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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잘하세요

사는 일이 엉망이다. 그래도 끝내는 상식과 양심이 이기는 세상이기를 바란다. 그러려니 드는 생각. 어이, 김진규! 너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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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불행한 사실은 그녀가 어떤 일에서든 자기의 의견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주위의 사물들을 인지하거나 또한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런 일들에 대해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없었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귀여운 여인」, 안톤 체호프

그렇게 아무런 대책도 떠오르지 않는 때가 있다. 당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은 하면서도, 그 실체는 파악할 수 없는 때 말이다. 발광의 순간.

다시 말해, 인생에는 중요한 일과 사소한 일이 함께 섞여 있어. 허나 우린 항상 사소한 일만 하고 살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사소한 일들 중에 뭐가 중요한 일인지 깨닫지 못하는 거야.
『빅토리아의 발레』,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병법兵法 제31계 미인계美人計

미녀를 첩자로 보내서 상대를 향락에 빠뜨린 뒤, 상대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승리를 얻는 전략이다. 보수적인 책략이기는 해도, 교묘히 운영하기만 하면 전장에서 직접적으로 얻지 못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른바 ‘폭탄이 육탄만 못하고, 총이 베갯머리를 당하지 못한다.’는 것.

춘추시대, 월나라와 오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구천과 부자가 각각의 군주였는데, 결론은 월나라 패. 구천 부부는 포로가 되었고, 부차는 그들을 가둬놓고 온갖 잔일을 시키면서 모욕을 주었다. 하지만 구천은 견뎠다. 오히려 자신을 낮추어 부차에게 공손히 대함으로서 신임을 얻었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구천은 마침내 제 나라도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돌아온 구천은 복수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때 나온 고사가 와신상담이라지. 하지만 구천으로서는 오나라의 강한 군사력을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때 곁에서 말했다.

“깊은 물에서 노는 물고기도 향기로운 미끼에 걸려 죽듯이, 부차가 좋아하는 것으로 그의 의지를 꺾어야만 부차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옳다구나. 포로생활 동안 부차의 약점이 드러난 걸까? 구천은 해마다 수많은 보물과 미녀들을 바쳤고, 부차는 향락에 빠져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그때 보내진 미녀들 중 하나가 그 유명한 서시다. 부차는 완전히 넘어갔다. 구천이 자신에게 완전히 복종했다고 믿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정사도 돌보지 않고 주색잡기에만 골몰하다가, 결국엔 구천의 공격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쯧쯧.

미인계는 특히 상대가 강할 때 쓰는 전략이다. 누가 나그네의 옷을 벗기느냐를 두고 해와 바람이 내기한 것과 같은 맥락이리라.

‘아름다움이란 표피적인 갓에 불과하다.’ 이 흔한 문구는 얼마나 듣기 좋은가! 이 말은 외모가 빼어나지 않더라도 세상에 내세울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못생긴 이들이나 오랜 세월 자신의 외양을 포장하는 데 열중하다가 이제는 자신의 내면으로 사랑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미남미녀 모두에게 똑같이 위안을 준다. 우리가 몇몇 진화생물학자들의 말을 믿는다면, 그 상투적인 문구의 한 가지 문제점은 바로 그 말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선善하다. 선할 수도 있다거나 선할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단정한다, 선하다고. 때때로 종종. 그러고는 열광하고 숭배한다. 저 불한당, 천하의 상놈, 에라 이 나쁜 놈. 그런 말하기 좀처럼 쉽지 않다.

설사 외모가 조각이 아니어도 참으로 매력적이다. 재치 있는 입담에 몸가짐도 반듯하다. 게다가 패션마저 장난이 아니다.

운동선수도 국회의원도 범죄자도 하물며 귀신까지도 예쁘고 잘나야 하는 세상이다. 그 속에 어떤 악함이 있겠나 의심하게 만들고 마음 약해지게 하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알게 모르게, 대놓고 용서받을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된다.

병법兵法 제7계 무중생유無中生有

가짜를 진짜처럼 꾸며서 상대를 속이는 전략이다. 단순한 기만이 아니라 허虛 속에 실實을, 실 속에 허를 두는 전략. 이 전략의 요체는 진짜와 거짓을 서로 변화시켜 가면서 상대를 혼란시키는 데 있다.

당나라 중엽 현종 때의 이야기다. 재상 약국충과의 전쟁에서 패한 안록산이 사사명과 도모해 반란을 일으켰다. 많은 지방 관리들은 안록산과 사사명에게 투항을 했다. 하지만 장순章順만은 항복하지 않았다. 황실에 대한 충성심이 깊었던 그는 불과 이삼천의 군사만을 거느리고 옹구를 지키고 있었다.

