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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꽃이 피면 낙원이 되는 정원 - 명옥헌 원림

조선시대 정원 문학의 산실인 담양은 경관이 좋은 곳마다 정자와 고옥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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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조선 전통 정원의 백미이며 사대부 정원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명옥헌은 역사성과 자연미와 건축미가 압축되어 있는 곳이다.

명옥헌 원림 | 전남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513 | 산책 시간 1시간

조선시대 정원 문학의 산실인 담양은 경관이 좋은 곳마다 정자와 고옥이 즐비하다. 특히 조선 전통 정원의 백미이며 사대부 정원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명옥헌은 역사성과 자연미와 건축미가 압축되어 있는 곳이다. 배롱나무* 숲으로 유명한 고서면 후산마을의 명옥헌 원림**은 인조반정에 기여했던 오희도(1583~1624)가 자연을 벗하며 살던 곳으로, 조선시대의 대표적 정원인 소쇄원에 비길 만한 원림이다. 이곳은 오희도의 아들 오이정이 1652년 무렵에 조성했다. 그는 정원에 명옥헌이라는 정자를 짓고 정자 앞뒤에 연못을 판 다음, 연못 중앙에는 작은 섬을 만들고 연못과 정자 주변에 수십 그루의 배롱나무를 심어 가꾸었다. 명옥헌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44호이다.

명옥헌 앞 연못과 배롱나무들. 나무 뒤로 명옥헌 처마가 살짝 보인다.

후산 마을회관을 지나 차 한 대 겨우 갈 수 있는 좁은 길을 지나면 명옥헌에 들어서게 된다. 한편, 명옥헌 입구에서 왼쪽으로 갈라지는 길을 따라가면 이 지방의 명물인 후산리 은행나무를 볼 수 있다.

명옥헌 입구의 후산리 마을회관 앞에는 직경 1.2미터나 되는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이정표처럼 서서 넓은 그늘을 만들고 있다. 오른쪽 작은 저수지 둑에는 수백 년 됨직한 왕버들 다섯 그루가 예사롭지 않은 자태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쪽을 비튼 줄기는 세월의 주름을 간직한 채 연약한 잎을 내어 생기를 더한다. 저수지는 트인 공간이라 가지를 수평으로 뻗어 놓았다. 나무속에 날아 들어온 긴 꼬리를 가진 아름다운 새가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자 어디선가 같은 종류의 새가 날아온다. 풍성한 가지와 잎, 그리고 약간 썩은 줄기 속에 먹잇감인 벌레가 사니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연못가를 지키는 배롱나무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갈림길에서 왼쪽은 후산리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이어지고, 오른쪽 길은 명옥헌으로 접어든다. 집들 사이로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좁은 길을 걸어가면 넓은 공터와 이웃한 연못이 나온다. 너른 주차장 앞에는 연못 옆으로 난 길이 있고 저 멀리 정자가 보일 듯 말 듯하다.

배롱나무* 꽃이 오랫동안 피어 있어서 백일홍나무, 또는 목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나무껍질을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고 하여 간즈름나무 또는 간지럼나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 들여온 꽃나무로, 꽃도 예쁘지만 줄기의 모양도 구불구불 자연스럽게 보여 조경용으로 많이 심는다.
명옥헌은 ‘옥이 구르는 듯한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집’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명옥헌 왼쪽에서 작은 계류가 흘러내려 연못 물을 채우는데, 아마도 이 물줄기가 흐르는 소리를 두고 옥이 구르는 듯한 소리라고 명명했을 것이다.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된 건물인데, 맵시 있는 팔작지붕을 올렸다. 예전에는 명옥헌 뒤편에 이 지방의 이름난 선비들의 제사를 모시던 도장사道藏祠라는 사당이 있었던 까닭에 도장정道藏亭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정원을 조성한 오이정의 호 ‘장계藏溪’에서 유래한 장계정藏溪亭이라는 현판도 걸려 있다. 명옥헌은 1652년경 처음 지어졌는데, 세월의 부침을 겪어 100여 년이 지난 뒤 후손인 오대경이 다시 중수하였다.

연못을 지나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명옥헌을 빛나게 만드는 명물, 배롱나무가 지천이다. 줄기는 제멋대로 꼬부라져 있고, 수피는 반들반들 윤이 난다. 줄기도 꽃도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나무가 한두 그루도 아니고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으니, 배롱나무 꽃이 만발하는 8월 중순 무렵의 명옥헌 풍경은 가히 예술이라 할 만하다. 그러니 명옥헌의 진수를 보려면 당연히 꽃이 만발하는 시기에 찾아야 한다.

명옥헌을 둘러싼 아름다운 숲

하지만 명옥헌 원림은 여름이 아니어도 충분히 매력이 있다. 명옥헌에 걸터앉아 정원의 소나무며 배롱나무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소박한 정자와 이를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주변 풍경 때문일 것이다. 하기는 배롱나무가 워낙 화려한 그림을 그려내니 정자에는 특별한 꾸밈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이토록 빼어난 조형미와 자연미를 갖추고 있는 정원을 우리 조상들은 이미 4백 년 전에 만들고 가꾸었는데, 문명이 발달했다는 오늘날 우리가 만든 공원이나 정원을 보면 과연 무엇이 문명일까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공원 하나를 조성하더라도 기술보다 자연과의 조화를 모색했으면 바람을 가져본다.

