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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노동의 세계에서 한 사람이 위대해지는 과정 - 『노인과 바다』

『노인과 바다』는 다른 무엇보다도 한 사람이 자기 손과 등과 어깨와 밧줄과 바늘, 작살에 속하는 낮은 노동의 세계에서 위대해지는 과정을 그린 글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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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시간의 투쟁 후에 커다란 다랑어를 육지에 내려놓으면 당신은 정화되어 아주 나이 많은 신들의 존재 속으로 겁내지 않고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 헤밍웨이, 「스페인에서의 다랑어 낚시」

용기, 정직, 기술은 그 규범의 중요한 규칙들이다. … 이 도덕의 관점에서 존경받기 위해선 패배를 받아들이고 훌륭한 운동선수가 되고 고통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게임의 규칙을 엄수하고 게임을 아주 노련하게 수행해야 한다. … 감정을 몇 개의 허사로 응축하거나 의도적으로 억눌러야 한다.
- 헤밍웨이

그것은 잔인하지 않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어떤 것보다 많은 용기와 기술과 다시 용기를 필요로 한다.
- 헤밍웨이, 「투우에 관하여」

내가 헤밍웨이를 처음 읽은 것은 로키의 주제가를 배경음으로 깔고 여자 로키(나중엔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되어 바닷물에 뛰어들기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는 헤밍웨이가 아마 그레고리 팩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짐작했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이두박근이 있는 클라크 게이블처럼 생겼다고 한다. 헤밍웨이가 뱉은 말 때문에 나는 마초 같은 남자들에게 육식성의 호감을 갖게 되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말들…

- 영광, 명예, 용기, 신성 같은 추상적인 단어는 구체적인 마을, 이름, 도로, 번호, 강, 이름, 부대의 번호, 날짜에 비하면 추잡스러웠다.

- 용기는 가능한 결과들을 무시하는 능력이다.

- 글을 진지하게 쓸 수 있으려면 먼저 지독한 상처를 입어야 한다.

- 세상에 대해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렇게 해라. 중요한 것은 꾸준히 계속해서 자기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에서 나는 뭔가 완수하고 하늘로 올라가 황소자리의 별자리가 되는 남자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보았던 것인데 (비극적이지 않은 남자는 남자 같지 않고 이루어지는 사랑은 사랑도 아니라는 사춘기적 감수성으로…) 헤밍웨이의 처세 중에 제일 맘에 들었던 것 중 하나는 어느 날 누군가에게 남자답게 보이기 위해 가슴에 가짜 털을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란 비난을 듣고 뒤이어 나온 책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40년 판에 수염을 깍지 않고 털북숭이 얼굴로 소매를 말아 올려 유달리 털이 많은 팔뚝을 드러낸 채 타자기 앞에 있는 자신의 사진을 실은 것이었다. 그가 한 아름다운 말 중엔 “절정에 이른 거짓말쟁이는 벚나무나 사과나무에 꽃이 피었을 때처럼 아름답다. 도대체 누가 이 거짓말쟁이들을 없애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라는 게 있는데 헤밍웨이의 인생을 생각하면 이 말이 바로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평생 행동보다는 예술, 진실보다는 전설에 더 끌렸던 헤밍웨이는 젊어서부터 자신의 경험에다가 약간의 거짓말과 과장을 섞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명성과 명예를 끌어내고 만들어 낼 줄 알았고 경험을 얻고자 하는 열망(경험하고자 하는 열망이 아니라), 용기를 끌어내고자 하는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폭넓은 경험만이 사람을 키운다고 생각한 그는 미국, 아프리카, 쿠바, 파리, 스페인을 돌아다니면서 살았는데 뿌리 뽑힌 추방자의 모습으로 섞이지 못한 채 구슬프게 돌아다닌 게 아니라 있는 곳 어느 곳에서라도 최대한의 쾌락을 끌어내 즐겼으며 많은 것을 보고 겪고 좋은 것은 나중에 챙겨 두었다가 소설로 썼다. 그가 방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 방의 산소가 다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그의 정력은 대단했고 그의 삶에 대한 욕구는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흘러 흘러가 모두들 그 밤에 뜨거운 마음이 되곤 했다. 스파링 파트너가 없으면 커다란 다랑어를 파트너로 삼아 권투 연습을 하던 권투 선수였고 투우애호자 겸 낚시광, 사냥꾼이었던 그는 운동 능력과 문학적 재능을 겸비한 최초의 일류 작가란 평가를 받았고(심지어 젊어서는 유별나게 잘생긴 사람으로 통했다.) 기자로 기사를 쓰고 ‘전보’를 보내는 일을 하면서 문체를 배웠기 때문에 형용사를 완전히 뺀 문장을 즐겨 쓰며 ‘빙산의 움직임이 위엄 있어 보이는 것은 그것이 8분의 1만이 물 위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란 문체론을 펼쳤다.

