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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어울리는 의자 고르기

한 해의 시작인 1월이다. 무조건 서둘러 내달아 가기에 앞서 지금 자신의 앉은 자리를 한번쯤 확인해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 의자가 과연 어떤 자화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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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계시죠? 운동선수들과는 완전히 반대로 몸을 너무 안 써서 생겨난 증상이에요.” 허리 통증이 갑자기 심해져서 운동선수들이 자주 온다는 유명한 한방병원에 갔더니, 담당 의사가 꾸짖듯 말해준다. 앉아 있기 위해 오래도록 등허리를 세워놓고 버티면 모르는 사이 척추에 심하게 무리가 간다는 것이다. 확실히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의자 위에서 보내는 부류에 속했다. 한번 자리 잡으면 좀체 들락날락하지 않는 편이고, 또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눕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백발백중 그런 사람에게 생기는 통증이라나.

의자는 마치 내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나와 일체를 이루고 있다. 집에 오면 외출복을 벗어 던지고 푹 잠길 수 있는 넉넉한 ‘레이지 보이(Lazy boy)’ 안락의자에 나를 맡긴다. 16년 전 이 의자를 구입한 이래 거의 매일, 나는 그것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있다. 휴일에는 온종일 그 의자의 품에 파묻혀 책도 읽고 쿠키도 먹고 TV도 보고 인터넷도 하고, 통 일어설 줄을 모른다.

나 못지않게 의자를 자기 분신처럼 생각했던 화가가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90)의 그림, 「반 고흐의 의자 A Chair」를 소개한다.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의 의자」
황마에 유채, 93×73.5cm, 1888, 런던 내셔널갤러리

반 고흐는 아를에 머무는 동안 주로 주변 인물들을 그렸지만, 이 그림 속에서는 인물은 간데없고 파이프가 놓인 빈 의자만 등장한다.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 무언가 고민에 잠겨 있다가, 멍하니 벽을 보거나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붓을 들고 그림에 몰두하는 반 고흐의 모습이 의자 위로 중첩된다. 그가 앉아 있던 수 겹의 시간은 물론, 그의 체온까지도 그곳에 스며있는 것만 같다. 이 의자는 인물이 그려지지 않았을 뿐, 반 고흐의 자화상과 다름없다.

의자는 자화상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은유하기도 한다. 휴일에 집에서 읽을 책 하나 빌려달라고 했더니 동료 직원이 책꽂이에서 즉흥적으로 뽑아준 책의 제목이 마침 『웨하스 의자』였다. 의자에 대해 글을 쓰려고 생각 중이던 때라 제목에 솔깃해졌다. “웨하스 의자라는 게, 웨하스로 쌓아 만든 의자인가 봐요. 불륜 내용이라 이 선생님은 별로 안 좋아하려나. 사랑을 했는데, 그 사랑이 불행히도 불륜인 거죠, 뭐. 입에 녹을 듯 향긋하지만 웨하스처럼 쉽게 바스러지는 의자에요. 한마디로 내 것이지만 소유할 수도 없고, 앉을 수도 없는 의자라고 해야 하나? 설명이 잘 안되네. 직접 읽어보세요.” 이렇게 소개받았다.

『도쿄 타워』『냉정과 열정 사이』의 작가이기도 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사랑 때문에 한창 고민 중인 사람들에게나 호소력 있을 것이라고 평소에 생각했지만, 감정을 살려서 읽어보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의자라면 안정되고 안락한 관계를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웨하스 의자』가 상징하는 주인공의 상황은 행복하면서도 언제나 불편한 듯, 산만한 듯 정착하지 못하고 공중에 붕 떠 있다. 서로 사랑하지만 결코 자신에게 머물지 않는, 아니 머물 수 없는 애인이 다녀간 후에는, 매번 덩그러니 남겨진 허전한 빈 의자가 그녀의 가슴에 자리 잡는다. 그 의자는 의심할 필요도 없이 부서지기 쉬운 불안한 그들의 관계이다.

하지만 그 관계는 다른 불륜들처럼 아주 무기력하게 끝을 맺지는 않는다. ‘웨하스 의자’라는 말이 품고 있는 이중성 때문이다. 먼저 그것은 아까 말한 대로 안주할 수 없는, 자칫 부수어져서 끝나버릴까 조마조마한 행복을 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맞추기 힘든 세상의 가치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깨부수어야 하는 외부의 틀을 뜻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맘껏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런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곧 웨하스 의자가 아닐까 싶다.

그와는 반대로 자신이 앉을 의자를 자기가 직접 튼튼하게 만들어 쓰는, 공을 들이고 시간을 들여 자기 것을 정성껏 만드는 일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의 셰이커(Shakers) 교도들이다. 18세기말 영국의 노동자 계급 비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세운 기독교 종파가 바로 셰이커이다. 오늘날에는 겨우 몇 안 되는 신자들만이 명맥을 잇고 있지만, 19세기에는 메인 주에서 켄터키 주에 이르기까지 약 6천 명의 신봉자들이 모여 살면서, 땅을 일구어 빵과 포도주를 만들어 먹고 가구와 옷을 직접 만들어 쓰는 등 슬로라이프(slow life)를 추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급자족이야말로 인간이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다.

