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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머무는 엉덩이

어쩌면 우리 신체 중 가장 예쁜 곳이 엉덩이일지도 모른다. 항상 의자에 파묻혀 가려져 있는, 그래서 가꾸고 장식해야 할 몸의 일부분으로서 살지 못하고 마치 방석이나 쿠션인 양 잊혀져버린 자신의 불쌍한 엉덩이에게 한번쯤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해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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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가 멋쟁이의 사치품으로 처음 대두된 것은 내가 중학교 다닐 무렵에 유행하던 ‘조다쉬’ 청바지부터가 아닐까 한다. 빨간 줄 나이키 운동화 그리고 조다쉬 청바지, 이 두 가지만 갖추면 중·고등학교에서 잘나가는 부류로 인정받던 때가 있었다. 조다쉬의 상징인 말머리는 가정과 학교에서 억압을 느끼던 하이틴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초원을 마음껏 달리는 말처럼 탁 트인 자유를 꿈꾸게 해주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조다쉬에 열광했던 더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엉덩이에 시선을 집중시켜주는 디자인 때문이었다. 박음 실선이 두 줄이 아닌 세 줄로 장식된 뒷주머니, 그리고 그 위로 머리칼을 휘날리는 말머리가 멋들어지게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조다쉬를 입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거리를 지나갈 때면 엉덩이에서 말들이 신나게 뛰고 있는 듯 보였다.

말은 그러고 보니 엉덩이가 일품인 동물이다. 우람하고 긴 근육질의 허벅지 위에 쭈글쭈글함 없이 탄탄한 살집을 가진 그 거대한 매력덩어리 엉덩이!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엉덩이는 역시 사람의 것이다. 우선 사람의 엉덩이는 동물들 중 유일하게 꼬리로 가리지 않아도 항문이 노출되지 않도록 골이 져 있다. 두 발로 직립보행하기 시작하면서 구부정하던 유인원의 편편한 엉덩이는 점차 독립적인 형태를 갖추면서 볼록하게 변해갔다. 엉덩이의 두 폭이 항문을 완전히 감쌀 수 있도록 토실토실 살이 붙고, 살진 두 언덕 사이로 깊숙한 골짜기가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잘 익은 복숭아처럼 탐스러운, 쓰다듬어 보고 싶은 둥그런 엉덩이를 지닌 인간으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얼굴을 보는 것과 엉덩이를 보는 것은 그 의미가 같지 않다. 얼굴은 누구나 바라볼 수 있는 공인된 부위이지만, 반대로 엉덩이는 옷을 입은 상태조차도 되도록 쳐다보지 말아야 할 곳으로 간주된다. 인류학자의 관찰에 의하면, 암컷 원숭이는 수컷 원숭이를 유혹하고 싶을 때 보란 듯이 엉덩이를 내미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한다. 이때 자세히 보면 암컷의 엉덩이는 부풀어 오르고 색깔도 선홍빛으로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들이대는 엉덩이를 보면 수컷은 어쩔 줄 모르고 안절부절 못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성의 엉덩이는 종종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렇기 때문에 엉덩이에 시선을 모으는 행동이나 패션은 결코 예사롭지가 않다. 그것에는 의도적인 유혹의 메시지가 담겨있기 쉽다.

여기 누군가에게 엉덩이를 내밀듯 뒷모습을 보여주는 여인이 있다. 프랑스 낭트 태생으로 런던에서도 활동했던 화가,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1836~1902)가 그린 「10월 October」에 등장하는 여인 말이다. 노랗게 물든 10월의 낙엽을 배경으로, 안 그래도 마음이 뒤숭숭한 계절에 화려하게 생긴 여자가 나타나 “지금 날 사랑하지 않으면 난 곧 떠날지도 몰라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 가을이 지나버리면 영영 황량한 겨울이 오는데, 지금 이 느낌이 사랑이라는 확신은 없을지라도 왠지 돌아서려는 그녀를 붙잡아야만 할 것 같다. ‘날 두고 가지 마, 가면 안 돼…….’ 티소는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이 여자 캐서린으로 인해 완전히 마음이 뒤흔들리고 있었다. 캐서린은 아이가 딸린 이혼녀인 데다가, 남편 아닌 다른 남자에게 꼬리치다가 쫓겨났다는 최악의 소문마저 흥건했던 여자였다. 그런 그녀이지만 티소는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제임스 티소, 「10월」, 캔버스에 유채, 216×108.7cm, 1877, 몬트리올 미술관

바람기가 많다는 그녀를 표현하기에 적당한 옷은 아마도 엉덩이를 강조하는 패션이 아니었을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지금 그림 속에서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보니 유독 엉덩이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1870~80년대 유럽에서 유행하던, 이른바 버슬 스타일(Bustle Style)의 드레스이다. 가짜 엉덩이 심지를 허리에 두르고, 엉덩이 쪽으로 치마를 당겨 프릴을 층층이 달아 한껏 부풀린 이 스타일의 드레스는 360도로 퍼진 이전의 무거운 드레스에 비해 여인의 모습을 한결 경쾌하고 발랄하게 보이게 했다. 엉덩이를 거하게 했으니 걸을 때마다 실룩실룩, 상대방의 마음을 교란시키는 것은 물론이었다.

