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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손

손을 쓸 수 없었떤 3주일 동안 난 뭘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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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쓸 수 없었던 3주일 동안, 나는 줄곧 이미 승부나 스코어를 알고 있는 월드컵 재방송을 보거나, 300페이지가 넘지 않는 소설들을 읽었다. 병원 대기실에선 주로 표지가 반쯤 뜯어지거나 날긋날긋해진 과학 잡지들을 읽었다. 그러다가 <과학동아>에서 철지난 공식을 하나 발견했다.

정형외과 의사가 말했다.

“네 번째 하고 다섯 번째 손가락, 그쪽 손바닥이 아프다고 하셨죠?”
“네. 심하게!”
“언제부터 아팠어요?”
“한 일주일, 아니 이주일쯤 됐나? 음…… 사실 좀 오래되긴 했는데…….”

나는 저릿한 손바닥을 왼손으로 계속 주무르다가, 오른쪽 팔목까지 통증 부위를 가리켰다.

“구뇽 터널 증후군입니다.”
“네?”
“구뇽 터널 증후군!”

의사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나는 몇 번이고 되물었다.

“병을 발견한 독일 사람 이름입니다. 손목에는 몇 개의 터널이 있어요. 잘못된 자세나 반복된 자세 때문에 그중 하나가 눌려서 신경을 누르는 겁니다. 통증이 심해지면 깁스해야 돼요. 무조건 쉬고, 치료부터 받으세요. 더 심해지면 수술 들어갑니다. 직업병입니다.”

의사는 무표정했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 뱃속에서부터 주사기를 입에 물고 주사기를 들고 태어난 것 같은 얼굴이었다. 저런 엄숙한 표정이라면 절대로 그 앞에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매일매일 물리치료를 열심히 받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의사가 직업이 뭐냐고 물었을 땐, 의기소침해져서 대답했다. 직업란에도 이렇게 썼다.

가내수공업자

책상에 앉아 하루 종일 자판을 두들기는 나의 가내수공업은 일시에 중단되었다. 1월, 신종플루에 걸렸다는 불쾌한 소식을 시작으로 올해 들어 몇 개의 증상들을 더 얻게 된 얘길 하자면, ‘혈관성 두통’이나 ‘이석증’ 같은 기묘한 이름의 병들을 나열해야 한다. 더 황당한 건, 꼭 내가 내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내가 쓴 단편에는 유달리 ‘질병’이 창궐하는데 그중엔 ‘알츠하이머’나 ‘유방암’(유방암에 걸린 60대 남자다)도 있다. 맙소사! ‘거인증’도 있었구나.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척추, 관절 전문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뜨거운 파라핀 속에 손을 넣어 촛농을 뒤집어쓰는 파라핀 치료부터(이런 건 ‘네일케어샵’에서나 하는 건 줄 알았다) 고주파?저주파 치료, 레이저 치료, 전기 치료 등, 한 시간 반 이상을 꼼짝없이 병원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대기실에는 관절염과 갖가지 디스크로 아픈 사람들이 가득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월드컵 축구 재방송이 반복적으로 리플레이되고 있었다. 6월이 좀 괴롭기도 했다. 대기실에는 오래된 잡지와 병원 소식지, 낡은 과학 잡지들 더미가 쌓여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나는 이 책을 뽑아 들었다.

