로 위안을 얻으려는 사람들 사이에 누군가 다가와 그저 묵묵히 다 알았다는 듯 토닥토닥 어깨를 쓰다듬어준다면 그 작고 따뜻한 손을 통해 전해지는 묵직한 정서는 더욱 큰 위안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디어 미>는 잔잔하게 다가와 지친 오늘의 내 어깨를 살포시 끌어안고 다독여주는 영화이다. 크고 화려한 영화의 틈새에 여전히 아날로그적 감수성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조차 위안이 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테레사 수녀, 코코 샤넬, 마리아 칼라스 등 유명한 여성들의 삶을 본받고 싶어 하는 40대 커리어 우먼인 마가렛(소피 마르소)은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모두의 부러움을 살만한 멋진 여성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나이 많은 변호사가 전해 준 편지는 그녀가 7살 때 쓴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고래수의사, 성녀, 우주탐험가, 웨딩케이크 요리사, 공주님 등 편지에 쓰인 어린 시절의 꿈을 보면서 마가렛은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유년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삶이 낯설게 다가와서인지 그녀도 혼란에 빠진다.

돌이켜 보면 그녀의 과거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으로 가득했다. 그녀가 뒤 돌아보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살아온 것도 과거를 딛고 서기 위함이다. 얀 사무엘 감독은 과거를 단순한 추억으로 보지 않고, 마가렛의 불행한 과거를 동정하지도 그녀의 현재를 두둔하지도 않는다. <디어 미>는 주인공이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추하고, 반성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그의 전작처럼 영화는 늘 진지하게 인생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심각하지 않다.


곰곰이 떠올려 보면 누구나 수업시간에 미래의 나를 위한 편지를 써보라거나 미래에 내가 되고 싶은 직업을 얘기해보라는 지시를 받아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의사, 선생님, 과학자, 대통령, 외교관 등의 직업을 얘기했다. 정확하게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이 뭔지는 몰라도 어른들이 자주 거론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직업을 훌륭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가치관이 박혀있었던 것 같다.

미래의 나를 위한 편지를 쓴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겠지만 영화 속 주인공 마가렛의 편지는 사뭇 다르다. 똘똘한 7세 마가렛은 어른이 된 마가렛을 위해 여러 가지를 제안한다.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 마가렛은 7세의 자신에게서 받은 편지를 받고 당황할 수밖에 없다. 편지의 내용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사소하고, 하찮은 요구사항처럼 보인다.

<디어 미>의 재미는 상상하는 것처럼 편지가 한 통이 아니라는 데 있다. 사소하고 하찮게 여겨졌던 7세의 자신으로부터 전달되는 편지를 어느새 마가렛은 기다리고 있다. 40대에 맞이한 자아 찾기라는 이야기는 다소 생뚱맞아 보일 수도 있지만,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의 시간이 비슷해지는 40대라는 시기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것을 딛고 설 미래를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영화 <디어 미>는 그런 소소한 감정의 기억을 현재에 떠올리고, 그것을 통해 현재를 반성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다. 아주 오래 전에 가지고 있었던 자신이 ‘꿈’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시간을 전해 준다. 중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소피 마르소와 함께 그 꿈과 인생을 반성해 보는 짧은 시간은, 지친 현재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준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영화는 심각한 순간을 폴짝 뛰어넘는 방법을 아는 감독 덕분에 현실에 천착하기보다 오히려 성인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오락영화의 형태가 된다. 애니메이션과 CG를 과감하게 활용한 과거는 일곱 살 마가렛의 발랄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러브 미 이프 유 데어>라는 독특한 영화를 통해 통통 튀는 발랄한 미적 감수성을 보여준 얀 사무엘 감독은 <디어 미>를 통해서도 관객의 시각을 즐겁게 해주는 특유의 재능을 선보인다. 다소 과장된 화면이 낯간지러운 순간도 있고, 예측 가능한 결말 덕분에 다소 지루해질 수 있는 순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친 일상의 끝에 희미하게 찾아온 희망과 꿈을 얘기하는 영화에는 진심을 울리는 어떤 힘이 있다. <디어 미>는 그것을 간과하지 않는다.

