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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높고 험한 길(2) - 파키스탄 카라코람 하이웨이

이렇게 부족한 우리도 독도를 알리겠다고 온 세계를 천방지축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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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다른 사람들도 무슨 일에든 두려워 말고 도전해 봤으면 좋겠다

끼이익! 쿵! 순간 몸이 공중에 떴다. 익숙한 핸들의 감촉이 사라지고 눈앞에 커다란 바위가 보였다. 본능적으로 몸을 잔뜩 움츠리고는 바닥에 그대로 쳐 박혔다.

“영빈아! 괜찮아?”

여기가 어디지. 내가 누구지. 어제까지만 해도 밤하늘을 보며 평화롭게 잠들었는데 지금은 대체 뭐하고 있는 거지. 한참 멍하니 있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 걱정하는 친구들의 얼굴이 보였다. 내 바로 뒤에서 달리고 있었던 상균 형이 내 모터사이클 바퀴가 움푹 팬 구덩이에 걸려 사고가 난 거라고 말해줬다. 아, 그랬구나. 다행히 보호 장비 덕분에 다친 곳은 없었다. 다만 근심 가득한 상균 형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튜토리얼 강사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모터사이클도 다행히 별 이상이 없었다. 계속된 사고를 겪으며 새삼 느끼는 게 있다면 바로 우리 애마들의 튼튼함이다. 예전에 미국 현지 방송사의 기자가 “여행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에는 “모터사이클 성능이 부족하여 많이 힘듭니다.” 하고 답할 정도로 불만이 많았다. 잘 뚫린 미국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경비 부족으로 250cc를 선택한 것에 대하여 늘 후회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산 모터사이클에 대한 자부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로보트 태권V’를 만들 때 쓰는 초합금이라도 쓴 건지 아무리 구르고 부딪혀도 심각한 고장 한 번 안 난다. 예전에 유라시아 대륙 횡단에 도전했던 한 형이 중국제 모터사이클이 자주 고장 나서 고생했다는데 우리는 참 운도 좋다. 반대로 우리 모터사이클들은 운이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이 녀석들이라고 공장에서 만들어질 때부터 온 세계의 험한 길이란 험한 길은 다 휘젓고 다닐 줄 알았겠는가. 다른 친구들처럼 그저 대한민국의 잘 닦인 도로나 달릴 줄 알았지. 그래도 조금만 더 힘내 주렴. 이제 곧 중국에 도착할 거고, 중국을 지나면 드디어 고향이다.

하지만 아직 난관은 남았다. 바로 추위이다. 소스트라는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길 위에 오른 우리를 날씨가 가로막는다. 우리가 넘어야 할 곳은 쿤자랍 패스. 자그마치 해발 4,800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100미터 오를 때마다 기온이 1도씩 떨어지는 것 같다. 몇 겹의 옷과 겨울용 내피에 가죽 보호대까지 찼는데도 으슬으슬 몸이 떨린다. 가장 추운 부위는 역시 손이다. 손 토시에다가 장갑을 두 겹이나 꼈지만 점점 감각이 없어진다. 주변은 온통 눈 천지이다. 도로 위에 눈이 쌓여있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다. 중간 중간 쉴 때마다 모터사이클 머플러 속에 손을 파묻어 녹였다. 공기가 희박하여 연소가 잘 되지 않아 모터사이클의 성능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속력을 내려 해도 낼 수가 없다. 중간에 갑작스레 양떼가 나타나는 바람에 정지를 하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상균 형이 사고가 잦아 걱정했는데 이제 나도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양치기가 와서 함께 모터사이클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사실 숨이 차서 혼자였다면 아주 힘들 뻔했다.


오후 4시. 드디어 쿤자랍 패스에 도착했다.

“만세! 넘었다!”
“카라코롬 별거 아니네.”

혹독한 추위와 부족한 산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나 펄쩍펄쩍 뛰었다. 쿤자랍 패스 ?대편은 중국이다. 드디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세계를 한 바퀴 돌아 이제 마지막 국가만을 남겨 두었다.

누군가 나에게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가장 기억이 남는 곳이 어디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카라코롬 하이웨이를 꼽을 것이다. 이 길은 정말이지 힘들었다. 몇 번이나 흙모래와 구덩이를 지나고 물길을 넘었다. 바로 옆은 천 길 낭떠러지. 어떤 곳은 바로 머리 위에 거대한 바위가 불안하게 달려 있어서 조금이라도 땅이 흔들리면 그대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모터사이클을 다루는 것은 제법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쳐 온 나이지만 이곳에서 두 번이나 넘어져야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었다. 어쩌면 다 지난 일이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이켜봤을 때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 아닐까. 카라코롬을 넘으면서 우리는 더 이상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몸을 감싸줄 보호 장비와 “괜찮아”라고 말해 줄 친구가 있다면 얼마든지 툭툭 털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으니까.

너무나도 잘 포장 된 탄탄대로를 달릴 때면 난 졸려서 몸을 뒤튼다.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실패와 역경이 없는 인생은 지루하다. 아무것도 배울 수 없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고 위험이 뻔히 보이는 길에 무턱 대고 달려들라는 말은 아니다. 보호 장비와 동료, 이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인생의 보호 장비는 무엇일까? 나는 ‘원칙과 가치’라고 생각한다. 나의 원칙이 정의라면 정의로 온몸을 무장하라. 어떤 불의가 나를 넘어뜨려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그리고 나의 정의를 믿어줄 동료와 함께 하라. 세상에 사람보다 더 따뜻하고 강한 버팀목은 없다.


그다지 잘난 것도 없으면서 이렇게 잔뜩 힘을 넣어 말하려니 부끄럽다. 사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우리는 전문 라이더도 아니다. 독도 전문가도 아니다. 영어도 부족하고 제2외국어는 더더구나 안 된다. 더 해볼까? 외모는 너무 평범해서 배우를 하기도 힘들고 개그맨을 하기도 힘들다. 강석 형을 제외하고는 키도 작다. 유머 감각 제로에 하나같이 몸치다. 전공 학점은 바닥이다. 아직 취업 준비도 못했다. 우리 승일이는 아직 군대 짬밥도 없다. 이렇게 부족한 우리도 독도를 알리겠다고 온 세계를 천방지축 달리고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도 무슨 일에든 두려워 말고 도전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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