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작곡가의 진정한 스토리텔링 앨범 - 김광진 <Solveig> (2002)
김광진 음악의 근간에는 언제나 유려한 멜로디와 풍부한 이야기가 있다. 그의 대표곡인 「마법의 성」만 들어도 이 두 가지의 화학 작용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94년 발표된 어른들을 위한 동화 「마법의 성」. ‘김광진’에게 상징처럼 따라오는 이 곡 하나만으로 그의 음악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단순한 화성과 최소한의 편곡에서도 최고의 멜로디를 뽑아내는 예의 그 유연한 감성 말입니다. ‘이승환’ ‘한동준’ ‘이소라’ 등의 작곡가로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은 5집까지 발표한 솔로 뮤지션이기도 하죠. 물론, ‘박용준’과 함께 활동한 ‘더 클래식’으로도 이미 3장의 앨범을 가지고 있고요.
2002년에 나온 이 <Solveig> 앨범은 마이너와 메이저의 감성을 아우르며 주로 발라드를 써 왔던 그에게 ‘모던록’의 감성까지 있음을 재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삶의 단상을 떼어 낸 진솔한 가사 「유치원에 간 사나이」를 비롯해 「동경 소녀」 「오딧세이의 항해」에서는 여전한 대중적 선율 감각을 보여 준 김광진의 4집입니다.
김광진 <Solveig> (2002)
김광진 음악의 근간에는 언제나 유려한 멜로디와 풍부한 이야기가 있다. 그의 대표곡인 「마법의 성」만 들어도 이 두 가지의 화학 작용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법의 성」 자체가 예쁜 선율과 함께 동화에나 나올 법한 가사로 남녀노소의 감성을 자극했던 곡이기 때문이다.
1992년 1집<Virgin Flight>로 음악계에 발을 디뎠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김광진은 키보디스트 박용준과 함께 1994년 ‘더 클래식’으로 나타났다. 이제 국민가요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마법의 성」으로 떠올라, 그 이전에 한동준의 「사랑의 서약」, 이승환의 「내게」,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 등을 만들어 냈던 작곡가로서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덕분에 김현철, 김동률, 유희열 등 90년대 싱어송라이터 군(群)에서 그 역시 빠뜨릴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냈고, 1998년부터 솔로 활동을 재개하기에 이른다.
2002년에 발표한 4집 <Solveig>는 김광진의 솔로 앨범 중에서도 위에서 언급한 ‘멜로디’와 ‘이야기’라는 김광진 음악의 구성 요소가 가장 알차게 담긴 작품이다. 그리고 덧붙여 센스 있는 실험까지 가미되었다. 이미 2집의 웰 메이드 팝 「진심」과 3집의 호소력 짙은 발라드 「편지」로 특유의 감성을 선보였던 그는 더욱 깊어진 음악적 색채를 이 앨범에서 마음껏 풀어냈다.
<Solveig>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나뉜다. ‘서글픈 신화’와 ‘모던한 일상’이 그것이다. 수록곡의 비중만으로는 후자에 더 힘을 실은 것처럼 보이나, 「솔베이지의 노래」 「오디세이의 항해」 「글레디에이터」에 담긴 신화 속의 슬픈 사랑은 그에 못지않은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즉 <Solveig>는 전설의 시대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동일한 감정에 가교 역할을 하는 앨범이라고 볼 수 있다.
아련한 새소리와 함께 첫 문을 여는 「솔베이지의 노래」는 입센의 극시 <Peer Gynt>에 등장하는 솔베이지라는 여성에게서 모티브를 따온 곡이다. 솔베이지는 주인공 페르귄트가 부와 권력을 찾아 떠돌며 패망하는 동안 그만을 기다리던 과거의 연인으로, 늙고 병들어 돌아온 옛사랑을 안은 채 그의 임종을 지키는 인물이다. 이미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Grieg)에 의해 만들어진 관현악용 조곡, <페르귄트 모음곡> 중 제2조곡의 4곡으로 알려진 「솔베이지의 노래」와도 맞닿아 있다. 말하자면 김광진의 「솔베이지의 노래」는 솔베이지라는 비운의 여인을 둘러싼 대중음악 송가인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오디세이의 항해」도 이와 비슷한 정서를 가진다.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산 오디세이가 아내 페넬로페가 있는 이타카로 가는 동안 마녀 칼립소나 뱃사람을 유혹하여 죽음으로 몰고 가는 세이렌 등으로 상징되는 장애를 극복하고 그녀에게 돌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또 「글래디에이터」는 앞의 두 곡에 비해 뚜렷한 설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목을 통해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언젠가 일어난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처연하기까지 한 이 세 발라드와는 다르게 지금 펼쳐지는 삶은 감각적이다. 알싸한 미련을 미디움 템포로 담아낸 타이틀곡 「동경소녀」부터가 그렇다. 바쁜 일상을 정신없이 살아가다 잠깐 숨 돌리는 틈에 불현듯 생각난 것 마냥 어수선한 마음을 단숨에 노래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 속에만 적혀 있는 지난날의 언어와는 뚜렷한 구분선이 생긴다.
이별이든 설렘이든 현재 진행형의 마음을 담기 위해 김광진이 차용한 방식 중 하나는 모던록이다. 출근길에 문득 헤어짐을 떠올린 「출근」, 달콤한 키스의 향기에 취한 「비타민」, 부녀간의 정을 귀엽게 그린 「유치원에 간 사나이」가 여기에 속한다. <Solveig>가 나온 시기는 대중 지향적인 밝은 모던록이 성행하던 때이니만큼, 가장 트렌디한 방식으로 현실을 그려 냈다고 할 수 있다.
어쿠스틱 기타를 배경으로 한 예쁜 팝 「Only for you」,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랩이 삽입되어 나름의 궁합을 자랑하는 「She」까지 그는 꽤 다양한 스펙트럼을 최대한 펼쳐 놓는다. 수록곡의 순서상 이렇게 늘어놓은 노래들은 어수선해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olveig>에는 과거와 현재라는 이 두 개의 시간을 동일하게 관통하는 정서가 흐른다. 그리고 그것이 앨범에 완벽한 통일성을 부여한다.
마지막 곡인 「약속」이 바로 이 구조를 완성시키는 노래다. 이별이 사랑을 가로막더라도 꼭 돌아오겠노라는 약속은 솔베이지나 오디세이의 굳은 언약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쿨하게 감정을 표현한 「출근」이나 「
동경소녀」의 화자인 ‘나’의 속마음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지금의 사랑이 많은 세월을 돌아 주인을 잃은 민담처럼 변할지라도, 그 마음만은 여전하리라는 가슴 아린 맹세가 <Solveig>의 본질인 것이다.
CD가 한 번 돌고 난 후 남겨진 정적 속에서 이제 대중은 깨닫게 된다. 김광진이 왜 신화의 서사를 끌어 왔으며, 그와 함께 세련된 음악을 한곳에 담았는지를 말이다. 이를 통해 김광진은 작곡가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최신 감각을 선보일 수 있었으며, 동시에 심도 있는 메시지로 감동을 담보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Solveig>는 시대를 초월하는 강한 울림을 가진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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