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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의 전체 녹음 수준 향상을 재촉한 기념비적 음반 - 이승철 <The Secret Of Color>(1994)

그룹 부활과 솔로 시절을 거쳐 이젠 국가 대표급 보컬리스트로 자리한 이승철. 그가 지금껏 발표한 가장 뛰어난 앨범은 무엇일까요? 이즘에서는 1994년 &lt;The Secret Of Color>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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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 송과 아이돌 그룹들이 난무하기 때문인지 실력파 중견들의 선전이 각광받는 요즘입니다. 특히 ‘가창력’의 모범적 표준으로 떠오르며 최근 CF까지 활약 중인 이승철의 주가는 한층 높네요. 그룹 부활과 솔로 시절을 거쳐 이젠 국가 대표급 보컬리스트로 자리한 이승철. 그가 지금껏 발표한 가장 뛰어난 앨범은 무엇일까요? 이즘에서는 1994년 <The Secret Of Color>를 추천합니다.

이승철 <The Secret Of Color>(1994)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마지막 콘서트」 「그대가 나에게」 「방황」 등의 히트송 축적으로 정상 가도를 달리던 이승철은 94년이 되자 그동안 가슴속에 품어온 음악적 대망(大望)의 실현에 나선다. 그는 93년 「방황」으로 한창 방송 출연에 열을 올리던 때 다른 가수의 대마초 사건이 터지자 전력이 소급되어 재차 활동 정지 처분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가수가 ‘얼굴과 곡 알리기 터전’인 방송에 나가지 못하는 것은 홍보에 치명타를 의미한다.

그는 억울했지만 주저앉지 않고 그 상황을 ‘음악적으로’ 돌파하기로 다짐했다. 어차피 제약이 많아 활동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방송에 매달리기 보다는 양질의 음악을 창출하기로 한 것이다. “이 기회에 정말 내가 진정으로 해보고 싶은 음악을 해보자! 그리고 한번 소리에 대한 획을 그어보자!”

그는 국내에서는 현실적으로 그것을 구현하기 어렵다고 보고, 미국 뉴욕 사정을 잘 아는 프로듀서 김홍순 씨와 뉴욕으로 향했다. 목표는 스팅(Sting) 음악! 가능하다면 반드시 그처럼 출중한 연주와 고급 편곡에 의한 사운드를 내겠다는 것이었다.

김홍순과 함께 미국으로 날아가 6개월간 뉴욕을 돌아다니며 미리 만들어간 데모를 ‘고급스러운 소리’로 포장해 줄 편곡, 연주자, 엔지니어를 열심히 섭외했다. 그러다가 스팅의 명작인 「Fragile」 「Englishman in New York」 등을 창조해낸 세계적인 프로듀서 닐 도르프스만(Neil Dorfsman)을 만나게 된다. 사실 그는 서울에서부터 이승철이 내심 정해 놓은 타켓이었다.

도르프스만은 음악을 듣더니 대뜸 “돈은 얼마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곡당 1,000만 원의 작업료를 받으며 세계적 명망을 떨치던 시절. 이승철은 2,700만 원밖에 없다고 했지만 의외로 도르프스만은 동양에서 온 가수에 대한 흥미와 약간의 흥분을 느꼈던지 선뜻 요청을 받아들였다. 도리어 작업을 마치고는 300만 원을 깎아 주는 선의를 베풀었다.

그는 ‘아시아권 가수로는 너무도 훌륭한 보컬’이라며 이승철에게 수록곡 중 「누구나 어른이 돼서」는 한번 영어로 취입해보라고 권유까지 했다. 애초의 ‘과욕’이 당연한 ‘욕구’로 순화하는 순간. 그 성취감 쾌감은 맛본 사람만이 안다. 프로듀서는 김홍순이었고 레코딩 엔지니어는 현지인 마크 코브린(Mark Cobrin)이 맡았다. 닐 도르프스만은 이 작업을 정돈해 내부 장식을 꾸민, 이른바 믹싱을 담당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앨범 <색깔 속의 비밀>(The Secret Of Color)은 세계적인 세션맨, 편곡자, 엔지니어가 빚어낸 ‘고화질’ 사운드로 당시 국내 뮤지션들에게 충격을 던졌다. 그들은 동명 타이틀의 첫 곡 「색깔 속의 비밀」의 전주에 이미 넋을 잃었다. 마치 팝 앨범을 듣는 것 같은 세련되고 정돈된 사운드에 입을 다물지 못한 것이다. 색소폰이든, 피아노든, 기타든 연주의 질감이 완전히 달랐다.

언론과 평단은 ‘소리의 감동’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타이틀곡 「색깔 속의 비밀」을 비롯해 「작은 평화」 「웃는 듯 울어버린 나」 등 전 곡이 우리가 그토록 선망했던 서구 팝에 견줄 수준을 자랑했다. 아카펠라 그룹 ‘뉴욕 보이스’와 함께 일궈낸 「겨울그림」만 해도 마치 아침 이슬이 꽃잎에 떨어지는 듯 영롱한 소리는 실로 경이였다. 이승철은 「겨울그림」을 그때까지 만든 자신의 곡 가운데 최고의 품질이라고 자평한다.

물론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나 「마지막 콘서트」 등 우리 청취 정서를 자극하는 감성적 멜로디 또는 댄스를 자극하는 감각적 리듬으로 이뤄진 곡들은 없다. 그래서 확실히 재미는 덜하다. 아마도 이승철의 대중적 골든 레퍼토리에 이 앨범 수록곡들이 들어갈 확률은 낮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질감의 사운드에 라디오 전파와 우리 대중의 귀를 잠식할 감칠맛 나는 훅이 결합되었다면, 그래서 히트선상을 오르내렸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것은 앨범을 만들 당시의 주안점이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먼저 ‘사운드’를 얻고자 했다. 하지만 스팅이든 뭐든 목표를 차치하고 현실은 ‘우리의 가요’라면 거기에ㅡ스팅 사운드와 토종 멜로디의 결속ㅡ도달했어야 한다. 이게 아쉬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철 스스로 캐리어의 정점으로 표현하는 앨범. 그만의 영광이 아니라, 가요의 전체 녹음 수준 향상을 재촉한 기념비적 음반이다. 적지 않은 동료와 후배 뮤지션들이 이 앨범에 자극받아 사운드 질의 상승을 캐치프레이즈로 줄줄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 들어도 낡게 들리지 않은 그 고화질을 전제한다면 그들의 ‘나가자!’는 전혀 무익한 게 아니었다.

- 글 / 엄재덕(ledbest@hanmail.net)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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