안록산은 부장 영호조와 4만 군대를 보내서 옹구를 공격하게 했다. 장순은 비록 작은 승리를 여러 번 얻긴 했지만, 적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탓에 점점 수세에 몰려갔다. 무기와 식량마저 부족하게 되자 한 가지 묘책을 짜냈다. 병사를 동원하여 많은 고인을 만들게 한 것이다. 고인이란 볏짚으로 만든 인형이다. 이 고인에 병사들이 입는 군복을 입혀놓고는 먼 곳에 진을 친 반란군의 눈에 진짜 병사로 보이게끔 했다.

밤이 되자 병사들은 이 고인을 성벽에 내걸고 끈을 조작하여 성벽을 타고 내려가듯 천천히 내렸다. 성을 포위하고 있던 반란군이 이것을 보고 일제히 활을 쏘았다. 관군은 끈을 조작하여 고인이 성을 도로 기어오르고 간혹은 화살을 맞아 떨어지는 시늉을 보이다가 끝내는 모두 기어오르게 했다. 이틀 밤을 이렇게 하자 수만 개의 화살이 모아졌다. 이렇데 해서 얻어진 적의 화살로 반란군이 접근하면 쏘아대었으니, 남의 떡으로 생색내기?

장순은 더 나아가 적의 허를 지르는 또 하나의 계략을 꾸몄다. 사흘째 되는 날, 바로 그 고인 한 개를 성 밖에 떨어뜨려 반란군의 눈에 띄게 해서는 장순의 계략임을 알게 한 것이다. 하니 나흘째 밤에 장순의 진짜 병사 둘이 성벽을 타고 내려가는데도 반란군은 그저 쳐다만 보고 무시할밖에. 장순은 진짜 병사들을 일제히 성벽 아래로 내려 보낸 후 성 아래 바닥에 죽은 듯이 있도록 했다. 반란군은 그것이 고인인 줄 알고 안심하고 접근해왔다. 그 다음 벌어진 일이야 불 보듯 뻔. 반란군은 많은 시체를 남기고 달아났고, 포위망도 완전히 풀리게 되었다.

논리적인 것은 옳다. 옳을 수도 있다거나 옳을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아주 자주 속는다, 옳다고. 그러고는 믿어버린다, 지당하시다고.

흐트러짐이 없고 순서가 정연하고 비유도 탁월할뿐더러 때로는 달기까지 하다. 그러다 보니 대거리를 하고 싶어도 어지간한 말발로는 되로 주고 말로 받기 십상이다.

때문에 욕도 다양해지고 풍부해졌다. 말로는 안 되고 속은 터지는데, 어떻게든 모욕은 주고 싶으니까. 그 속에 어떤 허점이나 오류가 있겠나, 따져보지도 못하게 하고 내 정신을 허물어뜨리는 힘이 있다. 그 힘은 평생 반려자를 결정짓는 순간에도 아주 중요한 조건이 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떤가. 내부의 실상이 기대에 부응하는 경우는 거의 없네. 진실은 십중팔구 치사하고 하찮은 것이기 마련이고, 알고 보면 결국 가장 저열低劣한 동기로 환원될 수 있는 것들뿐이야. 추정이나 환상을 가지고 있을 때가 차라리 낫네.
『앰버 연대기』, 로저 젤라즈니

그렇단 말이지. 그걸 알면 더 이상은 당하지 않는단 말이지. 아니 아니, 속과 겉을 뒤집어볼 줄 아는 인목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의 등장. 물론 그러기엔 내가 가진 지식이 너무 짧다는 원통함도. 그러나

모른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배우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쁜 것이다. 아주 나쁜 것이다. 지식이 있는 자에게 세상은 열려 있다. 만약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면 이것 하나만은 명심해야 한다. 적어도 근면해야 한다는 사실.
『이야기꾼』, 쉘 요한손

그리고 하나 더.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착함을 지킬 독한 것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마치 덜 익은 과실이 자길 따 먹는 사람에게 무서운 병을 안기듯이, 착함이 자기 방어 수단을 갖지 못하면 못된 놈들의 살만 찌우는 먹이가 될 뿐이지요. 착함을 이기기 위해서 억세고 독한 외피를 걸쳐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 대세에 멋진 놈, 우스운 놈, 정신없는 놈에 실없는 놈까지. 그렇다고 독한 년에 비할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내가 아는 최초의 독한 년은 살로메다. 유대왕비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 의붓아버지인 헤롯왕 앞에서 춤으로 요염을 떨어 세례요한의 머리를 챙긴 맹랑한 소녀.

착란의 변증법이란 이런 거야. 모두 아무 짓도 안하고,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고, 돈도 제대로 벌지 못하는데,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대로 굴러간다는 거지.
유디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이 변증법은 이상한 거야. 연거푸 부정해도 결국은 긍정으로 끝나버리거든.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라.

『두 여자 사랑하기』, 빌헬름 게나찌노

사는 일이 엉망이다. 그래도 끝내는 상식과 양심이 이기는 세상이기를 바란다. 그러려니 드는 생각. 어이, 김진규! 너나 잘하세요!

그래서

밤새워 일하고 내일은 한나절까지 자야겠다.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뭔가를 창조하고 죽는 것 외엔 없다.
『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어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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