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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은 쓰지 말고 ‘엔터’를 자주 치자

글을 물길로 친다면, 엔터키란 곡선의 흐름에 비유할 만하다. 물이 한없이 직선으로만 흐르면 재미없다.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굽이치는 전환이 없으면 지루하다. 이건 글의 호흡과 리듬과 관련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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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지금 ‘불법적으로’ 쓰고 있어
- 무덤도 아닌데 생활 주변에 널린 ‘비문’은 무덤 속으로 들어가야 할 문장들?

비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순간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17년 전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고향의 어느 산 중턱 장지에서였다. 땅에 관이 들어가는 절차가 끝난 뒤 비석을 세우는 작업이 이뤄졌다. 미리 확인할 기회가 없었던 나는 눈물이 쏟아지던 와중에도 직업적 본능을 발휘하며 비석에 새겨진 문구를 샅샅이 훑었다. ‘혹시 오자는 없나?’ 아니나 다를까. 네 글자로 잘못 기재된 아버지의 한자 이름이 눈을 후비듯 다가왔다. 엥? 이게 뭐야?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시간은 불과 1분여! 나의 ‘무식’이 웬수였다. 고인의 성과 이름 사이에 ‘공(公)’이 들어가는 게 관례인데 이를 착오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문(碑文)에 비문(非文)이 들어간 줄 착각했던 그때를 떠올리면, 한편으론 슬프고 한편으론 썰렁하다.

‘미친넘에’가 아니라 ‘미친넘의’가 맞다오 ㅎㅎ

준석과 은서에게 “비문이 뭐냐?”고 물었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라는 답이 돌아온다. “다른 뜻은 또 없냐”고 재차 물었다. ‘비밀의 문’ 아니냐고 한다. 문장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의미의 비문(非文)은 잘 모르나 보다. 오늘은 그 마지막 ‘비문’을 말하고자 한다. 한 달 전 퇴근을 하다가 어느 건물 꼭대기에 나부끼는 플래카드를 보았다. “미친넘에 장난질에 미쳐가는 지역주민.” 강제철거와 재개발 정책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혼자 눈을 찌푸렸다. 원색적이어서가 아니다. ‘아이 참, 이왕이면 맞춤법 좀 지키지.’ ‘미친넘’이 아니라 ‘미친놈’이 바르다고 우기지는 않겠다. ‘미친넘’은 그냥 놔두더라도(‘넘’이 주는 고유한 느낌을 존중해서다) 방향을 나타내는 ‘에’라는 조사는 잘못 들어갔다. “미친넘(의) 장난질에 미쳐가는 지역주민”이 미치지 않은 표기다. 절박한 생존권을 앞에 두고 한가한 소리 하냐는 공격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욕을 퍼붓더라도, 우리 인간적으로 맞춤법은 지키자.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다. 비문이 담긴 비난과 주장은 두 세배 더 격이 떨어진다.

‘비문’은 주변에 널렸다. 아파트 경비실 안내문에서, 식당 메뉴판에서, 시민단체 성명서에서 결코 사소하지 않은 잘못된 문장들과 자주 만난다. 우리 집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태어날 때 내 얼굴 및의 왼쪽에 작은 점이 있었다. 4,5살 때는 얼굴이 커지면서 왼쪽 및 점이 같이 커졌다.”(은서) 앞의 플래카드처럼 조사를 잘못 사용하거나 은서처럼 표기가 어긋난 경우는 교통 관련 법률에 비유하자면, 기초질서 위반사항이다. 다음의 경우는 더 고차원의 엉터리다. “은서의 비밀이 있다면 이를 매우 매우 잘 닦지 않는다는 점, 밥을 더럽게 먹는다는 점이 있다.”(준석) “나는 많이 먹는데도 별로 살이 찌지 않는다. 그 이유에는 2가지 이유가 있다.”(은서) 주어와 술어가 따로 놀거나 역주행하는 것은 문장의 교통질서를 어지럽히고, 더 나아가 보는 이의 눈을 어지럽히는 ‘불법행위’다. 엄하게 처벌받을 수 있다.

