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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학도들, 뉴욕을 보다

비주얼한 뉴욕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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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권 두 권 쌓여 세 권까지 이른 이 나라 예술학도의 비주얼한 뉴욕 ‘관찰기’는 좀 달랐다. 그들의 눈에 비친 뉴욕이 궁금해졌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걸 제일 좋아하는 내게 미국 뉴욕은 그저 먼 나라의 가마아득한 도시다. 앞날을 장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드물긴 하지만, 앞으로 내가 외국 나들이를 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 그럴 돈도 없거니와 누가 여행비를 대준다 해도 사양하련다. 한마디로 귀찮다.

어느 날 갑자기 주위를 돌아보니 외국 여행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나는 남들이 다른 나라를 둘러본 자취에도 별 관심 없다. 그런데 한 권 두 권 쌓여 세 권까지 이른 이 나라 예술학도의 비주얼한 뉴욕 ‘관찰기’는 좀 달랐다. 그들의 눈에 비친 뉴욕이 궁금해졌다.

제환정의 『뉴욕 다이어리』(시공사, 2007)는 아줌마 무용가의 뉴욕 체류기다. 정착기일 수도 있다. ‘맺는 글’에 나오는 표현인 “뉴욕에 관한 솔직한 나의 일기”는 이 책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뉴욕에 관한 가장 솔직한 이야기”라는 표지문구는 괜스레 그냥 해보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책의 초입에서 접한 다소 냉정한 서술은 저자가 ‘삐딱선(線)’을 타고 있지 않느냐는 오해를 사게 한다. 한편으론 그런 점이 책 내용에 집중하게 만든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도시. 아마도 이 도시에 중독된 사람들은 그런 언밸런스를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다분히 생활적이다.

뉴욕은 오래되고 낡은 도시다. “뉴욕 시민들의 화장실 폐수가 흘러들어가는 하수도 시스템은 ‘세계에서 가장 과부화된 (도시) 시스템 중 하나’라고 한다. 오수 범람으로 사람이 죽지는 않겠지만, ‘당신이 보고 싶지 않을 것을 볼 것’이라는 말이 무시무시하게 들린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레 떠오른 궁금증이 있다. 해안에 바투 다가가 빼곡하게 들어선 고층건물이 숲을 이룬 뉴욕의 중심 맨해튼 섬은 과연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 얼마나 안전한가? 제환정은 뉴욕을 통해 우리의 현실에 다가서기도 한다. “뉴욕과 서울의 전철, 대체 어느 쪽 전철을 탈 때 더 강심장이 필요한 건지 잘 모르겠다.”

뉴욕 전철을 못 타본 나로선 반쪽 경험에 따른 판단이지만, 이제 서울 전철의 분위기도 꽤 어둡다. 하여 나는 서울에 가거나 서울 시내에서 이동할 때 주로 버스를 이용한다. 그런데 일부 부적합한 비교 대상은 외국 체류기간이 길어지면서 모국에 대한 ‘감’이 떨어졌거나 지은이의 표현을 빌리면 삶의 경력이 미비한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관련법규에 의거 음식점에서 나무 대신 녹말덩어리로 만든 이쑤시개를 제공하는 것만을 놓고 우리가 미국인보다 환경을 망가뜨리는 1회용품을 덜 사용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우리 역시 반환경적인 1회용품을 엄청나게 쓰고 있다.

“부모와 가족이라는 강력한 울타리가 있는 한국 아이들”이라는 서술은 무너지는 이 나라 가정의 실태를 간과한 데서 온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어린아이들을 앞세운 동냥이 많다”고 한 것도 약간 부주의하다.

책에 실린 뉴욕의 풍경을 찍은 다채로운 사진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44쪽과 45쪽에 실린 어느 다리의 전경이다(따로 설명이 없어 다리 이름은 모름). 꽤 긴 다리의 전체 모습을 한 컷에 담았는데, 빌딩은 단 한 채도 눈에 띄지 않는다. 글월에선 「우리는 춤출 때 가장 인간적이다」의 한 대목이 ‘짱’이다.

“비스듬한 맨 앞자리다 보니 춤보다도 사람이 먼저 보인다. 무용수들의 땀방울 튀는 것, 그것이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것, ‘훅’ 하는 숨소리와 사소한 실수, 힘들어서 몸을 떠는 것, 호흡을 못 고르는 것, 등장을 기다리는 모습 등. 이렇게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면 그들이 춤추는 기계 같지 않아서 더 재밌다.”

