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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心 흔드는 코린 베일리 래

‘진짜 음악은 이런 것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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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확신은 빗나가는 일 없이 반도의 심장에 명중했다. 두 차례의 한국 방문은 낯선 영국 아티스트를 여신으로 부상시켰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 땅에 하나의 왕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

“외국 투어를 하는 이유는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찾아줄 것인가에 대한 어느 정도 확신이 들어서 일 것입니다.”

- 코린 베일리 래 (Corinne Bailey Rae)


그의 확신은 빗나가는 일 없이 반도의 심장에 명중했다. 두 차례의 한국 방문은 낯선 영국 아티스트를 여신으로 부상시켰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 땅에 하나의 왕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 레이디 가가(Lady GaGa)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가 아니라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세계의 디바들을 한 경연장에 올려 순위를 매기는 불상사는 피하길 바란다. 광대한 음악 씬에 스타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 오히려 더 비극 아닌가.



충격적인 퍼포먼스나 3단 고음이 없어도 코린 베일리 래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즉 표면적으로 여기에는 ‘아이유 효과’를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지상파의 연예 프로그램마저 코린 베일리 래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기현상이 나타났을까. 물론 인터뷰의 95% 이상은 아이유에 초점이 맞춰졌다.

아이유의 롤 모델로서 갑작스레 검색어 순위에 오르기 전부터 그와 우리의 사이는 멀지 않았다. 「Like a star」가 미니홈피로 흘러나올 시점부터 드라마 < 연애시대 >, < 소울메이트 >를 타고 「Put your records on」, 「Till it happens to you」는 집밖으로 흘러나왔다.

명징한 어쿠스틱 선율과 섬세하고 여성적인 울림은 20-30대의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불꽃처럼 사라지는 아이돌 음악에 식상함을, 거친 록 사운드에 버거움을 느끼던 그녀들은 입맛에 맞는 깔끔한 퓨전 식에 모처럼의 마음속 울림을 경험했다. 고리타분하게 하나의 장르를 고집하지 않는 블루스, 록, 재즈, 팝의 감각적인 결합은 이색적인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너무 튀는 것은 촌스럽고, 평범한 것은 자신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개성이 결핍되어 있다. 규격화된 스타일을 차별화하는 1%의 세련됨. 그것이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시크(chic)’함이다. 영민한 스마트 세대는 ‘반짝거린다고 해서 모두 금은 아니다’는 정보쯤은 스캔하고 있다. 10대가 열렬히 ‘유행’에 따랐다면 20대와 30대는 꼼꼼히 품질 보증서를 비교해가며 ‘진품’을 찾으려 애쓴다.

음악도 이런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코린 베일리 래의 음악은 트렌드나 공산품과는 거리가 멀다. 평단과 대중에게 양쪽에서 검증받은 아티스트다. 그의 처녀작은 2006년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로 기록되며 2007년 그래미 시상식에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올해의 신인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한마디로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든 웰메이드 작품인 것이다.

새로운 스타에 대한 환희가 최고조에 이르던 2008년 거대한 불행이 덮친다. 남편 제이슨 래(Jason Rae)가 술김에 친구의 마약중독 치료제를 복용했다가 목숨을 잃게 된다.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의 쓰나미가 그의 삶을 휩쓸며 음악을 망가뜨렸다. 남편의 죽음이후 그에게 남은 것은 황량하고, 텅 빈 ‘공허’였다.

The sea / The majestic sea / Breaks everything / Crushes everything / Cleans everything / Takes everything From me.
(바다, 장엄한 바다, 모든 것은 부러뜨리고,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 모든 것을 부수고, 나에게서 모든 것을 가져가 버린다.) - ‘The sea’ 중에서




2010년에 발표한 앨범 <The Sea>는 짐작하듯이 죽음과 상실에 대한 탄식이다. 사랑에 들뜬 생기발랄함은 한풀 꺾였지만 짙은 절절함이 자리를 대신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처럼 음향 속에서 정처 없이 나부끼는 모습은 딱하지만 황홀하다. 이 앨범이 나오고부터, 그 비참정서가 묘한 동감(同感)을 자극하면서 이 땅의 여심은 더욱더 코린 베일리 래에 대한 애정의 증폭을 단행했다.

음악에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상처’는 진부한 클리셰지만 현실에서는 생활을 삼켜버리는 총체적 난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비참한 개인사는 음악을 더 집중하게 하는 마력을 지닌다. 사람들은 아티스트의 불행에 천착하며 상처를 엿본다. 타인의 아픔을 통해서 자신의 생채기를 돌아보는 용기와 묘한 위안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새 그는 보컬스타일도, 삶도 관능적으로 고독을 내뱉어내던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를 닮아가고 있다. 어느 소설가의 말대로 예술은 불행의 그림자를 먹고 자라는 괴물일지도 모르겠다. 무심한 듯 치열한 생(生)소리 속에서 ‘진짜 음악은 이런 것이었지’ 하는 안도감과 행복감마저 맛보게 하는 것이다.

글 / 김반야(10_ban@naver.com)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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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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