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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에 주목해야 할 앨범 세 장 - 오지은 & 케이난(K'naan) & 심현보

오지은 2집 <지은> - 최근 인디 씬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앨범.<br> 케이난(K'naan) &lt;Troubadour&gt; - 힙합에 숨을 불어넣는 역사적 소작.<br> 심현보 &lt;Where The Dream Goes?&gt;(2009)- 소박함과 따뜻함을 느끼고 싶은 이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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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지은>(2009)

조금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장기하에 비견되는 여자 아티스트’라는 말도 나왔다. 앨범은 발매 1주일 만에 3,000장이 팔렸고, 현재 추가 주문까지 매진 행렬이다. 네이버 <오늘의 뮤직>엔 5월 첫째 주 ‘이 주의 국내 앨범’으로 선정되었고, ‘괜찮다’는 입소문도 알음알음 퍼지고 있다. 결론은, 오지은의 2집 <지은>은 현재 인디 씬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앨범이다.

음악이 매우 신선해서일까? 아니다. 혹은 장르적 깊이와 스타일리시함이 마니아들을 열광시킬 정도여서? 그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지은의 팬이 된 이들도 적지 않겠지만, 신선한 시도와 장르적 깊이로 무장했다고 평가되기엔 무리가 따르는 앨범이다. <지은>은 스스로가 곡을 쓰고 홍대 앞 인맥을 동원해 다양한 편곡을 취한, 그동안 늘 들어오던 인디 계열 싱어송라이터 앨범 중 하나다.

차별점은 오히려 캐릭터, 그리고 가사에 있다.

일단 ‘록’을 한다. 요즘은 인디계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홍대 얼짱’으로 불리며 ‘예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추세지만, 이걸 역행해 거칠고, 삐딱한 ‘밴드’ 음악을 시도했다. 타이틀곡 「날 사랑하는게 아니고」는 후렴 부분에 강한 기타 반주가 흐른다. 잠깐이지만 징징대고 찌릿한 솔로 연주도 들을 수 있다. 애써 보컬 볼륨을 앞으로 뺀 측면도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최근 트렌드에 반(反)하고 있다.

밤에 겪는 불안, 고통, 절망을 노래한 「진공의 밤」에서 록적인 색깔은 가장 세게 표출된다. ‘스마일즈’ ‘장기하와 얼굴들’ 출신의 정중엽이 기타, 베이스를 맡았고, 혼돈스러운 감정을 노래하는 곡의 주제와 쌍을 이뤄 블루지하고 어지러운 사이키델리아를 연출한다. 현장감이 우선인 라이브 연주에서 훨씬 맛이 배가될 곡이다.

살짝 거친 목소리 음색도 한몫을 한다. 「요즘 가끔 머리속에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당신을 향한 나의 작은 사랑은」 같은 밝고 가벼운 노래에서도 마냥 귀엽거나 예쁘지 않다. 너무 미(美)화하려 하지 않고 본래 가진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적절한 중성적 보컬 연기를 펼친다.

가사도 음악의 ‘날것’ 분위기를 닮아 솔직하고 꾸밈이 없다. 어떤 면에선 꽤 ‘털털’하다. 제목들도 「잊었지 뭐」「요즘 가끔 머릿속에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처럼 구어체가 많다. 오지은의 가사는 시(詩)적이거나 기발한 상징과 비유를 구사하진 않지만 공감이 되고, 재밌으며, 때론 통찰력이 번뜩인다. 재밌는 것들을 조금 길지만 인용해본다.

“날 사랑하는게 아니고 / 날 사랑하고 있다는 너의 /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 날 바라보는게 아니고 / 날 바라보고 있다는 너의 / 눈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날 사랑하고 있는게 아니고」 中)

“자학에 사용하는 에너지는 절약합시다 / 어른이 되어가는 건 지혜가 생겨나는 것 / 변명에 사용하는 에너지는 절약합시다” (「인생론」 中)

“당신을 향한 나의 작은 사랑은 / 뜨거운 물을 부으면 바로 되는게 아니라 / 5분을 기다려요 홍차 우려내듯이 / 당신을 향한 나의 작은 사랑은 / 기다리는 즐거움을 내게 가르쳐주네 / 이젠 나도 조금 어른이 되어가나봐” (「당신을 향한 나의 작은 사랑은」 中)

