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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 금단증상’에서 벗어나라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로 글밭의 잡초를 뽑는다. 공책을 더럽히는 볼펜 똥을 지운다. 지난 칼럼의 주인공이 접속사, 즉 접속부사였다면 오늘은 화자의 태도를 나타내는 부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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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은 정말·너무·진짜·별로야!
- 안 쓰면 글이 밍밍하고 불명확하지는 않을까 조바심 나는 ‘부사 콤플렉스’

“정말 너무하네, 진짜 별로야.”

네 가지 단어로 조합해보았다. 정말, 너무, 진짜, 별로. 내 맘대로 선정한 이 부사 4총사를 꼬마들이 ‘정말’ ‘너무’ 사용해서다. 이 4총사가 글을 ‘진짜’ ‘별로’ 깔끔하지 않게 해서다.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로 글밭의 잡초를 뽑는다. 공책을 더럽히는 볼펜 똥을 지운다. 지난 칼럼의 주인공이 접속사, 즉 접속부사였다면 오늘은 화자의 태도를 나타내는 부사들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양태부사’라 한다. 동사나 형용사 앞에 놓여 그 뜻을 분명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분명한 건 좋은데 구차해서 문제다.

분명한 건 좋은데 구차해서 문제

“그 냄새만 없다면 빨래란 것이 정말 즐거울 텐데, 엄마가 고생하시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엄마가 냄새 때문에 고생하시는지는 진짜 모르겠으나...) 그리고 그 냄새를 맡으면 마법에 걸린듯하다. 생각하면, 정말 멀미해서 진짜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준석의 「실내화를 빨며」)

“모르는 문제가 자꾸 나왔다. 너무 어려웠다. 그 수학문제는 ‘몇의 절반은?’같은 거였다. 4만의 절반, 2만의 절반을 푸는 문제는 너무 쉬웠다. 하지만 5십만의 절반, 7십만의 절반은 안 배워서 너무 어려웠다.”(은서의 「수학은 골치 아파」)

강박이다. ‘정말’이라고 해야 내 맘을 정말로 표현할 것만 같다. ‘진짜’라고 해야 독자들이 진짜 이해할 것 같다. ‘너무’라고 해야 내가 말하는 심각성이 드러날 것 같다. ‘별로’라고 해야 내 시큰둥함이 전달될 것만 같다. 오, 거대한 착각이여.

벌써 두 번이나 본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 한 번 본 영화여서 다시 보면 별로 재미가 없을 줄 알았다. 물론 영화관 크기가 엄청 작았지만 그래도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역시, 용을 좋아하는 탓인가?”(준석의 「드래곤 길들이기」)

“엄마한테 아부를 할 때 정말 오빠가 밉다. 큰 여동생이라면 벌써 사춘기라서 신경을 안 쓰고, 그 사춘기가 된 여동생의 오빠도 당연히 사춘기이니, 싸울 일이 별로 없겠지만, 나같이 어린 동생은 아직 사춘기에 안 들어간 오빠가 아부할 때 정말 싫다.”(은서의 「나에게 오빠란 무엇인가」)

사과 ‘부사’는 비싼데 말이야……

‘정말, 너무, 진짜, 별로’ 말고도 많다. 위 예문에 표시를 한 것처럼 자꾸, 벌써, 물론, 엄청, 아직, 역시 따위가 보인다. 아이들이 쓴 다른 글을 꼼꼼히 분석해보니 줄줄이 사탕이다. 막상, 바로, 매우, 거의, 비록, 아직, 비교적, 대충, 가장, 일단, 의외로, 당연히, 특히, 왠지……. 이들을 빼고 글을 읽어보았다. 어색하지 않았다. 부사들을 소탕하거나 멸종시키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결코’ 아니다, 라고 쓰려다가 깜짝 놀란다. 안 돼~~ ^^) 아끼며 쓰면 된다.

