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현빈은 참 기특한 사람이다.
<시크릿 가든>의 인기 덕분에 개봉이 미뤄지던 영화 두 편을 살려냈고, 여성 시청자들과 주부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신데렐라’ 스토리에 대한 열정도 살려냈고, 해병대 자원입대라는 ‘멋진 짓’으로 병무청의 위상도 살리고, 군필 남성들의 자부심까지도 살려냈다. 게다가 현빈의 인기에 힘입어 개봉될 영화 두 편이 동시에 베를린에 초청되는 쾌거도 이뤄냈다.
특히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전 세계 영화들 중 단 20여 편만을 선정하는 공식 경쟁부문에 아시아 영화로는 유일하게 초청받은 작품이다. 이 모든 일이 마치 계획된 것처럼 착착 진행되면서, 현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멋지고 가장 정의롭고 또한 가장 현명하고 바른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3월 해병대 입대를 앞두고 있는 현빈은 지금 가장 행복하면서도 바쁜 순간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2월 17일
<만추>에 이어 24일에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가 순차적으로 개봉되기에 영화 홍보에도 박차를 가하고, 레드 카펫을 밟기 위해 베를린으로도 가야하고 그 사이 밀린 CF와 인터뷰 등의 스케줄을 소화해내야 한다. 곧 입대하여 ‘귀신 잡을’ 해병대 현빈을 잡으려면 정말 귀신이라도 때려잡듯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주원앓이’와 그 후폭풍은 꽤 오래 가겠지만 갑작스러운 인기는 역시 시간이 흐르면 잠잠해질 하나의 소동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시크릿 가든>을 통해 확인된 현빈의 성장은 단순한 인기 탤런트가 아니라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배우 현빈에 대한 신뢰는 이전보다 더욱 강해졌다.
배우 현빈의 새로운 시작 : 영화 <만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이게 최선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현빈은 최선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각개봉을 하게 되었지만, 곧 개봉을 앞둔 영화 두 편이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쾌거를 이뤄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가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되었기에, 현빈은 자연스럽게 남우주연상 후보가 되어 세계 각국의 스타배우들과 경합을 벌이게 되었다. 서른의 나이에 군대 생활을 시작하게 된 현빈에게 서른 나이에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의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을 수 있는 기회는 또 다른 시작인 것이다.
<여자, 정혜>,
<멋진 하루>의 이윤기 감독이 연출한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결혼 5년 차인 부부가 이별을 앞두고 벌이는 마음의 소동을 실시간으로 담아낸 영화다. 현빈은 아내의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고서 아내가 집을 나가는 날 묵묵히 짐을 싸는 걸 도와주는 남편 역할을 맡았다. 젊은 배우지만, 늘 우직할 정도로 심지 있는 역할을 주로 맡아왔던 현빈에게 감정을 감추고 묵묵히 짐을 싸는 남편 역할은 제법 잘 어울린다. 이미 젊은 연기파 배우로 불리는 임수정과의 심도 깊은 연기가 기대되는 작품이다.
게다가
<시크릿 가든>이 아니었다면 이처럼 주목받는 영화가 되지 못했을 작은 영화에 대한 관심이 기대 이상으로 커졌기에, 현빈이라는 배우가 짊어져야 할 책임과 몫은 한결 커졌다. 현빈이라는 배우가 좋은 영화의 제작을 위해 기특하게도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에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는 소식이 함께 들려온다. 현빈의 팬이라면 꽤 뿌듯하게 자랑할 법한 일이다.
고 이만희 감독의 동명의 1966년 작품을 리메이크한
<만추>는 <가족의 탄생>으로 주목받은 김태용 감독이 연출하고
<색,계>의 탕웨이와 현빈이 주연을 맡은 영화다.
<만추>는 모범수로 특별 휴가를 나온 여자가 도주 중인 남자를 만나 벌이는 짧은 사랑을 그린 영화다.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큰 관심을 모았지만, 배급사를 잡지 못해 자칫하면 ‘표류작’으로 남을 뻔한 영화였다. 현빈의 인기와 함께, 언제 그랬냐는 듯 배급경쟁을 벌이는 귀한 작품이 되었고, 개봉일자도 확정짓게 되었으니
<시크릿 가든>과 현빈에게 감사해야 할 또 한 편의 영화가 되었다.
원작과 달리 국제적인 배우의 캐스팅을 고려하여 미국 시애틀에서 올 로케 촬영한
<만추>는 모든 대사가 영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니, 현빈의 숨겨둔 영어실력을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의 탄생>으로 섬세한 연출력을 선보인 김태용 감독은 한국과 중국의 대표배우의 만남을 통해 미국 사회 안에 거주하는 소수 인종을 불안감을 섬세한 영상으로 대변한다.
김태용 감독은 나이에 맞지 않는 어른스러움과 왠지 모를 쓸쓸한 느낌에 끌려 현빈을 캐스팅했다고 한다. 실제로 밝지만 가볍지 않고, 외롭지만 무겁지 않은 주인공을 연기하기에 현빈 보다 더 적합한 배우는 없었다고 한다.
젊고 다양한 스펙트럼, 그 속에 현빈이 있었다
현빈은 애초에 영화배우라기보다 꽤 무게 있는 젊은 TV 탤런트였다는 게 맞다. 인기 스타 배출의 산실이었던 <논스톱 4>(2003) 출신으로 2004년 인정옥 작가의
<아일랜드>의 ‘강국’ 역할로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았다.