자기 자신의 전설을 정력적으로 만들어 내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는 실제로는 평범하게 살았던 순간에도 그 일상을 신나고 이국적인 어떤 것으로 바꾸어 말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고 모든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호기심이 많았고 질문과 경쟁, 도전을 즐겼고 강하고 단순한 사람들을 좋아했다. 헤밍웨이 소설 속 남자들은 손재주같이 실리적인 기술을 활용하며 자기가 하는 일과 자신을 일치시키는데, 그들의 큰 덕목은 어떤 특정한 일을 잘 해내는 데 외에는 큰 관심이 없고(『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게리 쿠퍼가 최고의 다리 폭파 전문가인 것처럼) 마치 운동선수에게 운동의 규칙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그들의 실용적 기술을 삶의 법칙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야외에서 천막을 치고 말뚝을 박고 불을 피우는 방법, 낚시대를 던지는 방법, 낚시한 물고기의 배를 한칼에 자르고 내장을 꺼내는 방법이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그렇게나 중요하게 자주 등장한 것은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만 세계와 조화될 수 있고 불꽃 튀는 전장에서조차도 두려움과 허무함 없이 죽음 앞의 임무를 완수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헤밍웨이식 답변일 것 같다.

영화 <노인과 바다(1958)>의 한 장면

뛰어난 소설가이기 이전에 뛰어난 기자였고 논픽션의 대가였던 그의 기사와 그의 인생 초기 소설 중 대단히 통찰력이 있는 장면들은 수도 없이 많은데, 책을 거꾸로 들고서 읽고 있는 무솔리니의 사진으로 파시즘의 본질을 한순간에 확 드러내 보인 것, 장미 덤불 가득한 정원에서 그리스 왕과 왕비와 소설가가 위스키를 나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모든 그리스인처럼 왕과 왕비도 미국으로 가길 원했다.’라는 문장(소설 『우리 시대에』 중에서)으로 전쟁의 끔찍함을 묘사한 것, ‘한 매춘부의 아주 슬픈 이야기’로 전쟁과 예술, 춤의 혼합에 대해 설명하는 것 등등은 우리 삶 역시 논픽션과 픽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용산의 철거될 건물의 옥탑에 신혼방을 마련한 새댁이 1월 20일 추운 아침 손을 호호 불며 시아버지와 남편의 아침상을 차리는 한 장면(우리 권력과 자본과 개발과 결혼의 꿈에 대해 알 수 있다.) 혹은 ‘당신의 라이프 스타일 컨설팅’ 같은 새로운 간판을 단 점집을 나와 취업 성형을 위해 성형외과 문을 두드리기 전 여자가 거울 앞에서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들으며 머리칼을 만지는 장면(우리는 불안과 취업의 절박함을 알 수 있다.) 혹은 총알과 최신식 무기가 쏟아지는 레바논의 뒷골목에서 <디어 헌터>의 로버트 드니로 같이 러시안 룰렛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 모습 뉴스를 들은 사람이 평화 유지군으로 상처받은 로봇의 이야길 담은 만화 『플루토』에 빠지는 장면(우리는 우리 몸이 슬픔과 무기력에 서서히 감염되고 있지만 동시에 강한 힘과 희망을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혹은 용역업체에 갓 취업한 젊은이가 철거할 건물의 화염에 쌓인 망루의 아비규환을 올려다보는 장면(사라진 청춘의 꿈) 혹은 한 잔 하면서 그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한 남자의 등판(고단함과 욕망의 저울)에서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한도 끝도 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에 있다. 이런 이야기들의 진실과 힘은 ‘이 모든 이야기가 꾸며낸 것이라면’이라는 각주를 마지막 문장에 조그맣게 달아보면 알 수 있다(우리는 모두 이미 꾸며낸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있으니까).

