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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해방의 시인

백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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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기업의 경영진과 노무관리자는 노동조합의 ‘ㄴ’뿐 아니라 노동자의 ‘ㄴ’만 봐도 기겁을 하는 모양이다. 그런 기업들은 사보에 백무산(1955- )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청사, 1988)의 제목이 오르내리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으리라.

청탁원고를 더하고 덜거나 그 원고를 해당 매체에 실을지 말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편집자의 고유권한이다. 다만, 원고 수정은 필자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대개는 그리 하지 않지만. 단언컨대, 모든 문필가는 자기 글에 대해 감내라 콩 내라 하는 걸 달가워 않는다. 어느 회사의 사보에다 독서칼럼을 연재하면서 겪은 편집권과 관련한 해프닝은 어이가 없었다.

나의 사보 연재칼럼은 주제에 따라 책을 서너 권 묶어 소개하는 테마리뷰였다. 노동자 시인의 시집을 다룬 게 내 불찰이라면 불찰이었다. 내 나름으론 노동자의 전투성보다 노동자의 애환 쪽에 무게를 실었는데도 윗선에서 게재를 꺼렸다는 게 담당자의 뒷얘기였다. 담당자의 배려로 내 글은 사보 지면을 탔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거의 모든 기업의 경영진과 노무관리자는 노동조합의 ‘ㄴ’뿐 아니라 노동자의 ‘ㄴ’만 봐도 기겁을 하는 모양이다. 그런 기업들은 사보에 백무산(1955- )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청사, 1988)의 제목이 오르내리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으리라.

그런데 백무산 시인의 첫 시집에 문학제도권은 의외로 우호적이었다. 이산(怡山) 김광섭(金珖燮, 1905-1977) 시인을 기리는 이산문학상의 제1회 수상자로 백무산 시인이 선정된 것이다. 하지만 문학제도권의 우호적인 태도는 여기까지다. 제1회 이산문학상 시상식장은 진풍경을 연출한다. 시상식 참석자의 전언을 듣는다.

“(19)89년도였던가, 문학과지성사가 주관한 제1회 이산문학상 수상식장에서 상을 수상한 시인은 수상 연설에 앞서 멀리 지방에서 상경한 동료 노동자들과 쇳소리 같은 목소리로 노동해방의 구호를 외친 후 노동해방가요를 우렁차게 합창했고, 자유주의적 문인 교수들로 가득한 식장은 일순 찬물을 끼얹은 듯 서늘한 침묵으로 휩싸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시인은 노동해방의 시대적 당위성과 다급함을 역설하는 연설을 마친 후,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식장 분위기를 의식한 듯 지체 없이 남루한 단색 점퍼 차림의, 메마른 그러나 강철 같은 동료들과 식장을 빠져나갔다. 시인의 예기치 못했던 행동은 자유주의 논객이나 글쟁이들에겐 소름 돋는 충격을 주었을지도 모른다.”(임우기, 「혁명의 그늘 속에서 자라는 생명 나무」, 『인간의 시간』)

책상물림 백면서생들의 백지장보다 더 하얗게 질린 낯빛은 ‘안 봐도 비디오’다. 백무산 시인의 시 세계가 단지 ‘노동자의 애환’을 담았다고 하는 것은 ‘한참’ 모자라는 안이한 인식이다. 그의 작품은 삶과 죽음이 오가는 노동현장의 냉엄한 현실에 근거한다. 자본(가)의 ‘현장 제일주의 경영’과는 차원이 다르다. 『만국의 노동자여』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백면서생 무리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나로선 시집 말미에 수록된 해설의 평자가 지적한 ‘노동계급의식의 확실한 당파성’보다 그것의 근거가 되는 현실인식, 특히 지식인 비판에 눈길이 쏠린다. 우선 “성경을 낀 뽀얀 무리”와 “까만 양들”(「그 해 크리스마스」) 사이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피땀 어린 고귀한 생산자의 밥의 나라냐/착취와 폭력의 수탈자의 밥의 나라냐”(「만국의 노동자여」) 그리고 “너희는 조금씩 알지만/우리는 한꺼번에 안다/너희는 우리를 조금씩 갉아먹지만/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을 것이다”(「전진하는 노동전사-울산, 7월 노동투쟁에 붙여」)

