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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이렇게 노래하는 여가수가 있다!” - 한영애 2집 <바라본다> (1999)

한영애가 등장하기 전에는 ‘예쁘고 여성스러운’ 목소리가 여성 보컬의 상징으로 기억되곤 했죠. 하지만 강성의 보컬과 특유의 음색으로 승부수를 띄운 ‘한영애’의 등장은 모두에게 놀라운 충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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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애가 등장하기 전에는 ‘예쁘고 여성스러운’ 목소리가 여성 보컬의 상징으로 기억되곤 했죠. 하지만 강성의 보컬과 특유의 음색으로 승부수를 띄운 ‘한영애’의 등장은 모두에게 놀라운 충격이었습니다. 타이틀 곡 「누구 없소?」는 바로 그를 알린 명곡이죠. 언더그라운드의 순수성을 지키면서 대중적 성공까지 쾌척한 한영애의 2집입니다.

한영애 2집 <바라본다> (1999)

60년대 말 소울을 불렀던 김추자, 펄 시스터스, 김정미 등의 예외가 있긴 하지만 가요 역사에 있어서 여가수는 스탠더드 계열이 말해주듯 언제나 고음을 아름답게 구사하거나 아니면 포크의 낭랑한 목소리의 소유자들 판이었다. 한마디로 ‘예쁜 목소리’여야 했다.

한영애는 그러한 미성(美聲)의 관습을 거부하고 여가수도 거칠고 파워 넘치는 보컬을 질러댈 수 있음을 일반에게 알린 인물이었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1988년 가을, 음악 팬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곡 「누구 없소?」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어둠은 늘 그렇게 벌써 깔려있어/ 창문을 두드리는 달빛에 대답하듯/ 검어진 골목길에 그냥 한번 불러 봤어/ 날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 모두/ 오늘밤도 편안히들 주무시고 계시는지/ 밤이 너무 긴 것 같은 생각에/ 아침을 보려 아침을 보려하네/ 나와 같이 누구 아침을 볼 사람 거기 없소?/ 누군가 깨었다면 내게 대답해주…

매끄러운 곡 전개 속에서도 힘으로 솟구친 그 주인공의 보컬은 너무도 호방하고 끈끈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전의 여가수에게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보컬의 신세계’였다. 윤명운이 작곡한 「누구 없소?」는 이전 85년 솔로 데뷔작 「여울목」으로 마니아 사이에서나 통하던 한영애의 존재를 일약 안방의 이름으로 밀어 올리는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다.

나중 본인의 고백대로 ‘트로트처럼 부르려고 했던’ 것이 대중에게 친숙함을 안겨주면서 단숨에 대중적 애청, 애창 레퍼토리가 된 것이다. 하지만 팬들은, 특히 숨 막히던 80년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한영애 트레이드마크인 호령은 물론, 실존에 대한 회의를 담은 메시지에도 공감했다. 그 때 사람들은 노랫말처럼 ‘아침’을 보고 싶어 했다. 이 곡에 힙 입어 앨범은 70만 장 이상이나 팔렸다. 들국화에 이은 동아기획이 또 한 번 기록한 블록버스트였다.


음반을 들어뮺 사람들은 「누구 없소?」보다 훨씬 강도가 센 노래들이 버티고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감탄했다. 한영애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걸작 「코뿔소」는 남성 못지않은 보컬 에너지로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를 압도했으며 「루씰」은 마치 무언가가 몸에 달라붙는 듯 한 끈적끈적한 접착력을 과시했다.

한영애의 전매특허는 블루스였지만 이 앨범에 와서는 록의 숨결을 능란하게 소화하면서 포크 블루스를 넘어 독창적인 ‘록 블루스’를 개척한다. 그것을 입증한 곡이 김수철헭 만들어준 「바라본다」였다. 이 곡에서 후반부의 몰아치는 샤우트는 당대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짜릿한 전율을 부른다.

이전 그의 이름을 단 85년의 처녀작은 「여울목」 「완행열차」「건널 수 없는 강」 등을 남기며 새로운 여자 뮤지션 상을 제시했지만 거기에 한영애의 지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가 한영애라는 스타일을 찾고 자신의 음악세계를 온전히 구축한 것은 바로 이 두 번째 앨범에 이르러서였다. 이른바 ‘한영애 음악 정체성’의 축조였다. 본인도 “1집은 내 생각이 10%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은 앨범이지만 2집은 100% 내 음악”이라고 말하고 있다.

음악적 완성도와 함께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은 그만큼 이 앨범이 완연한 ‘대중음악 앨범’이었음을 말해준다. 전인권, 김현식, 박주연 등 당대 ‘언더그라운드’ 대표선수들을 코러스로 참여시키는, 이를테면 ‘언더그라운드 순수성’을 지키면서 얻은 것이라서 더욱 값진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 앨범이 히트하면서 음악 팬들 입에는 언더그라운드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마치 일상어처럼 회자되기 시작했다.

프로듀서 송홍섭은 김수철의 「바라본다」를 비롯해, 이정선의 「여인 #3」, 이영재의 「호호호」, 한돌의 「갈증」, 엄인호의 「루씰」, 이승희의 「코뿔소」등 여러 작곡가들의 작품을 통일된 하나로 묶어내는 솜씨를 발휘했다. 아무리 작곡가가 달라도 보컬이 견고하게 중심을 잡으면 앨범은 얼마든지 하나의 색깔로 빚어낼 수 있음을 시범한 것이다.

세션에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이 앨범으로부터 명 기타 세션 맨으로 이름을 높인 기타 박청귀(아라이)를 비롯한 훌륭한 연주는 우리도 외국에 버금가는 사운드의 앨범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에도 파워 열창의 여가수가 있다는 자긍심을 전해준 음반이다. 지금도 한영애처럼 노래하는 여가수는 없다.

글 / 임진모(jjinmoo@izm.co.kr)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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