자신이 쓰는 소설 속의 인생을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언제든지 살 준비가 되어있던 그는 ‘아빠, 군인, 권투선수, 투우사, 작가, 미식가, 용맹한 사람, 유미주의자, 대단한 사내, 작가, 연인, 운동가, 전사’이자 이 모든 것의 총합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로 매일 매일 살았던 것인데 나중엔 매일 매일 바로 그 어니스트 헤밍웨이로 사는 게 너무나 힘들어져 버렸다. 바로 그런 그의 인생 후반기에 쓴 작품이 바로 『노인과 바다』이다. 『노인과 바다』에서도 그가 사랑했던 삶의 자세랄까 믿음이랄까 그런 것이 여전히 등장하는데 이를테면 ‘인간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연민은 오직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 사람들만 얻을 수 있다.’ 같은 것들이다.

헤밍웨이는 1938년 쿠바에서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 산티아고의 모델인 그레고리오 푸엔테스를 자신의 배의 요리사 겸 선장으로 고용했다.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작은 조각배를 한 척 가지고 멕시코 만류를 타고 혼자서 고기잡이를 한다. 그는 84일 동안이나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노인은 그것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진 않았다. 그와 마주친 나이 든 어부들은 슬프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그날의 조류나 태풍, 날씨에 대해서만 대화를 나눈다. 노인 역시 부끄럽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어부로서의 자부심에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그냥 자기 자신이 좀 겸손해졌단 느낌을 갖는다. 노인은 양키스 디마지오의 열렬한 팬이라 디마지오를 데리고 고기잡이에 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노인에겐 제자가 하나 있는데 그 소년은 “솜씨가 좋은 어부도 있고 훌륭한 어부도 더러 있지만 할아버지가 세계 제일이에요.”라고 늘 말한다.

85일째 되는 날 노인은 조각배를 타고 자기 힘의 3분의 1을 조류에 떠맡기고 다시 바다로 나간다. 먼 바다로 나가 어두운 해류에 낚시줄을 똑바로 드리운 노인은 ‘나는 틀림없지, 다만 운이 내게 없단 것뿐이지. 아무튼 매일 매일 새 날 아닌가? 재수가 있다는 게 좋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정확하게 하는 거다. 그래서 운이 돌아와 주면 나는 준비를 다하고 기다리고 있는 셈이니까… 지금은 꼭 한 가지 일만을 생각할 때야. 그것을 위해서 내가 한 평생 살아오지 않았는가?’라고 혼잣말을 한다.

영화 <노인과 바다(1958)>의 한 장면

『노인과 바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는 노인이 청새치를 잡던 어느 날을 회고하는 부분이다.

노인은 언젠가 한 쌍의 청새치 중에서 한 마리를 낚았던 일을 기억했다. 먹이를 발견하면 항상 수컷이 암컷에게 그 먹이를 먹게 했다. 그때 낚시에 걸려든 것이 암컷이었는데 그놈은 사방으로 날뛰면서 공포에 쌓여 필사적으로 투쟁을 하다가 기진맥진해졌다. 그 동안에도 수컷은 계속 암컷 옆에 붙어서 낚시줄을 넘어 다니기도 하고 암컷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놈이 너무 가까이 따라다니기 때문에 줄을 끊어버리지나 않을까 노인은 염려가 되기도 했다. 아무튼 그놈의 꼬리는 큰 낫처럼 날카롭고 모양도 크기도 큰 낫과 비슷했다. 노인은 갈고리대로 암컷을 끌어당겨서 몽둥이로 후려쳤다. (…) 이윽고 소년이 도와서 그놈을 배안으로 끌어올렸다. 그때까지도 수컷은 한시도 뱃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노인이 낚시줄을 치우고 작살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수컷은 자기의 짝이 어디 있는가를 알려고 뱃전 옆에서 공중으로 뛰어올라 암컷의 모습을 확인하려는 듯한 시늉을 하고는 다음 순간 물속 깊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날개처럼 생긴 그놈의 가슴지느러미 줄무늬가 넓게 활짝 펴졌던 모습이 노인의 눈에도 아직도 선했다. 아름다운 놈이었지. 끝까지 도망가려고 하지 않았지. 하고 노인은 그때의 추억을 되새겼다. 내가 당한 일 중에서도 제일 슬픈 사건이었어,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물고기가 걸렸을 때 노인과 물고기의 관계는 이 혼잣말로 정리된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더더구나 존경한다. 하지만 오늘은 기어코 끝장내고 말 테다.

