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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로 잡았던 여인과 사랑에 빠진 남자

『타운』, 범죄의 사슬을 끊어버리려는 한 남자의 비극을 그린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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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의 더그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보스톤의 찰스타운 지역에서 태어난 더그는 어린 시절부터 범죄와 폭력의 세계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무장강도 전과자였고 어머니는 마약중독이었다. 친구들의 부모도 비슷했다. 어른이 된 더그는 자연스럽게 부모와 친구들이 가는 길을 따랐다. 부모와 선조들이 살아온 환경이 그랬고, 더그는 쉽게 과거가 보여준 길로 접어들었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과거 한 두 개쯤은 있다. 아예 모든 것을 감춰버리기 위해, 다른 신분을 얻는 경우도 있다. 매년 사라지는 수많은 실종자들 중에서, 1/3 정도는 자의적인 실종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과거라는 것이, 내가 잊고 싶다고, 버리고 싶다고 그냥 사라져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지워버리려고 할수록 더 끈질기게 달라붙는 것이 과거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버리고 성불하려 했더니 내가 버린 모든 것이 아귀가 되어 달라붙는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아마도 인간은 결코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벗어나거나 버리는 것보다는, 끌어안고 극복하는 것이 최선이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과거이고, 내가 했던 수많은 일들이 지금의 나란 존재의 모든 것이니까.

『타운』의 더그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보스톤의 찰스타운 지역에서 태어난 더그는 어린 시절부터 범죄와 폭력의 세계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무장강도 전과자였고 어머니는 마약중독이었다. 친구들의 부모도 비슷했다. 어른이 된 더그는 자연스럽게 부모와 친구들이 가는 길을 따랐다. 부모와 선조들이 살아온 환경이 그랬고, 더그는 쉽게 과거가 보여준 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제 더그는 벗어나고 싶어 한다. 술을 끊은 것처럼 범죄도 끊고, 피로 얽매인 과거를 말끔하게 지우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

범죄의 사슬을 끊어버리려는 한 남자의 비극을 그린 스릴러 『타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배경이 되는 보스턴의 찰스타운이란 지역이 어떤 곳인지 알아야 한다.

토박이라고 자칭한 한 주민은 익명을 조건으로 찰스타운에서의 삶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난 이곳 출신이라는 사실엔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비록 이 동네가 내 인생을 완전히 망쳐놓았지만, 그 자부심엔 변함이 없습니다.’ -<보스톤 글로브>1995년 3월 19일

찰스타운은 미국 전역에서 은행 강도와 현금수송차량 탈취가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 또한 범죄가 일종의 가업처럼 여겨지고, 경찰과 정부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도 노골적이다.

찰스타운에서 성장한 더그와 친구들은 함께 무장 강도가 되었고, 그들의 선택에 대해 어떤 의심도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더그가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요동치기 시작한다. 자신이 털었던 은행에서 인질로 잡았던 여인을, 하필이면 사랑하게 된 것이다. 범죄에서 손을 씻고 싶었던 마음이 있긴 했지만, 클레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다지 확고하지 않았다. 그저 먼, 비현실적인 욕망이었을 따름이다.

“친구는 선택할 수 있어요. 그렇죠? 하지만 가족도 그런가요? 내 친구들…그 녀석들은 내 가족입니다. 난 녀석들과 떨어질 수 없고, 녀석들도 나랑 떨어질 수 없어요…….하지만 그 녀석들 덕분에 내가 술을 멀리할 수 있었어요. 그게 바로 내 방식입니다. 그 친구들을 보면서 계속 다짐하거든요. 녀석들이 바보짓 하는 걸 보면서 난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합니다. 효과가 기가 막혀요.”

그 말을 들은, 금주모임에서 만난 프랭크는 더그에게 말한다.

“어떻게 더그 M.이 남들과 다르다고 확신할 수 있지? … 자넨 친구들과 다르지 않아. 그게 바로 자네야.”

찰스타운에서 더그와 친구들은 완벽한 존재였다. 누구도 그들을 위협할 수 없고, 그들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 젬은 찰스타운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원제가 말하는 것처럼, 도둑들의 왕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타운』의 배경인 1996년은 한창 부동산 개발이 이루어지던 시대다. 찰스타운 토박이들은 여전히 과거의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여피들이 밀려들고 부동산 가격이 치솟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클레어 키시는 더그와 친구들이 벌인 강도사건의 목격자인 동시에 찰스타운의 이방인이다. 그들을 종신형에 처하게 할 위험요소인 동시에, 근본부터 이질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니 더그가 클레어 키시를 사랑하게 된 것은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만남과도 같다.

“하지만 잘 봐. 우리의 브라운스톤과 3층집들이 저 외부인들에게 속속 넘어가고 있잖아. 그들이 집값을 부풀려놓은 탓에 우린 부모님이 사시던 집에 얼씬도 못해. 볼보를 몰고, 아시아 요리를 즐기는 여피족들. 성당을 멸시할 만큼 돈이 많은 놈들이야. 그들은 영국군이 실패한 일을 아주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어. 우리 땅에서 우리를 쫓아내는 일 말이야.”

