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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디바의 최고 앨범 - 박정현 <Op.4> (2002)

폭이 작은 바이브레이션,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파워라고는 믿기지 않는 힘과 안정된 고음 처리, 그리고 예쁜 음색은 데뷔 10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그녀만의 특별한 감성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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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라디오 전파를 타고 흐른 「나의 하루」의 감동을 아직도 기억하는 음악팬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당시 ‘알앤비’라는 장르는 ‘김조한’이라는 도식 관계가 성립한 터라 라디오에서는 신인이었던 '박정현'을 ‘여자 김조한’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했었죠. 그때는 대중화되지 않았던 ‘알앤비’라는 장르의 창법, 이를테면 고음을 넘나드는 ‘꺾기’와 특유의 손동작을 알앤비와 동일시하는 음악팬들이 많았을 정도니까요. 폭이 작은 바이브레이션,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파워라고는 믿기지 않는 힘과 안정된 고음 처리, 그리고 예쁜 음색은 데뷔 10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그녀만의 특별한 감성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노래를 잘하는 가수들은 많이 있지만 ‘디바’라는 타이틀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영예의 타이틀을 더욱 공고히 만든 <Op.4>. ‘015B’ 출신 ‘정석원’의 감각적인 프로듀싱과 최고의 보컬이 일궈 낸 가장 이상적인 결합이라는 평을 받았었죠. 「꿈에」와 「미장원에서」가 수록된 박정현의 4집입니다.

박정현 <Op.4> (2002)

포스트 서태지와 아이들. 그 시기는 곧 아티스트 부재의 시대였다. 꼭 서태지만이 최고의 아티스트였고, 그 이후엔 당할 자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이후 곧바로 등장한 H.O.T, 젝스키스와 ‘SM vs DSP’ 양자 구도는 가요계를 끝도 없이 엔터테인먼트화 시켜 나갔고, 결국 한국 대중음악계는 비주얼과 아이돌의 홍수로 넘쳐 났다.

그런 음악이 실종된 시대에서 나름대로 뮤지션으로서의 본분을 다한 사람들은 바로 신진 알앤비 발라드 가수들이었다. 때마침 한국에는 노래방이 건전한 놀이 문화로 완전히 정착했고, 학생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친구들 앞에서 어려운 알앤비(R&B) 발라드를 소화해 내는 것을 ‘멋있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회성과 실험성이 상실된 시대에 다시 꽃피운 예술성은 바로 ‘가창력’이었다. 사람들은 노래를 잘하는 것을, 특히 소울(Soul) 패턴으로 부르는 것을 곧 음악성이 높은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박정현은 바로 그러한 ‘가창력’을 대표하는 가수였다. 이 음반 <Op.4>의 프로듀싱을 맡았던 015B의 정석원은 훗날 박정현을 처음 만났던 느낌에 대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노래를 잘하더라.”라고 회상한 바 있다. 식상한 발라드라면 그 형식에 넌더리를 내던 팝 마니아들도 박정현의 가창력만큼은 결코 무시하지 못했다.

게다가 박정현은 한국말을 그다지 잘하지 못하는 ‘외국에서 건너온’ 가수였고, 따라서 그것은 곧 모던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토니 브랙스턴(Toni Braxton), 셀린 디옹(Celine Dion) 같은 디바들이 한창 활약하고 있던 시대란 점도 호재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녀는 ‘노래 잘하는 여가수’ 이미지에서 항상 1등이었다. 빅마마 이후로 여가수들의 노래 패턴에 수정이 가해지기 전까지, 주변에서 노래 좀 잘한다는 여자 아이들은 모두 박정현의 창법을 흉내 내고 있었다.

이 음반은 바로 그 ‘가창력의 시대’를 대표하는 박정현의 최고작이다. 2002년 발표된 이 작품은 「꿈에」 「생활의 발견」 같은 노래들을 상당히 히트시켰고, 판매고 29만 장을 올리며 그해에 가장 중요했던 음반 중 하나로 기록된다. 많은 사람들이 애청했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음반에 수록된 노래들은 라디오에서 자주 신청곡으로 올라온다. 그만큼 당시 대중들, 특히 10대와 20대 여성들은 이 앨범에 강렬하게 빠져 들어갔다.

음반 안에서 가장 빛났던 곡은 단연 「꿈에」였다. 이 노래는 박정현의 여리게 아파하는 감성의 결정판이자, 지금껏 발표된 가장 아름다운 ‘스토리텔링’ 노래 중의 하나였다. 너무 보고 싶어 꿈속에서 만났지만 꿈이기에 다시 헤어져야 하는 아픔을 다룬 가사의 내용은, 그 설정의 초현실성 만큼이나 아득하고 큰 스케일의 편곡을 배경으로 했고, 박정현은 여기에 애원하는 오열의 애드립을 더하여 장대하고 지독하게 슬픈 노래를 만들어 냈다.

그 인상은 월드컵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잊히지 않는 것이었다. 반응은, 작지만 폭발적이었다. 비록 국민가요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감수성이 예민한 가요 팬들은 누구나 이 노래를 알았다. 전에는 박정현을 잘 듣지 않던 사람들도 그녀를 듣기 시작했고, 이미 발표된 앨범 3장을 모두 무효화시킨 채 단순히 「꿈에」와 그녀를 동일시하는 사람도 많았다. 심지어 그 경향은 아직도 유효하다.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 박정현은 ‘「꿈에」 같은 곡을 다시 만들어 내라.’는 대중들의 요구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박정현은 뛰어난 가창력 말고도, 독특한 감수성의 소유자였다. 「생활의 발견」 「여자친구 참 예쁘네」 같은 곡이 대표적인 예로,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고백들이 예쁜 일기장에 써 내려가듯이 살포시 담겨 있다. “맛있는 집을 알아냈는데, 재밌는 영화 개봉하는데” “니가 바람둥이니? 그렇게 빨리 변할 수는 없잖아” 같은 표현들은 비록 작사가가 정석원이긴 했어도, 박정현의 특색을 각인시킨 독특한 어법이었다.

박정현은 2005년 새 앨범 <On & On>을 발표했지만, 분명 수준급의 음악성을 뽐냈음에도 불구하고 「꿈에」의 큰 산을 넘지 못했다. 그만큼 이 음반의 임팩트는 강했다. 그 충격과 감동만으로도 2000년대를 상징하는 가요 앨범들 중 하나로 기록될 만하다.

가창력의 시대를 열었던 1등 디바의 최고 앨범이다. 박정현은 자신의 잠재 가능성을 이 음반 속에서 가장 화려하게 꽃피웠다. 임재범도, 박효신도, 휘성도, 아직 「꿈에」 만큼 멋진 곡은 발표하지 못했다.

- 글 / 이대화(dae-hwa82@hanmail.net)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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