젊고 잘생긴 배우였던 현빈은 같은 해 <키다리 아저씨>와 <돌려차기>라는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의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진 못했다. 이 중 <키다리 아저씨>는 하지원, 연정훈 주연의 영화였는데 현빈은 아주 작은 역할로 우정 출연했다. 영화면 영화, 드라마면 드라마에서 승승장구하면서 거의 실패작이 없는 하지원의 몇 안 되는 기대 이하의 영화로도 기억되는 아쉬운 작품이었다.
2005년 현빈은 배우로서 절정의 인기를 맞이하는데, 김선아와 함께 한
<내 이름은 김삼순>이란 작품에서였다. 까칠한 부잣집 아드님 역할로 부각된 현빈의 인기는 ‘삼식’이라는 별명까지 붙어서 그의 인기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하지만, 이후의 작품이 그의 인기에 날개를 달아주지 못했다.
특히 영화와 현빈의 인연은 그리 좋지 않았다. 2006년 <백만장자의 첫사랑>은 이연희와 함께 한 청춘영화였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주춤했다. 2006년 TV 드라마 <눈의 여왕>은 현빈의 거칠고 과묵한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지만, 중간 정도의 인기만 얻었던 작품이었기에 현빈의 연기는 아쉽게도 크게 부각되거나 각인되지 못했다.
2007년 한 해 별다른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던 현빈은 2008년
<그들이 사는 세상>과 <친구, 우리들의 전설>이란 TV 드라마를 통해 많은 수의 시청자들과 만났다. 표민수-노희경이라는 황금 콤비와 송혜교, 현빈의 만남으로 큰 관심을 끌었던 작품이었고, 시청률과 상관없이 보석 같은 드라마라는 평가를 얻었다. 또한 널리 연인으로 알려진 송혜교와 만난 작품으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하겠다.
곽경택 감독이 영화 <친구>를 TV 판으로 제작한 <친구, 우리들의 전설>은 영화의 TV 확장판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강인한 남성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싶어 했던 현빈의 도전에 날개를 달아주지는 못했다.
<친구, 우리들의 전설>> TV에서 이전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던 현빈은 영화계에서는 배우로서 조금씩 틀을 깨고 성장하고 있었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는 현빈이 2009년 출연한 영화였다. 윤종찬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포스터와 제목과 홍보 방법이 완전 엇나가는 영화여서 큰 주목을 못 받았지만, 그 해의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 중의 하나였다.
얼핏 잘 안 어울릴 것 같은 이보영과 현빈은 이 영화 속에서 가슴 절절한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다. 밀봉된 절망, 그 탈출구 없는 고통의 현실을 끝까지 파고드는 영화는 대중적이지 않지만, 현빈이라는 배우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선사한다. 너무 불행한 고통을 즐길 수 없는 관객에겐 힘든 영화지만, 현빈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이기에 놓친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의 하나이다.
그리고 2010년
<시크릿 가든>이 현빈에게 주어졌다. 현빈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다양한 연기의 폭을 선보인다. 폐쇄공포증이란 게 저런 거구나, 현빈이라는 배우가 저렇게 절절한 눈물연기를 보일 수 있구나, 현빈에게 꽤 귀여운 면이 있구나, 현빈이라는 배우가 가진 매력적인 순간을 총 집결한 이 드라마를 통해 현빈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사이, 언론과 국방부와 영화계는 현빈을 더욱 멋진 사람으로 꾸며주었고, 현빈의 인기와 이미지는 그렇게 쿨하게 확장되고 구축되었다.
서른, 새로운 필모그래피를 쓰다
다시, 현빈을 정리하자면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을 거쳐야 하겠지만 그가 걸어온 배우로서의 이력을 살펴보자면 다른 동년배 배우보다는 꽤 그 ?역이 넓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마니아들의 인기를 끌었던
<아일랜드>,
<그들이 사는 세상>을 통해 강직하고 믿음직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시크릿 가든>에서처럼 신데렐라 스토리를 여전히 꿈꾸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유형의 백마 탄 왕자님이 되기에도 믿음직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큰 흥행을 하지 못했지만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를 통해 괄목 성장한 연기력을 보여주었고,
<시크릿 가든> 이전에 촬영한 영화 두 편은
<시크릿 가든>과 상관없이 젊은 배우가 선뜻 선택하기에 그 깊이가 남다른 영화인 것도 사실이다.
앞서 <백만장자의 첫사랑>에 대한 언급을 했다. 이 영화는 큰 인기를 끈 작품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현빈이 있게 한 계기를 마련해 준 작품이다. 왜냐하면 <파리의 연인>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김은숙 작가가 이 영화의 대본을 썼고, 그 인연이
<시크릿 가든>으로 이어진 셈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앞선 인연들이 지금의 현빈을 있게 한 원동력인 셈이고, 그의 성공작이건 실패작이건 모두 현재의 현빈을 가능하게 했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름이 기억되지 못하는 배우는 배우로서 숨을 간직하지 못한 피지 못한 꽃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현빈이라는 배우는 운을 타고난 하나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모두가 기억할 만한 작품을 여럿 가진 젊은 배우가 선뜻 택하기 어려운 저예산 영화의 깊이 있는 연기까지 선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현빈의 본명은 김태평이다. 이 태평스러운 이름의 주인공이, 지금 태평 성대한 미래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의 기분 좋은 미래는 그가 살아온 치열한 젊음을 발판으로 딛고 있기에, 쉽게 흔들리거나 꺾일 것 같지 않다.
절정의 인기를 맞이한 현빈이 군 입대를 위해 몇 년을 쉰다는 것은 팬으로서 아쉬운 일일 테지만, 이미 현빈은 청춘의 아이콘 대신 성숙한 배우로서 걸어야 할 길과 몫을 아는 듯 하기에 느긋하게 몇 년 뒤 그의 복귀를 기다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마 그는 더 성숙하고 더 멋진 배우가 되어 돌아올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