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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날의 넥타이

“넥타이를 잘 매는 것은 삶에 대한 신실함을 보여주는 첫 행위”라는, 19세기의 댄디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말을 생각하면서, 당신은 오늘 아침 넥타이를 매면서 무슨 다짐을 했었는지 되뇌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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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첫 입사했던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주변에서 멋을 낼 줄 아는 남자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에 옷 입기에 관한 강좌가 끼어 있을 정도였다. 정장 차림에서 멋 내기의 핵심은 단연 넥타이였다. “앞으로 여러분은 매일 넥타이를 매는 것으로 아침을 열게 될 것입니다.” 그때 왔었던 초빙강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넥타이를 맬 때에는 하루가 꼬이거나 뒤틀리지 않고 마무리까지 잘 풀리도록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었다.

입사 전부터 여자들은 화장은 기본이고, 옷차림도 간혹 세미 정장 스타일로 입곤 하기 때문에 직장 여성이 된다 한들 그다지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남자들은 입사와 동시에 극심한 패션의 변화를 맞은 듯했다. 티셔츠에 면바지 차림은 마침표를 찍고 스스로 자신의 목을 조여야 하는 넥타이 조직의 일원들이 되는 것이었다. 넥타이는 실용성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소품이었다. 성격이 좀 덜렁대던 동기 하나는 매번 구내식당에서 물수건을 얻어 넥타이에 흘린 국물을 닦아냈었다. “넥타이 대신 냅킨을 두르면 훨씬 실용적이지 않을까요?” 하고 나는 그를 놀리곤 했었다.

넥타이의 기원에는 두 개의 가설이 있는데, 하나는 로마시대 보병들이 보온을 위해 손수건을 목에 두르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 때 로마의 기병들이 같은 편이라는 표시를 하기 위해서 스카프를 특이한 방식으로 매던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첫 번째 설이 옳다면, 넥타이의 전신은 제법 실용적인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내겐 두 번째 설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넥타이는 분명 팀원끼리 공동체 의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착용되었던 ‘형식’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입사 후 몇 달이 지나니 어느새 동기에게서 풋풋한 자기만의 개성은 온데간데없고 온몸에 회사 분위기가 철철 흐르기 시작했다. 면도를 너무 잘했는지 빤질빤질해진 광나는 얼굴처럼 말투도 약간 능글능글 거만해져 있었다. 회사 생활에 동화되려고 남몰래 노력한 결과였는지 모르지만, 내겐 그게 다 넥타이 탓으로 보였다.

넥타이 공동체 문화의 진면모를 보았던 것은 어느 날 볼링장에서였다. 당시는 볼링이 꽤나 유행하던 시절이라 회사 근처의 볼링장은 늘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일을 일찍 마치고 그곳에 온 회사원들은 양복바지는 양말 속에 불룩하게 집어넣고, 또 넥타이는 와이셔츠 세 번째와 네 번째 단추 사이로 쑤셔 넣은 채 열심히들 공을 굴리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껏 폼 잡으며 공을 굴린 후 돌아서 레인을 걸어 들어올 때면 비쭉 튀어나온 와이셔츠를 바지 속으로 주섬주섬 구겨 넣는 것이었다.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어느 레인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그 한결같은 모습들이란! 그랬다. 이들은 바로 자신만의 스타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넥타이 군단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넥타이는 조직에서 혼자 튀지 않고 파묻히기 위한 패션 소품이 되었지만, 본래 그것은 자신을 아주 특별하게 연출하고 싶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것이었다. 19세기에 영국의 남자 아이들은 이튼(Eton) 같은 사립학교에 보내지면 으레 교복을 입고 넥타이를 맸다. 아이들이 두르는 넥타이에는 사회의 상층부를 꿈꾸는 부모들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사실 중산층이라고 해서 사회문화적 지위까지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기 세대에서는 비록 돈을 모으는 데 급급해 이루지 못했지만, 아들만큼은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하여, 그로써 상류 사회로 진출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이런 교육열 덕분에 자식 세대는 대학교육을 받은 엘리트가 되었고, 세련된 문화를 향유할 줄 아는 층이 되었다. 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문화가 바로 댄디 문화이다. 댄디(dandy)는 속된 대중과 자신을 구별 짓기 위해, 즉 지식인의 고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대중 사이에 섞여버리지 않기 위해서 치장에 각별히 신경을 썼던 자들을 일컫는다.

조바니 볼디니, 「로베르 드 몽테스키외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55.9×40cm, 1897, 오르세 미술관

이탈리아 출신의 초상화가였던 조바니 볼디니(Giovanni Boldini, 1842~1931)가 그린 「로베르 드 몽테스키외의 초상Count Robert de Montesquiou」을 보면, 당시 댄디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 흔히 문인이나 학자하면 잘 감지 않은 헝클어진 머리칼에, 배색을 신경 쓰지 않은 이상한 차림, 다리미 줄이 사라져버린 무릎 나온 바지 등, 유행하고는 담 쌓은 모습이 언뜻 떠오른다. 하지만 19세기말 유럽의 지식인 중에는 그런 수더분한 사람보다는 오만해 보일 만큼 깔끔하고 세련된 댄디가 더 많았다.