네모난 연못 한가운데는 둥근 섬이 있다. 작은 방지에 이곳에선 흔한 배롱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둥글고 우아한 수형을 선보이고 있다. 방지는 아래쪽에 돌을 쌓고 그 위에 흙을 올렸는데 돌의 절반만이 수면 위로 올라와 있어 인공적인 냄새가 덜 묻어난다. 물은 투명할 정도로 깨끗하지는 않지만 심한 가뭄에도 근처 계곡에서 계속 물이 흘러들어 못을 채운다. 못가에는 유난히 키도 크고 가지가 무성한 배롱나무 수십 그루가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서 있다. 배롱나무 꽃이 만개하면 뭉게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연못과 함께 명옥헌이 한 폭의 산수화를 연출한다. 오래된 배롱나무는 힘이 드는지 연못 쪽으로 비스듬하게 희디흰 몸을 누이고 외과수술도 받았다. 오랫동안 자연에 순응하며 산 흔적이다.

연못 물의 원천을 찾아

명옥헌 왼쪽, 연못을 채우는 물의 원천을 찾아 계곡으로 난 배롱나무 숲길을 오른다. 직경이 60센티미터나 되는 배롱나무들은 뿌리에서 새로운 줄기를 내며 생명을 이어간다. 산이 깊지 않으면 물이 흐르지 않을 텐데 이렇게 작은 동산 사이의 계곡에 물이 흐르다니 신기한 노릇이다. 호기심에 계속 올라가니 심산유곡과 같이 계곡이 나오지만 그 위로는 밭이다. 연못의 원천이라면 어쩐지 신비로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들기도 하는데, 그냥 땅을 일구어 놓은 평범한 풍경이다.

명옥헌 주변을 단장한다고 주변에 큰 소나무 10여 그루를 새로 옮겨 심었지만 칡덩굴을 못 이겨 죽기도 하고 생장이 시원치 않다. 다시 정자 뒤편으로 간다. 직경 1미터, 수고 25미터인 두 그루의 거대한 느티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준다. 언덕을 오르면 제멋대로 자리 잡은 소나무 숲과 감나무 과수원 사이로 길이 있다. 후산마을은 생태 마을로 지정된 곳인데 감나무가 큰 소득원이다. 이곳 과수원에 있는 감나무도 후산마을을 살찌우는 장한 나무들이다.

후산리 은행나무. 문헌상으로는 약 900살,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약 1300살이다

배롱나무를 실컷 구경하고 명옥헌에서 나오는 길에 수령 천 년의 후산리 은행나무를 보러 간다. 직경이 2미터, 수고가 30미터인 이 거대한 나무는 밑동에서 새로운 줄기가 나고 기존 줄기는 지상 4미터 높이에서 이리저리 가지를 뻗어 몸통을 굵게 만들었다. 문헌상 나이는 약 9백 살, 구전 상으로는 13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명 ‘인조대왕의 계마행수’라 부르는 나무이다. 이는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호남 지방을 돌아보던 중 이곳 후산에 사는 오희도라는 학자를 방문하러 왔는데, 그때 인조가 타고 온 말을 이 은행나무에 맸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마을회관에 못 미쳐 오른쪽 길로 가면 식당 앞에 직경 1미터, 수고 15미터쯤 되는 5백 년생 팽나무도 있다. 눈여겨 돌보는 사람이 없어, 남의 집 담에 기대어 쓸쓸히 서 있다. 오랜 수령을 가진 귀한 나무인 만큼 잘 보호하고 대접했으면 좋겠다.


원림**
원림(園林)은 동산, 계곡, 길, 숲 등을 자연 상태로 두고 적절한 위치에 집과 정자를 배치한 고려시대의 전통 정원이다. 경관이 좋은 곳에 약간의 쉼터를 짓고 나무와 돌을 정돈하는 정도로 꾸몄을 뿐, 자연의 질서를 심하게 흐트러뜨리거나 조작하지 않았다. 즉 자연경관이 주인이고 인공 경관은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그 속에는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관념이 깃들어 있다. 대표적인 원림으로 장흥의 부춘정 원림, 담양의 독수정 원림과 소쇄원, 화순의 임대정 원림 등이 있다.

여행정보
● 산책하는 데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 언제 찾아가도 아름다운 정원이지만 특히 배롱나무 꽃이 만발하는 한여름에 찾아가면 명옥헌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명옥헌 주변에는 편의시설이 없고 10km 떨어진 광주시내로 나가면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많이 있다.
● 담양군청: www.damyang.go.kr
● 담양군 문화관광과 : 080-380-3114

찾아가는 길
버스: 명옥헌 근처까지 가는 버스는 없다. 광주 동신전문대 앞에서 고서행 버스를 타고 고서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
자가용: 호남고속도로 창평나들목 → 60번 국도 고서 방향 → 명옥헌 이정표 → 후산마을 → 명옥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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