사회생활 잘하려면 ‘문장 신호등’ 잘 지켜라

실제로 그렇다. 신문사 경력기자 채용 때 지원자들의 자기소개서를 심사한 경험이 몇 번 있다. ‘불법 문장’들은 눈에 거슬린다. 아무리 내용이 그럴듯해도 표기가 틀리고 문장이 꼬이면서 주술관계가 엉망이면 신뢰에 금이 간다. 결국 짧은 서류 심사만으로 극형에 처해지기 일쑤다. “리스트 아웃!”(List out)

자라나는 아이들은 미리미리 문장 신호등을 잘 지키는 버릇을 익히기 바란다. 어른이 되어 맞춤법 경찰 아저씨들한테 딱지 끊는 일 없도록. 실전 팁은 담 기회에.

***

조교 앞으로, 개념상실 여동생을 지도하라

‘크로스 체킹’을 시켰다.

준석에게는 동생의 글을, 은서에게는 오빠의 글을 주었다. 글을 읽고 잘못된 표현이나 맞춤법, 비문을 바로잡으라고 했다. 덧붙여 종합평가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은서의 반응은 미미했다. 오빠가 쓴 「나의 인생」과 「나에게 동생이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빨간 볼펜으로 뭔가 체크를 하는 듯했지만 ‘믈려주는’(물려주는) 따위의 오타 몇 개뿐이었다. 더구나 소감문의 결론도 달랑 “오빠는 글을 참 재밌게 쓴다”였다.

오늘은 은서의 글에 대한 준석의 ‘품평’ 일부를 소개하려 한다. 준석은 은서가 쓴 「나의 인생」을 읽고 꼼꼼하게 틀린 부분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이를 기록했다. 준석은 은서를 위한 글쓰기 훈련의 ‘조교’가 된 셈이다. 먼저 은서가 쓴 「나의 인생」을 보자.(「나에게 동생이란 무엇인가」는 생략)

내가 1살 때 놀란 사연

나의 인생

나는 태어날 때 무척 작았다. 엄마는 작아서 귀여웠다. 라고 했다. 그리고 기뻐서 내가 나올때 아픈걸 잊어버렸다고 했다.

태어날 때 내 얼굴 및의 왼쪽에 작은 점이 있었다. 1살때 내 목소리가 컸다고들 했다. 울 때는 4~5시간씩 울었다. 4,5살 때는 얼굴이 커지면서 왼쪽 및 점이 같이 커졌다. 나는 오빠와 사이가 나빠서 맨날 싸웠다. 그래서 혼난 적도 많았다. 5~6살 때에는 난 유치원에서 인기가 많았다. 왜냐하면 목소리가 드세고 힘도 셌기 때문이다. 유치원 때 아이들 대부분은 딱딱한 종아리를 때리면 운다.

하지만 난 안 울었다.
힘이 세서 별로 안 아팠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내가 지켜줄 것이라 생각하고 내 말을 잘 따랐었다. 7살 때는 이사를 갔다. 원당에서 일산으로 가는 것이었다. 여경이와 나는 새끼손가락을 걸며 말했다. “우리 어른 때 만나면 우리 우정처럼 우정유치원을 만들자!~”라고 말했다. 1학년 때는 일산의 문촌의 문촌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1학년 때의 첫 중간고사 였다. 역시나 올 백이었다. 이번엔 기말고사 였다. 이번엔 젓가락을 젖가락이라 써서, 95점이였다. 그래서 2학년 때에는 아이들이 질투하기도 했다. 어떤 애는 “은서야! 내가 너보다 점수가 더 잘 나왔다~!” 라고 기뻐서 나에게 잘난척을 한 적도 있었다.

2학년의 어느 날 원당으로 놀러가 여경이를 만났다. 만난 다음 몇 분후 나는 느꼈다. 7살 때의 약속은 못 지키겠다고, 왜냐하면 만나서 말다툼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어른이 아니지만 지금 사이가 나쁘니 그게 계속 가서 어른 때 만날 때 사이가 안 좋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투고 나서 3학년이 됬다. 난 정말로 핸드폰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께 졸랐다.
그러더니 중간고사 때 평균 92점을 넘으면 사준다고 했다. 나는 열심히 공부했다. 국어는 100점이었다. 수학도 100점이었다. 과학은 90점이었다. 사회는 75점이었다. 그래도, 다 합해보니 92.2였다. 그래서 t월드에 가서 엣지폰을 샀다. 반터치였다.

