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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데뷔 앨범 중 하나 - 윤상 <윤상 1집>(1991)

후배 음악인들이 꼭 들어야 했던 한 음악 작가의 제대로 된 신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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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KBS <가요 톱 10>에서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와 윤상의 「이별의 그늘」이 순위를 다툰 적이 있었다. 탄탄한 가창력 덕분에 1집을 발표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정상의 자리에 올라선 신승훈은 발라드 챔피언 자리를 쉽사리 내줄 것 같지 않았지만, 작곡 실력은 물론 소녀 팬들을 사로잡는 분위기까지 겸비한 윤상도 만만치 않은 강자였다.

가요계에서 여전히 작가적 마인드를 유지하며 음악을 하는 이들은 싱어송라이터들과 홍대 앞 인디 뮤지션들뿐이란 슬픈 이야기가 돌곤 합니다. 그만큼 요즘 음악계가 기획사 중심, 아이돌 일변도로 흘러간다는 얘기겠죠. 유희열, 김동률이 최근 더 각광받는 건 그런 연유도 클 겁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윤상에 대한 평가가 다소 소외되어 있는 건 아쉬운 일입니다. 윤상의 데뷔작 <윤상 1집>의 리뷰를 싣습니다.

윤상 <윤상 1집>(1991)

오래전 KBS <가요 톱 10>에서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와 윤상의 「이별의 그늘」이 순위를 다툰 적이 있었다. 탄탄한 가창력 덕분에 1집을 발표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정상의 자리에 올라선 신승훈은 발라드 챔피언 자리를 쉽사리 내줄 것 같지 않았지만, 작곡 실력은 물론 소녀 팬들을 사로잡는 분위기까지 겸비한 윤상도 만만치 않은 강자였다. 윤상과 신승훈뿐만 아니라 김현철, 김민우, 신해철 등 1968년과 1969년생 가수들이 가요계의 실권을 잡았던 1991년의 일이다.

사실상 윤상에 대한 음악계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신승훈의 등장보다 이전이었다. 1987년, 김현식에게 「여름밤의 꿈」을 주며 가요계에 입문한 이래 그는 작사가 지예와 콤비를 이뤄 변진섭에게 만들어준 「로라」, 김민우의 「친구에게」와 「입영 열차 안에서」, 아역 탤런트 출신인 황치훈의 가수 데뷔곡 「추억 속의 그대」 등을 줄줄이 히트 선상에 올리며 전도유망한 음악인으로서 자리 매김한 상태였다. 그의 가수 데뷔 성공은 이미 작곡가로서 누리던 유명세도 한몫했던 것이다.

그는 밝은 이미지보다 어두운 이미지가 물씬했기 때문에 그의 음악적 호소력은 세대를 관통하는 것이 아닌 틴에이저 소녀 팬들에게 한정된 것이었다. 바른 청년상(相)에서 벗어난 듯한 그런 모습은 기성세대에게 어필하기가 힘들었다. 때문에 당시로선 경쟁자였던 신승훈은 가파른 상승선을 탔던 반면, 그는 신승훈의 그것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윤상의 존재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음악에 본격적으로 신시사이저를 도입한 그는 인간적인 온기가 묻어나는 소리를 고민했다. 조금 앞선 시기의 신해철도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를 통해 전자 음악의 가능성을 선보였는데, 후에 ‘테크노 장르의 본 모습을 찾다’라는 의지를 담은 프로젝트 그룹 노 땐스를 함께 결성했던 것은 그 둘의 그런 지향과 무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윤상을 이해하는 핵심은 김완선의 백 밴드 ‘실루엣’의 멤버, 변진섭 라이브 공연의 세션맨, 작곡가 그리고 가수 등 여러 다른 이력을 갖추었다는 점일 것이다. 본디 곡 작업이란 것이 연주자, 작곡자, 가수 사이의 상호작용이 중요한지라 다양한 위치에서 그런 경험들을 했던 그가 음악을 접근하는 폭이 넓어진 것은 당연했고 자연스레 결과물은 상대적으로 더 꼼꼼하고 세련된 것이었다.

타이틀곡 「이별의 그늘」은 심상원의 바이올린을 적절히 배치, 음악적 무게감을 더해 그의 정교하고 지적인 접근법을 대변했다. 당시의 주류 스타일인 발라드 정서를 매끄러운 곡 전개로 풀어내면서 작가 정신을 덧붙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흔치 않았던 현 편곡은 클래식에 비해 경량(輕量)급이란 피해 의식을 가졌던 대중음악 팬들에게 심적 포만감을 주는 것이었다.

윤상은 리듬에서도 질적 변화를 추구했다. 베이시스트 출신이었던 만큼 비트감이 남달라 그의 음악은 리듬 생명감으로 충만했다. 「한 걸음 더」 「남겨진 이야기」 등은 리듬 파트를 전면에 내세운 새로운 감각이 돋보였던 곡들. 선율 위주의 발라드가 강세였던 당시라서 더욱 그랬다.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에도 리듬악기의 역할을 부여하는 발상이 재미있는 「행복을 기다리며」, 브라스 세션의 도움을 받은 「무지개 너머」와 「알 수 없는 일」 등 전곡에 걸쳐 그는 신시사이저를 이용해 기존의 음악 생산의 매너리즘을 넘어선 다채로운 음악 패턴을 소개한다. 후기 작품들에 비해 꽉 찬 느낌은 덜하지만 그는 세심한 편곡 역량을 들이대며 싹수를 보이기 시작했다.

2집 <Part 1>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와 「너에게」 그리고 그의 밴드였던 페이퍼 모드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2집 <Part 2>에서 노영심과 함께 부른 「이별 없던 세상」이 연속 히트를 기록했지만 그는 외모 탓에 아이돌 스타의 이미지가 알게 모르게 남아 있었다. 스타덤 대신 뮤지션으로서의 자유가 필요했던 그는 군 입대를 선택했다.

전역 이후 월드뮤직에 대한 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그의 감각은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Renacimiento>를 기점으로 시작된 변화 조짐은 3집 <Cliche>에서 확실한 노선 변경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그의 새로운 음악 소스에 대한 치열한 고민뿐만 아니라 데뷔작에 보여주었던 음악실험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바탕이 되었다.

윤상의 최상품은 아닐지라도 1980년대와 선을 긋는 새로운 음악 문화를 선사한 앨범이다. 4집, 5집에 보여주었던 음악적 지평 확대를 가능하게 해주었던 발판이며, 나아가 신시사이저라는 소재를 음악의 중심으로 끌어들여 기타 세션 위주의 기존 연주스타일에 변화를 준 계기이기도 하다. 후배 음악인들이 꼭 들어야 했던 한 음악 작가의 제대로 된 신고작.

- 글 / 엄재덕(ledbes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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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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