부사는 일종의 습관이다. 나 역시 자유롭지 않다. 부사들을 안 쓰면 글이 밍밍하고 불명확하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그런 점에서 부사는 어쩌면 ‘콤플렉스 덩어리’의 품사다. (‘날카롭게’ ‘굳게’ 등 상황을 더 묘사하려 몸부림치는(!) ‘고차원 부사’들은 생략한다. 아이들의 글에선 찾기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썰렁한 농담 하나. ‘부사’는 사과의 품종 중 하나다. 내가 이름을 외우는 건 국광, 홍옥, 아오이, 부사(후지) 딱 네 개인데, 경험칙으로 판단할 때 ‘부사’가 가장 비싸다. 글의 세계에서 ‘부사’는 비싼 티가 안 난다. 거꾸로, 싸다 싸! 쓸수록 저렴한 글이 된다. 비싼 글을 쓰자.

***

‘너무·엄청’ 대신 상황 묘사를 해봐

얘들아, 이제 부사를 빼고 써봐라.

위 글에서 밝혔듯, 아이들의 문장에서 줄줄이 사탕으로 나왔던 것들을 종이에 적어둔 뒤 절대로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목록은 다음과 같다. “진짜, 정말, 너무, 별로, 벌써, 물론, 엄청, 자꾸, 당연히, 아직, 역시, 막상, 바로, 매우, 거의, 비록, 비교적, 대충, 가장, 일단, 의외로, 특히, 왠지.”

아, 그전에 ‘고치기’부터 했다. 아빠가 문제를 지적한 아이들의 문장을 다시 주고 바로잡아보라고 했다. 먼저 준석이부터.

은서야 ‘아주아주’ 답답하구나

“그 냄새만 없다면 빨래란 것이 정말 즐거울 텐데, 엄마가 고생하시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엄마가 냄새 때문에 고생하시는지는 진짜 모르겠으나...) 그리고 그 냄새를 맡으면 마법에 걸린듯하다. 생각하면, 정말 멀미해서 진짜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준석의 「실내화를 빨며」)

☞ 그 냄새만 없다면 빨래란 것이 재미난 일이 될 텐데, 엄마가 고생하시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엄마가 냄새 때문에 고생하시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냄새를 맡으면 그 자리에서 토해버릴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빨래 할 때 이상한 회색 거품이 나왔다. 그 거품은 썩은 물에서 나온 것 같이 냄새가 지독했다. 힘 쓸 일은 별로 없었다.

‘정말 즐거울 텐데’를 ‘재미난 일이 될 텐데’라고 고쳤다. 아쉽다. ‘즐거움과 재미’를 생동감 있게 보여줄 다른 단어가 없을까. 가령 “룰루랄라 신바람 나서 할 텐데”라고만 바꿔줘도 감도가 다르다. ‘정말 멀미해서 진짜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제대로 고쳤다. ‘이상한 회색 거품’ 어쩌구 하면서 세밀하게 상황 묘사를 했기 때문이다. 어정쩡한 부사가 아니라 눈에 잡힐 듯한 스케치가 실감을 더하게 마련이다.

벌써 두 번이나 본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 한 번 본 영화여서 다시 보면 별로 재미가 없을 줄 알았다. 물론 영화관 크기가 엄청 작았지만 그래도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역시, 용을 좋아하는 탓인가?”(준석의 「드래곤 길들이기」)

☞ 두 번이나 본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 한 번 본 영화여서 다시 보면 재미가 없을 줄 알았다. 영화관 크기는 영화관도 아닌 것 같았고, 영상이 나오는 화면도 작았다, 더빙이라 실망했지만, 긴장감을 늦출 순 없었다. 드래곤을 내가 좋아해서 그런가?

이건 부사만 잘라냈다. 끝부분만 문장을 다듬었다. 덥수룩한 머리를 단정하게 커트하고 나온 느낌이 든다. 다음은 은서 차례다.

“모르는 문제가 자꾸 나왔다. 너무 어려웠다. 그 수학문제는 ‘몇의 절반은?’같은 거였다. 4만의 절반, 2만의 절반을 푸는 문제는 너무 쉬웠다. 하지만 5십만의 절반, 7십만의 절반은 안 배워서 너무 어려웠다.”(은서의 「수학은 골치 아파」)

☞ 모르는 문제가 계속 나왔다. 아주 어려웠다. 4만의 절반, 2만의 절반을 푸는 문제는 아주 쉬웠다. 하지만 5십만의 절반, 7십만의 절반은 안 배워서 아주 어려웠다.