나는 기분이 너무 너무 좋았다. 나는 여경이에게 이 폰을 꼭 자랑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5~6살 때 쯤인가? 난 한겨레 표지에 나왔다. 무엇보다 좋은 건 과자에 파 묻혀있어서였다. 그리고 내가 한 1살 때 오빠가 할아버지께 언제 장례식 치러요? 라고 물을 떄 놀랐다. 근데 더 놀라야 될 것은 정말로 며칠 후 장례식을 치뤘기 때문이다.

난 오빠가 미웠다. 칫! 나라면 안 했을 텐데...

그리고 어느 날 어떤 아줌마가 나보고 누나냐고 물었다. 난 동생인데...

그 날은 정말 재밌었던 날이었다.

2010.2

준석에게 “이 글의 점수를 매겨보라”고 했다. 준석은 “완전 엉터리”라면 45점을 주었다. 글이 어떻기에 이토록 점수가 야박할까. 준석의 종합평가서 중 위 글에 대한 부분을 보겠다.

절반이 오타와 이상한 글, 45점!!!

‘나의 인생’, 은서가 쓰기에는 뭔가 좀 애매한 글이다.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 코스를 밟은 어린 아이인데 말이다.

은서의 ‘나의 인생’은 절반이 오타와 이상한 글이었다. ‘엄마는 작아서 귀여웠다. 라고 했다.’ 오타가 보이지 않는가? 맞춤법을 다 꿰뚫은 사람이라면 말이다. ‘엄마는 작아서 귀여웠다. 라고 했다.’ 가 아니라 ‘엄마는 작아서 귀여웠다고 했다.’ 이라는 것이다. 덧붙여 예의범절까지 가린다면 ‘엄마는 나에게 작아서 귀여웠다고 하셨다’가 맞을 듯 하다. 은서가 이런 실수를 범할 아이인가?

‘그리고 기뻐서 내가 나올 때 아픈걸 잊어버렸다고 했다.’ 이미 알아차린다. 한글로 치고 있자니 갑자기 '아픈걸'에 빨간 밑줄이 들어온다. 틀렸다는 소리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정확한 맞춤법으로 알고 있는 듯하나, 그렇지 않다. ‘아픈걸’이 아니고, ‘아픈 걸’이라는 것이다. 나도 범할 법한 실수,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은서가 그래도 좀 이해할 만한 실수를 범했다면, 그 다음은 어떨까? ‘태어날 때 내 얼굴 및의 왼쪽에 작은 점이 있었다.’ 실수가 2가지나 있는 문장이다. 너무 어이없는 실수이다. ‘얼굴 및’이 아니고 ‘얼굴 밑’인데 말이다. 그리고 ‘태어날 때’라고 할 때, 누가 태어났는지를 정확하게 써 주어야 한다. 실수는 맞지만, 그러나 이것은 은서의 실수로 한 실수가 아닌 자신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 고의의 실수이다. 다른 부분에도 ‘얼굴 및’이라고 쓴 이유 때문에.

그리고 은서는 대체 왜?! ‘유치원 때 아이들 대부분은 딱딱한 종아리를 때리면 운다.’ 다음 그냥 붙여 쓰지 왜 하필 ‘Enter’를 쳐서 ‘하지만 난 안 울었다.’ 라고 했을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유치원 이름에 ‘우정유치원’ 이것이 아니라 ‘우정 유치원’일 텐데, 그리고 ‘그리고 1학년 때의 첫 중간고사 였다. 역시나 올 백이었다.’ 뭐 물론 대충 짐작을 하자면 올 백 맞은 건 은서라고 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명칭을 대야 한다. 누가 올백인데? ‘역시나 나는 올 백이었다.’ 그리고 이 문장에서는 ‘역시나’를 쓸 수 없다. 예전에 올 백을 맞은 것도 아닌데 뭔 기대를 했다고, 그리고 ‘첫 중간고사 였다’ 가 아니라 ‘첫 중간 고사였다’이지. 어떻게 반대로 띄어쓰기를 하여서 두 개씩이나 오타를 낼 수 있지?