“많이 웃는 하루를 보내도 / 오늘도 나는 잠 못 드는 / 이미 익숙한 새벽3시 / 샤워를 하고 좋아하는 향기의 로션을 천천히 바르고 / 요즘 제일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 나아질까” (「익숙한 새벽 3시」 中)


하얀 피부와 긴 머리가 클로즈업된 겉 사진만 본다면 ‘홍대 얼짱’ 코드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소담스러운 록이자 진솔한 맨 얼굴의 포크이기도 하다. 홍대 앞에서 간만에 만나는 성기고 내추럴한 여성이다. 그리고 이것을 마냥 중성적이거나 심심하게 놔두지 않는 섬세한 공감의 재미를 갖춘 앨범이다.

글 / 이대화(dae-hwa82@hanmail.net)

케이난(K'naan) <Troubadour>(2009)

음악가 개인의 정치적인 성향을 나타내거나 사회상을 조명하는 노랫말이 담긴 랩 음악을 좀처럼 발견하기 쉽지 않은 요즘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주류 음악계에 한정되는 이야기일 뿐 언더그라운드로 들어가면 몇몇 래퍼, 힙합 뮤지션들이 여간해서는 나아지지 않는 흑인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가거나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라든가 권력이 남용되는 사례를 언급하면서 풍부한 고민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다. 물론, 그 정도의 깊이와 구체를 담보하지는 못해도 나스(Nas), 모스 데프(Mos Def) 같은 유명 뮤지션이 ‘컨셔스 힙합(conscious hip hop)’이라는 개념하에 종교 문제, 폭력에의 반대 등 다채로운 주제로 팬들과 소통하면서 의식성 부분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아무리 진지하고 심도 있는 내용을 다룬 노랫말이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강렬한 리듬과 세련된 사운드, 현란한 래핑이 중시하는 풍토가 형성된 시점에서 청취자들이 재밌게 들을 수 있는 청각적 요소가 마련되지 않는 이상은 대중에게 호소하기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일면 그런 부족함으로 인해 정치성과 사회성을 배태한 의미심장한 가사로 이뤄진 노래가 안타깝게 소외되기도 한다. 내용과 반주가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면 비주류 음악으로 물러선 이 폴리티컬 힙합(political hip hop)도 다수에게 가깝게 다가설 수 있을 게 분명하다. 이 조건을 만족하는 인물이 소말리아 출신의 래퍼 케이난(K'naan)이다.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태어난 케이난은 1991년 시작된 소말리아 내전이 벌어지는 동안 ‘피의 호수’라 불리는 구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나이 열세 살 때 일이었다. 내란이 계속되면서 집안 생계가 어려워지자 그의 아버지는 도미해 뉴욕에서 택시 운전을 하며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냈다. 이 사태가 빨리 끝나기를 바랐건만 나라 안의 상황은 더욱 악화됐고 끝날 줄 몰랐다. 더는 이를 견딜 수 없었던 케이난의 어머니는 출국 비자를 얻기 위해 미 대사관에 탄원서를 냈고 그동안 독재 체제를 유지해온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Mohamed Siad Barre) 정부가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다행히 출국 승인이 났다. 하지만,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할렘에서 생활하며 경제적으로나 외국인이라는 신분상으로나 힘겨운 나날을 겪어야 했다. 이렇게 순탄치 못한 유년기를 보냈던 탓에 그의 음악이 정치에 접점을 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힙합을 근간으로 레게와 아프로 팝이 뒤섞인 작품은 첫 곡 「T.I.A. (This is Africa)」부터 강한 폭발력을 내보인다. 그가 태어난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총을 들어야 하고 거리에서는 교활해져야 하는 무지막지한 삶을 빠른 비트 안에서 긴장감 있게 이야기한다. 딱딱 떨어지는 라임을 구사하며 팽팽하게 내용을 전개하는 것이 마치 랩으로 듣는 공습경보 같다. 첩 록의 1991년 히트곡 「Treat em right」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 느껴지는 첫 싱글 「ABC's」에서도 거리에서의 힘겨운 삶을 설파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알파벳을 가르쳐주지 않아 / 우리는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서 놀아야 하지 / 우리가 가진 건 거리에서의 삶이 전부야” 다소 어두운 내용이지만, 경쾌한 분위기로 말미암아 미식축구 비디오 게임인 <Madden NFL 09> 배경음악으로 삽입되었다. 소말리아에서 미국, 캐나다로 건너오면서 느꼈던 안도감과 그때에 각인되었을 모국에서의 고통, 외부 사람들이 소말리아를 보는 고정된 시선에 대한 부당함을 「Somalia」를 통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무거운 내용이 이어지는 중에도 다수에게 인기를 끌 만한 음악들이 구비되어 있는 것이 앨범의 장점 중 하나다. 「Bang bang」은 탄성 강한 기타 리프와 애덤 리바인(Adam Levine)의 매력적인 음성이 곡의 청량감을 증가시키는 하이브리드 스타일로 힙합과 록 팬 모두에게 많은 사랑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If rap gets jealous」는 메탈리카(Metallica)의 커크 해밋(Kirk Hammett)의 뛰어난 기타 연주가 가미되어 튼튼하고 내실 있는 틀을 완성했다. 아이튠스 보너스 트랙이기도 한 마지막 곡 「Does it really matter」는 요즘 유행에 흐름을 같이해 전자음이 전면에 배치된 일렉트로 힙합의 모양을 냈다. 젊은 청취자들에게는 아마 이 노래가 더 친근하게 접근하지 않을까 싶다.

