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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후회하냐는 질문에 ‘전혀!’

『워치맨』, 악인에게 동정따윈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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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을 길렀고, 경찰에 투신했다가 어떻게 그만두게 되었는지를. 그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하드보일드’한 인간이 되었는지 이런저런 단서들을 던져주는 것이다. 분명히 조 파이크는 폭력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반사회적 이상성격자라던가 폭력에 의존하는 자는 아니다. 그는 자신이 폭력을 선택한 이유와 그 선택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다.

여기 하드보일드의 전형인 남자가 있다. ‘파이크는 절대 웃거나 미소를 띄지도 않는다. 어떠한 감정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악인에게는 무자비하고 냉혹하다. 조 파이크는 오로지 앞으로만 전진하고, 어떤 후회나 망설임도 내비치지 않는다. 차갑고, 단단하고,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로버트 크레이스의 『워치맨』은 조파이크를 주인공으로 하는 첫 번째 이야기이지만, 같은 작가의 『몽키스 레인코트』를 이미 봤다면 그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사립탐정 엘비스 콜의 말이 없고 터프한 친구 조 파이크로서. 엘비스 콜 시리즈에 등장한 조 파이크는 수수께끼가 많은 친구였다. 전직 해병대원이었고, 경찰을 하다가 다시 용병이 되었고 지금은 탐정 일을 하고 있다. 말도 없고, 웃지도 않지만 맡은 일에 대해서만은 완벽하게 마무리한다. 누군가 물어본다.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냐고. 조 파이크의 답은 간단하다. ‘전혀.’

『워치맨』은 유명한 파티걸인 라킨 바클리가 우연히 사건에 휘말리면서 시작된다. 부잣집 망나니 딸이었던 라킨은 중요 범죄의 목격자가 되었고, 킬러들의 습격을 받게 된다. 파이크는 경찰로 첫발을 내딛었을 때 선임이었던 버드 플린의 부탁으로 라킨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는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킬러들의 공격이 끊이지 않자, 파이크는 엘비스의 도움을 받아 독자적으로 행동을 개시한다. 피하고 숨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그들을 찾아내고 공격하는 조 파이크 특유의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조 파이크의 어깨에는 빨간 화살표 문신이 있다. ‘그 의미가 궁금하다고 했죠? 끊임없이 앞으로 움직이면서 스스로를 제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절대 물러서선 안 되고요. 앞으로 묵묵히 전진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하는 일입니다.’

『워치맨』은 조연이었던 조 파이크가 주인공이 된 첫 번째 작품답게, 과거를 궁금해 했던 독자들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을 길렀고, 경찰에 투신했다가 어떻게 그만두게 되었는지를. 그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하드보일드’한 인간이 되었는지 이런저런 단서들을 던져주는 것이다. 분명히 조 파이크는 폭력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반사회적 이상성격자라던가 폭력에 의존하는 자는 아니다. 그는 자신이 폭력을 선택한 이유와 그 선택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다.

조 파이크는 외로운 분노의 의식적 표본입니다. 학대와 폭슷으로 물든 유년기는 파이크에게 정의를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부터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조는 폭력적인 아버지가 준 교훈을 몸에 새겼습니다.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은 압도적인 물리적 반응으로 다룰 것. 파이크의 철학은 바로 그것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압도하든지, 압도당하든지.(로버트 크레이스)

하드보일드의 주인공들이 흔히 ?렇듯이, 조 파이크에게는 자신만의 규칙이 있다. 그는 세상이 요구하는 규칙이나 질서에 동의할 생각이 없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 자신이 해야 할 일만을 철저하게, 프로답게 해치울 뿐이다. ‘파이크는 가치 있는 일에는 희생을 아끼지 않습니다.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기꺼이 몸을 던집니다. 파이크는 우리가 법의 철칙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파이크에게는 엄격한 도덕과 윤리 강령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문법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로버트 크레이스) 그리고 조 파이크가 반드시 지키는 절대원칙이 있다.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약자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싫습니다.’ 조 파이크가 매력적으로 보인다면, 그가 고독한 그리고 최강의 늑대인 동시에 고결하기 때문이다. 많은 하드보일드형 인물들이 그렇겠지만, 조 파이크는 고독한 늑대의 순수 결정체 같은 느낌을 준다.