그리고 왜 ‘7살 때의 약속은 못 지키겠다고, 왜냐하면 만나서 말다툼을 했기 때문이다.’ 다음에 또 엔터를 하여 ‘물론 지금은 어른이 아니지만 지금 사이가 나쁘니 그게 계속 가서 어른 때 만날 때 사이가 안 좋을 수 있기 때문이다.’를 쓰지? 원래 그냥 붙여 쓰는 것인데 말이다. 또한, ‘난 정말로 핸드폰을 가지고 싶었다.’ 언제? 언제 갖고 싶었는데? 어제? 내일? 여기서도 역시 제대로 된 날짜나 사람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3학년 때’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다음에 ‘그래서 엄마께 졸랐다’에서 바로 붙여 써야 할 텐데 또!! 엔터를 일일이 해서 문장의 맥락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우리 은서는 앞으로 문장의 배치 방식을 배워야 할 듯하다.

우리 은서는 또 자신의 개념으로 지른 실수를 범하였다. 바로 그것은 ‘t 월드’이다. ‘t’가 아니라 ‘T’이지! 설마 회사 이름 앞에 소문자를 쓰겠냐는 것!

그리고! ‘나는 기분이 너무 너무 좋았다.’ 은서의 개념으로 범한 실수, 부족한 개념은 채워 나가야 한다. 뜯어 고쳐야 한다. ‘너무 너무’가 아니라 ‘너무너무’이다. 만약 무언가를 과장되게 표현하는 ‘아주’나 ‘너무’ 등은 반복할 때 무조건 붙여 쓰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니까 그걸 고쳐야 한다. 그리고, ‘나는 기분이 너무너무 좋았다’를 쓰는데 왜 엔터를 해? 이것이 아주 개념을 상실했구나, 그리고 뭘 어떻게 해서 기분이 좋은지 말을 해야 할 것 아닌가?! 물론 대답은 위의 ‘핸드폰을 샀다.’이다. 그러나 써 놓지 않으면 아인슈타인도 모를 게 뻔한 걸. 이건 글을 쓰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행동이다.

‘나는 여경이에게 이 폰을 꼭 자랑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다음에 엔터도 안 치고 ‘5~6살 때 쯤인가?’ 띄어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은서는 너무나 실수라고 할 수도 없는 이상한 문장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내가 한 1살 때 오빠가 할아버지께 언제 장례식 치러요? 라고 물을 때 놀랐다.’ 여기서 나에 대한 진실을 말하자면 내가 정말로 이런 말을 했지만, 나는 8살 때 말한 것이고, 그때 은서는 5살이었다. 고은서가 무슨 귀신인가? 신인가? 옥황상제인가? 그때는 고은서가 분명히 5살이었을 텐데, 1살의 고은서라니, 실수라고 할 수도 없는 짓, 5의 바로 옆 칸인 4나 6을 쳤으면 또 모르겠다. 5에서는 꽤 먼 편인 1을 찍다니! 이런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뜬금없이 짧게 이상한 사건이 나올까요? 이런 식으로 쓰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글을 읽는 것이 힘들어 질 것이다.

글을 쓰는 도중 이 나의 인생 하나로 엄청난 양을 채웠구나 하고 느꼈다. 그런데 ‘나에게 오빠란 어떤 존재인가?’는 ‘나의 인생’보다 더 긴 글인데 오타도 훨씬! 훨씬 적으면서 또한 괜찮은 글이다. 그럼, 어떤 오타가 있을까?

(중략)

자, 내가 쓴 이 오답체크와 동시에 진행하는 소감문을 통해 독자들도 자신의 맞춤법에 무언가 문제점이 몇 가지 정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 정리하고 보니, 맞춤법이 가장 잘 맞기로 소문난 나도 잘못된 맞춤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은서가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느낌을 얘기하자면, 은서는 우선 글을 쓰는 ‘방법’을 모른다. 문장 배치의 잘못된 점, 단어, 정확한 대상 미표시(표시하지 않음) 특히 엔터를 적절히 사용할 줄 모른다. 그리고 아직도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쓰는 오타, 단어의 부적절한 사용, 그리고 이상한 문장의 배치, 은서는 사고력이 일단 부족하며, 글을 쓰는 성의가 부족하다,

엔터키는 자주, 자연스럽게

맨 위 은서의 글은 아빠와 함께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던 2월에 쓴 것이다. 그래서인지 준석의 말대로 엉망진창으로 이상한 글이다. 주제는 ‘나의 인생’인데 내용은 조잡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 꼬맹이 주제에 외할아버지 장례식 때 자기가 몇 살이었는지도 헷갈려한다. 오타에 맞춤법도 오락가락이다. 개념상실 초딩 글의 전형이다. 준석이가 빨간 볼펜을 들고 연신 혀를 차며 한숨을 내쉰 것도 무리는 아니다.

