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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수작 앨범 <서태지 3집>, 보컬은 아쉬워 -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 3집>(1994)

서태지, 진정한 한국 대중음악의 왕좌에 올라서다 - 자신의 뿌리인 록에 대한 진득한 애정과 확실한 지향성이 만들어낸 1990년대 록의 수작이다. 이 앨범 이후 서태지를 ‘뮤지션’으로 칭하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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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관한 한 철저한 문외한임을 인정하는 중년의 교사 부부.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이 발표된 며칠 뒤의 일이다. “서태지가 이번엔 통일을 얘기했다더라.” “학교에 대한 노래도 있던데…….” “서태지한테 이런 진지한 구석도 있었네.” “너네도 그 앨범 샀지? 한 번 잘 들어봐라.” 이것은 노래라면 배호밖에 모르는 아버지와 음악이라면 시끄럽다며 귀를 막아버리는 어머니가,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요즘 애들 노래’를 인정한 순간이었다.

앞서 발표된 두 장의 앨범의 대성공으로, 이미 서태지와 아이들은 젊은 세대의 ‘문화 대통령’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아직 중장년층이 그들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들의 음악은 기존 가요 문법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지만, 중장년층의 호응을 끌어내기에는 너무 자극적이고 강했다. 낮은 학력과 그에 비해 (기존의 통념으론 이해가 안 되는) 너무나 큰 성공과 사회적 영향력도, 혹여 자식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지나 않을까 우려를 부추기는 요소였다.

서태지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새 앨범을 통해 그는 고지식하고 편협한 기성세대의 인정까지 받아내려 했으며, 그 방법은 ‘사회적 메시지’였다. 앨범에는 실로 다양하고 대중음악의 소재로선 거창한 사회적 현안들에 대한 사뭇 진지한 성찰이 담겨 있었다. 남북통일, 교육, 약물 남용.

1993년의 문민정부의 등장과 역행이나 하듯 ‘통일 무용론’이 불을 지펴가고 있었다. 서태지는 이것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통일이란 당연 사항이지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발해를 꿈꾸며」의 가사에는 그의 통일에 대한 생각이 직설적이고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중장년층은 그에 대해 낮은 목소리로 동조했다. 그것은 「우리의 소원」 이래로 전 국민이 함께 듣고 부른 최초의 통일 노래였다.

「교실 이데아」는 전례 없는 공격적인 단어와 과격한 어조로 현행 교육의 문제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전교조가 이것을 자신들의 노래로 삼으려 했다는 후문까지 있을 정도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2집에 수록된 「죽음의 늪」을 이으며, 약물 과용으로 망가져가는 사람의 삶을 무겁게 표현했다.

중장년층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격한 음악과 자극적인 이미지에 대해서는 공감을 유보했지만, 그들을 ‘진지한 청년들’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적당히 애들 듣기 좋은 노래나 하면서 그냥 춤이나 추는 철부지 스타가 아니구나. 기성세대 통념의 변화. ‘젊은이들만의 스타’가 아닌 ‘전 국민이 인정하는 그룹’으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서태지가 3집으로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어쩌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서태지의 음악적 본령은 분명히 록이다. 반도를 강타한 그(들)의 데뷔 앨범은 랩을 얹은 가벼운 댄스 뮤직 앨범으로 폄하되기는 하지만, 출세작 「난 알아요」는 부분적으로 헤비메탈의 스타일을 담고 있었으며, 「Rock&roll dance」에서는 AC/DC의 「Back in black」의 리프를 그대로 차용하며 김종서의 샤우팅을 얹는 재기를 보여 주었다. 또한 마지막 트랙에 나른한 루츠 넘버 「Missing」을 삽입하여 록에 대한 단초를 남겨 두었다.

2집의 「하여가」는 유래가 없는 크로스오버 헤비메탈이었다. 스래시(Thrash) 메탈을 기초로 힙합의 그루브와 과격한 랩이 공존하는 가운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태평소의 삽입은 가요계에 또 한 번의 충격을 안겼다. 사실 「하여가」 하나를 제외하면 앨범 자체를 ‘록 앨범’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서태지를 록 뮤지션으로 재인식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3집은 본격적으로 록을 지향했다. 이 앨범 안에서 서태지는 자신이 알고, 좋아하고, 할 수 있던 록 사운드의 모든 것을 선보였다. 얼터너티브(Alternative)록, 펑크(Punk), 그리고 그의 감성의 기조를 이루는 헤비메탈까지. ‘록’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한도에서 그는 내심 하고 싶던 모든 것을 시도했다.

