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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 소중한 우리의 바다를 지키자

바다는 인간의 역사 이래로 이동과 교류, 전쟁을 위한 길이었습니다. 인간의 선조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바다를 통해 새로운 곳으로 이주했고, 또 필요한 물품을 얻기 위해서 바다를 건넜으며, 그리고 전쟁을 위해 바다를 가로질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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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 저, 『바닷길은 문화의 고속도로였다』, 사계절, 2000년 10월
주강현 저, 『독도견문록』, 웅진지식하우스, 2008년 8월
레이첼 카슨 저, 이충호 역, 『우리를 둘러싼 바다』, 양철북, 2003년 2월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 지구(地球, earth)는 그 이름에서 보면 ‘땅’이나 ‘육지’가 우리 행성의 주인공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 표면적의 70퍼센트 이상이 바다입니다. 지구가 아니라 수구(水球)가 오히려 당연한 명칭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다는 인간의 역사 이래로 이동과 교류, 전쟁을 위한 길이었습니다. 인간의 선조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바다를 통해 새로운 곳으로 이주했고, 또 필요한 물품을 얻기 위해서 바다를 건넜으며, 그리고 전쟁을 위해 바다를 가로질러 갔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바다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윤명철의 『바닷길은 문화의 고속도로였다』(사계절, 2000)는 이에 대하여 대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양문명사가인 주강현의 『독도견문록』(웅진지식하우스, 2008)을 통해서 우리나라 동해의 외로운 섬 독도에 함께 가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레이첼 카슨의 『우리를 둘러싼 바다』(양철북, 2003)에서는 과학으로 바다를 읽어보겠습니다.

***

아마 우리 인간의 조상이 바다를 처음 보았을 때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육지에서는 산의 높이도 가늠해볼 수 있고, 또 멀리 보이는 장소까지도 걸어갈 수 있었으나. 바다는 그렇지 않았다. 그 깊이도 알 수 없고, 또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도 몰랐다. 또 그 끝이 어디인지도 몰랐다.

세월이 많이 지나자 사람들은 바다에 많은 먹거리가 있는 것을 알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바다는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장소였다. 그러나 아직도 그곳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가장 큰 두려움은 그 끝에 가면 폭포처럼 밑으로 떨어진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게 했다. 드디어 인간은 지구를 배로 일주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비극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 바다는 주강현의 책 제목처럼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였던 것이다. 한국의 바다도 바로 식민의 바다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일본은 다시 동해를 식민의 바다로 만들려고 획책하고 있다.

그런데 이 바다가 생태계의 입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과연 바다는 이 지구를 위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민족의 해양 활동사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렇기에 육로를 통해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었으며, 바다를 통해 활동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사실 육지를 중심으로 쓰여 있다. 우리는 고구려나 발해가 말을 타고 만주벌판에서 활약한 것에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이는 고토 회복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그리워해야 할 부분은 바다일지도 모른다.

이 책 『바닷길은 문화의 고속도로였다』는 바다를 중심으로 우리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저자인 윤명철은 ‘동아지중해’라는 모델을 설정하고 동아지중해가 한반도와 중국, 일본, 러시아를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지점이며 이 바닷길을 점령한 나라가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우리들은 인간이 배를 만들고, 또 배를 통해 원거리 항해를 한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과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고대에는 배를 만들기는 했지만, 가까운 거리만 항해할 수 있었고, 원거리를 항해하더라도 육지와 가까운 곳으로 다녔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를 비롯해 해양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은 인간의 선조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수준 높은 조선술과 항해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뗏목을 타고 고대 항법으로 항해를 시작하는 윤명철 교수