먼저 준석의 지적 중 몇 가지 부정확한 부분을 짚고 넘어가자.

첫째, 띄어쓰기 중, 오히려 은서가 바르게 쓴 경우도 있다. ‘우정유치원’ ‘중간고사’는 붙여 쓰는 게 맞다.

둘째, 설마 회사 이름 앞에 소문자를 쓰겠냐고? 소문자 쓸 수 있다. 고유명사를 대문자로 쓰는 게 일반적이긴 하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가령 아빠가 예전에 만든 신문섹션 이름은 ‘esc’였다. (준석의 글에도 역시 비문과 맞춤법 오기가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준석과 은서에게 다른 사람의 글을 확인하고 수정하도록 한 것은 ‘퇴고’(推敲)의 기본에 관해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퇴고란 사전적으로 “글을 지을 때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고 다듬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비문이나 틀린 맞춤법부터 먼저 돌아봐야 한다. 그 다음에 더 자연스럽고 창의적인 표현을 찾으면서 글을 가다듬는다. 기본이 이뤄져야 고차원적인 퇴고가 가능한 셈이다. 준석이 지적한 부분은 은서가 ‘퇴고’할 때 반드시 심사숙고해야 할 사항이다.

그중에서 오늘은 딱 한 가지만 부각시켜 말하고 싶다. 바로 ‘엔터’다. ‘엔터’키는 컴퓨터의 한글프로그램에서 행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자판이다(원고지나 공책에 쓴다면 그냥 행을 바꿔 단락을 다르게 나눠주라고만 해야겠다). ‘엔터’키에 관한 내용은 준석의 평가 중에서 ‘강추’하고픈 대목이다. 이를 두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1. 엔터키를 ‘자주’ 누르자

은서는 그래도 엔터키를 자주 눌렀다. 엉뚱한 시점에 눌러서 탈이었을 뿐! 은서와는 정반대로 글 한 편 쓸 때 엔터키를 한 번도 안 누르는 경우가 있다. 눌러도 아주 인색하게 누르는 어린이들이 많다. 어른도 예외가 아니다.

엔터키를 누른다는 것은 행과 단락을 나눈다는 의미다. 단락을 바꾸는 ‘행갈이’가 하나도 안 된 글을 보면 숨이 가빠온다. 그 빡빡한 글을 숨을 참고 단박에 읽으라고? 엔터를 누른다 함은 읽는 독자에게 잠깐 쉬면서 호흡을 가다듬으라는 신호다. 정확한 기준은 없겠지만, 최소한 200자 정도 쓰고 난 다음엔 반드시 엔터를 한 번 눌러주자. 다만 너무 자주 눌러 단락이 잘게 쪼개지면 경박한 글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

2. 엔터키를 ‘적절하게’ 누르자

준석의 말처럼, 은서는 「나의 인생」을 쓰며 엔터키를 어지럽게 눌렀다. “유치원 때 아이들 대부분은 딱딱한 종아리를 때리면 운다”고 해놓고 “하지만 난 안 울었다”를 쓰기 전 엔터를 눌렀다. 이 엔터키 작동으로 인해 흐름이 어색해졌다. 당연히 두 문장은 서로 손을 잡고 있어야 하는 관계다. 결코 이별이 성립되지 않는 사이다. 엔터키를 적절한 시점에 잘 눌러야 전체 글을 작은 뭉치 단위로 잘 조직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글을 물길로 친다면, 엔터키란 곡선의 흐름에 비유할 만하다. 물이 한없이 직선으로만 흐르면 재미없다.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굽이치는 전환이 없으면 지루하다. 이건 글의 호흡과 리듬과 관련된 이야기다. 논지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변화를 줄 땐 엔터키를 눌러줘야 이해하기 쉽게 읽힌다. 엔터란 ‘알아먹기 쉬운 글’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다. 엉뚱한 곳에서 아무 때나 누르면 난해한 글이 되기 십상이고 독자들의 머릿속은 꼬인다.

오늘은 비문으로 시작해 엔터키로 끝났다. 쓰다 보니, 비문은 금지하고 엔터키는 장려하자는 결론이 났다. ‘엔터키 잘 누르기’ 캠페인이라도 벌이고 싶다. 무엇을 위해? 부드럽게 흐르는 글쓰기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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