전형적인 스래쉬 메탈 사운드를 통해, 앨범이 강성 록 사운드로 치장되었음을 단단히 선포하는 인트로 「Yo!Taiji」에 이은 타이틀곡 「발해를 꿈꾸며」. 맑은 새 소리로 시작하여 시타를 연상시키는 청명한 나일론 기타 연주로 부드럽게 운을 떼고, 서태지의 감성적인 목소리와 첼로 연주가 불길함을 자극한다. 이후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lie Peppers)풍의 펑키(Funky)하고 폭발적인 기타 연주에 맞춰 양현석과 이주노의 목소리가 교차하고, 제1 후렴부에서 이번엔 유투(U2)를 연상시키는 생 딜레이 톤이 등장한다.

제2 후렴부의 둔중한 기타 연주와 간주의 섬세한 기타 솔로는 헤비메탈과 그런지의 점이지대에 절묘하게 걸쳐 있다. 꽉 짜인 곡 구성과 미국에서 직접 작업한 음원 모두 훌륭하다. 메시지에 가려버린, 시대를 앞선 ‘음악’의 수준과 한 곡 안에서도 쉴 새 없이 변화하는 공들인 기타 연주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따로 수록된 이 곡의 가라오케 버전은 반드시 들어야만 한다.

화제성과 대중적 인지도를 따진다면 오히려 그보다 먼저 언급되어야 할 「교실 이데아」. 전형적인 랩 메탈 트랙으로, 강렬한 기타 리프와 스크래치 사운드의 공존은 당대의 록에선 획기적인 시도였다. 곡의 백미인 안홍찬의 그로울링은 얼마 후 불거진 ‘백워드 마스킹’ 공방의 주 타깃이 되었으며, 귀한 손님 디제이 큐버트(DJ Q-Bert)도 자신의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내 맘이야」는 무의미한 가사와 직선적이고 단순한 기타 연주부터 손수 프로그래밍한 리듬까지, 철저하게 펑크(Punk)를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변화무쌍한 곡 구성과 쉴 새 없이 난사하는 음침하면서도 강렬한 기타 연주를 통해, 메탈 키드의 진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 두 곡으로 인해, 앨범은 ‘록 앨범’으로서의 정체성을 보다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서태지가 했기에, 두 곡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널 지우려 해」는 앨범에서 멜로디만 따지면 가장 가요스러운 곡으로, 사실 소녀 팬들이 3집에서 가장 선호한 노래는 이 곡이었다. 간주와 후렴부의 몰아치는 연주는 그런대로 록적인 기분이 느껴지지만, 세 사람이 나눠 부르는 보컬이나 서태지의 어색한 샤우팅 모두 마냥 귀여울 따름이다. 사실 이 곡의 의미는, 이전까지 음악적으로는 별다른 역할이 없었던 ‘아이들’이 곡 작업에 미미하나마 참여한 부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양현석 작사).

남은 두 곡은 사실 록이 아니다. 「아이들의 눈으로」는 세션맨 최태완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믹싱만 미국에서 해서인지, 가요적인 필이 다분하다. 「영원」은 앨범의 전체적인 맥락과는 다른 의미에서 주목해야 할 곡이다. 유일하게 일본에서 작업하며 재팬 킹 오케스트라(The Japan King Orchestra)의 아름답고 장중한 연주를 실음으로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서정성과 깊이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당대의 발라드로는 획기적이고 충격적인 곡이었으며, 클래식적인 지향 때문인지 발표 당시의 대중적인 지명도는 다소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김동률을 비롯한 젊은 송라이터 군의 적극 추천에 의해, 이 옥석은 그 진가를 재평가받을 수 있었다.

서태지는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 기꺼이 외국행을 택했다. 「아이들의 눈으로」의 피아노 연주와 소녀들의 코러스, 자신이 한국에서 직접 연주한 음원을 뺀 나머지 작업은 모두 미국과 캐나다, 일본에서 이루어졌다. 확실히 앨범의 사운드는 당대의 일반적인 가요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주로 레코딩은 LA에서, 믹싱은 밴쿠버에서 이루어졌다. 서태지는 그 과정에서 “미국의 세션맨들도 내가 원하는 맛을 도저히 못 낸다”며, 「내 맘이야」에서는 베이스를, 「교실 이데아」「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는 기타와 베이스를 직접 연주했다.