버슬 스타일을 위한 가짜 엉덩이 심지

유혹적인 엉덩이를 가진 또 한 여인을 소개한다. 에밀 졸라의 소설 『나나Nana』에 나오는, 이 남자 저 남자의 마음을 불사지르기를 취미로 삼는 바람둥이 여주인공 나나인데,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83)의 그림을 통해 나나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있다. ‘제대로’라고 표현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마네가 이 그림을 그릴 무렵 졸라는 아직 『나나』의 집필을 구상하지 않은 상태였고, 그림의 제목은 나중에 붙여진 것이다. 보통은 화가가 소설의 한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리지만, 이 경우는 반대로 마네의 그림이 졸라에게 ‘나나’라는 여자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데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니까 마네의 그림으로 인해 소설 속 여주인공 나나가 탄생했다고나 할까.

에두아르 마네, 「나나」, 캔버스에 유채, 154×115cm, 1877, 함부르크 미술관

그림 속에서 나나는 속옷 차림으로 화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방 전체에 취해버릴 듯 향긋한 화장품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다. 말랑말랑 통통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그녀의 피부는 손에 든 보송보송한 파우더용 깃털뭉치로 인해 훨씬 촉각적으로 느껴진다. 화면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두드러지게 커다란 엉덩이는 실제 살덩이가 아니라 버슬 스타일 드레스를 입기 위해 두른 심지로 인한 것이다.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든 점잖은 신사가 구석에 앉아 그녀가 옷 갈아입기를 기다린다. 무관심한 듯 무표정하지만 나나가 화장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그녀의 엉덩이를 몰래 원 없이 감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물론 나나 역시 남자 모르게 앞에 놓인 거울을 통해 남자의 시선을 감지하고 있다. 고지식한 남자가 자기에게 매료된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졸라의 소설은 나나가 애정 편력에 있어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결국에는 천연두라는 몹쓸 전염병에 걸려 죽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엉덩이가 헤픈 여자들의 종말은 거의 예외 없이 요절이다. 아마도 작가들은 지나치게 매혹적인 여자가 어느 한 남자만의 여자가 되어 성적 매력을 잃어가고 서서히 세월을 타면서 늙어가야 하는 현실을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유혹자가 해피 엔드를 맞지 못하도록 소멸시키는 더 중요한 이유는 독자들을 대신해 가하는 일종의 도덕적 징벌이 아닌가 싶다. 그녀로 인해 한 여자는 한 남자를, 한 남자는 한 여자를 영원히 사랑해야 하는 이상적인 신뢰관계가 엉망이 되어버렸으니까.

너무 헤픈 엉덩이도 결말이 안 좋지만, 너무 감추고만 사는 엉덩이도 그리 권할 만하지는 않다. 타인의 시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엉덩이는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 나도 늘 엉덩이를 덮어 가리는 긴 상의를 즐겨 찾는다. 그런 옷이 하루 종일 신경도 쓰이지 않고 마음도 편하다. 그러다 보니 엉덩이는 숨겨진 채 묵묵히 앉아 있기만 할 뿐 아무런 자기표현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엉덩이는 두뇌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사이에 틈틈이 흥에 들뜨고 제멋대로 들썩거리는 아주 재미난 신체 부위다. 떠들썩한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마구 흔들어대는 춤은 기본이고, 반드시 유혹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그것은 주로 세상사 흥겨운 일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신체 중에서 엉덩이는 유희의 본능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임무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 호이징하(Johan Hoizinga)가 말한 대로 인간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를 즐기는 동물이다. 인간이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고, 그것에서 환희를 느끼고, 낭만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놀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앉아 있지만 말고 이제 숨 좀 쉬자는, 좀 흔들어 보자는 엉덩이의 제안에 가끔은 귀를 기울여 보아야 한다. 어쩌면 우리 신체 중 가장 예쁜 곳이 엉덩이일지도 모른다. 항상 의자에 파묻혀 가려져 있는, 그래서 가꾸고 장식해야 할 몸의 일부분으로서 살지 못하고 마치 방석이나 쿠션인 양 잊혀져버린 자신의 불쌍한 엉덩이에게 한번쯤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해주면 어떨까. 특히 가만히 앉아 말로만 막연히, 매력 포인트라고는 하나도 키우지 않으면서, 가을이 가기 전에 사랑하고 싶다고 날마다 울부짖고 있는 당신이라면 말이다.


이주은이 추천하는 관련 도서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저/이상원 역 | 에코의서재 | 2008년 07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새로운 음정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지 않도록 참는 것이 더 힘들다.” 바흐의 말이란다. 늘 우리에겐 음악의 아버지로 불려, 근엄했을 것만 같은 바흐도 창조적인 영감을 분출시키기 위해 스스로 벽을 허물고 언제나 놀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이야기인가? 이 책은 미켈란젤로, 바흐, 윌리엄 블레이크, 쇤베르크, 베토벤, 피카소, 브람스 등의 예술가들을 통해 ‘놀이로부터 얻어지는 창조’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이윤정의 스타일 플레이
이윤정 저 | 앨리스 | 2008년 10월

삐삐밴드 출신의 스타일리스트 이윤정의 책이다. 서양의 위인들은 그렇다 치고, 우리나라에서 현재 가장 잘 노는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하다 발견한 책. 이윤정 하면 언뜻 떠오르는 건 ‘제멋대로 잘 노는 사람’이라는 이미지. 스타일 역시 타인을 의식하는 행동을 포함하고 있다는 면에서 결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사람은 우리시대 화두가 되어버린 스타일을 갖고 정말 잘 노는구나, 나도 눈치 보지 말고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겨봐야겠구나, 내가 갖고 있는 헌옷에서도 스타일과 놀이를 발견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삶에 영감과 에너지를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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