“엄마한테 아부를 할 때 정말 오빠가 밉다. 큰 여동생이라면 벌써 사춘기라서 신경을 안 쓰고, 그 사춘기가 된 여동생의 오빠도 당연히 사춘기이니, 싸울 일이 별로 없겠지만, 나같이 어린 동생은 아직 사춘기에 안 들어간 오빠가 아부할 때 정말 싫다.”(은서의 「나에게 오빠란 무엇인가」)

☞ 엄마한테 아부를 할 때 아주 오빠가 밉다. 큰 여동생이라면 사춘기라서 신경을 안 쓰고 그 사춘기가 된 여동생의 오빠도 무조건 사춘기이니, 싸울 일이 많지는 않겠지만, , 나같이 어린 동생은 곧 사춘기가 될 오빠가 아부할 때 아주아주 싫다.

헐. ‘너무 어려웠다’를 ‘아주 어려웠다’로 바꿔놓았다. 뒤에 나오는 ‘너무’ 2개와 ‘정말’ 2개도 ‘아주’로 고쳐 놨다. 심지어는 ‘아주아주’도 있다. 흑흑, 은서는 ‘아주아주’ 답답하다. 왜 다를 게 없는 ‘아주’로 했냐고 다그치니 “아빠가 알려준 금칙어중에 ‘아주’는 없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OTL 금칙 부사 하나 추가요, 아주!!

‘사용금지 리스트’를 만든 것은 버릇처럼 굳어진 부사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였다. 이것들의 남발만 자제해도 깔끔하고 쿨한 글이 나온다. 그럼 부사만 소탕하면 능사인가? 그렇지는 않다. 부사가 많다는 건 또 다른 의미에서 글이 추상적이라는 말이다. 먼저 준석의 글을 읽고 이야기하자.

동생은 이가 아프고, 난 배가 아프고

며칠 전 은서가 다쳤다. 이를 다쳤다. 친구가 밀어서.

은서가 학교에서 다치고 엄마가 은서를 데리고 가서 치과에서 진단을 받았다. 다시 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은서는 계속 아파 아파 한다. 엄마는 은서를 걱정해 주신다.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은서를 그렇게 돌보아 주지 않는다. 필요성을 못 느끼니까. 이건 이 글에서의 주제이다. 은서가 다친 것은 주제가 아니다.

은서는 엄살을 피우면서 엄마에게 모든 것을 다 시켰다. 물 떠달라, 의자 갖다달라, 음식을 잘라 달라, 등등. 여기서 당신은 말도 안 되는 현상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물 떠달라, 의자 갖다달라, 음식을 잘라 달라. 팔이 없거나, 오체불만족인 오토다케 히로다타 같은, 다리가 없는 사람들이 하는 요청이 아닌가? 은서는 오토다케 히로다타 같은 오체불만족이 아니다. 은서는 이를 다쳤다. 이가 팔 다리와 관계가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입증되기라도 하였는가?

엄마가 그런 것을 아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엄마는 은서가 요청한 일을 다 해 주셨다. 은서가 불쌍하니까. 은서가 아프니까. 은서가 고통 받고 있으니까. 생각해 보았다. 은서가 그렇게 도움을 받아야 할지. 내 대답은 ‘아니오’였다. 나는 엄마가 은서를 그렇게 접대해 주는 것에 대해 비판을 하였다. 나는 엄마의 그런 행동을 되도록 저지하려고 하였다. 내가 질투 해서 그런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의 은서에 대한 무관심에 엄마는 화를 내셨다. ‘은서를 위로, 배려해야지!’ 하며 나에게. 여기서 키 포인트는 ‘은서를 위로, 배려해야지!’ 이다. 엄마는 은서를 돌봐 주고 도와 주는 것이 은서를 진정으로 배려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바이지만, 내 개인적인 의견은 ‘아니다’ 이다. 은서의 지금 상황으로 보았을 때, 꼭 필요한 도움이냐 아니냐를 따지자면 은서가 받을 도움은 없다.