저자는 1997년 뗏목을 타고 중국의 절강성 해안을 출발해 17일 만에 흑산도에 도착함으로써 고대에 이미 해류나 자연조건을 이용해 원거리 항해를 했음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선박을 만들었을까. 중국의 유적지에서는 5천~7천 년 전의 선박 유적지가 발견되었고, 우리나라에는 “함경북도 굴포리 서포항 유적지에서 약 6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래뼈로 만든 노가 발견되었다.”고 말하면서 이는 “당시 사람이 적어도 연안이나 근해에서 어업을 했거나 항해를 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즉, 우리 선조들은 일찍부터 바다에서 활동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시대 바다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일단 바다는 우리의 먹거리를 해결해 주는 곳이었다. 바다는 인간에게 무궁무진하게 음식을 준 장소다. 아마 고대의 바다는 지금보다 더욱 많은 생선과 패류 등을 주었을 것이다. 지금은 환경오염이나 남획으로 인해 자원이 줄어들었지만 그때의 바다는 아주 풍요로웠을 것이다. 그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우리 선조들은 바다로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바다가 가진 의미의 하나는 바로 ‘길’이었다. 동아지중해라는 그 길을 통해 우리 선조는 각 지역으로 ‘이주’했으며, ‘교역’과 ‘전쟁’을 했다. 삼국시대 한반도의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이주했다는 것은 한국과 일본의 사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절 고구려는 동아시아의 강대국이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영토를 접하고 있기에 항상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있었다. 고구려는 이런 긴장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먼 나라와도 교류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특히나 영토를 접하고 있는 북중국의 나라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남중국의 나라와 동맹관계를 맺어야만 했던 것이다. 고구려가 남중국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바닷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인들은 만주벌판에서 말을 타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황해에서 또 동해에서 돛을 올리고 원거리를 항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해양 국가였던 것이다.

백제의 경우도 한 번 살펴보자.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보면 근초고왕 시기에 백제는 일본과 요서 지방에 진출했다고 나와 있다. 단순히 진출한 것이 아니라 식민지를 경영한 것이다. 그러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이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에 대한 증거는 중국 측 역사서 『송서宋書』『양서梁書』『남사南史』 등에 나온다. 이 사서 중 『양서』와 『남사』에 수록된 내용을 보면 “백제가 요서, 진평 양군을 점거하고 백제군(百濟郡)을 두었다.”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이는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백제의 요서진출설이 수록된 역사서는 모두 남조 국가의 사서고, 요서 지역에 존재했던 북조 국가의 사서에는 이의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백제와 요서 지방의 관련성은 육지인의 시작이나 육지 질서의 입장에서 판단하기보다는 해양 질서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백제인들은 일본열도에 적극 진출하여 정치적으로도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또 대외 진출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하는 시대에 에너지가 왕성한 백제가 황해북부를 횡단하여 요서 지방으로 진출을 시도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리고 이들이 요서 지방에 진출했다면 크기가 어떠하든, 최소한 교역을 위주로 하는 해양도시나 상업기지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즉, 저자는 백제가 요서에 진출한 것이 군사적인 목적이 아닐지라도 상업적인 목적으로라도 진출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가진 국가였다고 알려진 발해의 해양 능력에 대한 부분도 상당히 특이하다. 발해는 황해를 건너 당나라의 영토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동해를 건너는 것은 황해와는 다르다. 즉, 동해를 항해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는 말이다. 그런데 일본의 사서에 보면 발해는 일본에 여러 번에 걸쳐서 외교사절을 보내고 있다. 동해를 건너 일본으로 가려면 원거리 항해를 익숙하게 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발해가 이런 항해술을 보유할 만한 능력이 있었을까?

“원양항해를 하려면 오랜 관찰, 경험 등을 토대로 태양, 별 같은 천제의 움직임을 기구로 관찰하면서 목표지 및 선박의 위치와 항로를 측정하는 천문항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그래서 발해 배에는 천문생(天文生)이라는 항법사가 타고 있었다.”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 책에는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를 대상으로 동아지중해의 지배권을 어느 나라가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국제관계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아주 훌륭한 조선술과 해양술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어찌 보면 바다는 육지처럼 국경이 그어져 있지 않아,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근대국가 탄생 이후 바다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국경이 그어져 있다. 바다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는 장소이기에 이를 하나의 국가가 배타적으로 소유하길 원했다. 그 바다가 자원이 많다면 소유에 대한 부분은 아주 큰 쟁점이 될 수도 있다. 독도가 바로 그런 곳이다. 이제 독도의 이야기를 해보자.