이제나저제나 ‘내부의 적’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해방이니 새날이니/가벼운 입으로 소리치지 말아라/적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안에도 우글거린다”(「해방공단 가는 길?1」)

“완장을 낀 팔에 채찍을 들” 지식인은 못 믿을 존재다.

“당신은 여태 부족함 없이/이 나라 최고 대학 그 윗동네까지 나왔지만/모든 것을 버리고 또다른 싸움터에 나섰다지만/떳떳치 못한 일로 숨어 사는 당신을 만나러 와서 보니/완장이라는 것이 당신 얼굴에 새겨져 보입니다”(「지식인이라는 완장」) 「기차를 기다리며」는 내 둘도 없는 친구가 인정한 절창(絶唱)이다.

“새마을호는 아주 빨리 온다/무궁화호도 빨리 온다/통일호는 늦게 온다/비둘기호는 더 늦게 온다//새마을호 무궁화호는 호화 도시역만 선다/통일호 비둘기호는 없는 사람만 탄다// 새마을호는 작은 도시역을 비웃으며/통일호를 앞질러 달린다/무궁화호는 시골역을 비웃으며/비둘기호를 앞질러 달린다//통일 쯤이야 연착을 하든지 말든지/평화 쯤이야 오든지 말든지”(「기차를 기다리며」 전문)

나는 백무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노동문학사, 1990)를 읽다가 질겁한다. 96쪽 다음이 113쪽이다. 오, 마이 갓! 시집을 이리저리 떠들어 보니 파본은 파본이되 낙장 파본은 아니다. 97-112쪽이 144쪽과 145쪽 사이에 있다. 제본 실수라서 천만다행이다.

백무산 시인의 초창기 시집은 내 군복무 기간에 나왔다. 첫 시집은 입대 한 달 후 출간되었다. 전역을 반년 앞둔 시점에 출판된 그의 두 번째 시집을 나는 휴가기간에 구입했다. 간지에 책 산 날을 적어 놨다. “1990. 5. 16” 아무튼 두 번째 시집에서 백무산 시인은 충분히 예고된 ‘엄청난 일탈’을 감행한다.

그는 파업을 찬미한다. “아무리 힘든 싸움일지라도/숨죽여 눈치보며 살던 날에 비하면 잔치다”(「파업은 축제」) “우리도 사람대접 받자고/이 고생으로 싸우는 거 아이가”(「돈독 올라 이 짓 하나!」) “어머니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생존의 전쟁입니다”(「이것은 불효가 아닙니다」) “죽일 수는 있어도 양보하지 말라!”는 자본 진영의 방침과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 없다는/(노동자의-인용자)바리케이드”(「대접전의 바리케이드」) 사이에 타협점은 없다.

시인은 ‘얼굴 없는 시인’을 호명한다. “잊지 않으리라 박노해 시인이여!”(「사슴과 돼지」) ‘박노해 신화’가 온전하던 시절이다. 1985년 7월 28일, 고3의 본분을 망각한 나는 서점에서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풀빛, 1984)을 사 갖고 와 독파한다. 1988년 말부터 1989년 초까지 4개월에 걸친 울산 현대중공업 파업투쟁을 형상화한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는 장쾌한 대서사(大敍事)다.

백무산 시인의 세 번째와 네 번째 시집은 창작과비평사(현 창비)의 ‘창비시선’으로 나왔다. 제3시집 『인간의 시간』(1996)은 “운동도 조금씩 꼬여버린 세상”(「강령」)에서 “‘경계’의 세계를 보여주는 시집”(임우기, 「혁명의 그늘 속에서 자라는 생명 나무」)이다. 시인은 직접 「경계」를 노래하는 데다 시어 ‘경계’는 다른 작품에서도 곧잘 보인다.

