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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여성 혐오주의자 드가, 누드모델 집밖으로 내쫓기도…

고집스런 완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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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화가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를 꼽으라면 드가를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1855년에 그려진 젊은 시절 드가의 자화상을 보자. 이 자화상을 그릴 당시만 해도 드가는 살롱에 데뷔할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이택광 저 | 아트북스
유럽 문화의 중심지이며 예술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는 대표 명소인 파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며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공간이 되어 주었던 파리. 인상파는 이러한 파리의 변화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 화가들을 칭하는 말이다. 지금 파리의 모습은 19세기 후반 오스망 남작의 지휘 아래에서 추진된 도시계획으로 완성 되었는데 이 때 인상파 화가들은 이 변화의 순간순간을 마치 스냅사진처럼 생생하게 그림으로 담아냈다.
에드가르 드가,「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81.3?64.5cm, 1855, 오르세 미술관, 파리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를 꼽으라면 드가를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1855년에 그려진 젊은 시절 드가의 자화상을 보자. 이 자화상을 그릴 당시만 해도 드가는 살롱에 데뷔할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네를 만나기 전에 그린 그림이라고 하지만, 어딘가 드가다운 고집스러움이 배어나는 걸 느낄 수 있다.

이 성마르고 잘생긴 청년은 예술에서 구원을 찾았을 뿐, 다른 그 무엇에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마네나 모네와 달리 드가는 결혼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노골적인 여성혐오주의자였고, “여자의 수다를 들어주느니, 차라리 울어대는 양 떼들과 함께 있는 게 낫다”고 단언하는 위인이었다. 한마디로 밥맛이었다.

모든 여인에게 친절했던 마네의 극단에 드가가 서 있었다. 어떤 여성 모델이 자신을 그린 드가의 그림을 보고 코가 닮지 않았다고 불평을 하자 드가는 모델을 옷도 입히지 않은 채 문밖으로 내쫓아버렸다고 한다. 그에게 여성은 살과 뼈, 그리고 근육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태도에서 유추해 드가를 천하의 인간 말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드가의 이러한 생각은 당시에 흔했던 과학에 대한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은 남성이고 자연은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상상력이 19세기를 지배했었는데, 드가는 그 당시로 본다면 상식에 가까웠던 생각을 생활태도로 체득하고 있었던 셈이다.

루이스 바리아,「과학 앞에서 옷을 벗는 자연」, 대리석, 1899, 오르세 미술관, 파리

바리아가 만든「과학 앞에서 옷을 벗는 자연」이라는 조각상을 보면 이 말의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드가는 자신의 그림에서 우연한 것은 없다고 말했는데, 이런 발언이야말로 드가의 여성혐오가 어떤 의미를 숨기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드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음악을 작곡하듯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

이런 점에서 유추해봤을 때, 그의 여성혐오는 자신의 그림에 대한 완벽주의때문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심지어 드가는 친구들에게 “도대체 마누라가 무슨 소용이지? 아침에 부스스한 모습으로 깨어서 밤새 작업한 내 그림을 보고 ‘정말 잘 그렸네요!’라는 입에 발린 소리나 하는 것 말고 달리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하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정말 이 정도면 드가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인상파 화가들도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드가는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에도 쉴 새 없이 구상하는 그림에 대한 메모를 남겼다. 그는 색채에 대한 생각까지도 꼼꼼하게 기록했다. 드가는 즉흥성이나 감정의 분출 같은 것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에게 모든 그림은 과학적 관찰의 결과였고 인식의 산물이었다. 따라서 드가는 쓸데없이 모여서 예술에 대해 헛소리나 늘어놓고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해대는 사교모임을 경멸했다. 그에게 예술은 끊임없는 노력의 결실이었지, 어떤 천재적 영감의 표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드가의 여성혐오는 단순한 개인의 취향 문제라기보다, 일종의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까지도 유럽에서 여성은 고상한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애처로운 존재였다. ‘레이디 퍼스트’라는 말이 그렇게 여성에게 예의 바른 말은 아닌 것이다. 그만큼 여성이 능력 면에서 모자라고 약하니 보호해줘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서양문화에서 약자를 돌보는 게 미덕에 속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인상파 화가들이 드가처럼 모두 여성혐오증을 드러낸 건 아니다. 마네가 은근히 여성 화가들을 일컬어 “모사는 잘하지만 독창성이 없다”고 평했지만, 그렇다고 인상파 화가들이 여성을 싫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인상파 화가들만큼 여성에 호의적이었던 예술가들도 없었을 것이다. 인상파는 드물게 베르트 모리조나 메리 커샛 같은 여성화가들도 참가했던 화파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그러나 아무리 드가의 여성혐오가 당시 시대상을 체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역사적 과거라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떡밥’은 항상 우리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는 법이다. 드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여성혐오를 애써 가족사와 관련해서 바라보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들에게 드가는‘불행한 가족사가 불행한 천재를 낳는다’는 고전적 믿음을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좋은 증거일 것이다.

드가의 아버지는 유명한 이탈리아계 은행가였고, 어머니는 그보다 한참 어린 아름다운 크레올 여인이었다. 크레올은 유럽계와 다른 인종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을 뜻하는데, 드가의 어머니는 이국적이고 뇌쇄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다. 이 정도에 그쳤다면 별스러울 것도 없겠지만, 드가의 어머니는 남편의 남동생과 깊은 내연 관계를 맺고 있었다. 드가의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도 자신의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고 묵인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드가의 어머니는 서른두 살의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고, 그 여파로 아버지는 거의 폐인으로 전락해버린다. 이때 드가의 나이 열세 살이었다.

에드가르 드가, 「목욕 후에 몸을 닦는 여인」, 파스텔, 68?58cm, 1899~1900, 코톨드 미술관, 런던

평생토록 여성용 향수를 싫어하고 꽃무늬 장식이라면 질색을 했던 드가의 취향을 과연 이런 기구하다면 기구하다고 할 수 있는 가족사와 관련지어서 생각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드가가 법률 공부를 그만두고 화가의 길로 뛰어든 게 너무 사소한 일처럼 보인다. 드가가 출세의 지름길을 포기하고 화가가 되고 싶다는 뜻을 밝혔을 때, 그의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었다고 한다. 1854년, 드가가 스무 살헭 되던 해, 그는 법률가의 길을 포기하고 그토록 바라던 화가 수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9년 뒤에 루브르에서 거장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그림 공부에 열중하던 드가는 우연히 마네를 만난다. 드가는 자신의 그림을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역사는 가끔 우연의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택광
경희대학교에 영미문화 전공 교수로 재직 중
경향신문에 ‘이택광의 왜’ 연재 중
네이버 캐스트 '오늘의 미술'에 '인상파 아틀리에'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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