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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도대체 이 아저씨는 누굴까

팬이 쓰는 ‘서태지 역사’ 1편 “근데 아저씬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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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눈앞에 둔 서태지이지만 데뷔 때부터 조금도 변치 않은 외모처럼 처음과 다름없이 한발 앞서 나간 음악과 스타일을 추구하는 그이니만큼 벌써부터 9집이 기다려진다.


“근데 아저씬 누구세요?”

2008년 한 휴대전화 CF에서 샤방한 미소를 날리며 데뷔 때부터 18년간 변치 않은 미모를 뽐내는 ‘우리 오빠’를 보는 것은 분명 큰 즐거움이었다. 또한 불특정 다수에게 팬들만이 알고 있었던 그의 능청스러운 표정 연기를 공유해야만 한다는 것은 묘한 질투심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그의 매력을 십분 살린 CF였다.

하지만 CF에 삽입된 길지도 짧지도 않은 소녀의 이 한마디는 2008년 서태지의 팬들을 더 큰 충격에 빠뜨렸다. 똘망똘망하게 생긴 한 10대 소녀는 ‘감히 서태지를 못 알아보는 이가 있다니’라는 놀라움과 ‘이제 서태지를 모르는 세대가 대중문화의 중심축이 됐다’는 서글픔을 동시에 안겨줬다.

과연 요즘의 ‘소녀’들은 알고 있을까. 그 예쁘지만 한편으론 싱거워 보이는 ‘아저씨’가 사실은 대한민국 가요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과 막강 팬덤을 가진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것을. 지금 자신들이 열광하는 아이돌 ‘오빠’들의 영원한 워너비라는 것을.

18년째를 맞이한 서태지의 활동을 동시대에 함께 살아가며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리고 있는 축복 중 하나다. 데뷔 이후 이슈가 되지 않았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관심의 한가운데 서 있는 서태지이기에 그의 존재 가치를 모르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1992년 MBC 프로그램 <특종 TV 연예>


 

사실 서태지가 처음부터 가요계의 총아였던 것은 아니다. 1992년 MBC 프로그램 <특종 TV 연예>를 통해 데뷔 무대에 오른 서태지는 당시 심사위원들로부터 최저 점수, 흠 많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 대중음악계에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던 ‘랩’이 섞인 노래는 당시 심사위원들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작은 비루했으나 그 끝은 창대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곡 「난 알아요」는 이내 ‘모르는 이는 간첩’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의 히트곡이 됐다. 여러 가수들은 앞 다퉈 자신들의 노래에 랩 파트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심사위원들보다 더 발 빠르게 그의 ‘참신함’을 포착해냈다. 1초에 17음절을 발음한다는 래퍼의 가사도 알아들을 정도로 단련된 요즘 아이들의 귀에 「난 알아요」의 랩은 말 그대로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당시에 이들의 노래는 속사포 랩보다도 충격적이었다. 트로트, 발라드, 댄스로 점철됐던 한국 가요계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던 이들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속속들이 스며들었다. 이어진 곡 「환상 속의 그대」 속 가사처럼 서태지의 음악은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였던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악기 태평소를 당당히 후렴구에 녹여냈고, 남자면서도 당당하게 치마를 입고 춤을 췄고, 어떤 관점에서는 ‘추리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스노보드 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기행(奇行)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던 이 모든 것들은 서태지이기에 새로운 영역의 개척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가 발표한 곡들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인기 행진을 이어갔다. 벙거지 모자를 뒤집어쓰고 상표도 안 뗀 옷을 입고 춤을 추던 청년은 전설이 되어갔다.

서태지는 집 나간 아이도 돌아오게 한다!

1995년 경향신문 기사


하지만 서태지가 지금까지도 ‘전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유가 단지 우리나라 음악의 장르를 다채롭게 만든 인물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단지 그뿐이었더라면 그는 좀 더 나은 실력을 가진 여러 후배 가수 혹은 작곡가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줬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는 18년 동안 정상의 자리를 내어준 적이 없다. 사망이 아닌 은퇴와 컴백 소식만으로 9시 뉴스, 신문 1면에 나올 수 있는 문화적 파급력을 가진 이가 바로 서태지다.

