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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트 에코가 사랑한 서점

움베르트 에코가 미국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곳이 스트랜드 서점이라고 한 것은 어쩌면 스트랜드만의 카오스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광기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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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칼럼에 소개된 모든 서점은 직접 다녀온 실제로 존재하는 뉴욕의 서점입니다. 그러나 구성된 이야기는 픽션으로 혼동 없으시길 바랍니다. 칼럼은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야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레이스가 머문 지 고작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거실엔 벌써 책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녀가 자는 소파 주변을 에워싸는 정도였지만 차차 거실 내부로 번지기 시작했다. 책들의 탑이 거실 여기저기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손에 닿으면 먼지로 사라질 것 같은 오래된 책도 있었고 막 나온 신간 하드커버도 있었다. 소설, 에세이, 사진집, 예술 서적 심지어는 요리 책까지 그 기준을 알 수 없는 책들이었다. 내가 적어온 목록으로 구입한 책도 보인다.

그레이스가 없는 사이 나는 아무 책이나 꺼내어 대충 읽어 본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작가의 페이퍼백이다. 표지를 보내 60년대 유행했던 공상과학 소설인 것 같다. 모르는 영어 단어는 대충 넘어간다. 사전을 찾아가며 읽으려면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할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혹은 어린아이였을 적에 이런 책을 쓰기 위해서 책상 위에 앉아 있었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때는 아마 컴퓨터도 없이 타자기로, 혹은 손으로 한 자 한 자를 채워 나갔겠지. 머릿속의 상상의 이야기, 수년 동안 연구해온 과제를 책으로 남기기 위해서 책상 앞에 꼼짝 없이 붙잡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괴롭게 써 나갔던 글은 책이 되었고, 서점과 도서관 누군가의 서가를 지나 이제 내 손에 이렇게 쥐어져 있다. 글쓴이도,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신참내기 소설가가 40여년 뒤에 자신의 소설을 읽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이 남자의 책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더라도 얼마나 다행인가? 그레이스의 말대로라면 다른 책들은 어차피 30년 뒤면 모두 불타 버릴 텐데……

뉴욕의 정경

거실 벽에는 서점이 표시된 뉴욕의 지도가 걸려 있다. 엑스 표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1/3도 채 방문하지 않았다. 파트를 나누어서 각 서점의 사진을 찍고, 구하고 싶은 세권의 책 리스트를 조사하는 거지만, 나는 거의 모든 서점을 방문하고 있다. 내가 찾는 건 따로 있다. 지금은 지독하게 써지지 않지만 3년 뒤면 완결될 내 소설이 뉴욕 서점 곳곳에 숨겨져 있다. 서점이 표시된 곳 아래에는 내가 찍어온 사진이 명함 크기로 출력되어 있다. 한참을 보고 있으니 뉴욕의 살인 사건 분포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서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말이다. 서점을 다 방문할 때쯤이면 과연 거실에 얼마만큼의 책이 쌓일까? 그리고 어떻게 이 모든 책을 미래로 가져갈 수 있을까? 지금, 그레이스는 어느 서점에서 뭘 하고 있을까?

뉴욕의 카오스를 느낄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중고서점
<스트랜드 서점 Strand Bookstore>


일주일에 서너 번은 스트랜드 서점에 간다. 책을 사기 위해서도 가고, 책을 사지 않을 때도 간다. 위치도 편리하게 대부분의 지하철을 환승할 수 있는 유니언 스퀘어 역 근처에 있다. 유니언 스퀘어 남쪽으로 브로드웨이를 따라가다 보면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이 나온다. 미국에서도 중고서점은 거의 사라지는 추세지만 스트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중고서점이라는 프라이드를 지키고 있다. 1927년에 생긴 이후로 수많은 서점이 사라지는 가운데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다. 스트랜드가 생겨날 당시 유니언 스퀘어와 아스토플레이스 사이(여섯 블록)의 5번가에는 서점이 48곳이나 있어서 Book Row라고 부를 정도였다고 한다. 스트랜드는 그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살아남은 서점이다. 현재 막강한 경쟁자는 유니언 스퀘어에 있는 반스앤노블 뿐이다. 나는 반스앤노블에서 대충 책을 읽어보고, 똑같은 책을 스트랜드에서 제값보다 싸게 사곤 한다. 어차피, 그 거대한 백화점식 체인은 내가 이런 짓을 하더라도 잘 살아나갈 테니까 미안하지 않다. 나 같은 북원더러에게 책 한 권에 3,4 달러를 아낄 수 있는 건 대단한 일이다. 운이 좋으면 하루에 수십 달러를 아낄 수 있다.