동해의 외로운 섬 독도, 지금 그곳은 뜨겁다

“독도가 울릉도에서 조망된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독도가 울릉도에 딸린 섬이라는 사실관계는 너무도 당연할 것이다.”라고 저자는 이야기하면서 독도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울릉도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독도의 소유권을 말하기 위해서는 독도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장소인 울릉도의 존재를 파악하고자 한다.

울릉도에는 선사시대 유적이 있다. 고인돌을 비롯해 지배층의 고분은 다양한 형태로 그곳에서의 사람들 삶이 오래되었다고 후대에 보여주고 있다. 울릉도가 한반도와 연관이 된 것은 신라시대 이사부에 의해서였다. 그 이후로 신라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육지에서 먼 곳에 위치했기에 독립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를 생활터전으로 삼아 풍부한 해산물을 얻을 수 있었으며, 기름진 토지는 농업도 활성화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조선 초 그곳은 사람들이 살지 못하게 된다.

“세종 20년(1438년)에 (울릉도에 대한) 본격적인 공도정책이 선포된다. 도민들을 본토로 이주시킨 후 공식적으로는 1884년까지 450여 년간을 빈 섬으로 내버려두는 결과가 빚어진다.” 조선 조정에서는 왜 울릉도는 비워두려고 했을까. 이에 대한 이유를 “공도정책은 그 섬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왜구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조선 조정은 울릉도에 대해 3년에 1차례씩 수토(搜討)하기로 결정한다는 데에서 영유권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나온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울릉도로 몰래 건너갔다.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곳은 어쩌면 유토피아 같은 존재였다. 그곳에는 민중의 삶을 어렵게 하는 무거운 세금도 없었으며, 자신들을 억누르던 탐관오리의 탐학(貪虐)도 없었다. 자신만 열심히 일하면 육지에서의 삶보다 오히려 행복할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 길고 어려운 바닷길을 건너갔던 것이다. 지금 울릉도를 가기 위해서는 동해안에서 배를 탄다. 그렇다면 유토피아를 찾아서 울릉도로 간 사람들은 동해에 위치한 경상도나 강원도 사람이었을까?

저자는 울릉도로 간 육지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전라도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울릉도로 가서 미역을 채취하고 말려서 돌아올 때에는 자신들이 채취한 해물과 울릉도의 나무로 배를 만들어서 돌아왔다고 한다. 그들은 울릉도에서 먼 바다를 보고는 그곳에 있는 작은 섬을 보았을 것이고, 또 그곳에 가봤을 것이다. 그 섬은 전체가 돌로 되어 있는 섬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섬을 ‘독섬’이라고 불렀다. 전라도 사람들은 ‘돌’을 ‘독’이라고 발음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돌섬’이 ‘독섬’으로 그리고 ‘독도’로 그 이름이 변한 것이다.

공도정책으로 공식적으로 울릉도에 사람이 살 수는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곳과 독도에서 조업은 계속했다. 그리고 일본 어부들도 그곳으로 와서 고기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양국의 어부들 간에 분쟁이 발생했고,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땅이기에 일본인들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본에까지 가서 주지시킨다. 일본 조정에서도 그곳이 조선 영토라는 것을 확인해준다.


그런데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인들은 울릉도에 와서 거주하고 시작하고, 또 그들 마음대로 조업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러일전쟁 와중에 울릉도와 독도에 러시아 함대의 움직임을 감시할 시설까지 만들게 된다. 나아가 그들은 시마네현의 고시를 통해 독도를 자신의 영토로 편입시키고 만다. 그리고 지금도 이곳이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더라도 독도가 우리의 영토라는 것을 저자는 역사적인 자료를 통해서, 그리고 해양학적 지식, 지리학, 생활사 등 다양한 학제적 연구방법을 동원해 증명해 보인다. 그리고 “선대들의 바다를 무시한 그릇된 정책의 결과를 후대에서 호되게 겪고 있는 중이다. 바다를 무시하는 육지 중심의 사관은 오늘에도 고쳐지지 않았으니 우리 시대의 육지 중심적 사고력이 후대에 어떤 그릇된 결과를 가져올지, 바다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저자는 한탄하고 있다.

동해의 외로운 그 섬, 독도는 지금은 뜨겁다.

