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난쟁이, 벤야민 그리고 달걀 허브 치즈 오믈렛

달걀은 어떤 요리로든지 변신 가능한 그야말로 마법 같은 재료다. 달걀은 언제나 옳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난쟁이 야콥은 코가 양탄자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여 절했다. 요리장은 야콥의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더니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뭐라고? 자네가 요리사로? 자넨 주방의 화덕이 자네가 겨우 발돋움을 하고 머리를 어깨에서 똑바로 펴야만 겨우 올려다 볼 수 있을 정도란 걸 모르는가? 오, 꼬마양반, 자넬 요리사로 고용하도록 나에게 보낸 사람들은 자넬 바보 취급한 거야.”라며 주방장이 미친 듯이 웃자 시종장을 위시해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웃어댔다. 그러나 난쟁이 야콥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달걀 한 두어 개, 약간의 시럽과 포도주, 밀가루와 향신료가충분히 있습니까? 나에게 필요한 재료를 주시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도록 해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이 보는 앞에서 재빨리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그걸 보면 나를 정말 훌륭한 요리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 빌헬름 하우프Wilhelm Hauff, 「매부리코 난쟁이」

구두장이인 아버지와 채소를 파는 어머니 사이에서 사랑받는 아들로 자라고 있던 야콥은 어느 날 자신들이 파는 채소를 까다롭게 고르며 불만을 표시하는 할머니에게 대들게 된다. 노파는 많은 양의 야채를 사서 야콥에게 배달을 요청하고, 배달하러 간 노파, 마녀의 집에서 사례로 마법의 수프를 얻어 마시고는 난쟁이가 되어 요리와 잔심부름을 하며 오랜 세월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난쟁이가 되어 마녀 밑에서 일한 꿈에서 깬 듯한 느낌에 신기해하며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지난 세월 동안 난쟁이로 일한 것은 사실이었다. 고향에서 부모님들은 몇 년 전 아들을 잃어버린 슬픔에 여전히 괴로워하고 동네 사람들은 물론 부모들마저도 그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다. 슬픔에 잠겨 공작의 성으로 흘러 들어간 그는 늙은 마녀 밑에서 갈고 닦은 요리 솜씨로 인정받고 공작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하지만 어느 날 이웃나라 귀족이 방문한 자리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의 맛을 허브 하나를 덜 써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자 공작은 그에게 똑같이 요리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사형시키겠다고 한다. 야콥은 역시 마법에 걸려 거위로 변한 마법사의 딸 미미의 도움으로 요리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자신을 마법에서 풀어줄 그 허브를 찾아내 다시 정상인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다시 요리를 만들어내지는 않고 말끔하게 변한 모습으로 조용히 거위 미미와 함께 그녀의 집을 찾아 성을 빠져 나온다.

나도 보통 어린아이처럼 동화책을 좋아했다. 삽화가 예쁘게 들어간 동화책을 보는 것도, 권선징악이 뚜렷해서 왠지 다 읽고 나면 마음이 놓이는 줄거리도 좋았다. 어린아이는 순수하고, 또 세뇌당하기도 쉬우니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입을 헤 벌리고 정신없이 그 이야기에 빠져들어 갔지만 커서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들을 정리하며 들춰보니 이런 이야기에 내가 빠져들어 갔었단 말인가, 싶을 정도로 동화책들은 슬프고, 무섭다 못해 잔인했다.

엄마가 죽어서 계모에게 구박받고, 누구는 구박받다 못해서 독살의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남자한테 반해서 자신의 혀를 끊어 팔아버린 인어는 결국에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지도 못하고 거품이 된다. 마귀할멈이 잡아먹으려고 과자로 토실토실 남매를 살찌우는 이야기와 마법에 걸려 백조가 된 오빠들을 위해 사형대로 끌려가면서도 가시풀을 손과 발에 피가 맺히도록 실로 뽑아서 옷으로 만드는…… 정말 슬프고 가슴이 답답해서 더 이상 못 나열하겠다. 하지만 이보다 더 잔인한 동화들이 쌓이고 쌓여있다. 우리나라 전래동화도 마찬가지다. 권선징악과 ‘벌 안 받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그렇게 무섭고 잔인한 이야기들을 꼭 만들어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어렸을 때 그 이야기들을 읽은 기억들은 평생 희미하게 남아 있으니 조기교육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옛 동화작가들은 아무래도 따로 교육을 받지 않았다 싶다.