그렇다면 다쳤는데 도와 줄 것이 아예 없다고? 아니다. 은서의 다친 이와 관계한 일이라면 도움을 주어도 괜찮다. 예를 들어 은서의 이에 접촉할 만한 행동을 하지 마라. 은서에게 장난 치지 마라. 은서를 위로해 주어라, 등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은서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실천한 행동은 전부다 신체 불구 장애 아이들이나 도움을 받을 만한 행동이었다. 내가 이런 의견을 갖게 된 이유는, 은서가 많은 요구를 엄마에게 해서 내가 화가 났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필요 없는 도움이란 무엇인가. 선물 주기이다. 엄마께서는 은서가 다치고 온 후 내게 줄 선물인 펜도 은서에게 빼돌려 주셨다. 은서는 고마워하였다. 펜을 쓰면서 ‘엄마 펜이 잘 나와요!’라며 나를 질투하게 한다. 이것은 나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자 또 하나의 필요 없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자. 엄마는 나에게 줄 것을 은서에게 주었다. 불쌍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보면, 은서는 다친 아이이다. 은서는 불쌍하다. 도와 주고 싶다. 그러나 은서가 결론적으로 잘한 일은 없는 것이다. 최근 은서가 이도 안 닦고 치과 계속 다녀서 말썽을 피우고 결국에는 사고를 당해 이가 흔들렸다. 그에 반해 나는 중간고사를 망치긴 했지만 최근에 학원 레벨이 두 단계나 점프하였다. 선물 달란 소리는 안 했다.(사실 줄 만도 한데) 그런데 엄마는 그 펜조차도 은서에게 주었다. ‘쪼잔해’ 독자들은 이렇게 느낄 수 있다. 펜 하나에? 억울해 죽겠다. 더군다나 은서 하면 떠오르는 것이 펜과 필통, 그리고 연필인데.

은서는 대체 무엇을 느끼기라도 한 걸까? 평소에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고, 고통을 받으면서도 태연한 은서이다. 활발해서 그런지 까불고 고집불통인 은서는 반성을 하지 않는 편이다. 선물을 좋아한다. 은서는 고통과 동시에 기쁨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자, 은서는 그때 다침으로써 고통을 느꼈다. 인간으로써 못 느끼면 비정상이니 느꼈다고 봐야 될 것이다. 이 글에서 말하는 기쁨이란, 자신이 무슨 왕이 된 듯이 엄마에게 명령을 막 하는 은서의 모습이다. 아프면서 가냘픈 (그렇다고 가냘프지 않음) 모습으로 보이며 엄마에게 명령하는 모습은 즐거워 보인다. 다시는 장난을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은 한 걸까? 그럴 리 없다. 왜냐 하면, 고은서는 활발한 성격의 아이니까, 성격이란 것은, 제일 바꾸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이다. 성격을 바꾸지 않는 한, 은서의 장난기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사건을 예상해야 할 것이다.

“감을 살려서 말할 수가 없어요”

준석은 글을 쓰고 나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이 이상해진 건 아닌데 뭐랄까, 감을 살려서 말할 수가 없어요.” 정도와 수준을 표현하기가 모호하다는 뜻이다.

준석은 이 글의 첫 문장에서 “며칠 전 은서가 다쳤다. 이를 다쳤다”라고 썼다. 그냥 “다쳤다”라고 하니 심심했을 것이다. 평소 같으면 ‘많이’나 ‘매우’ 같은 부사를 사용했을 텐데 말이다. 안 써도 된다. 대신 다친 정도를 구체적으로 알아내서 적으면 된다. “의사 선생님은 은서가 1년간 신경치료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라거나 “뿌리가 상해 이가 변색될지도 모른다는 진단에 엄마는 우울해하셨다”라고 쓰면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문제는 부사 나부랭이가 아니라 눈에 보일 듯이 사실을 적시하는 데에 있다. 그러면 독자들이 더 잘 알아먹는다.

“은서는 엄살을 피웠다”에서도 준석은 “무척 엄살을 피웠다”라는 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뒤에서 상세하고 묘사를 해주면 된다. “저녁을 먹을 때 물 떠달라, 의자 갖다달라고 온갖 떼를 썼다. 저녁을 먹은 뒤에도 약 세 시간 동안 징징거리며 엄마를 괴롭혔다”는 식으로 세밀한 부분들을 터치해준다면 ‘무척’ 따위는 필요 없다. 준석은 그동안 쉽게 부사를 쓰다 보니까 ‘금단 증상’을 느낀 듯하다. 뒷부분에서는 ‘제일’이 부사인 줄도 모르고 썼다.