스트랜드 서점의 메인 윈도우

창립자 밴자민 배스의 아들인 프레드와 손녀 낸시가 가업을 이어 받아 스트랜드는 아직도 승승장구 하고 있다. 다운타운의 분점까지 낼 정도니까 책을 죽 늘어놓으면 ‘18마일의 책’이 된다는 캐치프레이즈가 허황된 말은 아니다.(초창기에는 8마일의 책이 홍보 문구였다고 한다. 간판에는 숫자를 바꾼 표시가 난다.) 서점 입구에는 1달러 특별 세일하는 책을 사려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1달러에 팔리지 않는 재고 도서를 정리하는 것인데, 오래된 요리책이나, 여행 및 예술 관련 책등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 책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길거리에서 파는 핫도그도 1달러가 넘는 뉴욕에서 아마도 1달러로 살 수 있는 가장 값진 물건이 바로 이곳의 책일 것이다.

스트랜드 서점 측면 간판 - 18마일의 책들

서점은 들어가는 곳과 나오는 곳, 그리고 중고 서점을 파는 곳이 분리되어 있다. 중고 책을 파는 곳이 입구인지 알고 들어갔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입구를 제대로 찾았어도, 가방을 둘러메고 있다면 누군가가 큰 소리로 당신을 부를 것이다. 작은 손가방 보다 큰 가방은 사물함에 맡겨 야 한다. 마트에 동전을 넣는 방식도 아니고, (보통은 험악하게 생긴) 안내원이 사물함 빈 자리에 가방을 넣고 번호표를 준다. 그렇다, 뉴욕에서 가방을 맡기고 들어가는 대접을 받는 서점은 이곳 밖에 없다. 도둑을 방지하기 위한 점도 있지만 들어가 보면 그야 말로 카오스적인 빽빽한 공간 때문에 가방을 들고 있는 것이 불편하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처음 이곳을 찾는 사람에 스트랜드가 주는 인상은 ‘이곳은 우리만의 룰이 있으니 따라주세요. 아니면 나가시던가.’ ‘새 책도 그 어떤 서점보다 싸니까 이정도 불편함도 감수해 주세요.’ 정도가 된다. 그런 불편한 인상도 극복하고 스트랜드에 입성한다면 이후부터 충성 고객이 될 자격은 일단 갖춘 샘이다. 빨간 스트랜드 로고가 달린 부직포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길거리에서 봤을 때, 반갑게 인사를 하고 싶을 정도면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신호다.

스트랜드 내부의 비좁은 일반 서가

좁고, 불편하고, 친절하지도 않지만 주머니 사정이 궁한 책벌레라면 누구나 이곳에 걸신들린 듯 찾아와 허기를 달랜다. 그리고 그 허기는 서점 안에서 전염된다. 슈퍼마켓처럼 이곳에서는 플라스틱 장바구니가 갖추어 있다. 이런 걸 누가 쓰나 싶지만 장바구니에 책을 쓸어 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몇 주가 지나면 자신이 들고 있는 책들이 무거워 바구니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계산대에서 긴 줄을 기다리면서도 짜증을 내지 않는 방법을 터득하고, 카운터에서 파는 스트랜드 배지나 볼펜 따위를 이미 서너 개 구입했다면 더 이상 스트랜드 이외에서 책을 사기가 힘들어진다.

“책 안쪽 표지에 가격이 표시되어 있고 아니면 반값입니다”

서점 내부는 세상에서 가장 큰 중고서점인가 싶을 정도로 좁다. 천장에 닿을 듯한 높은 책장이 빼곡 들어차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반스앤노블이 백화점이라면 이곳은 재래시장 같은 분위기라 책을 여유 있게 고르기가 어렵다. 카페는커녕 앉을 공간도, 의자도 없다. 무슨 이유인지 주인장은 ‘절대로 이곳에 에스프레소 카페를 만들지 않겠다.’고 단언했다고 한다. 서가 사이가 좁아서 매번 책을 고르는 사람들과 부딪혀서 멋쩍게 양해를 구하고 비켜 줘야할 지경이다. 중앙 매대에서는 신간을 25% 싸게 팔고 있고, 일반 서가에도 출판사의 재고나 중고서적이 섞?서 싸게 판매된다. 중고서적은 일반적으로 반값에, 하드커버는 그보다 더 저렴하게 할인해서 팔고 있다. 그래서 하드커버가 페이퍼백보다 싼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새 책, 서점 재고나 중고 서적이 따로 구분되지 않고, 도서관처럼 분야별, 작가별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같은 책이라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지하에는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리뷰용 하드커버 책을, 2층에는 예술과 어린이 책을 팔고 있다. 예술 관련 책들은 대부분 두껍고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이곳을 이용하면 훨씬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1달러 가판대

요즘에 일본 관광객들 사이에는 스트랜드 로고가 달린 가방이 유행이라고 한다. 계산대 한켠에는 로고가 그려진 다양한 가방과 티셔츠가 파는 공간까지 따로 생겼다. 할인 도서 이외에도 2층에는 희귀 서적이 안전한 유리 선반에 보관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초기 인쇄본이 10만 달러의 가격표가 붙여서 전시되고 있고, 유명 작가들의 사인본, 사진, 희귀 예술 서적과 사진집도 보유하고 있다.