양은희의 『뉴욕, 아트앤더시티』(랜덤하우스코리아, 2007)는 미술학도의 뉴욕 현대미술 길잡이다. “이 책은 ‘뉴욕의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그 중에서도 뉴욕이라는 도시가 길러낸 현대미술(그 난해하다는)과, 그것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뻗어나간 뉴욕의 문화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저자는 뉴욕에서 11년을 보냈다. 이를 바탕으로 독자들을 뉴욕의 구석구석으로 안내한다. 그리니치빌리지에서 출발한 저자의 발걸음은 소호, 로어 이스트사이드, 배터리 파크, 첼시, 미드타운, 어퍼 이스트사이드, 롱아일랜드 시티 등지로 이어진다. 그녀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어김없이 뉴욕의 현대미술을 마주치게 된다.

“뉴욕이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부상한 것이 불과 몇 십 년 전이라고 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놀랄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1940년대 후반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그전에는?” 1945년 이전의 뉴욕은 서양 미술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모든 예술가는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뉴욕에 현대미술의 움이 트기 시작한 것은 유럽에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부터였다.” 전쟁의 참화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마르셀 뒤샹, 프란시스 피카비아 등이 유럽의 모더니즘 미술을 선보이면서 뉴욕은 새로운 아방가르드 미술을 수용하기 시작한다. 2차 대전 후에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뉴욕을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격상시키는 데 ‘기여’한다.

“승전국이자 새로운 세계 구도의 한 축,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자유 국가라는 거창한 위상들은 미국 정부에게 부담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미국 정부는 숙명처럼 짊어지게 된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전후 뉴욕에서 일어난 추상운동을 자유의 상징처럼 전 세계에 조직적으로 홍보했고 그 결과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 같은 작가들은 자유로운 예술가의 표상으로 널리 알려졌다.”

건축학도 이제승의 『시간이 스쳐간 뉴욕의 거리』(시공아트, 2008)는 ‘뉴욕의 추억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건축 여행’을 내세운다. “이 책은 뉴요커의 일상이 담긴 건축물을 통해 뉴욕의 지나간 추억을 말한다. 그리고 도시의 성장과 변화의 관점에서 뉴욕의 어제와 오늘을 추적한다.”(뒤표지 글에서)

타임스 스퀘어는 뉴욕 문화와 미디어의 중심지다. 1900년대 초반, <뉴욕 타임스>가 새로운 사옥인 타임스 타워를 짓고 옮겨오면서 1904년 주변의 공식 명칭이 타임스 스퀘어로 바뀐다. 하지만 “타임스 스퀘어가 항상 영광의 역사와 동행한 것은 아니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극장을 비롯한 이곳의 오락 산업은 큰 타격을 입고 내리막길을 걷는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타임스 스퀘어는 맨해튼의 쇠퇴와 타락의 상징이었다.” 1980년대 미국 경제의 회복에 힘입은 이 지역의 상업 건물 건축 붐과 1990년대 중반 맨해튼의 범죄율을 획기적으로 떨어뜨린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의 정화 운동으로 상황은 반전한다. 그 후 타임스 스퀘어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세계의 교차로’로 거듭난다.

1931년 완공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대공황의 여파로 한동안 ‘엠프티(텅 빈)스테이트 빌딩’이라는 비꼼을 듣는다. 이 빌딩이 완공되고 나서 사무실 임대 수익을 얻기까지는 20년이 걸렸다. 단, 초고층 전망대는 불황기에도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뉴욕에 둥지를 튼 스포츠 팀의 홈경기가 있을 때면 그 팀의 상징색으로 빛을 밝혀 응원을 보내는 일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몫이 되었다. 또한 뉴욕에 기쁜 일이 있을 때면 화려한 조명으로 축하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면 불을 꺼서 뉴요커와 함께 슬픔을 나눈다.”

이 책은 부창부수(夫唱婦隨)의 측면이 있다. 남편의 뉴욕 건축 여행기에 수록된 뉴욕의 정경이 담긴 아내의 수묵화가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앞표지 사진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배경으로 하는 한 남자의 춤사위다. 그의 얼굴은 거의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그가 나로 하여금 예술학도의 뉴욕 ‘관찰기’를 보게 했다.

앞서 외국 나들이에 전혀 취미가 없다 했지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른다. 만에 하나, 뉴욕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면 가볼 곳이 두 군데 있다. 그곳은 브로드웨이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그라운드 제로도, 자유의 여신상도, 뉴욕 현대미술관도, 차이나타운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도 아니다.

월스트리트와 다리의 안전성이 의심스럽다는 브룩클린 다리는 더더욱 아니다. 내가 만일 뉴욕에 간다면, 나는 양키즈와 메츠의 홈구장에서 한 게임씩 ‘땡기고’ 싶다. 그런데 우리의 예술학도들은 야구에는 별 관심이 없다. 유일하게 『뉴욕 다이어리』에 살짝 언급되는 맨해튼 북쪽 브롱스 인근의 양키 스타디움조차 지금은 헐렸다. 올 시즌부터 뉴욕 양키즈는 새로 지은 야구장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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