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도 ‘재연’될 수 있다면 어떨까?
최근 종영한 드라마 <싸인>에 푹 빠져 지냈다. ‘시가앓이’ 제대로 한 이후에 ‘더 이상의 드라마 폐인은 없어’라고 말한 지 한 주가 채 되지 않아, 나는 ‘싸인앓이’를 시작했다. 수?목요일 드라마는 챙겨보기 힘들다. 일요일 낮 재방송을 보면서, 겁 많은 내가 무서움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다음 주에도 <싸인>이 한다는 즐거움에 또 한 시절을 보냈다. 마지막 방송을 보며 혼자 훌쩍 훌쩍. 충격적인 결말을 되새기며, 일주일은 애도기간을 보냈다. 이제는 <싸인>을 본 시간들이, 내가 지나온 시간처럼 아득히 느껴진다. 매 드라마를 볼 때마다 겪는 통과의례다. (요즘은 <로열패밀리>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 드라마에도 빠지게 되려나.)
출처_ SBS |
충격적인 결말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드라마 <싸인> | |
<싸인>은 국과수에서 부검을 하는 법의학자가 사건 속에 은폐된 진실을 밝혀내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리얼한 부검 장면이나 교묘한 살인트릭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공공연히 범죄가 묵인되고 은폐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난 날 뉴스에서 마주친 각종 범죄 사건들을 모방한 드라마 에피소드는 매회 긴장 백배, 몰입 백배. 하나의 사건을 두고 얽혀있는 정치, 경제적 권력 담합에 섬뜩함까지 백배. 그야말로 ‘리얼리티 돋네!’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서윤형 연예인 의문사’가 1회에 벌어지고, 이후에 개별 사건들이 벌어지고 해결되는 가운데 주인공 윤지훈은 끝까지 이 의문사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도무지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범인을 잡기 위한 그의 사투가 펼쳐진다. 포기를 모르는 윤지훈은 결국 그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만약 이 사건을 뉴스에서 봤다면, 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이 잡히는 현장만을 목도했을 거다. 뉴스가 지나가는 순간 찰나의 감정만 남기고 잊었겠지만, 드라마를 통해 내막을 아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함께 분노하고 함께 슬퍼했다.
사실 나와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 모든 사건들이 뉴스다. 어떤 것은 찰나에 지나가고, 어떤 것은 깊은 자국을 남겨 몇 번이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삶은 드라마가 아니므로, 우리는 대부분의 사건을 표상만 보고 지나치기 일쑤다. 내 일이 아닌 이상, 진상을 겪지 않은 이상 우리는 누군가의 체험을 완전히 공유할 수 없다. 내 삶의 진상을 파악하는 일만 해도 너무 바쁘니까 말이다. 드라마가 끝나고, 나는 만약 나의 삶에도 ‘재연’이 가능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했다. 며칠 밤 쩔쩔매게 했던 숱한 오해들, 전할 수 없는 진심 때문에 잠 못 이루던 밤의 상념들이 사라졌을까? 지금보다 더 나았을까?
그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출처_ SBS |
“그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걸까?” 남겨진 사람들은 그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 |
이제껏 나를 가장 매료시켰던 질문은 “그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없었던 현장에서 벌어진 모든 일이 궁금했다. ‘내가 사랑하는 저 사람은 도대체 과거에 어떤 일을 겪어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잘 먹고 잘 살게 된 것일까?’(여전한 궁극의 궁금증) ‘나에게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풀어낸 걸까?’ ‘이렇게 좋은 드라마를 저 작가는 대체 어떻게 써 낸 것일까?’ 이런 질문들을 머리를 싸매고 했더랬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만큼 ‘너는 어떻게 지금의 네가 되었는가?’하는 질문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 아닌 남들이 어떤 세계에서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책을 보고 드라마에 빠지고 영화에 많은 시간을 투신했다.
“그때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 질문은 사람을 견딜 수 없게 한다. 어떤 방법으로도 시간을 돌려서 지나간 일을 그대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번 미궁에 빠진 사건에 관한 소식이 나올 때마다 질문은 반복된다. 이 질문을 내 가까운 사람에게 던지게 될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때만큼 견딜 수 없는 순간이 또 있을까? 대부분 드라마와 소설에 우리가 빠져들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 해서 사건을 2인칭으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과거에 숨겨져 있는 일이 채 밝혀지기도 전에 드라마가 끝나 버릴 때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잃어버린 것,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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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더 이상 지구상에 없을 때…… | |
김연수의 소설
「다시 한 달을 넘어 설산을 지나면」의 주인공도 그런 질문에 사로 잡혀 괴로워한다. 주인공의 여자친구는 운동권으로 투쟁을 하다 결국 목숨을 끊는데, 그때 한 장의 유서를 남긴다.
“아빠, 엄마 죄송합니다. 후회는 없어” 연인이었던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등장하지 않는다.
도대체 그녀는 어쩌다 애인인 자신에게는 한마디도 없이 목숨을 버렸을까? ‘죄송합니다’와 ‘후회는 없어’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생략된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후회 없다는 것일까? 결코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 앞에 놓일 때, 나는 세계의 끝에 혼자 놓인 기분이 아마도 이런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에서도 이 질문은 유효하다. 어느 날 갑자기 소년의 영웅이었던 아버지가 9?11 테러로 목숨을 잃는다. 소년은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아버지가 더 이상 귀가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납득하기 힘들다.
어느 날 아버지의 방에서 ‘Black’이라고 적힌 낯선 메모를 발견한다. 블랙은 무엇일까? 소년은 그것이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긴 암호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문자를 이해하게 되면, 아버지의 죽음을 납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소년은 전화번호부를 뒤져 ‘Black’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다니기 시작한다.
하나의 질문이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드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나는 이 모든 사람들의 ‘견딜 수 없는 질문’들을 동시에 떠올려본다. 어둠의 시간을 향해 아무리 질문을 던져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답이, 혹은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지구상에 없는 건 아닐까? 그런 대답들은 우주에 있을 것이므로, 지구에서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많아질수록 우주는 더욱 어두워지지 않을까. 내가 잃어버린 물건, 사람, 기억들이 어두운 우주 한 켠에 모여 있는 상상을 해 본다. 무엇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면서 그렇게 잃어버린 것들,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질문이 머무는 곳에 이야기는 계속 된다
출처_ SBS |
때로는 진실을 향한 질문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 |
결국 대부분의 이야기는 재연 서사를 따를 수 밖에 없다. 이야기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추 체험하는 데에 매력이 있으므로. 때문에 영화는 갈수록 자극의 강도가 높아지고, 드라마는 전문직종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세계 보여주기에 몰두해있고, 소설은 현실과 환상을 한 문장으로 넘나든다.
그러므로 여전히 상상한다.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싸인>이 그려낸 수많은 모방 사건들. 우리가 뉴스로만 경험했던 그날, 그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의문사로 잊혀진 수많은 사건들,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장자연 씨가 유서를 남기고 죽기까지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리 아빠, 엄마와 다름없이 평범한 가장이었던 쌍용 자동차 사람들이 어째서 가족을 남겨두고 죽음까지 선택하게 된 것일까?
일본 참사로 소중한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떠올리면 안타까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물론 정전과 배고픔도 큰 어려움이지만, 그보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어디에 있을지, 어떤 일을 겪었을지 가슴 곳곳을 긁어댈 지옥 같은 질문들이 더욱 고통스럽지 않을까. 그 참담한 슬픔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