은서도 글을 쓰고 나서 찝찝해했다. 글이 이상해진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 ‘엄청’과 ‘많이’를 여러 번 쓸 뻔 했다가 참았다고 했다. 다음은 은서의 글이다.

할아버지, 왜 나이를 따지세요?

오늘 치과에서 있었던 일

나는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 목요일 6교시가 끝나 실로폰을 친구들과 함께 정리해 두고 있는데, 친구 두 명이 장난으로 밀었는데 콰당 넘어져서 두 개의 영구치가 흔들흔들거린다. 나는 유명하다는 동네의 큰 치과병원에 갔다.

두 개의 영구치 진료가 끝나고 내 이 진단서를 받으려고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늙은 큰 소리가 났다.

한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너 나이 몇이야?! 내가 너보다 나이 많아! 사회 생활도 내가 잘 알고, 사회 경험도 내가 더 많이 해 봤어!!”

경비원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마지막 경비원은 나이가 많아 보였다. 연예인과도 조금 닮은 것 같았다. 그 연예인 이름은... 까먹었다. 늙은 연예인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경비원과 닮은 연예인은 못 생겼다.

그 할아버지는 이렇게 소리쳤다. “나도 학사박위는 있어@!” 이건 자랑을 하는 것 같다. 그할아버지는 70대 정도 되어 보였다. 그리고 엄마 말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팡이를 휘두르면서 원장 아저씨를 때리려고 했다고 한다. 내 옆으로도 왔다. 할아버지는 소리쳤다.

“이 개새끼야@!” 원장 OOO이라는 아저씨가, “이 사람이 어디에다가 쌍욕을!”이라고 소리쳤다. 나는 무서워졌다. 내 옆으로 점점 더 가까워졌다. 원장 아저씨는 “나도 열심히 했어, 나도 못 한 거 없어” 라고 말했다. 원장 아저씨는 수염도 많았다. 엄마 말로는 환갑은 안 되셨을 거라고 했다. 그 할아버지의 부인이 모두를 말렸다. “저도 열심히 했습니다. 당신! 당신이 잘못한 거야!” 라고 할아버지에게도 말했다.

주인공은, 원장과 할아버지의 부인, 할아버지밖에 없다. 싸운 이유는 불치병 때문에 그런지, 돈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아는 사람은 원장아저씨, 할아버지의 부인, 할아버지밖에 없다. 경비원아저씨들이 간신히 할아버지를 엘리베이터에 태우고 보냈다. 그 다음부터 치과가 조용해 졌다. 다음에 또 오면 또 소란스러울 것 같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난 한 달 후에 이 치과에 또 가야 될 것 같다. 그 때는 제발 소란이 안 일어나길 빈다.

내가 그 때 생각한 점은, 왜 사람들은 나이를 묻고 따질까? 아마도 나이가 더 많으면 더 당당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가 나이 이야기를 할 때에는 원장 아저씨는 조용했다. 나이가 적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ㅋ

부사자제 묘사촉구

아빠가 사용을 금지한 부사는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사를 청소하지는 못했다. ‘조금, 우루루, 점점, 간신히, 제발, 아마도’가 눈에 띈다. 쓸 만한 것도, 불필요한 것도 있다. 아무튼(이것도 부사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정신병 걸리겠다) 열심히 썼다. 세 번 만에 오케이한 글이다. 은서는 정확한 상황 묘사에 서툴다. 10살 어린이의 눈으로는 사건의 맥락을 이해하기가 버거웠는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와 치과 원장의 행동, 말들을 지켜보고 어슴푸레하게 썼다. “늙은 큰 소리가 났다”거나 “싸운 이유는 불치병 때문에 그런지” 따위의 표현을 보면 이 어린이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ㅎㅎ

거듭 말하지만, 부사멸종을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살아있는 표현과 비유 대신 부사로 ‘땜빵’하려는 관행적 글쓰기를 넘어서자는 문제의식을 던지고 싶을 뿐이다. 오늘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부사 없이도 생생한 글을 쓰려면
1. 눈에 보일 듯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2.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적절한 비유를 구사한다.


중딩 준석에 비해 초딩 은서가 모자란 점은 바로 이것이다. 묘사와 비유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오늘의 메시지는 단순하게 끝내자.

부사를 자제하자

구호라도 만들어볼까? 부사자제 묘사촉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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