최고의 중고서점인 만큼 행사도 다양하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작가와 독자와의 행사가 열린다. 또한 스트랜드에는 매달 독자적인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만든다. 순전히 스트랜드 서점(온라인 포함)을 통해 판매된 책을 기준으로 소설/비소설로 나누어 만드는데 소설에는 항상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라던가 조지오웰의 『1984』, JD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등장하고 있어서 스트랜드의 성향을 잘 알 수 있다.

스트랜드 내부 -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본 광경

이곳에서 감히 누군가에게 ‘세상에서 구하고 싶은 세 가지 책’ 따위를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만큼 친절한 사람은 고사하고, 다들 일하는데 정신이 없게 보인다. 다행히 이 서점은 그레이스가 맡았다. 나는 습관적으로 이곳에 와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있는지 훑어보고 있다.

이곳에서 책을 사는 경험이 결코 쾌적하다고는 볼 수 없다. 통로도 좁고, 일하는 직원들도 그렇게 친절하지 않고, 책에 관해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미워할 수 없는 이 서점의 매력은 무엇일까? 별로 살 책이 없더라도 좋아하는 작가의 섹션을 확인하러 지나가는 길마다 들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격이 싸다는 이유 뿐만은 아닌 것 같다. 움베르트 에코가 미국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곳이 스트랜드 서점이라고 한 것은 어쩌면 스트랜드만의 카오스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광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것이 스트랜드의 진정한 매력이고, 뉴욕의 진정한 매력이기도 하다.

스트랜드 서점 Strand Bookstore
본점 828 Broadway(at 12th street)
분점 88 Fulton Street
www.strandbooks.com

센트럴 파크 가판대(여름 및 날씨가 좋을때만)
60th Street and 5th

* 하드커버와 페이퍼백에 대한 이해
미국에는 하드커버 양장본(크기도 약간 크고 가격도 두 배다.)이 먼저 출판된 다음, 반응을 보고 값싼 페이퍼백 문고본으로 다시 출간한다. 그 기간은 책마다 다르지만 약 일 년 정도가 걸린다.

스트랜드 서점에서 나오니 문득 배가 고파졌다. 이상하게 외국에 오면 자주 배가 고파진다. 지갑을 열어보니 오 달러짜리 한 장과 일 달러짜리 두 장 밖에 없다. 신용 카드로 계산해도 되겠지만, 이번 달 결제일이 다가오고 있다. 통장은 깨끗하게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여자 친구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메일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약속 보다 오래, 지구 반대편에서 머물면서 제대로 소설도 쓰지 않고, 연락도 자주 하지 않는 남자친구에게 돈을 부쳐줄 것 같지는 않다. 보통 이 부근에서 배가 고프면 덤플링맨(Dumpling Man)의 만두나, 라이라이켄에(Rai Rai Ken)서 라면을 사 먹지만 오늘은 그 정도의 여유도 없다. 문득, 나는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막막해졌다. 동기들은 대부분 땀 흘려 일하고 있을 시간에 써지지 않는 소설 나부랭이를 붙잡고 있는 것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덤플링맨 - 출출함을 달랠때

라이라이켄 - 소박한 일본 라면바

오후 여섯시 이곳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세인트마크 북샵에서 주최하는 A.M Homes의 낭독회가 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홈즈는 내가 미국에서 제일 좋아하는 여자 작가다. 바비인형과 사랑에 빠져버린 남자 아이 이야기를 다룬 단편소설 『Real Doll』을 읽은 이후로 팬이 되어 버렸다. 특히 그녀는 단편집이 매력적인데 『The Safety of objects』 같은 경우,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 이번 낭독회는 최근 발표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The Mistress's Daughter』를 위한 자리다. 특이하게도 서점이 좁아 근처에 있는 바에서 낭독회를 한다.

“아직 사람이 없군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 낭독회인데… 그런데 사람이 꽉 들어차도 서른 명 정도 밖에 오지 못할 것 같아요.”

30분 정도 일찍 도착하니 나와 한 아주머니가 전부였다. 2층에 마련된 공간에는 바도, 음악도, 웨이터도 편안한 의자들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옆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뉴욕에서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굉장히 쉽다.