“사람들은 저마다 적당한 안팎의 경계를 긋고”(「집」), “사는 일과 죽는 일의 경계가 얼마쯤 될까”(「한 소작인의 죽음」) 헤아린다. 「두 사람」 「부당한 인간」 「그해 봄날」 「운이 나빴다」 「인간의 벼랑」 「자연과의 협약」 「슬픔보다 깊은 곳에」가 다 좋다. 그중에서 알싸한 「두 사람」을 아내에게 읊어주는데 목이 맺힌다.

“공장 프레스에 발가락 다섯이나 잘리고/아물기도 전에 절룩거리며 출근해/손가락 여섯 개나 잘리고도/송아지 다섯 마리 값 겨우 받아 무허가/움막 하나 짓고 소작논 열 마지기/네 손가락으로 경운기 몰아 다 거둬내던 친구/그 움막 가로질러 길이 나고 아파트 들어서니/똥통 묻고 하수구 파는 일 날품 팔며 사는데/그 툭툭한 성격 세상 곧 무너진대도/허허 웃어버리는 셈법이 서툴러 곧잘 당해도/남에게 신세지고는 죽어도 못 사는 친구

나보다 두엇 많은 비계공 또 한 사람/아홉 살에 껌팔이 열여섯에 머슴살이 이년에/품삯 쌀 두 가마 지고 서울 가서 공장살이/공수부대 말년 군대 징역살이/해고와 복직 산재사고 병원살이/유인물 글발 좋고 그른 일에 날선 칼날 같아도/눈물 많은 사람/마흔 중반에 작은 집 한 채 마련해 놓고는/그것이 미안해서 자기만 편해졌다고 면목없다고/더 묵고 가라고 더 마시고 가라고 이건 가지고 가라고/화를 내며 붙잡는 사람

마흔이 넘도록 스승 하나 선배 하나 못 둔 나는/답답하면 그들에게 물으러 간다/그들이 모르면 그것이 해답이다/내가 세상을 재는 눈금이다”(「두 사람」 전문)

제4집 『길은 광야의 것이다』(1999)는 『인간의 시간』의 연장선에 있다. “그가 삶의 치열한 과정을 통해 담보하는 언어와 자신을 포함한 시대 전체를 비판적으로 통찰해내는 직관, 그리고 세계의 갱신을 위해 지향성을 포기하지 않는 ‘변혁적 정신의 일관성’은 한층 달라진 세계를 보여준 연전의 시집 『인간의 시간』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이번 시집 『길은 광야의 것이다』에서도 여전히 어쩔 수 없는 배음을 이루고 있다.”(이영진, 「시장에서 산정으로」)

『길은 광야의 것이다』의 해설을 쓴 이영진 시인은 「물빛」을 눈여겨본다. 백무산 시인의 시력(詩歷)과 노동자 정체성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거의 종교적 게송으로 읽기 쉽지만, “이항 대립적인 분별과 차이를 인위적으로 통합하려 했던 과거의 어리석음을 훌쩍 뛰어넘는 선적 인식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 사는 소리가 웅얼거려 알 수가 없다/밖으로 가니 안이 그립고/안으로 가니 밖이 그립고/안팎을 하나로 하겠다고/얼마나 덤볐던가/저 물빛은 안인지 밖인지//오늘 아침 얼음물에 빨래를 하는데/그 물빛이 어찌나 눈부시던지”(「물빛」 전문)

당신의 서재를 보여주면 당신이 누군지 말해주겠다는 독서격언은 당신이 먹는 것을 알려주면 당신의 몸 상태를 가늠할 수 있다는 건강속설에 비해 설득력이 약하다. 섭취하는 음식과 건강의 연관성은 매우 높지만 읽은 책과 자아 정체성의 관계는 뚜렷하지 않다. 더구나 서재의 책들이 단지 장식용일 경우는 아무 상관없다. 그런데 어떤 집의 상태와 집주인의 두뇌 구조는 연관성이 분명하다.