‘불타는 노을에 검붉게 물든 총잡이의 얼굴, 텅 빈 심장만큼이나 차가운 눈, 한없이 진지하기만 한 입술, 최악의 악몽을 선사하는 방울뱀의 눈빛, 미국의 시골 자동차 극장은 이런 쿨한 영화들을 동시상영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 남자다움의 대명사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더군요. 그 덕분에 조 파이크란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로버트 크레이스)


로버트 크레이스가 직접 말한 것처럼, 조 파이크의 모델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있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무표정한 무법자. 악을 응징하기 위해서 조직의 룰 같은 것은 과감하게 내팽개치는 <더티 해리>의 폭력 경찰. 자신의 안위나 명예 같은 것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는, 쿨한 인간. 하드보일드의 주인공은 대체로 세상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그들이 보기에 세상에는, 진정한 정의와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규칙을 무시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진짜 규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짜 원칙과 정의가 세상에 구현되기를 바란다. 엘비스 콜이 말하듯 조 파이크 역시 ‘이상주의자’인 것이다.

조 파이크는 현실을 탓하지 않는다. 모든 이가 적이라면, 그들 모두와 싸울 수도 있다. 세상이 나를 공격해 온다면, 세상을 몰락시킬 수도 있다. 내가 왜 이렇게 비참한 상황에 놓였는지, 누군가 나를 돌아다봐 주기를 갈구하지 않는다. 이상을 꿈꾸지만, ?코 현실에 타협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파이크의 사고방식이다. ‘쥐고 있는 패가 형편없더라도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때때로, 파이크는 더 나은 삶을 꿈꿨다.’ 세상 사람들은 조 파이크 같은 인물을 볼 때. 흔히 착각을 한다. 그의 쿨함이, 일종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것에 초연한 듯, 오로지 자신의 스타일만을 위해서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조 파이크는 물론 진짜 ‘쿨함’의 본질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조 파이크는 아버지의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폭력을 선택했다. 그것은 스타일이 아니라 생존의 필요조건이었다.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하기 위해서 초연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는 초연해야만 했던 것이다.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는 모두 명상을 하면서 휴식을 취한다. 모든 것에 무심해 보이는 조 파이크에게도, 모든 것이 농담처럼 보이는 엘비스 콜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조 파이크의 내면에는 일종의 ‘초록 세상’이 있다. 잔인한 폭력과 살육이 존재하는 일상을 살아가는 조 파이크의 내면에 존재하는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원시의 세상. 그것이 파이크의 근본적 천성’이다. 조 파이크는 이 세상의 본질이, 폭력과 살육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초연해야만 한다. 초연하게, 쿨하게 폭력과 살육의 시간을 견디고 이겨내야만 그가 원하는 진짜 평화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몽키스 레인코트』를 읽었을 때는, 농담과 수작으로 일관하는 엘비스의 절친이 조 파이크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엘비스의 내면이 무엇인지 어슴푸레 알게 되었을 때에도, 조 파이크는 그저 대조적인 콤비를 만들기 위해서 설정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워치맨』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조 파이크와 엘비스 콜은 단지 ‘버디 무비’를 만들기 위한 상반된 캐릭터가 아니라, 통일된 내면을 가진 일종의 이란성 쌍둥이라는 것을. 다만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하나는 농담을, 하나는 쿨함을 선택했을 뿐이다. 아니 선택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잔인한 세상에 그대로 침윤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드보일드의 주인공을 한마디로 한다면 ‘살아남은 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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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워치맨

<로버트 크레이스> 저/<최필원> 역11,52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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