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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마네의 그림 「말을 탄 여인」

쇠약해진 마네가 살롱전 출품을 위해 그린 그림 - 1882년 마네의 건강은 서서히 나빠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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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는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그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건재함을 과시했지만, 심신은 눈에 띄게 지쳐가고 있었다.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이택광 저 | 아트북스
유럽 문화의 중심지이며 예술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는 대표 명소인 파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며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공간이 되어 주었던 파리. 인상파는 이러한 파리의 변화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 화가들을 칭하는 말이다. 지금 파리의 모습은 19세기 후반 오스망 남작의 지휘 아래에서 추진된 도시계획으로 완성 되었는데 이 때 인상파 화가들은 이 변화의 순간순간을 마치 스냅사진처럼 생생하게 그림으로 담아냈다.
1882년 마네의 건강은 서서히 나빠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그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건재함을 과시했지만, 심신은 눈에 띄게 지쳐가고 있었다. 그해 여름까지 마네는 주로 장미나 과일 같은 것을 식탁 위에 놓고 작은 정물화들을 그렸다. 마네의 인물화가 관객에게 경악을 선사했다면, 정물화는 생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례적이었다.

에두아르 마네, 「식탁보에 놓인 장미 두 송이」,
캔버스에 유채, 19.3?24.2cm, 1883, 개인 소장

「식탁보 위에 놓인 장미 두 송이」라는 그림을 보자. 정말 얼마나 생생하게 장미의 느낌을 전해주는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하얀 식탁보 위에 흩뿌려져 있는 꽃잎을 보고 있노라면 금방이라도 장미 향기가 코끝을 스칠 것만 같다.

에두아르 마네, 「딸기」,
캔버스에 유채, 20?25cm, 1882,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딸기」는 또 어떤가. 싱싱한 딸기가 바구니에 담겨 있다. 하단에 있는 익숙한 마네의 서명이 없다면, 마네가 이런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앞서 그린 그림들은 전혀 달랐다. 역시 마네다운 그림이 있는데「말을 탄 여인」이 바로 그 작품이다. 이 그림은 마네에게 엄청난 좌절감을 안겨줬다. 살롱에 출품하기 위해 마네는 심혈을 기울였지만, 뜻대로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마네의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1882년 날씨는 늦여름까지 연일 비바람을 동반해서 우중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런 까닭에 마네는 야외에 나가서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고 그래서 나온 작품들이 정물화였던 셈이다.

에두아르 마네, 「말을 탄 여인」,
캔버스에 유채, 88?116cm, 1875, 상파울로 미술관, 상파울로

바깥은 여름인데도 을씨년스러웠고, 냉기가 약해진 그의 어깨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평소에 호기심이 많았던 마네는 친구들에게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해달라고 조르곤 했는데, 그때도 여전히 이 버릇은 남아 있었다. 9월로 접어들자 마네는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9월 30일에 그는 유서를 작성했다. 아내 쉬잔이 모든 유산을 상속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단 쉬잔이 세상을 떠날 때 모든 재산을 아들인 레옹에게 양도한다는 조건이었다. 프랑스 상속법에 따른 조치였다.

레옹은 공식적으로 마네의 아들이 아니라, 대자였다. 레옹이 마네의 아들인지, 아니면 마네의 아버지가 낳은 그의 동생인지는 아직도 논란에 쌓여 있다. 그러나 유서에 레옹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남기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당시 프랑스 법에 따라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레옹은 확실히 마네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여하튼, 마네는 살롱전 출품을 위해 다시 「말을 탄 여인」에 매달렸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작업에 매달리다가 그는 지쳐서 그만 소파에 누워버렸다. 그림을 그리다가 제대로 풀리지 않자, 침대에 드러누워서 씨근거리고 있는 마네의 모습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하지만 마네 본인에게 이런 상황은 고문과 같은 것이었다. 친구인 앙토냉 프루스트가 슬럼프에 빠진 마네를 찾아왔다. 마네가 프루스트의 초상화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상화 때문에 찾아온 친구에게 마네는 십자가 처형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라는 상징에 매료당한 듯한 마네는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말을 하긴 했지만 앞뒤가 전혀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마침내 마네는 친구에게 죽음을 걱정하는 고백을 털어놓았다. 특히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마네는 많은 걱정을 했다. 그는 친구에게 자신의 그림들을 미술관으로 보내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이는 오늘날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가 미안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의 유언은 실행되지 못했다.

죽음이 임박해오자 마네는 과거 비평가들의 조롱 때문에 받은 상처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누구도 욕설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를 모른다”고 마네는 개탄했다. 말이 만들어내는 폭력이 한 화가에게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겨놓은 것이다. 비평가들을 바보들이라고 되받아치긴 했지만, 만년의 마네는 패기만만했던 젊은 마네가 아니었다. 「말을 탄 여인」은 이런 마네의 심리 상태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담백하고 단순한 이미지가 기우뚱한 균형감과 어우러져서 죽음에 임박한 마네의 심정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죽음의 그림자가 느껴진다고 할까.

마네답지 않게 이 그림은 무언가 기운 없는 모습이지만, 여전히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의 실험 정신을 느낄 수가 있다. 검은색 옷을 입은 여인의 모습이 분할하고 있는 화면의 구도는 마네가 마지막까지도 기성의 습속과 걱실거리는 존재이고자 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마네는 점점 이젤 앞에서 작업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쇠약해지기 시작했고 매일 화실로 출근을 하긴 했지만, 아예 그림을 그리지도 못하고 소파에 하루 종일 누워 지내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날이 갈수록 그의 건강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인상파를 뭉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면서도 인상파에 가담하지 않았던 고집스러운 한 화가가 세상을 막 떠나려는 중이었다. 이렇게「말을 탄 여인」이라는 그림은 마네의 마지막을 엿볼 수 있는 슬픈 사연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택광
경희대학교에 영미문화 전공 교수로 재직 중
경향신문에 ‘이택광의 왜’ 연재 중
네이버 캐스트 '오늘의 미술'에 '인상파 아틀리에'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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