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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이 훌륭한 발라드 문법의 완성 - 이승환 <My Story>(1993)

특히, 그의 발라드들은 1990년대 당시나 지금이나 언제 들어도 좋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그 역사적 산실이 된 이승환의 세 번째 앨범 <My Stor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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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앨범: 환타스틱 프렌즈>가 출시되었습니다. ‘어린 왕자’라는 별명보다는 이제는 ‘절대 동안’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은 이승환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이죠.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음악 인생을 살았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텅 빈 마음」 「너를 향한 마음」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천 일 동안」 등의 주옥같은 히트곡들을 다수 보유했다는 것도 아주 중요한 사항이죠. 특히, 그의 발라드들은 1990년대 당시나 지금이나 언제 들어도 좋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그 역사적 산실이 된 이승환의 세 번째 앨범 <My Story>입니다.

이승환 <My Story>(1993)

너무도 당연한 얘기겠지만 시대를 가로질러 사랑받는 가수들에게는 역시,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명곡’들이 존재한다. 가수들의 개인적인 능력과 그 옆에 따라붙는 강력한 ‘타이틀’의 존재를 대중들이 그리 쉽게 잊을 수 없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승환에게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보태어진다. 그는 무엇보다도 록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공연’의 힘을 ‘발라드’에도 심어 놓았다. 작은 체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에너지와 격정적인 무대 매너는 그를 데뷔 후 20년이 다되도록 ‘라이브의 황제’로서 변함없이 굳은 입지를 확보하게 한 힘이었다.

「텅 빈 마음」 「너를 향한 마음」 「내게」 등이 수록된 그의 초기 앨범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요의 황금기’라는 시대적 요소도 작용했지만 그보다도 소박하고 담백했으며 탄탄했던 보컬 덕분이었고, 선율이 아름다운 노래라는 아주 간단한 정공법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멜로디 코어’인 작곡가 오태호가 있다. 이범학의 「이별 아닌 이별」,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 서지원의 「I miss you」 등 지금도 여전히 애창되고 회자되는 좋은 선율을 가진 곡, 1990년대 초반 가요계를 수놓았던 멜로디의 크레디트에 늘 어김없이 올라와 있던 바로 그 이름이다. 이승환 1집의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 2집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나는 나일뿐」으로 이어진 찰떡궁합의 이 콤비는 결국 1992년 ‘이’ 씨와 ‘오’ 씨가 공감(共感)하여 만들었다는 앨범 <이오공감>으로 이어진다.

“너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 나를 어렵게 만드는 얘기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너를 잊겠다는 거짓말을 두고 돌아오긴 했지만”
-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중


누구나 생각할 순 있었지만 아무도 쓸 수 없었던 이 솔직한 가사로 동화적 순수함을 간직한 「프란다스의 개」와 함께 히트 행진을 이어간다. (지금도 이 가사는 후배 뮤지션들이 기억하는 가장 인상적인 가사의 한 부분으로 남겨져 있다) 사실, 오태호의 투명하고도 아름다운 음표들은 그 어느 가수들보다도 여린 미성의 이승환과 가장 잘 어울렸으며, 이 완벽한 결합은 순수한 기대 지평이 실려 있는,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1993년 발표된 <My Story>에서는 이처럼 히트를 보증했던 오태호의 발라드 「화려하지 않은 고백」을 과감히 뒤로 배치하고 좀 더 신선하고 새로운 멜로디를 수혈받으려는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이때 수면 위로 떠오른 작가가 더 클래식(The Classic)의 김광진이었다. 바로, 범국민적 대중가요 「마법의 성」이 탄생하기 1년 전이다. 그를 이제껏 든든히 뒷받침 해주고 있는 확실한 타이틀 「내게」 「덩크슛」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으며, 이 곡들의 대중적 히트는 곡을 정확히 해석해내는 그의 보컬과 함께 이승환을 진정한 ‘뮤지션’으로서의 기치를 올리게 했다.