자신의 배보다 2피트가 더 큰, 야구방망이만 한 주둥이와 보랏빛 가슴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의 한 차례 도약을 본 노인은 물고기도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때 노인이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은 이미 쥐가 나 쓰지 못하게 된 왼손이었다. 『노인과 바다』를 주도하는 장면은 노인이 청새치와 밧줄을 사이에 두고 공포의 곡예를 벌일 때 ‘너처럼 멋진 놈은 처음이구나, 너처럼 고결한 놈은 처음이구나.’ 물고기에 감탄하면서 그의 오른손과 왼손과 오른발 왼발을 쓰는, 즉 그가 유능한 숙련 노동자로 몸을 쓰는 장면들이다. 그런 장면의 아름다움은 노인의 혼잣말ㅡ‘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니야!’라든가 바다에선 어떤 인간도 외롭지 않다고 되뇌는 장면ㅡ을 불필요하고 썰렁하고 싱겁게 만들 정도로 강하다.

이 일은 노인의 삶 전체로 보면 며칠 동안의 일에 불과하지만, 이런 체험들이 흘러 흘러 삶이 되고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따뜻하다. 아마 이런 부류의 노인들은 살아가다가 어느 날 하루 자기의 지난날 발걸음을 돌아보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돌아보지 않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
결론적으로 『노인과 바다』는 이국의 바다 예찬에 대한 글이 아니고 신비롭고 난폭한 모험에 관한 글도 아니고 노동에 관한 글이다. 이 글은 직업윤리에 관한 글이고 게임의 법칙(게임의 규칙)에 관한 글이고, 일하는 공간에서의 정직함이나 고독에 대한 글이며, 불안해하지 않고 홀로 존재하는 방법에 대한 글이고, 그리고 노동의 동작들과 그 동작들이 주는 긴장감, 거기서 생기는 위엄이나 우아함에 관한 글이며, 아주 오래 한 작업을 계속한 다음에야 얻을 수 있는 개인주의의 승리에 관한 글이다. 흰 수염 달린 현인들의 이야기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는 아름다운 전통을 가진 우리는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이야기에도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는데 노인의 이야기는 새가 날아오르는 동안 오히려 시선을 낮추는 어떤 사람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그 사람은 새의 날아간 쪽, 새의 비상에 관심이 없듯이 인생의 도약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새가 날아왔던 이유, 물고기의 흔적, 노동의 이유가 중요할 뿐이다.

일자리와 정직한 노동이 가장 큰 관심거리인데도 우리의 노동이란 게 이상하게 미숙하고 불안정하게 느껴지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노인과 바다』는 다른 무엇보다도 한 사람이 자기 손과 등과 어깨와 밧줄과 바늘, 작살에 속하는 낮은 노동의 세계에서 위대해지는 과정을 그린 글로 읽힌다. 『노인과 바다』가 인생과 세계의 어떤 전환점에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아마 이런 날들일 것 같다. 우리가 일하고 싶을 때, 자신의 노동과 완벽하게 밀착된 관계를 맺고 싶을 때, 대체 가능한 부품이 아니라 시적으로 일하고 싶을 때, 대단한 성취와 존경은 아니더라도 존중받는 일을 하고 맥주 한잔 놓고 지친 몸으로라도 웃고 싶을 때, 내 건강한 노동으로 내 정당한 돈을 벌고 싶을 때, 변명이나 이력서 말고 행동 안에서 자신이 되기를 바랄 때, 위로받고 연민의 대상이 되느니 움직이고 싶을 때, 자기 자존심은 자기가 챙기고 싶을 때, 부활하고 싶을 때, 그렇게 살면서 나이 들어가고 싶을 때, 바다가 바닷가에게 복종하듯 노동이 우리에게 (혹은 우리가 노동에게) 복종하길 원할 때, 바다와 파도가 서로 애무하듯 우리도 우리 일과 온몸으로 달래고 으르렁거리며 애무하고 싶을 때.