댄디 덕분에 본격적으로 넥타이는 개성을 표현하는 스타일로 발달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비로소 다양한 기교를 부린 고급 소재의 넥타이가 쏟아져 나왔을 뿐 아니라, 넥타이 매듭 기법을 소개하는 잡지도 무성하게 배포되었다. 눈부시게 새하얀 셔츠 깃 날을 세우고 청결한 소매 깃을 빛내며 실크 넥타이를 두른 사람은 이른바 펜을 든 엘리트임을 무언중에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침마다 넥타이를 맨다는 것은 자신이 지적인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그러나 넥타이남들에게는 남자로서 위신을 잃지 않기 위해 따라야 할 원칙이 하나 있었다. 가족과 일을 철저히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미국의 여성 풍속화가인 릴리 마틴 스펜서(Lilly Martin Spencer, 1822~1902)가 그린 「젊은 남편: 첫 장보기Young Husband: First Marketing」를 보라.

릴리 마틴 스펜서, 「젊은 남편: 첫 장보기」, 캔버스에 유채, 75×62.5cm, 1854, 매스코 컬렉션

이 남자는 아내를 위해 퇴근길에 장을 봐서 귀가하는 중이다. 이런, 갑작스레 비가 쏟아진다. 우산을 펴려던 남자는 바구니 뚜껑이 열리는 바람에 지금 체면이 말이 아니다. 달걀은 깨지고, 야채는 쏟아지고, 닭고기가 떨어지려는 것을 재빨리 무릎과 손을 움직여 겨우 막았건만, 닭고기는 이미 바구니에서 튀어나와 덜렁덜렁 흉하게 걸쳐져 있다. 이렇게 축 처진 닭고기는 힘없는 남근을 연상시킨다. 화가는 가정적인 남자가 체면에 수모를 입고 있는 상황을 닭고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뒤쪽의 행인은 도와주기는커녕 비웃듯 그를 쳐다볼 뿐이다.

사실 댄디의 남자다움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남자다움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예를 들어 땀 냄새라든가 격식을 갖추지 않는 행동, 그리고 걸쭉한 식습관 같은 것을 남자다움의 기준으로 잡는다면 댄디는 매우 여성스러운 성향이라고 볼 수 있다. 힘이 세고 터프한 남자는 날것이나 징그러운 음식도 마다않으며, 디저트는 어린애답고 여성스러우므로 즐기지 않는다. 그러나 댄디는 근육의 힘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기에 언제나 여자처럼 향긋한 냄새가 났다. 많은 양의 음식을 먹지도 않았을 뿐더러 두뇌의 휴식을 위해 단것도 즐겼다. 이런 그들이 자신을 남자로서 차별화기 위해서는 아녀자의 영역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어떻게든 과시해야만 했을 것이다.

가족을 보살피고 가정에 매어있는 것은 전적으로 여성스러운 행동으로 간주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와 아이에 대한 사랑을 공공연히 노출시키는 남자는 이기적일만큼 자기 세계에 빠져 있고,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자유로운 지식인의 섭리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현실에의 무관심이야말로 댄디들이 암묵적으로 지켜야 할 태도였다. 넥타이를 매고 있는 시간 동안은 집안일과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야 진정 남자다운 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에는 상황이 역전하여 가족에 대한 관심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심이 결핍된 상황을 감추려 한다. 가정에서의 자애로운 이미지가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이미지로 추앙을 받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넥타이를 매지 않고 폴로셔츠 같은 캐주얼 차림의 성공한 중년 신사들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넥타이라는 장벽 없이 언제든 반갑게 아내와 아이들을 안아줄 수 있는 푸근한 차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아주 특별한 날에는 날 세운 양복에 넥타이를 맨다. 넥타이를 매는 것은 스스로 긴장하고자 하는 행위이고, 또 상대에게 자신이 준비된 자임을 알려주는 표식이기 때문이다.

넥타이는 여전히, 또 다른 방식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남자다움을 요구하고 있다. “넥타이를 잘 매는 것은 삶에 대한 신실함을 보여주는 첫 행위”라는, 19세기의 댄디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말을 생각하면서, 당신은 오늘 아침 넥타이를 매면서 무슨 다짐을 했었는지 되뇌어 보길 바란다. 우르르 넥타이 군단 속에 끼어, 한 가닥의 엘리트 의식도 없이, 하루를 이겨낼 아무런 전략도 없이 일상을 시작하고, 그저 눈곱을 떼듯 의무처럼 넥타이를 두르고 살지는 않은지. 그런 느슨한 날엔 차라리 넥타이를 벗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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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 열음사 | 2002년 01월

“넥타이는 맬 뿐만 아니라 자를 수도 있다.” 1962년 관객의 넥타이를 자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아티스트 백남준의 말이다. 백남준의 자른 넥타이는 상품으로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하다. 백남준의 장례식장에서는 동료 아티스트들이 백남준처럼 넥타이를 자르는 퍼포먼스를 펼쳐 그를 기리기도 했다. 넥타이로 대변되는 고정관념을 백남준처럼 시원하게 잘라버리고 싶다면, 먼저 일을 치른 백남준의 세계와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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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미니스커트만큼 용기를 필요로 하는 남자들의 패션 소품은 바로 나비넥타이다. 한결같이 나비넥타이를 고집하는 아버지를 둔 주인공은 어느 날 콧수염을 기르고 등장한 친구를 보며, 문득 특이하다고만 생각한 그들의 스타일 속에 자신이 모르던 타인의 또 다른 모습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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