하우프의 동화집에 수록되어 있는 동화들은 지은이가 독일인임에도 불구하고 이국적이고 마법과 난쟁이, 매부리코와 같은, 그 시절에는 분명 돌팔매질 당했을 법한 외모의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가 유명한 낭만주의 시인이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무서운 동화들인데 내가 읽었던 수많은 동화 중에서 유난히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충격 받은 내용들이 몇 가지 들어있었다. 사람 머리로 변한 양배추라든가ㅡ그때 양배추 인형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ㅡ마법에 걸려 난쟁이로 변하고 마실 물로 이슬을 길어 와야 하는 중노동, 그리고 돌아간 고향에서 쫓겨나는 주인공의 모습까지. 읽을 때 멈출 수는 없지만 책을 덮고 나서 잠에 들면 나 또한 마녀의 주술에 걸려 평생 이슬을 길어오고 잡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환상에 시달려야 했다.

유일하게 신났던 장면은 아콥이 공작의 부엌에서 요리를 만들어 인정받는 장면. 커서 다시 구해 본 책에는 좀 다르게 나와 있었지만 그가 작은 몸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요리든지 만들 수 있다며 재료를 가져다 달라고 하는 말을 난 20년이 넘도록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달걀과 양파와 소금이 있으면 무슨 요리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가면서 정리해서 모두 바자회에 넘긴 동화책 안에 아마도 그런 번역으로 되어 있었나 보다. 그때 그 문장이 너무나 자신만만하고 멋져서 나는 무슨 수학 공식이나 진리의 말씀처럼 혼자 그 말을 중얼거리곤 했었다. 달걀과 양파와 소금만 있으면 혼자서 달걀국을 끓일 때도, 대학교 때 엠티 가서 달걀말이를 만들 때도, 요리학교에서 오믈렛을 만들 때도 그 문장을 떠올렸다.

달걀이 있으면 뭐든지 만들 수 있다는 말은 사실 맞는 말이다. 달걀은 물과 소금, 생선과 나무 열매와 더불어 인류가 선사시대부터 먹어온 식재료이고, 인류가 발달하면서 계속 같이 요리법과 함께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달걀 그 자체로, 밀가루와 섞어서 여러 가지 빵과 페이스트리로, 때로는 허브와 양념을 넣은 요리로, 그리고 종종 설탕과 꿀, 초콜릿과 섞여 달콤한 디저트가 되기도 한다. 달걀과 소금이 있으면 기본적인 오믈렛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허브, 치즈, 삶은 감자, 햄, 양파 볶은 것, 연어와 아스파라거스를 넣어 오믈렛, 키쉬, 프리타타 등 다양한 이름의 요리로 변신하기도 한다. 달걀이 있고, 주변에서 몇 가지 재료만 찾으면 정말 뭐든지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학부 때 미술이론 수업을 들으면서 읽게 된 한 책에서 난 내 생의 두 번째 달걀 요리를 만나게 됐다. 바로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안에 나오는 짧지만 묵직한 글 「산딸기 오믈레트」이다.

짧은 글이지만 전체를 다 옮길 수는 없고 내용을 요약하자면 한 왕이 오랫동안 자신을 위해 요리를 만들었던 요리장에게 자신이 젊은 시절 전쟁 중에 도망을 다니다가 우연히 숨어들어간 시골집에서 한 노파에게 대접받은 산딸기 오믈렛을 요리해줄 것을 명령하며 똑같은 맛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한다. 요리장은 자신은 모든 산딸기 오믈렛의 레서피를 알고 있으며 들어가는 재료들도 훤히 꿰뚫고 있지만 젊은 시절 왕이 불안해하며 산을 헤매고 우연히 몸을 숨기러 들어간 시골집의 분위기, 노파의 소박하지만 진심 어린 마음 등등 모든 분위기와 함께하는 산딸기 오믈렛은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이 글은 미식가이자, 놀라운 통찰력으로 기계화로 대량생산되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글을 남겼던 벤야민의 그 유명한, ‘아우라Aura’를 비유해 놓은 글이다. 물론 공예나 사진, 영화에 걸쳐 예술에서의 아우라의 개념을 비롯해 다양한 주제로 토론도 하고 리포트도 썼지만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달걀이 최고’라고 외치던 난쟁이가 나오는 동화책이 끊임없이 생각났다. ‘계란 요리도 비슷하고, 똑같이 못 만들면 죽인다고 하는 것도 ?째 비슷한데…… 혹시 그 동화책을 보고 비슷하게 만든 글은 아닐까?’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생각도 한참 했었다. 물론 야콥의 오믈렛은 아우라와는 아무 상관없는, 한 달에 한 번 오래된 나무 밑에서 발견할 수 있는 허브가 하나 모자라서였다.

오믈렛은 역사적으로도 너무나 오래된 음식이다. 고대 페르시아 때부터 오믈렛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는데 로마에 넘어와서 우유를 섞어 오믈렛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로마시대의 오믈렛은 좀 더 평평하고 납작했는데 그때의 구이그릇들은 대부분 진흙으로 만든 편편한 그릇들이 대부분이었다. 거의 달걀지단에 가깝게 얇게 부치고 고추와 꿀을 뿌리면 로마풍의 오믈렛이 완성된다. (꿀은 거의 대부분의 로마요리에 들어간다.)