켄지 & 제나로 시리즈와 『미스틱 리버』의 데니스 루헤인, 『칼날은 스스로를 상처입힌다』의 마커스 세이키와 함께 척 호건은 보스톤을 무대로 하는 대표적인 범죄소설 작가이다. 그 중에서도 『타운』은 찰스타운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깊숙하게 파고 들어간다. 보스톤의 찰스타운이란 공간을 통해서, 더그와 젬이 누구이며 그들이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를 끈질기게 탐구한다. 벗어나고 싶어하는 더그와 지배자가 되려는 젬은 마치 쌍둥이 같은 존재이면서도 양 극단을 대표한다.


더그는 이성적인 판단으로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욕망을 억제하려 한다. 반면 젬은 야수와도 같은 인간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환경을 철저하게 활용하고 이용하는 것이 젬의 방법이다.

가족이 아닌 이들을 폭력으로 굴복시키고, 자신들의 성채에서 모든 것을 누리는 것. 젬이 악인이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지만, 묘하게도 소설을 읽다 보면 더그보다도 젬의 왕성한 생명력이 더욱 더 두드러진다.

오로지 생존에 초점을 맞추고, 강력하게 앞으로 전진하는 것. 그것은 생명을 유지하고, 종을 번식시키려는 생명체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젬은 생명력의 원천과도 같은 존재다. 그 앞을 가로막거나 거슬리는 자에게는, 공포와 위협의 대상일 뿐이지만.

젬에 비하면, 더그는 클레어만이 아니라 독자에게도 미덥지 못하다. 과연 더그는 의지가 강한 남자일까? 클레어를 사랑하게 되었으면서도 진실을 털어놓지 못하고, 벗어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더그는 계속해서 다음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사실은 더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는, 아마도 범죄밖에 없다는 것을 더그는 자신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에 의지하기로 했다. 그 누구도 더그로부터 앗아갈 수 없는 유일한 것. 그의 범죄적인 눈.

모든 진실을 알기도 전에, 클레어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찰스타운은 없어요. 이곳을 빼곤.”

더그가 찾는 곳은 결국 찰스타운임을, 그녀 역시 직감하는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더그는 한 번 기회를 놓쳐버렸다. 아이스하키에 재능을 보여 프로팀에 입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응하기도 전에 뛰쳐나온 것이다. 질투심 때문에 혹은 있을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그가 살아야 할 곳은 결국, 찰스타운이었다.

그렇다면 클레어는 어떤 존재일까? 더그가 범죄에서 손을 씻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동기? 하지만 ‘나라면 건성으로 격려 받는 것보다 존중받는 걸 택하겠어’라고 말하는 남자 더그에게, 그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그렇다. 그건 결국 선택의 문제다. 프로팀에 입단했을 때, 더그에게 주어진 것은 선택이었다. 견디고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거나, 내팽개치고 찰스타운으로 돌아가거나. 세월이 흐른 후,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면 더그의 선택은 달랐어야 한다. 친구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보며, 나는 달라, 나는 언제든 떠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 대신 고독하게 돌아섰어야 했다. 젬의 곁에서, 그를 비난하는 대신 일찌감치 모습을 감췄어야 한다. 결국 더그는 마지막 순간에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순간 그는 자신이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를 깨달았다. 그는 스스로를 클레어에게 바친 것이었다. 크리스타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자신을 구제할 권한을 넘기면 그들이 자신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알아야 한다. 프랭크 G.가 그토록 더그에게 일깨워주고 싶어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절대 그 권한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클레어는 구원이 아니다. 그 누구도, 어떤 종교나 도피처도 당신을 구원하지 않는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결국은 나 자신밖에 없다. 클레어 때문에 친구들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나야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려야만 했다. 사람들은 종종 착각한다. 나를 이끄는 것은 저 바깥의 무엇이라고. 그래서 기다리고, 호소한다. 누가 나를, 무엇인가가 나를 구원해달라고.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내가 나를 구원하겠다는 선택을 했을 때, 그 후에야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비로소 다가오는 것이다.

P.S. 영화 <타운>에 대해서 몇 마디.
아무런 컨텍스트 없이 영화 <타운>을 본다면, 그런대로 잘 만든 범죄물이라고 할 수 있다. 찰스타운이라는 공간이 비교적 잘 그려져 있고, 전형적이긴 하지만 손을 씻으려는 더그의 모습도 세심하게 그려져 있다. 하지만 원작을 보았다면, 그것이 연출의 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영화 <타운>의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대부분이 원작의 인물과 플롯 그리고 설정을 답습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코 원작과 똑같이 각색하라는 것이 아니다. 원작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면 예리하게 영상을 통해서 그 정수를 표현하거나, 감독의 가치관에 따라 비틀거나 재해석을 한다던가 했을 때, 비로소 연출력을 인정할 수 있다.

영화 <타운>은 원작의 인물과 플롯을 그대로 쓰면서도, 원작의 의미 자체를 증발시켜 버렸다. 시나리오도 함께 쓰고, 연출을 한 벤 에플렉의 연출력을 의심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결정적으로 더그가 처한 절박한 상황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이해가, 영화 <타운>에는 없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버린 영화 <<타운>은 더그의 선택을 천박한 동전 던지기 정도로 격하시킨다. 그렇게 쉽게 도망칠 수 있는 고향과 친구였다면, 왜 그렇게 더그는 방황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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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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