중세 유럽에서 봉건제후의 궁정을 찾아다니며 스스로 지은 시를 낭송하던 음유시인을 뜻하는 타이틀에 맞게, 소말리아 말로 ‘여행자’를 뜻하는 케이난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그는 그 어떤 제약과 경계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엮는다. 우리가 관심 밖에 두었던 사실과 많은 문제점으로 핍박받고 힘들게 삶을 부지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1인 매체의 기능을 그는 톡톡히 해내고 있다. 게다가 그의 언어와 연설이 다양한 형식의 음악과 만나면서 많은 이가 즐겨 찾을 저항 시(詩)와 사회적 수필로서 힘을 갖게 되니 노래가 더욱 값지게 들린다. 힙합이 메시지 음악으로서 생명력을 잃어가는 시대에 <Troubadour>는 다시금 숨을 불어넣는 역사적 소작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글 / 한동윤(bionicsoul@naver.com)

심현보 <Where The Dream Goes?>(2009)

가수보다는 작곡가, 작사가 혹은 입담 좋은 라디오 게스트로 더욱 알려져 있는 심현보의 두 번째 앨범이다. 이라는 앨범 제목답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잔함과 그리움을 아이러니하게도 밝고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담아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내놓은 앨범이라 그런지 봄 내음이 물씬 난다.

역시 유재하 가요제 출신답게 이번 앨범에서도 싱어송라이터다운 면목을 보여 모든 수록곡을 심현보가 직접 작사, 작곡을 했다. 타이틀곡인 「멀어지네요」를 비롯해 「거기, 당신인가요」「사라지는 것」「이끌림」「내일의 거짓말」 등 총 다섯 곡의 수록곡을 담아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것들, 한땐 내 것이었지만 멀어지는 많은 것들. 내내 사랑했지만 사라지는 모든 것들. 그 모든 것들을 우리는 꿈이라고 부를까? 그렇다면 그 꿈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라고 앨범 재킷 속에 쓴 그의 글에서도 읽을 수 있듯이 이번 앨범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잔함과 꿈을 잃어가는 서글픔을 주제로 풀어내고 있다.

거기다가 작사가 출신답게 노랫말은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처럼 섬세하고 비유적인 표현으로 가득하다. 요즘 가요들의 가사가 대중들의 마음을 자극하기 위해 점점 더 선정적인 데 반해 이 앨범 속 다섯 곡의 곡은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정화가 가능한, 순도 백퍼센트의 무공해 노래로 다가온다.

다만 수록된 다섯 곡의 노래의 분위기가 모던 록 풍으로 엇비슷하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좀 더 다양한 색깔의 곡을 보여주었다면 시적인 노랫말을 더욱 잘 살려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창력 문제와 별도로 그가 직접 쓴 가사를 불러 잔잔한 감정을 잘 녹여냈다는 느낌을 준다. 자기표현과 자기 세계를 가진 싱어송라이터의 미덕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극적인 가요들이 판치는 요즘, 오랜만에 소박함과 따뜻함을 느끼고 싶은 이들이라면 꼭 한번 들어봄직한 앨범이다.

글 / 김아람(84carnival@hanmail.net)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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