왜 우리는 사랑을 ‘맺거나’ 사랑을 ‘이루지’ 않고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그건 사랑이란 두 사람이 채워 넣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집어넣어도 그 관계는 채워지지 않는다. 정열, 갈망, 초조, 망설임, 투정, 침착, 냉정, 이기심, 헌신, 질투, 광기, 웃음, 상실, 환희, 눈물, 어둠, 빛, 몸, 마음, 영혼 등 그 어떤 것이든 이 깊은 관계는 삼켜버린다. 모든 게 비워지고 두 사람에게 방향과 세기만 존재하는 힘, 그러니까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원초적인 감정의 움직임만 남을 때까지 그 관계 속으로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밀어 넣는 일은 계속된다. 그런 과정을 되풀이하다가 마침내 마음의 숲 속 빈터가 열리게 되면 뜨거운 육체의 아름답고 털 없는 동물들이 뛰놀게 된다고 서양의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찢어진 과월호 잡지 더미 속에 놓여 있는 김연수의 소설은 기다란 강아지풀처럼 비쭉 솟아 있었다. 나는 마른 풀이 가득한 그곳에서 예쁜 꽃을 따듯 그 소설을 뽑아 들었다. 이미 오래전에 읽은 책이었지만, 병원 대기실에 앉아 이 소설을 읽었다. 얼마쯤 책을 읽었을 때,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 소설은 그렇게 물리치료를 받는 동안 토막토막 읽히다가, 손목이 너무 아픈 어느 날 주말에는 잊혀졌다. 그러나 일주일에 다섯 번을 오가던 병원 대기실 속에서 결말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책은 얇았고, 단문의 문장들이 많았다. 수월히 읽혔다. 그 시절의 작가가 어떤 표정으로 이 소설을 썼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왕가위는 장국영, 양조위, 임청하, 장만옥, 장학우 같은 대형 수퍼스타들이 줄줄이 나오는 <동사서독>을 찍는 지독한 피로감 때문에, 막간의 쉬는 틈을 이용해 <중경삼림>을 찍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김연수의『사랑이라니, 선영아』는 왕가위가 휴식을 위해 찍은 <중경삼림> 같은 느낌의 소설이었다.

그 순간, 두 연인은 서로를 향해 자신의 존재를 활짝 열어젖혔다고 생각한다. 그 즈음에 이르면 두 사람은 이제 서로에게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게 된다. 비밀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서로의 존재는 백열등처럼 환하게 드러나게 됐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 상태는 깊은 사랑이 아니라 깊은 착각에 가깝다. 우리는 서로에게 영원한 타인이다. 우리는 자신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완전히 알 수는 없다. 혼신의 힘을 바쳐 사랑한다고 해도 우리가 모르는 부분은 영영 남게 된다. ‘너는 절대로 알지 못한다’를 영어로 작문하라면 ‘You never know’가 될 것이다. 하지만 대화에서 관용적으로 쓰일 때, 이 문장은 ‘어쩌면’ 혹은 ‘아마도’를 뜻한다. 질투란 상대방에 대해 모든 걸 알게 됐다고 생각한 게 착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러니까 ‘어쩌면’이나 ‘아마도’라는 부사로 시작되는 문장이 하나둘 마음속에서 떠오를 때, 부록처럼 따라오는 감정이다.


손을 쓸 수 없었던 3주일 동안, 나는 줄곧 이미 승부나 스코어를 알고 있는 월드컵 재방송을 보거나, 300페이지가 넘지 않는 소설들을 읽었다. 병원 대기실에선 주로 표지가 반쯤 뜯어지거나 날긋날긋해진 과학 잡지들을 읽었다. 그러다가 <과학동아>에서 철지난 공식을 하나 발견했다.

테스토스테론 에스트로겐
도파민 아드레날린 세로토닌(니코틴 코카인의 활성작용)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리보위츠Liebowitz라는 학자는 사랑의 화학에 관해서 꽤 많은 연구들을 했다고 한다. 그는 ‘사랑중독증자’들과 ‘약물중독자’들이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오랜 연구를 통해 낭만적 사랑의 화학적 성분이 암페타민에 관련된 화합물인 페틸에칠라민(PEA)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도 화학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 시대에, 각각의 감정에 관한 호르몬 칵테일을 만드는 것도 곧 가능해지지 않을까. 질투, 증오, 환희, 우울, 광기 같은 감정들 말이다. 만약 그런 약이 있다면 나는 ‘평온함’이란 레테르가 붙은 알약을 먹고 싶다. 꽃이나 과일향이 아닌 ‘세탁건조향’이나 ‘파이프 담배향’ ‘스시향’ 같은 이름이 붙은 독특한 향수가 나오는 시대 아닌가.