이제까지는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부터는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바다의 능력에 대해서 말해보자.

생명의 고향인 어머니 바다

『침묵의 봄』이란 제목의 책은 환경운동의 고전이라 불린다. 그 책의 저자인 레이첼 카슨은 원래 해양생물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미국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도 어류야생동물국에 일하며 바다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 이런 학력과 경력을 바탕으로 쓴 책이 바로 이 책 『우리를 둘러싼 바다』다.

레이첼 카슨의 책을 읽으면 감동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는 과학적 지식을 아름다운 문제로 표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로 땅과 우리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를 아주 아름다운 시적인 문체로 표현하고 있어서다.

이 책은 바다의 탄생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실 지구가 탄생되고 또 바다가 생기는 것을 목격한 사람은 없다. 다만 우리들은 지금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서 그 사실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이렇게 추측하고 있다.

“(지구의) 지각이 충분히 냉각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그렇게 많은 비가 내린 적은 없었다. 비는 주야를 가리지 않고 몇 달, 몇 년, 심지어는 몇 세기 동안 계속 내렸다. 빗물은 곧장 해분으로 쏟아지거나 대륙에 떨어졌다가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빗물이 서서히 분지를 채움에 따라 점점 커져 간 원시바다는 염분을 극히 조금만 함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중략) 수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바다는 대륙에서 씻겨 내려온 염분으로 짜게 변했다.”

이렇게 바다가 생기고 또 그 바다는 염분으로 짜게 되었다. 그런데 바닷물에 포함된 염분의 농도는 인간의 체액에 있는 염분의 농도와 아주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바다가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의 고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도 ‘어머니 바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
그렇다면 이 바다는 어떤 역할을 할까. 바다는 아마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할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 역할에 대해서 아는 것은 몇 가지뿐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아직도 인간의 과학은 자연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바다의 역할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바로 ‘온도조절장치’다.

“바다가 없다면 세상은 상상하기 어려운 심한 온도에 시달릴 것이다. 지표면의 3/4을 덮고 있는 물은 놀라운 성질을 지니고 있다. 물은 열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능력이 뛰어난 물질이다. 물은 열용량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바다는 태양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열을 흡수하고도 그다지 뜨거워지지 않으며, 막대한 열을 잃고도 그다지 차가워지지 않는다.”라고 저자는 바다의 성격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바다가 어떻게 지구의 온도? 조절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그것은 바다가 해류라는 힘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해류에 의해 따듯한 물이 이동하는) 바다의 재분배 기능은 햇빛 에너지에 의해 지구가 불균일하게 데워지는 것을 보완해 준다. 실제로 해류는 따듯한 적도의 물을 양 극 쪽으로 이동 시키고, 래브라도 해류나 오야시오 해류 같은 표충수를 통해,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심해류를 통해 차가운 물을 적도 쪽으로 옮긴다. 지구 전체에서 일어나는 열의 재분배 중 절반은 해류에 의해, 나마지 절반은 바람에 의해 이루어진다.”

영화 <투모로우>에서 보듯이 지구의 냉각화는 바로 해류가 멈춤으로써 일어난다. 이 해류로 말미암아 우리의 지구는 우리가 살기에 적절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다를 잘 지키고 있지 않는 데 큰 문제가 있다. 우리는 살충제와 제초제를 농경지에 뿌림으로써 하천과 바다를 망가트려버렸다. 또 고기를 남획함으로써 바다를 죽게 만들었다. 또 각종 쓰레기로 바다는 몸살을 앓고 있으며, 작년 서해안의 유조선 기름 유출 사건처럼, 바다는 끊임없이 우리 인간의 행위로 인하여 망가지고 있다.

과거 우리의 바다는 이주와 교류, 또 전쟁의 길이었으며, 또 바다는 우리 인간을 먹여 살리는 자원을 가진 곳이라고 여겨왔다. 또 최근에는 바다 속에 무궁무진한 지하자원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독도 문제와 같은 영토 다툼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바다의 중요성은 과학적으로 풀어본 것처럼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닐까? 중요한 것임을 알고도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미래를 슬프게 하는 일이다. 우리의 독도도 지켜내야 하지만 우리의 바다 또한 반드시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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