우선, 타이틀곡 「내게」부터가 마치 좋은 멜로디의 모음집 같다. 이 곡의 구조를 잠시 들여다보면, ‘그렇게 기다리던…’으로 시작하는 A파트와 A', ‘돌아갈 수 없는 날이…’로 시작하는 B파트와 B', ‘약해지지 마 흔들리지 마…’의 C와 C'의 3파트가 모두 독립적인 훅을 가지고 있다. 3, 4분 남짓한 러닝타임을 간신히 채울 만한 선율들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재생산하여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흔히 보통 노래들의 가장 좋다는 훅 부분만을 따로 떼어 모아놓은 것 같으니, 이같이 청감을 단번에 사로잡는 멜로디와 군더더기 없는 보컬로 마무리한 이 곡이 대중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뒤늦게 사랑받은 「화려하지 않은 고백」의 히트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쁜 여자 친구와 빨간 차를 갖고 싶고 덩크슛도 하고 싶은, 누구나 생각하고 꿈꾸는 소망을 가사로 풀어내는 이 순수함에 팬들은 더 열광했다. 세련된 브라스 편곡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김현철이 편곡을 맡은 「덩크슛」은 바로 이 앨범을, 거대한 스케일의 산업적 메커니즘 속에서 탄생된 4집 <Human> 이전에 ‘소년적 감성을 극대화한 순수의 결정체’라고 부를 수 있도록 공헌한 곡이다. 작은 키로 무대를 휘저으며 달리는 이 어린 왕자는 「덩크슛」 속에 바로 그 소년인 것이다.

사실, 그의 목소리는 휴화산 속 용암처럼 타오르는 공연에서의 에너지만큼 폭발적인 힘도, 대단한 보컬 퍼포먼스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를 떠올리면 상징처럼 기억될 고유한 창법과 음색은 견고하게 보컬의 중심을 잡는 힘이 있었고, 다양한 장르들을 일정하게 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록에 내재한 공격성과 냉소도, 고상한 심미안을 가진 사람들을 유인하는 발라드도 모두 그의 안에서 통어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것은 「무너져 버린 믿음 앞에서」에서 가장 도드라진다. 후에 그의 록 스타일의 온상이 된 록 지향적 보컬이 스며든 이 곡은 1집의 「가을 흔적」부터 가다듬어 온 그의 작곡 실력이 만개한 곡이기도 하다. 혹자는 보컬리스트의 이미지가 강한 그에게, 혹은 오태호, 정석원, 김광진, 김동률이라는 굵직한 이름들이 드리운 그림자 때문에 ‘이승환이 작곡도 해?’라며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는?」 「잃어버린 건…나 Part Ⅲ」 등에서 보여 주는 그의 감각은 쉬이 가려질 수 없는 것이었다.

한번 듣자마자 ‘Radio heaven!’을 같이 따라 부르게 되는 김광진 작곡의 「Radio heaven」은 물론, 정석원의 곡들도 곳곳에서 빛난다. 특히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가 작곡한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After the love has gone」이 떠오르는 「너의 기억」은 얼핏 필립 베일리(Philip Bailey)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수작이고(실제로 이승환은 이 곡에서 시종 가성 창법을 유지한다) 긴장과 해결이라는 도식에 충실한 정석원의 작법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랑에 관한 충고」도 빼놓을 수 없다.

상기하듯, <My Story>는 더 많은 시도와 사운드의 욕심을 드러내어 4집 <Human>으로 구체화시키기 바로 전 단계의 앨범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운드는 예스럽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 색은 더 깊어졌고, 더 진실해졌으며 투명해졌다. ‘화려하지 않은 고백’을 수줍게 말하던 이는, ‘덩크슛’을 꿈꾸며 주문을 외우던 ‘소년’은 이후 그 열정과 패기가 조금씩 사그라졌다. 오히려 이 앨범의 성공과 그의 본연의 ‘록’ 정신을 표출하는 것과의 간극이 이후 앨범에서 그의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을 제한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 결코 통속적인 사랑 타령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고, 10년을 훌쩍 넘긴 지금에서도 여전히 좋은 발라드의 문법을 마련한 바로미터로 기능 하고 있다. 그래서 팬들의 감성은 여전히 <My Story>에 머무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 글 / 조이슬 (esbow@hanmail.net)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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