하지만 『노인과 바다』에서 진짜 슬픈 장면은 따로 있다. 소설의 맨 마지막에서 노인이 끌고 온 청새치의 거대한 뼈를 본 관광객 부인은 저 뼈가 무엇이냐고 호텔 종업원에게 묻는데 그 종업원은 “티부론이죠, 상어의 일종입니다.”라고 사투리 섞인 영어로 대답한다. 그의 노동은 과연 인정받은 것일까? 앞으로 인정받을 날이 또 올까? 나는 자신 없다.

쿠바의 고래잡이 노인과 일하던 횟집, 중국 식당 같은 생존과 노동의 공간을 잃을 용산의 철거민들의 이야기는 서인도제도 세인트루시아 시인, 1992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바마 당선 축시를 쓰기도 한) 데릭 월컷의 시 때문에 내 안에서 복잡하게 서로 엉켜든다.

(…)
우리 섬들에 대한 내 사랑이 짐이 되어야 한다면
내 영혼은 부패로부터 날개를 달라
그러나 저들은 이미 내 영혼을 독살하기 시작했다
저들의 거대한 집과 거대한 자동차, 대단한 카니발 멜로디로
막일꾼과 검둥이, 시리아와 프랑스계 이민자들로
그래서 나는 내 영혼을 그들의 손에, 그들의 카니발에 맡겼다
바다에서 멱을 감는 내가, 이미 길 저편으로 떠나버린 내가
모노스에서 나소까지 나는 이 섬들을 잘 알고 있다
바닷물처럼 푸른 눈을 가진 붉은 머리 일급 선원을
그들은 샤빈이라 불렀다
붉은 검둥이를 일컫는 방언으로 샤빈이라고
그리고 나 샤빈은 보았다
제국의 이 빈민가가 낙원이었던 시절을
나는 그저 바다를 사랑하는 붉은 검둥이
나는 자랑스러운 식민 교육의 수혜자
내 안에 네델란드인이, 검둥이가, 그리고 영국인이 있다

그리고 나는 아무도 아니거나, 한 나라이다


‘나는 아무도 아니거나 한 나라이다.’ 이 문장이 바로 앞으로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문장이 될 것이다. 나는 아무도 아니거나 한 나라이거나 한 시대다.

헤밍웨이는 어느 날 그의 친구인 화가 루이스 킨타니야가 스페인에서의 폭동을 사주한 혐의로 구속되자 그의 투옥을 청원하고 작품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카탈로그 서문을 쓴다. 그는 행동하는 예술가를 이런 사람들과 비교했다.

총파업으로 굶어본 적이 없고
손을 들고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
곤봉으로 머리가 깨지거나 벽돌을 던져 본 적이 없는 사람들
쇠지레에 맞아 부서진 비조합원의 팔뚝이나
공기 호스로 압축공기가 가득 채워진 선동가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
대도시에서 밤에 한 짐의 무기를 옮겨 본적이 없는 사람들
(…)
권총을 물통에 던져 버리고 군인들이 계단을 올라올 때
지붕에 서서는 톰슨제 권총의 백스핏 때문에 손가락과 엄지손가락 사이에 묻은 검정을 지우기 위해 손에 오줌을 누려고 애써 본적이 없는 사람들

- 루이스 킨타니야 전시회 카탈로그 중에서

이 카탈로그의 몇 문장은 겨울 공기 속에서 더욱 선명한 우리 도시의 스카이라인처럼 너무나 명백하게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하는데 바로 그 스카이라인 앞에서 우리는 원망과 섭섭함으로 가득한 누군가의 법정 최후 진술문를 읽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나는 아무도 아니거나 한 나라이다’는 슬픔에 대한 각주만은 아닐 것이다. 추억과 회한의 볼레로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헤밍웨이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쓴 세기의 칭송,

이런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여자
무엇이 그녀를 평화롭게 만들었을까?


이 문장을 오늘은 겨울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며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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