“남의 집을 방문하거든/가만히 그냥 가만히 구조를 둘러볼 일이다/그 집의 상태는 주인의 두뇌 구조와/꼭 일치하는데//여기저기 먼지가 쌓여 있거든/주인의 머리에도 곰팡이가 슨 줄 알고/화분의 흙이 메말랐거든/그 머리도 이제 식어가리라/벽은 그 사람 음악적 감각을 표현하고/바닥에서 그 사람 계산 능력을 보리라/책상 위에는 그 사람의 미처 오지 않은 미래가 있고/부엌엔 그 사람 성적인 취향도 있으리라”(「그 집」 부분)

『길은 광야의 것이다』에선 「출렁거리는 사람」 「살아 있는 길」 「선량한 권력」 등이 내 마음을 끈다. 다섯 번째 시집과 여섯 번째 시집은 ‘연년생’이다. 『초심(初心)』(실천문학사, 2003)에 대한 시인의 자체평가는 박하다. “작년에 낸 『초심』도 내가 쓰레기통에 처박은 원고를 그(동료시인-인용자)가 끄집어낸 것이었다.”(『길 밖의 길』, 후기)

시집 해설을 맡긴 문학평론가한테는 “시가 좀 단조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초심』을 해설한 문학평론가는 부정적인 평가가 아니라 겸양으로 받아들인다. “시집을 다 읽고 난 지금 내 느낌은 이렇다. 만일 단조로움이 시적 사유의 움직임이 미미하거나 둔한 것을 의미한다면, 그의 시들은 결코 단조롭지 않다. 다시 말해서, 그의 시들은 무언가 계속 사유하고 있다.”(정남영, 「건너는 일과 다시 살아나는 일」)

먼저 『초심』에서 내 마음을 움직인 시구 한두 줄이다. “먹이 순환이 둥글다 어쩐다 하지만/그건 포식자들이 둘러댄 수작이다”(「바다 전부」) 이런 포식자, 사람 말고 누가 더 있으랴! “동물은 사람뿐이다”(「야생」) “야생의 들짐승”과 “야생의 날짐승”, 곧 “야생에는 식물성 냄새가 난다”(「야생」) “아는 만큼 본다는 것/아는 만큼만 보는 것”(「첨성대」) 나는 누군가가 유행시킨 ‘아는 만큼 본다’는 감상의 기율이 싫었다.

다섯 번째 시집의 5부에 놓인 작품들은 더 좋았다. “그러나 나는 걱정스럽게 말한다. 생존을 분배받기 위해 화염병으로 저항하고, 생활을 분배받는 일로 쇠파이프로 무장하는 일이 어쨌단 말인가. 그러나 욕망을 분배받는 일은 벼랑으로 가는 일, 노예 되기를 동의하는 일, 저 강물을 배반하는 일, 나무를 능멸하는 일, 저들과 공범이 되는 길. 이제 다시 물어야 한다, 왜 파업을 하느냐고, 다시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답은 이제는 달라야 한다고.”(「욕망의 분배」 부분)

여섯 번째 시집 『길 밖의 길』(갈무리, 2004)은 그가 천생 시인임을 잘 보여준다. 그에게 시작(詩作)이 “우연한 발길”(‘후기’)은 당치 않다. 시업은 그의 천직이다. 『길 밖의 길』은 첫 시집의 감동에 필적한다. ‘혁명적 낙관’을 읽는다면, 나의 오버일까?