오랜 기다림의 끝, 그녀 소피 마르소

<라 붐>

이름만 들어도 첫 사랑처럼 설레는 스타들이 있다. 인터넷도 통신도 핸드폰도 없었던 시절, 머나 먼 이국땅의 소녀는 영화 한 편과 수많은 책받침용 사진으로 한국을 온통 들끓게 했다. 모두들 소피 마르소를 알지만, 정작 <라 붐>이라는 영화를 본 적은 없는 아이들 사이에서 소피 마르소는 또래 스타 군을 형성했던 브룩 쉴즈, 피비 케이츠와 함께 책받침 트로이카를 형성하고 있었다.

오직 사진 한 장에 감탄하고 감상에 빠졌던 그 아날로그적 감수성의 중심에 있었던 소피 마르소를 보고 있자면 풋사랑에 그쳤던 오랜 옛사랑을 만나는 것 같은 아련함과 설렘과 회한이 함께 스쳐간다.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브레이브 하트>

그것이 1980년이었다. 소피 마르소는 청순하고 예쁜 프랑스 인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성숙해진 육체와 파행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속이기 시작했다. 스물네 살 연상인 감독 안드레이 줄랍스키와 동거하며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를 통해 아름다운 육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순간,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여전히 영화 속 소피 마르소는 80년대의 청순하고 예쁜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몸매는 농익어 성숙한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소녀의 얼굴과 여인의 육체를 내세우면서 소피 마르소는 현명하게 성인 연기자가 되었다. 사람들의 농밀한 속물근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을 터득한 것처럼 배우로서 성숙해갔다. 결과적으로 하이틴 스타를 극복하지 못했던 브룩 쉴즈와 피비 케이츠와 달리 소피 마르소는 카트린느 드뉘브와 이자벨 아자니를 이어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 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프랑스 영화는 예술영화라는 영역에 갇? 채, 세계화의 행보에서 점점 뒤쳐진다고 생각한 그녀는 할리우드로 향했다. 오직 소피 마르소라는 이름 때문에 재미없는 유럽 영화를 이어 볼 수밖에 없었던 팬들은 나이 들어가고, 영화는 점점 테크닉에 의지하게 되고 예술영화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유럽 영화 시장도 세계적 영향력을 잃어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피 마르소가 본드 걸이 되는 순간을 목격해야 했고, <브레이브 하트>에서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단역에 머무른 것을 안타까워해야 했다. 프랑스 영화의 세계화를 기다리기 보다는 세계로 진출한 유럽의 배우들이 딱히 서야 할 자리를 찾지 못하는 순간에 소피 마르소도 있었다. 그녀는 할리우드에서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이국적이고 관능적인 이 배우의 매력을 제대로 구현해 줄 만한 감독을 만나는 행운까지는 얻지 못했다.

<유콜잇러브>

<안소니 짐머>

수도 없는 영화가 쏟아지고, 인터넷이 발달하여 세계 어느 나라의 영화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재,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소피 마르소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그녀는 영화감독의 삶도 살았고, 쉼 없이 영화를 찍었지만 대중과의 소통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라붐>의 히트 이후 <라붐 2>를 시작으로 <유콜잇러브>, <고요한 펠리세이드>, <팡팡>, <구름 저편에>, <브레이브하트>, <007 언리미티드>, <벨 파고>, <안나 카레리나>, <혁명가의 연인>, <피델리티>, <샤샤를 위하여>, <달타냥의 딸>, <로스트 앤 파운드>, <넬리>, <안소니 짐머> 등 제법 많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매력이 만개할 만한 작품은 거의 없었다. 얼마 전 명품 화장품의 CF를 통해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공식적으로 <디어 미>는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소피 마르소의 영화이기에 더욱 반갑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디어 미>는 삶의 보람과 의미를 망각한 채, 목적만 가지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어른들을 위한 새콤한 비타민 같은 영화다. 그 여운이 오래가진 않겠지만, 판타지 영화의 매력은 아주 잠시나마 현실을 위로하고 미래를 꿈꾸게 해주는데 있다. 만인의 연인, 만인의 여신이었던 소피 마르소가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아름답고 생기 있다는 사실, 그 현재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또래 사람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 7살의 나를 만난다면 현재의 내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7살의 나를 돌아본다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 반추의 기회를 가져보는 것만으로도 <디어 미>는 충분히 보고 즐길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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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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