“저도 일찍 와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어요. 홈즈를 좋아하세요?”

“그럼요, 팬인걸요. 그런데 최근 책은 읽어보지 못했어요. 장편은 별로라고 생각해요.”

“세인트 마크 서점도 좋아하시나 봐요?”

“아담하고 쿨한 서점이지요. 사실은 책은 스트랜드 서점에서 사요. 방금 전에도 거길 다녀온 중이었어요.”

“어휴… 저는 거기 가면 정신이 없어서 사람이 없는 오전에만 가요. 그런데 그쪽도 혹시 글을 쓰시나요?”

이 아주머니도 작가인가 보다. 뉴욕의 대부분의 사람은 예술가가 아닌지 착각이 들 때가 많다.

“아… 네. 첫 책이 나왔을 뿐인걸요. 뉴욕 지하철에 대한 이야기에요. 영어로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어요. 두 번째 책을 쓰는데… 잘 써지지 않아요. 세상의 모든 도서관을 태우는 이야기예요.”

다행히 그녀는 소설의 내용은 묻지 않는다. 잠시 어색한 침묵.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고 웨이터가 올라와 한 사람씩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낭독회 때 술을 마시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팁까지 포함하면 전 재산이 날아갈 판이다.


“저는 마티니를, 그쪽은?”

아주머니가 묻는다.

“아… 전 됐습니다. 방금 한 잔 마시고 와서.”

“제가 한 잔 사드리고 싶은데.”

“그럼 저는 브루클린 라거로 하겠습니다.”

“원래 두 번째가 어려운 거예요. 첫 번째는 멋모르고 쓰는 거니까. ‘도서관을 태우다’를 완성한다면 도서관에서 그 책을 사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시구요.”

소리 내 웃으며 건배를 했다. 마침내 사회자가 작가를 소개한다. 그런데 맙소사, 나와 방금 전까지 이야기를 한 여자가 바로 홈즈였다. 분명 내가 가지고 있는 단편집의 책날개에는 신경질적인 미모의 여자 사진이었지 이렇게 평범하게 살이 찐 아주머니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그 소설집은 10년도 전에 출간된 것이다. 자세히 보니 눈매가 비슷하다. 그녀는 살짝 윙크를 한다.

낭독회의 A.M Homes

반스앤노블에서 환한 조명에 웅성거리는 관객들 사이에서의 낭독회와는 다른 맛이다. 조명은 어둡고, 사람들은 술을 마셔서 그런지, 분위기가 한창 고조 되었다. 책이 없어서 어떤 부분을 읽고 있는지, 어떤 내용인지 짐작하기 힘들었지만 사람들이 웃을 때 같이 따라 웃었다.

낭독회가 끝나갈 무렵, 나는 바를 나와서 스트랜드로 달려갔다. 운이 좋다면 13달러 하는 홈즈의 새 책을 6달러에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꼭, 그녀의 싸인을 받고 싶었다. 빈속에 맥주를 마셔서 얼굴이 후끈거렸다. 숨을 가다듬고 소설 서가로 와서 H 파트를 찾아본다. 기적처럼 그곳에 A.M Homes 의 『The Mistress's Daughter』가 놓여 있었다. 페이퍼백으로 나온지 얼마 안됐는데 신기했다. 그리고 책값도 딱 6달러다. 누군가 분명 선물로 받고, 재미가 없어 판 게 틀림없다. 고함을 지르고 싶을 정도다, 이런 맛으로 스트랜드 서점에 오는 것이다.

서둘러 계산대로 향하는데 낯익은 사람을 보았다. 역사 서가의 한 구석에 그녀가 책을 고르고 있다. 이름을 부르려고 하는데, 나는 보고야 말았다. 그녀가 책 한 권을 슬쩍 가방에 넣고 있다는 것을. 사물함에 맡기지 않아도 되는 스트랜드의 작은 부직포 가방에 자연스럽게 책을 훔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 고개를 돌려 계산대로 향했다. 그리고 아직 홈즈의 낭독회가 끝나지 않았길 고대하며 솔라스 바로 달려갔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그레이스가 검색대를 빠져나오고, 삑 소리가 나고, 험악한 경비원들에게 붙잡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제길. 바의 간판이 보이는데, 나는 걸음을 멈춰 버린다. 가뿐 숨을 몰아 쉰다. 180도 뒤를 돌아, 스트랜드 서점으로 다시 뛰어간다. 잡히건 말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 경비원보다 더 빨리 도망칠 수도 있고…… 그러나, 나는 그녀가 무척 걱정이 되는 것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친필 사인을 놓쳐도 될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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