“이 싸움이 네 욕망이냐 내 욕망이냐가 될 수 없다/네 권력이냐 내 권력이냐가 될 수 없다/네 것 내 것 차별이 될 수 없다 그 자체다/강도라면 강도 자체를/총칼이라면 총칼 자체를 무너뜨리는 일/이것이 얼마나 먼 길이냐/얼마나 가까운 내 안의 길이냐/그래서 삶은 언제나 길 위에 있다/살아서 언제까지나 가슴을 치며 울기를/두려워 말자”(「이럴 줄 알았으면」 부분)

그리고 정겨운 안타까움이라고나 할까. 아니, “질펀한 글썽임”이다. 속으로 우는. “베트남에서 온 여공 하나가 작업복 잠바에 손을 찌르고/고향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어둑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그 하늘에 주먹별 하나 글썽입니다”(「그대 없이 저녁은 오고」) “누가 저 아이 짐 좀 들어주오/기차는 떠나는데/봄볕이 저 아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데/누가 제발 저 아이 짐 좀 들어주오”(「동해남부선」)

또한 어김없는 절창 한 가락. “무엇이 세상을 지배하는가/무엇이 권력을 탄생시키고/무력을 조직하며 이데올로기를 조작하는가/무엇이 전쟁을 유도하고/무엇이 학살을 지시하는가//그것은,//혐오다//그대, 거리에 나가 목청껏 평화를 외쳐 보아라/그대가 만약 가진 것이 없거나/가진 것이 없는 자들의 편이거나/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백성이거나/지구상의 지배적인 종족이 아니라면/그대에게 돌아오는 것은/박수도 아니고 찬사도 아니다/혐오의 화살이다”(「혐오」 부분)

『거대한 일상』(창비, 2008)은 백무산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이다. 원시반본(原始返本). 시인은 처음으로 돌아왔다. 적어도 앞표지 날개의 사진 속 시인의 얼굴은 첫 시집 앞표지 날개의 자화상과 다름없다.

그간 시인은 더러 옛 절터와 사찰을 찾았다. 「감은사지」 「미륵사지」 「창림사지」, 그리고 「운주사」다. 이 중 두 곳을 다시 찾는다. 제목은 같아도 시의 내용은 다르다. 다만, 세 번째 시집의 10쪽과 11쪽에 「감은사지」가, 네 번째 시집 역시 10쪽과 11쪽에 「운주사」가 터를 잡은 것은 그저 우연이다. 내가 『거대한 일상』에 대해 ‘놀라운 성취’ 운운 하는 것은 상투적일뿐더러 꽤나 건방지다. 나는 그저 진경(眞境)이라 할밖에.

“그래, 저리 생긴 사람들 있었지/볕이 드는 곳 번듯한 곳은 그를 외면해도/그늘진 뒷일 도맡아 말이 없고/있는 둥 없는 둥 궂은 일 묵묵 눈 맑은 사람들 있지/기죽지 마시게, 그대들이 내일의 사람이네/미래는 늘 오늘의 발바닥에 있다네/길과 맞닿아 길과 한몸인 사람이라야/희망을 말할 수 있다네/만약 그러지 못했거든 발바닥을 보시게/그대들이/다시 누군가를 밟고 있었거나”(「누군가를 밟고 있었다면」 부분)

“두 여인의 고향은 먼 오스트리아/이십대 곱던 시절 소록도에 와서/칠순 할머니 되어 고향에 돌아갔다네/올 때 들고 온 건 가방 하나/갈 때 들고 간 건 그 가방 하나/자신이 한 일 새들에게도 나무에게도/왼손에게도 말하지 않고

더 늙으면 짐이 될까봐/환송하는 일로 성가시게 할까봐/우유 사러 가듯 떠나 고향에 돌아간 사람들

엄살과 과시 제하면 쥐뿔도 이문 없는 세상에/하루에도 몇번 짐을 싸도 오리무중인 길에/한번 짐을 싸서 일생의 일을 마친 사람들/가서 한 삼년/머슴이나 살아주고 심은 사람들”(「가방 하나」 전문)

시인이 개명한 이름 무산은 無産이다. 프롤레타리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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