셰이커들이 만든 가구에는 그들만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실내에는 온 벽을 둘러 무엇을 걸 수 있도록 나무 띠가 둘러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바구니, 빗자루, 조리 기구, 심지어는 테이블까지도 벽에 걸었다. 모자나 옷을 안 입을 때 벽에 걸어 놓듯이, 의자도 안 쓸 때는 벽에 걸어 둔다. 가구에 몸을 묶어 두는 대신 쉬지 않고 몸을 바지런히 움직이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예배 드릴 때에도 가만 앉아 있지 않고 춤추듯 몸을 흔들면서 돌아다녔다. 그래서 ‘흔들이(shaker)’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었다.

벽걸이에 걸린 셰이커 의자, 켄터키주 셰이커 교도들의 거주지 실내

셰이커 성직자들을 위한 방, 뉴욕 뉴레바논

본래 너무 편안한 의자는 심신을 망치는 법이다. 의자는 꼭 필요한 때만 꺼내 앉고, 평소에는 될 수 있으면 구석에 치워놓아야 한다. 상시 몸을 던져 안길 수 있는 의자는 나쁜 의자다. 내게도 16년 동안 동고동락해온 편하지만 나쁜 의자가 있다. 허리 건강을 위하여 의자를 멀리하라는 처방은 사실 진료 당일부터 지키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의자를 바꾸어 보기로 결심했다.

한참을 의자에 대해 떠들었지만, 내게 맞는 의자란 어떤 것인지 여전히 고르기 어렵다. 역대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가장 야심을 가지고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했던 품목이 바로 의자라는 사실은 시사해주는 바가 있다. 그들이 흔하디흔한 의자 하나를 디자인하는 일에 그토록 고심했던 이유는 자기 평생의 철학을 드러낼 수 있는 의자여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의자란 곧 내가 만들어 온 나 자신의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앞으로 보여 줄 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새해의 시작과 더불어 꽤 비싼 의자를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물건을 구입하면 왠지 무언가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진다. 참고서를 산 날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새로 산 의자는 말을 탄 자세처럼 몸의 무게중심이 무릎 부분으로 쏠리게 만들어져 있다. 특별히 이 의자는 한의사의 충고 그대로 30분마다 한 번씩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몸을 쭉 펴야만 하는 장점이 있었다. 30분만 앉아 있어도 무릎이 저려 오기 때문이었다. 이 의자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셰이커의 의자처럼 사용 목적이 있을 때에만 앉아야 한다.

사는 일에 바빠 여기저기 휩쓸려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된 후부터 ‘슬로라이프’라는 말에 더더욱 귀가 쫑긋 뜨이기 시작했다. 이 말은 언뜻 한가하거나 게으르고 싶다는 의미로 들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자연의 속도에 맞추고자 하는 삶의 철학과 관련된 말이다. 나처럼 리모컨과 마우스를 양손에 쥐고 ‘레이지 보이’ 의자 위에 파묻혀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삶인 것이다. 한 해의 시작인 1월이다. 무조건 서둘러 내달아 가기에 앞서 지금 자신의 앉은 자리를 한번쯤 확인해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 의자가 과연 어떤 자화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인지…….


이주은이 추천하는 관련도서

의자 CHAIRS
샬로트, 피터 필 공저, 노성두 역 | 아트앤북스 | 2003년 7월
작은 크기의 디자인 의자 사전 같은 책이다. 의자의 역사나 세계의 모든 의자를 다룰 정도의 분량은 아니지만, 의자가 현대 디자이너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 대략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본래 기능보다 디자인의 구호를 강하게 외치는 의자도 보이고, 이용자를 최대한 배려하면서도 인테리어 기능까지 겸비한 의자도 있다. 시대의 요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의자의 세계를 살짝 엿보기에 좋은 책이다.

슬로 라이프: 우리가 꿈꾸는 또 다른 삶
쓰지 신이치 저, 김향 역 | 디자인하우스 | 2005년 2월
슬로 라이프하면 지금까지의 삶을 모두 버려야할 것 같은 두려움이 먼저 몰려온다. 그것도 아니면 내 삶의 방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꾸짖는 이야기일 것 같아 애써 외면해보기도 한다. 웰빙이라면 괜찮은데 말이다. 그런데 의외로 슬로 라이프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따뜻하다. 그동안 ‘내가 이런 식으로 살면 뒤처지지 않을까?’ 하며 품었던 의문들이 사실을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는 게 슬로 라이프일지도 모르겠다. 슬로 라이프가 무엇인지 조금 궁금했던 독자들에게 권할 만한 입문서이다. 짧고 쉬운 글들의 모음은 '삶'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위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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