앨범에서 내내 아쉬운 부분은 역시 보컬이다. 본인도 인정했지만, 서태지는 간지러운 미성이나 아쉬운 가창력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좋은 가수라고 볼 수 없다. 댄서 출신의 양현석, 이주노도 마찬가지였다. 객원 가수나 피처링(Featuring)이 일반화된 요즘이라면, 다른 좋은 가수들을 동원하여, 더 나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1994년 당시에 객원가수란 015B에게만 주어진 하나의 특권이었다. 사실 그랬다면 ‘서태지와 아이들’이란 이름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의 인기도 없었겠지만.

앨범의 내용물은 순도 100%의 록이다. 원래대로라며 제대로 틀을 갖춘 록 밴드가 나와 직접 연주하고 고함치며 라이브로 불러져야 됐을 음악이다.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런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춰야 했다. 대한민국이었기에 서태지와 아이들이었기에 치러야 하는 우스운 상황이었다. 그것도 「하여가」에 이어 2년 연속으로 그래야 했다. 그것이 한이 되어서인지, 4집의 「필승」에서는 외적으로나마 록 트리오의 형태로 공중파를 누볐다.

이 앨범에서 또 하나 빼놓아선 안 되는 일은, ‘백워드 마스킹’을 통한 ‘서태지 악마 논쟁’일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밖에 안 나오는 가벼운 촌극이었지만, 매스컴의 집중 보도 속에 어린 세대를 중심으로 만만찮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것은 서태지의 매체를 향한 고자세와 거만함에 대한, 언론의 계획적인 공세였다. 확실히 3집 발표 후에는 유독 방송 활동이 적었고, 인터뷰를 비롯한 인쇄 매체와의 접촉도 드물었다.

1집부터 큰 비중을 두었던 일본 활동에 한참 열을 올리던 시점이었기에 정작 당시에는 자신의 입장을 밝힌 일이 없지만, 시간이 흐른 뒤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답답한 맘을 드러낸 바 있다. 사실, 교회 음악도 거꾸로 돌리면 이상한 소리가 나온다. 015B는 연말에 발표된 5집 앨범의 인트로 「바보들의 세상」에 의도적으로 백워드 마스킹한 웃기는 얘기를 삽입하여, 서태지에 대한 간접적인 옹호를 표했다. 결과적으로, 일본 활동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4집 발표 후에는 방송과 매체를 통해 그들의 모습과 소식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서태지는 이 앨범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이번 앨범에서 얼터너티브 록을 시도했다”고 밝혔지만, ‘얼터너티브 록=그런지’로 연결되는 기존의 장르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 앨범의 음악은 그렇게 분류하기엔 다소 어려운 부분이 많다. 차라리 앨범에서 두드러지는 건 펑크나 그런지의 질감보다는 헤비메탈의 잔향이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대안적인 록’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발해를 꿈꾸며」는 1990년대의 주요 기타 사운드가 종합 선물 세트처럼 등장하여 파격적인 크로스오버를 이루어 냈고, 「교실 이데아」에서는 메탈과 힙합이 성공적으로 조우했다, 거기에 정통성에 충실한 「내 맘이야」「지킬 박사와 하이드」까지. 이 앨범은 당시의 록과 가요에 충분한 대안으로 언급될 자격이 있다.

서태지는 전작들과 변함없이 전 곡을 작곡/편곡/프로듀스 했으며, 많은 부분 연주도 도맡았다. 여전히 적은 수록곡이나 앨범의 일관성을 해치는 몇몇 곡으로 인해 명반으로 지목하는 것이 다소 문제시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자에 대해서는 그의 완벽주의와 소수정예의 곡 생산을, 후자에 대해서는 그런 곡들이 만만찮은 완성도를 자랑하며 오히려 서태지의 다른 능력을 성공적으로 표출했다는 면을 변명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로 서태지와 아이들을 해체시킨 지도 10년이 흘렀지만 음악인으로서, 연예인으로서, 사회 인사로서, 서태지에 대한 논쟁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1990년대라는 시대에 있어, 서태지 이름 석 자의 무게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음악을 통해 한국을 뒤집어엎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마지막 뮤지션이었다.

자신의 뿌리인 록에 대한 진득한 애정과 확실한 지향성이 만들어낸 1990년대 록의 수작이다. 이 앨범 이후 서태지를 ‘뮤지션’으로 칭하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일부 기성세대와 지배층의 반격은 무력했다. 비록 상업적으로는 그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서태지가 진정한 한국 대중음악의 왕좌에 올라선 것은 바로 이 앨범을 통해서였다.

글 / 정성하(bojangle@hanmail.net) 2006/09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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