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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의 새 역사 -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1987)

1987년, 단 한 장의 앨범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천재 음악가 유재하. 요즘 친구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겠지만, 그의 천재성은 세기를 넘어서도 많은 가수들과 음악팬들에게 극찬의 대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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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단 한 장의 앨범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천재 음악가 유재하. 요즘 친구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겠지만, 그의 천재성은 세기를 넘어서도 많은 가수들과 음악팬들에게 극찬의 대상이 됩니다. 그가 생전에 못다 이룬 음악의 꿈은 실력 있는 음악가를 발굴하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통해서 이어지고 있는데요, 유희열, 스윗 소로우, 이한철 등 우리 시대의 유명 뮤지션들이 이 대회 출신임을 상기한다면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89년 시작해서 어느덧 20회를 맞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오는 10월 31일에 펼쳐진다고 하네요. 행사를 앞두고 있어서일까요? 그의 음악이 어느 때보다 더욱 생각납니다.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1987)

1987년 여름, 이 앨범이 나왔을 때 “가수가 너무 노래를 못한다.”라고 비아냥댄 가요 관계자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반응은 생경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군가 “한국의 음악은 유재하 이전과 유재하 이후로 나뉜다!”라고 말했을 만큼 평가의 그래프가 정반대 쪽으로 향해 있다.

아니 그해 11월 1일,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바로 그날에 벌써 그는 대중음악의 전설로 비상했다. 신승훈은 “그의 유작 앨범에 작사·작곡·편곡자가 쭉 유재하로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일대 충격을 받았다.”고 술회한다. 공교롭게도 유재하가 사망한 날과 자신이 데뷔한 날이 같다며 그것을 숙명처럼 알아왔다는 것이다.

유재하가 음악계에 얼마나 큰 자취를 남겼는가는 1989년부터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열려 유희열, 조규찬, 심현보 등 영향을 받은 음악인재들이 속출했다는 점을 봐도 알 수 있다. 자연스럽게 ‘유재하 사단’이라는 수식도 등장했다. 상기한 인물들은 물론, 유영석, 한동준, 김광진, 김동률 무수한 음악가들이 거기에 속한다. 이들 가운데는 유재하에게 바치는 곡을 발표한 사람들도 많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우리 음악가의 이름 뒤에 사단이란 거창한 말이 붙은 사람은 신중현과 유재하밖에 없을 것이다.

생전에 유재하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피아노는 말할 것도 없고, 바이올린, 첼로, 기타를 마스터했으며 작사, 작곡 솜씨도 뛰어났다. 악기에 능통한 덕분이었지만 편곡까지 도맡았다는 점은 당시 상황으로서는 놀라운 것이었다. 신승훈에게 놀라움을 주었듯 아마도 우리 음반 역사상 작사·작곡·편곡을 혼자서 해낸 작품은 이 앨범이 처음일 것이다.

이후 많은 뮤지션들은 가사와 멜로디를 쓰는 것 외에 그 평면적인 악보를 자기 스스로 곡으로 옮기는 작업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편곡을 스스로 한다는 것은 앨범을 완전한 자기 작품으로 빚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음악적 자주(自主)의 완전 실현이다. 자신의 독자적 상상력을 앨범이라는 실체로 꾸려내는 음악가에게는 꿈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한양대 음대 작곡과를 전공, 클래식의 화성학을 터득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앨범 중간에 연주곡으로 수록한 「Minuet」은 확연히 그의 음악적 영토를 일러준다. 게다가 흔히 클래식 음악의 세례를 받은 뮤지션들이 약한 대목인 가사 쓰기에도 능했다는 것은 다시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는 1985년 졸업하기 이전인 대학 재학 시절에 이미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만이 속하는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주자로 활약했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뛰어난 재기를 발했다.

그만큼 이 앨범은 도식적인 멜로디의 재래식 방식이 아닌, 탄탄한 음악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MBC 라디오 조정선 부장은 “이 앨범은 다양하고 어려운 화성을 대중음악에 소화해낸 최초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화성적 접근 외에 도처에 지금 들어도 깜짝 놀라게 할 음악적 장치들이 숨어 있다. 어떤 작곡가는 심지어 ‘보물찾기’의 충동을 자극하는 작품이라고도 규정한다.

유재하의 흐느적거리는 목소리는 어딘가 모를 슬픔이 배어 있다. 수작으로 평가받는 「가리워진 길」을 비롯해 「텅 빈 오늘밤」 「지난날」 등 모든 곡이 처연함의 극치를 보인다. 그리하여 ‘천재’의 작품이라고 하지만, 멜로디만을 따르는 일반 음악 소비자들에게는 생경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여러 번 듣는 인내의 자세가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유재하의 음악은 적어도 뮤지션들에게는 당대에 벌써 높이 평가받아 이 앨범의 곡 「가리워진 길」은 김현식이 먼저 노래했다. 하지만 김종진, 전태관의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은 “1986년 (김)현식 형이 3집 녹음을 했을 때 유재하가 비장의 곡 다섯을 써냈으나 그중 하나인 「가리워진 길」만이 채택되자 상처를 받은 나머지, 자신만의 독자적 세계를 향해 팀을 나가고 말았다.”고 증언한다.

「사랑하기 때문에」는 상기했듯 유재하가 조용필 밴드에서 연주했던 인연으로 당대 최고 가수 조용필이 부르기도 했다. 아마도 종래의 가요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코드워크와 멜로디에 끌려서 불렀을 것이다. 이 음반은 2001년 한 라디오 프로가 실시한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당당히 ‘우리 시대의 명반 1위’로 선정됐다.

또한 2003년에는 「우울한 편지」가 그해 최고 흥행을 기록한 영화 <살인의 추억>에 극 중 라디오에 흐르는 곡으로 삽입되어 다시금 유재하에 대한 추억을 환기시켰다. 우리 가요계의 흐름을 바꾼, 이를테면 뮤지션의 편곡에 대한 개념이 음반 제작에 확립되는 계기를 마련한 위대한 앨범이다. 우리 대중음악이 유재하 이전과 유재하 이후로 나뉜다는 말은 결코 과장일 수 없다.

- 글 / 임진모 (jjinmoo@izm.co.kr)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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