안타깝게도 사랑 호르몬의 농도가 높게 유지되는 것은 2년 정도이라고 한다. 사랑의 유효기간까지 과학적 분석에 의해서 나온 것이라니, 소설가가 이렇게 외칠 만도 하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사실 낭만적 사랑은 18세기 자본가들의 발명품이다. ‘결혼’으로 완성되는 그 사랑이 우리를 주당 44시간씩 컨베이어벨트 옆에 세워 넣는 음모라는 게 사회학자들의 냉담한 결론이었다. 18세기 자본가들은 노동계급에 일부일처제를 정착시켜 계속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연애라는 걸’ 만들어냈는데, 이른바 “사랑해서 결혼했다!”라는 말은 18세기 이전에는, 정상적인 결혼이 아닌 혼외관계에서나 가능한 말이었다. 그 이전의 결혼은 부를 늘리는 수단이거나, 충분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철저히 계산과 계급에 의한 ‘이해득실’에 관해 맺어지는 계약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오만과 편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결혼하려는 남자의 집에 마차가 몇 대이고, 금붙이가 몇 개이고, 하녀는 몇 명에 몇 헥타르의 땅이 있는지, 변호사와 의사의 월급을 비교하며 캐묻는 여자들의 수다 섞인 대화들 말이다. 만약 이것이 주말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다면 속절없이 ‘악플러들의 공격 대상’이 되고도 남을 장면이었다. ‘조건 없는’ 결혼이 사랑의 미덕이 된 21세기에, 이 위대한 고전은 그 시대 여자들의 속물성을 요즘 드라마보다 더 솔직하게 까발려 보여준 셈이었다. 물론 책을 읽다가 박장대소했던 건,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임자’라는 번역 때문이기도 했지만(92년 을유문화사 판이었다).

손이 아프니 여러 가지로 불편했다. 마감은 줄줄이 펑크가 났고, 급기야 왼손가락으로 자판을 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왼손으로 치는 글은 오른손으로 쳤던 글과 달라도 많이 달라서, 8매도 채 되지 않는 글을 읽는데도 꼭 내 글이 아닌 것 같았다. 글에 대한 의욕은 덕분에 더 빨리 증발되었다.

덕분에 마크 레비의 소설은 1/10쯤 읽다 말았고, 요즘 최고의 라인업을 자랑하는 ‘블랙캣 시리즈’인 제스 월터의 『시티즌 빈스』는 2번 읽기에 도전해서, 2번 다 실패했다. 닉 혼비도 재밌다고 추켜세우던 이 소설의 책장이 넘어가지 않으니, 내 손에 단단히 이상이 생긴 것이다. 기리노 나쓰오의 『그로테스크』는 여전히 재미있었지만 『아웃』만큼은 아니었다. 데니스 루헤인의 『가라, 아이야, 가라』를 영화로 보다가 손이 아파서 컴퓨터를 끄지도 못한 채 잠들었다.

다행히 소설이 아닌 『불멸의 신성가족』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할 수 있었다.

법학은 일종의 ‘새 언어’를 익히는 과정이었고, 그 언어는 앞으로 평생 그들을 먹여살릴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생존한 사람은 법조계에서 ‘신성가족’의 일원이 될 자격을 획득합니다. 스토리도 없고 비문이 너무 많은 글에 익숙해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책은 검사나 판사로 임관된 후, 이들이 겪어야 하는 여덟 가지 유혹에 대해 여러 명의 관계자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진술하고 있다. 필자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엘리트들이 ‘윗분들을 향한 원만함’의 옷에 자신을 맞춰나가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다양한 아이러니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즉 만들어진 원만함이 내면화되면서 생기는 부작용들이 사법부의 패착일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책을 읽은 후, 『두려움과 떨림』이란 제목이 떠올랐다. 영화 <하녀>에서 윤여정이 소리소리 지르던 ‘아더매치’(아니꼽고, 더럽고, 매스껍고, 치사하다!)한 세상의 축소판, 그것이 대한민국 어디에나 ‘관습’ 혹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2주간의 물리치료가 끝나고 다시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내게 그간의 치료 경과에 대해 물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나는 낫지 않았고, 근전도 검사라는 전기고문 못지않은 끔찍한 검사를 했고 (손 전체에 여기저기 바늘을 찔러대면서 전기를 보내는 검사였다!) 약의 개수는 3개에서 4개로 늘어났다.

“쉬는 것밖엔 달리 방법이 없을 겁니다. 무조건 쉬세요!”

나는 의사를 바라보았다. 불편한 왼손잡이 생활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분명해졌다. 진료실 밖 병원 대기실에는 여전히 월드컵 중계가 이어지고 있었다. 바야흐로 ‘발’의 시대였다. ‘발’의 시대에 ‘손’을 다쳤으니, 그나마 나은 걸까. 다시 파라핀 치료였다. 너무나 뜨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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