오믈렛이라는 이름은 정말 오랜 세월에 걸쳐서 지금의 스펠링 ‘omelette’으로 정착되었다. 프랑스어로 ‘얇은 줄’을 뜻하는 ‘amelle’이 어원이라니 정말 옛날 오믈렛은 우리나라 달걀지단 같은 모습이었나 보다. 하긴 그렇게 팬케이크처럼 얇은 오믈렛이라면 산딸기나 꿀도 꽤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 될 수 있었을 듯하다. 그 후에 오믈렛의 원형이라고 여겨지게 된 레서피는 중간 사이즈의 달걀 여섯 개와 소금, 후추, 우유 한 스푼. 프랑스에서 위에 치즈를 갈아 뿌리기 시작했고, 이젠 오믈렛이라고 하면 다들 얇고 납작한 지단이 아닌 속은 반숙으로 촉촉하게 익어 접힌 모양이라고 알고 있다. 디저트로는 달걀흰자를 거품 내 더 보송보송하게 구운, 수플레 스타일의 달걀이 시럽이며 과일과 더 잘 어울린다.

최상의 요리사임을 증명하는 재료로도, 전쟁통에 시골에서 나그네에게 가장 빠르고 맛있게 대접할 수 있는 요리를 뚝딱 만들어내는 재료로까지, 달걀은 무궁무진하게 변신해준다. 늘 먹는 샐러드에도, 가끔 아침에 식구들을 위해 만드는 햄과 감자를 넣은 오믈렛에도, 그리고 내가 가끔 아파서 드러누울 때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엄마가 끓여주시는 묽은 달걀찜까지. 달걀은 어떤 요리로든지 변신 가능한 그야말로 마법 같은 재료다. 달걀은 언제나 옳다.

Untitled Document
허브 치즈 오믈렛(Cheese & Herb Omelettes)

재료
큰 달걀 3개
버터 15g(올리브오일로 대체 가능)
자유롭게 선택한 치즈와 허브 약간
버섯 잘게 썰어서 150g
우유 한 큰 술
소금과 후추
뿌릴 치즈 조금과 타이 칠리소스(옵션)

요리법
1. 달걀에 우유와 허브, 치즈 버섯을 넣어 잘 풀어둔다.

2. 달군 코팅 팬에 버터 또는 식용유를 두르고 키친타월로 살짝 닦아낸 뒤, 준비해둔 달걀을 팬 전체에 부어 넣고, 젓가락을 이용해 밖에서 안으로 긁어가며 익혀준다.

3. 어느 정도 익었을 때 밥주걱이나 스패츌러를 사용하며 가장자리를 조심해서 조금 들어올리며 익힌다. 안의 덜 익은 달걀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주걱을 이용해 조금씩 말아줄 것. 필요하면 오믈렛 바깥쪽으로 15g의 버터를 더 넣어준다.

4. 흔들어 가며 황갈색이 되도록 익히고 오믈렛을 조금씩 접어간다. 완전히 접은 다음 주걱이나 젓가락으로 모양을 다듬어 준 다음 준비 된 접시 위에 얹어낸다. 치즈를 조금 뿌려 내거나 칠리소스를 곁들여도 좋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7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오늘의 책

산업의 흐름으로 반도체 읽기!

『현명한 반도체 투자』 우황제 저자의 신간. 반도체 산업 전문가이며 실전 투자가인 저자의 풍부한 산업 지식을 담아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반도체를 각 산업들의 흐름 속에서 읽어낸다.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산업별 분석과 기업의 투자 포인트로 기회를 만들어 보자.

가장 알맞은 시절에 전하는 행복 안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작가 김신지의 에세이. 지금 이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들, ‘제철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1년을 24절기에 맞추며 눈앞의 행복을 마주해보자. 그리고 행복의 순간을 하나씩 늘려보자. 제철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2024년 런던국제도서전 화제작

실존하는 편지 가게 ‘글월’을 배경으로 한 힐링 소설. 사기를 당한 언니 때문에 꿈을 포기한 주인공. 편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모르는 이와 편지를 교환하는 펜팔 서비스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나간다. 진실한 마음으로 쓴 편지가 주는 힘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설.

나를 지키는 건 결국 나 자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물질적 부나 명예는 두 번째다. 첫째는 나 자신. 불확실한 세상에서 심리학은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무기다. 요즘 대세 심리학자 신고은이 돈, 일, 관계, 사랑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을 위해 따뜻한 책 한 권을 펴냈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