이 파급력의 뒷면에는 ‘대변인’으로서 또 다른 목소리를 내준 서태지의 노래가 있다. 불철주야 만남, 열애, 이별, 그리움에 대해서만 열 올리던 국내 가요계에 서태지의 가사는 ‘힘’을 담아 그간 사람들이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끄집어내 줬다.

 



학창 시절 「교실 이데아」는 듣는 것만으로도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하나의 창구였다. 마치 학생들의 마음에 들어왔다 나간 것 같이 시원하게 내지른 가사는 발표된 지 10년을 훌쩍 넘긴 지금 들어도 위로가 된다. 「컴백 홈」을 듣고 방황을 멈춘 가출 청소년은 또 오죽 많았나. 요즘 아이돌 그룹 가수들 중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신의 뜻을 실어 노래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또 그들의 노래가 얼마만큼의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까.

솔로 변신 이후에도 서태지는 소외된 인간, 사회적 약자,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음악을 통해 나누고자 했다. 때론 ‘무슨 의미일까’ 하고 곱씹어보게 만드는 알쏭달쏭한 가사지만 그렇기에 그 속에 더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것이 서태지의 능력 중 하나다.

그는 이러한 가사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1995년 발표된 4집 수록곡 「시대유감」은 사회 비판적 내용이 담겼다는 이유로 당시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가사 수정을 요구받았던 것. 이에 서태지는 「시대유감」을 가사 없이 연주곡으로만 음반에 실었다. 꼬장꼬장한 어르신들의 눈 밖에 나고도 남을 법한 행동이었다.

사전심의제도를 아시나요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이듯 이 사건은 지금은 사어(死語)가 되어버리고 만 ‘사전심의’라는 황당한 제도를 철폐시키는 촉매가 됐다(물론 정태춘과 같은 선배 뮤지션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더 컸다). 이를 계기로 서태지는 자신의 문화적 힘을 다시 한 번 확인케 했고 또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중하면서도 무서운 팬덤이라는 서태지 팬들의 결속력과 조직력은 사회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시대유감」은 지금도 서태지가 자신의 공연에서 팬들과 함께 부를 정도로 소중한 의미를 가진 곡이다.

사라질 뻔한 「시대유감」의 가사를 살려낸 것은 휘어지느니 꺾이겠다는 고집을 부린 서태지의 오기이며 ‘우리 오빠’ 혹은 ‘우리 형’의 소중한 노래를 되살리고자 서명 운동, 거리 시위까지 불사했던 팬들의 뚝심이었다.

1995년 동아일보 기사

 


 

유행이 돌고 돌 듯 최근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정을 받고, 음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아이돌 그룹들과 이들을 지키기 위해 탄원서까지 마다 않는 팬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다시 한 번 「시대유감」이 나와 줘야 할 것만 같다.

이처럼 서태지는 지난 18년 동안 대한민국 가요계의 곳곳에 발자취를 찍으며 ‘살아있는 전설’로서의 역할을 다 해왔다. 그를 안다는 것은 18년간 가요계의 역사를 되짚어본다는 것과 다름 아닌 의미일 것이다. ‘또 다시 은퇴 선언은 없다’고 공언한 서태지이기에 그가 만들 또 다른 전설을 기다리고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마흔을 눈앞에 둔 서태지이지만 데뷔 때부터 조금도 변치 않은 외모처럼 처음과 다름없이 한발 앞서 나간 음악과 스타일을 추구하는 그이니만큼 벌써부터 9집이 기다려진다. 완벽주의자로까지 불리는 철두철미한 그의 성격을 봤을 때 이제 기다림의 출발선에 섰을 뿐인데 말이다.

혹, 다음 음반으로 컴백한 서태지를 또 다시 ‘소녀’가 만나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부디 그때에는 “근데 아저씬 누구세요?”라는 당돌한 멘트가 아니라 “사인해주세요!”라며 수줍은 미소를 날려주길 바라본다.

글: ‘서태지 18년지기’ 이수현
사진 자료: 서태지컴퍼니 제공

- 글 / 이수현(tori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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